지하련의 우주/Jazz Life

바람 속의 네 사람

지하련 1999. 12. 19. 21:35
끊임없이 고개를 돌리는 사람과 가슴에 많은 구멍을 가지고 있는 사람, 손가락 하나 사랑하는 이 가슴에다 심어주고 온 사람, 그렇게 세 명이서 만났다. 원래 네 명이 만나기로 되어있었는데, 한 명은 며칠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손가락'이 '고개'에게 손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존재 이유라고 말했다. 그러자 '고개'는 웃기 시작했고, '가슴 구멍'도 따라 웃었다. 그리고 '손가락'도 웃었다. 웃으면서 '고개'는 계속 고개를 돌려 뒤를 쳐다보았고 '가슴 구멍'은 등 위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가슴에 나 있는 구멍들을 통과해 나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인지 손을 앞가슴 쪽에다 갖다대었다. 갑자기 돌풍이 몰아쳤고 '가슴구멍'의 몸에서 바람소리가 멜로디를 만들었다. '고개'는 너무 고개를 많이 돌려 목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손가락'이 바지 주머니에서 딱딱하게 굳은 손가락 하나를 꺼내며, '이게 내 사랑이야, 음... 그녀의 향기
가 나...' 그리고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바람이 멈췄다. 시간은 흐르지 않았고 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며칠 후 마지막 사람이 도착했다. 그는 '자기 얼굴'라고 불렸는데, 늘 자기 얼굴에 걸려 넘어지고 있었다. 언제나 길을 가다 뭔가 걸려 넘어지고 난 다음에다 자기 얼굴이 몸에서 떨어져 길바닥 위를 뒹굴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었다. '고개'가 '자기 얼굴'을 보면서, '여전히 상처투성이군'이라고 말했다. '손가락'이 바지 주머니에서 딱딱한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면서 몇 시냐고 물었다. 그러자 '고개'가 '한 시, 오후 한 시야'라고 말했지만, '가슴 구멍'은 '새벽 다섯 시', '자기 얼굴'은 '아침 열 시'라고 주장했다. '손가락'이 웃었다. '시간은 오후 세 시야. 그러니까 그녀의 가슴에 내 손가락이 붙은 시각이 오후 세 시야. 하하하.'

'자기 얼굴'이 또 넘어졌다. 그리고 그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자기 얼굴을 주워 다시 목 위에다 달았다. 그러자 '손가락'이 주머니에서 딱딱하게 굳은 손가락을 꺼내 '자기 얼굴'에다 보여주며 '사랑의 향기'가 난다며 울기 시작했다.

다시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바람 한 가운데 네 명은 자기가 해오던 일을 계속 반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