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아주 오래 전 묵호항에서

지하련 2007. 3. 13. 20:04
2003년 여름이었다. 묵호항에 가서 며칠 지내다 올라왔다. 혼자 회도시락을 사먹었고 혼자 민박집에서 뒹굴거렸고 혼자 맥주를 마시며 근원수필을 읽었다. 아래 글은 그 때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 적은 글이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3월의 어느 화요일, 밤 8시를 막 지난 시간, 갑자기 지쳐버렸다. 실은 오늘 하루 종일 지쳐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끝내 지쳐 떨어져나갈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일을 하다 죽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뭔가 돌파구가 필요한, 이른 봄날이 시작될 예정이다. 난 한 번도 워커홀릭을 원하지 않았지만, 어느새 워커홀릭이 되어있었다. 그만큼 욕심이 많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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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8월 20일 적다.

내가 중학교 어느 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때까지 살았던 곳은 마산 가포라는 곳이었다. 집 앞이 바로 바다였는데, 태풍이라도 부는 날은 파도소리로 을씨년스러웠다. 안개가 끼인 날은 바다는 호수처럼 보였고 수평선을 보려면 배를 타고 한참 나가든지 고개를 여러 번 넘어야했다.

바다 중간에 돝섬이라는 자그만한 섬이 있었고 그 건너에는 진해가, 바다 멀리에는 해안선을 따라 몇 척의 군함이 보이곤 했다. 아주 오래 전엔 고래 한 마리가 들어왔다가 먼 바다로 돌아가지 못하고 만 깊숙한 곳에서 해매는 바람에 사람들이 배를 몰고 나가 고래를 바다 멀리 내보내는 일을 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처음 수평선이란 걸 봤다. 놀라웠다. 끝없는 바다란. 수평선 하면 동해안 철책 너머 바다와 고등학교 때 펜팔하던 여자아이 손 잡고 보던 포항 앞 바다 너머 수평선이 떠오른다.

묵호항의 수평선은 별 다를 것이 없었다. 그저 그랬다. 바다 내음이 많이 나지도 않았다. 차라리 마산 가포가 더 나면 더 난다. 그런데 왜 난 바다로 향했을까.

민박집에 누워 있다 한밤 중에 몰래 나와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누군가에게 들키면 안 된다. 내가 향유고래로 변하는 모습을 들키면 그땐 끝장이다. 바다는 생각보다 차가웠다. 내가 나타나자, 큰 놈들은 다 사라지고 작은 놈들만 보였다. 더 깊숙이 내려가려 했지만, 너무 낯설었다.

다음 날,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