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리뷰

마르셀 뒤샹 展, 국립현대미술관

지하련 2019. 3. 3. 23:45



마르셀 뒤샹 Marcel Duchamp 

2018. 12. 22 - 2019. 4. 7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마르셀 뒤샹만큼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작가는 없다(있다고 한다면 세잔 정도). 그는 인상주의 이후 추상을 향해가던 현대미술을 캔버스 바깥을 향한 실험과 개념의 아수라장으로 만든 장본인. 뒤샹 이후 모든 것은, 그것이 사물이든 개념이든 상관없이 예술이 되었고(될 수 있고), 동시에 예술이 아닌(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아서 단토의 '예술의 종말'도 실은 앤디 워홀이 아닌 뒤샹에게서 시작되었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노년의 뒤샹은 젊은 엔디 워홀을 무척 좋아했다). 



레디메이드란 숨겨진 미적 가치의 재발견처럼 보이지만, 실은 '예술작품'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의문을 표시하는 일종의 태도다. 그 이후부터 예술가들은 예술 그 자체에 대해 탐구를 시작한다(현대미술은 급진적인 실험과 개념의 세계로 전진하게 되는 것은 뒤샹 이후부터다). 무엇이 예술인 걸까. 


이번 전시는 뒤샹의 여러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지만, 뒤샹이 현대미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알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연대기로 배치한 전시 구성은 뒤샹의 작품들이 던지는 질문들에 대해 어떤 실마리도 관람객들에게 제시해주지 못한다. 도리어 뒤샹의 다양한, 매우 정치적이고 위험하기 그지없는 작품들은 뒤로 묻히고 그의 초기 작품들이 보여주는 페인팅에 더 주목하게 되는 건 아닐까. 심지어 미성년자 관람불가로 진행된 공간에 전시된 <주어진 것 Etant Donnes>의 흔적들은, 그 작품이 얼마나 많은 후대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 얼마나 도발적이며 흥미진진한 것인가를 느낄 수 없었다. 



* Etant donnes 주어진 것

뒤샹의 대표작인 '주어진 것: 1. 폭포 / 2. 조명용 가스등'은 뒤샹이 죽고 거의 9개월이 흐른 뒤 1969년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처음 대중에 공개되었다. 설치 지침서에 따르면 그는 1946년 ~ 1966년 동안 뉴욕에서 이 아상블라주를 제작했다. 육중한 나무문에 난 두 개의 작은 구멍을 통해 큰 구멍이 뚫린 벽돌로 된 벽과 그 뒤편의 마른 나무가지와 낙엽 위에 팔다리를 벌리고 누워있는 여성의 나체 토르소가 보인다. 

- 토마스 기르스트, <<뒤샹딕셔너리>>(주은정 옮김, 디자인하우스), 88쪽 


뒤샹의 작품들이 제시한 개념과 태도로 인해 현대미술은 한없이 어렵거나, 너무 쉬운 것이 되었다. 심지어 현대 미술 작품 대부분이 해석불가능한 암호처럼 바뀐 탓에, 미술전문가들조차 스스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솔직히 고백한다(아니 그렇게 고백해야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뒤샹의 탓으로 돌리기엔 19세기 후반부터 우리는 새로운 시대로 진입했고,  그 당시 많은 예술가들이 새로움으로 무장하고 과거에서 뛰어내려 현대를 창조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중의 한 명이었던 뒤샹은, 그들 대부분 잊혀져 가고 있는 지금, 뒤샹만 홀로 남아 21세기까지 우리를 곤혹스럽게 거의 유일한 예술가가 되었다. 


(과격한 표현일지 모르나) 뒤샹을 제대로 알면 현대미술의 불가해함이 사라지고 대부분의 작품들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나 이번 전시를 통해 그것들을 알기엔 다소 부족해보이는 건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전시를 보기 전, 보고 난 다음 뒤샹에 대해서 한 번 공부해보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아마 현대 미술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 내가 마르셀 뒤샹의 <주어진 것>에 대해 언급한 최초의 글은 아래와 같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내 전망은 비슷하다. 다만 더 암울해졌다고 할까. 

현대미술에 대한 단상 https://intempus.tistory.com/3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