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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앨리스 먼로(지음), 서정은(옮김), 뿔 




작년에 읽은 책들을 되돌아보면서 나는 줌파 라히리와 앨리스 먼로를 만난 것을 뜻깊었다고 했다. 앨리스 먼로의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을 읽은 지 두 달이 다 되어서야 이렇게 짧게나마 글을 올리는, 다소 불성실해 보이긴 한다. 


잔잔하고 섬세하며 부드러운 심리 묘사로 외롭지만 외롭지 않은 현대인의 마음을 고스란히 옮겨 놓는 앨리스 먼로는, 그 누구도 혼자가 아니며 누군가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지만, 종종 그 사랑은 얇은 유리잔 처럼 깨지기도 하고 향긋한 봄바람처럼 불어왔다가 거친 태풍처럼 물러나기도 한다는 걸 보여준다. 하지만 태풍은 지나간 후이고 테이블에서 떨어진 유리잔은 다행스럽게도 깨지진 않는다. 그만큼 우리 마음은 강하고 그들의 사랑은 급작스럽게 식진 않는다. 


살아가다보면 위기란 있기 마련이고 위기 때마다 우리는 마음 졸이며 흔들리지만, 그 순간 순간은 어쩌면 생의 짜릿했던 한 순간으로 남지 않을까. 이 소설집에 실린 단편들 하나하나는, 우연처럼 시작되어 마음을 흔들지만, 결국엔 일상은 강물처럼 흘러가고 이미 시작된 변화에 몸을 맡기거나, 마음에는 큰 변화이나 실제로는 사소한 변화로 거쳐 그저 추억될 뿐이다. 


실은 그렇지 않은 것들이 어디 있으랴. 



나는 거짓말을 했다. 친구를 만날 약속은 없었다. 친구들은 대부분 어디가 됐건 자기 집에 가 있었다. 남자 친구는 내일까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오타와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는 코벅의 부모님을 방문할 계획이었다. 기숙사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대화를 나누거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할 그 누구도. 할 일도 전혀 없었다. 


한 시간 이상을 걷고 나서야 문을 연 가게를 발견했다. 나는 들어가 커피를 한 잔 사 마셨다. 한 번 내렸다가 다시 데운 커피는 검고 써서 약 비슷한 맛이 났다. 딱 나한테 필요한 맛이었다. 마음은 이미 편안해져 있었지만, 이제는 행복감마저 느껴지기 시작했다. 혼자 있다는 사실이 주는 그런 행복감. 보도 위로 쏟아지는 늦은 오후의 뜨거운 햇살과 그 위로 흐릿한 그림자를 드리운, 이제 막 새 잎이 돋아나는 가지들. 가게 뒤쪽에서 커피를 따라 준 직원이 듣고 있는 라디오의 야구 중계가 들려왔다. 앨프리다에 대해 나중에 쓰게 될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다. 적어도 구체적으로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건 마치 이야기를 쓰는 일 못지않게 허공에서 뭔가를 움켜 잡으려는 시도와도 같았다. 관중들의 외침이 슬픔으로 가득 찬 심장 박동처럼 내게 다가왔다. 인간의 소리가 아닌 것같은. 기쁨이나 탄식의 소리들. 먼 곳에서 들려오는 그 사랑스러운, 형식적 소리의 파동들. 


이것이야말로 내가 원했던 것, 내가 마음을 쏟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 내 삶이 바로 그런 것이 되기를 바랐던 것이었다. 

- <어머니의 가구> 중에서(162쪽 ~ 163쪽) 






출처: http://www.theguardian.com/books/2009/may/27/alice-munro-man-booker-international-prize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앨리스 먼로저 | 서정은역 | 뿔 | 2007.05.05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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