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특성없는 남자 2, 로베르트 무질

지하련 2021. 1. 27. 00:13



특성 없는 남자 2  

Der Mann ohne Eigenschaften 

로베르트 무질(지음), 안병률(옮김), 북인더갭 




1권을 2019년 봄에 읽었으니, 1년 반 정도를 건너뛰어 2권을 읽은 셈이다. 미완성인 소설의 초반부만을 번역한 것이기 때문에 소설 읽기의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사건은 없고 상당히 지루하게 대화와 사색만 이어진다. 대체로 위대한 문학이라고 알려진 작품들이 지루한 경우가 많다고 하나, 이 소설은 무수한 이들의 찬사와 대비되어 내가 더 심하게 느꼈는지 모르겠다. 


내 감상은 간단하다. 사건은 없고 오직 말과 사유만 있는 소설이다. 사람들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진다. 주인공인 울리히는 말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이 전부다. 뭔가 로맨스가 일어날 만한 장면들이 보여지기도 하나, 그것마저도 울리히의 사유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에밀 졸라(Emile Zola)가 어떤 배경(콘텍스트) 속에 인물을 넣어 인간과 사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모색했다면(실험소설론), 로베르트 무질은 현실을 벗어나 나은 미래(20세기 초반의 암울한 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를 꿈꾸는 사람들(지식인과 정치가들) 사이에 울리히를 놓아두고 관념의 향연(?)을 펼친다고 할까. 그 과정을 통해 울리히의 생각, 혹은 사유가 얼마나 다듬어지고 확장되는가를 실험한다고 할까. 하지만 끊임없이 대화와 생각(사유)로만 이어지는 이것은 소설인가? 소설의 형식을 빌려 쓴 철학책일까. 그리고 일종의 사유 실험과도 같은 이 소설은 20세기 최고의 독일 소설로 선정되었다. 

(* 1999년 독일어로 된 가장 중요한 소설 1위로 <<특성없는 남자>>가 선정되었고 뒤 이어 카프카의 <<심판>>,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이 선정되었다. https://en.wikipedia.org/wiki/Best_German_Novels_of_the_Twentieth_Century 참조)


아무래도 내 얇은 이해와 편견 때문에 로베르트 무질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는 게 아닌가 싶어, 구글 검색을 통해 찾은 신지영 교수의 소논문인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없는 남자'에 나타난 유토피아 구상과 그 이념사적 위치>>를 읽었고 결국 내 취향이 아닌 것으로 결론 내린다. 


나는 소설이라는 형식은 철학적 사유나 사색만을 전달하기에 적절하지 못한 양식이라고 생각한다. 도리어 사건과 행동을 통해 사유나 사색의 배경이나 궁극적 결말 등에 대해 이야기할 순 있어도 인물들이 나와 서로 생각 나누고 대화 하는 것만으로 소설이 구성될 수 있다면, 소설의 정의를 새로 내려야 할 것이다(그리고 무질을 통해 소설에 대한 정의를 새로 내리기도 한다). 플라톤의 대화록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로베르트 무질의 이 작품은 놀라운 찬사를 얻게 되고.


무질의 소설 <<특성없는 남자>>는 "서양의 유토피아적 사고를 종합해" 놓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유토피아' 내지 '유토피아적인 것'이라는 범주가 소설의 서사적, 이념적 틀을 규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기존의 무질 연구가 '유토피아적인 것das Utopische'(*)이라는 범주가 주인공 울리히의 실존방식 - 그는 '가능성의 인간Moglichkeitsmensch'이다 - 을 결정할 뿐만 아니라 또한 소설의 문체원리이자 동시에 작가의 창작원리임을 입증했다. 

-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없는 남자'에 나타난 유토피아 구상과 그 이념사적 위상>>(신지영, 2007) 중에서 


무질 스스로의 묘사에 따르면, <<특성없는 남자>>에서는 "현대인의 실존의 의미에 대한 물음이 ... ... 제기되고 나아가 아주 새로운, 그렇지만 가볍고 반어적이면서 또한 철학적으로 심오한 방식으로 답변되고 있다" 또한 무질은 그의 소설이 "세계를 정신적으로 극복하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작가 자신이 명시하고 있는 것처럼, 소설의 문제의식과 이로부터 주어진 소설의 과제는 현대와 현대의 특수한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없는 남자'에 나타난 유토피아 구상과 그 이념사적 위상>>(신지영, 2007) 중에서 


소설적 재미는 없으나, 진지하게 읽어볼 만한 책이긴 하다. 하지만 확실히 내 취향은 아니다. 토마스 만의 <<마의 산>>도 상당히 힘겹게 읽었는데, 이 책도 상당히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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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토피아적인 것. - 20세기 초반에 등장한 만하임과 블로흐, 그리고 루이에의 철학적, 인류학적 유토피아 개념을 말한다.사회학자 만하임은 그의 주저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Ideologie und Utopie>>(1929)에서 사회적인 존재의 구체적인 역사적 현상으로서의 '존재Sein'에 대해 '존재와 일치하는' 표상과 '존재를 초월하는' 표상이 있다고 가정한다. 후자를 규정짓는 인간의 의식상태를 만하임은 다시 두 가지로 구분하는데, 의식이 현실을 바꾸는 작용을 할 경우에는 '유토피아적utopisch' 의식, 의식이 현실의 '존재'를 공고히 하는 작용을 할 경우에는 '이데올로기적ideologisch' 의식이라 부른다. 블로흐는 만하임의 '유토피아적 의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유토피아주의가 '인간의식의 기본특징'일 뿐만 아니라 '객관적 현실 전부의 기본 정조'라고 보며 유토피아를 존재론적으로 근거지운다. 또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루이에(R. Ruyer)는 유토피아를 '가능성들을 정신적으로 실험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무질은 소설에서 "가능성감각Moglichkeitssinn"을 "의식적인 유토피아주의"라고 부르고 유토피아를 "실험"이라고 정의하는데 이는 다소간의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만하임과 블로흐의 '유토피아적 의식'과 루이에의 '유토피아적 방법'과 상통한다. (신지영 교수의 논문에 실린 각주 인용)


* 신지영 교수(고려대). 로베르트 무질 소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무질의 책을 번역하기도 하였으며, <<특성 없는 남자>>를 번역 중으로 알려져 있지만, 출판 소식은 없다. 아마 상당히 부담스럽겠지만, 그래도 힘을 내서 번역하여 출간해 주시길.


* <<특성 없는 남자>>에 대한 위키피디아 https://en.wikipedia.org/wiki/The_Man_Without_Qualities. 아래 몇몇 서평 인용이 있는데,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국내 번역서로는 그걸 느끼지 못했다고 하면 이상하려나.



* 그 동안 읽었던 무질 번역서들. <<세 여인>>은 아주 오래 전에 읽어 서평이 따로 없다. <<세 여인>>을 통해 무질을 알고 열광했다. 지금 읽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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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 없는 남자 2 - 8점
로베르트 무질 지음, 안병률 옮김/북인더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