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예술

발상의 전환, 전영백

지하련 2021. 7. 17. 03:41

 

발상의 전환, 전영백(지음), 열림원 

 

책을 다 읽었으나, 메모를 하거나 리뷰를 하지 못한 책이 여럿 된다. 이 책도 그 중의 한 권이다. 올해 초에 즐거운 마음으로 읽었는데,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오늘 예전 노트를 꺼낼 일이 있어 보다가 이 책을 읽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이젠 뭘 읽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책과 거리를 두게 된 것일까, 아니면).

 

 

개인이 겪는 상실의 아픔, 사랑과 그리움, 내면의 고통과 불안, 그리고 지극히 사적인 신체적 경험과 그 감각, 그리고 작가의 손에 관하여

미학으로는 미술작업에서 경험하는 관조와 사색, 개입과 참여, 몰입과 침잠, 그리고 포스트모던 아트가 추구하는 주체의 체험과 감각에 대하여

문화에서는 문화번역의 문제, 국가주의와 다른 진정한 문화적 특징에 관한 모색, 자문화와 타문화의 취향과 그 차이, 핵심적 문화 정체성의 추구와 그 경계 흐름에 관하여

도시는 서로 다른 도시들의 장소특정성과 그 표현, 실제 공간, 생활의 장으로서의 도시, 그리고 이에 대한 주체의 감각에 관하여 

사회, 공공으로는 21세기 가장 부각되는 화두로서의 공공성과 개인 주체의 연계, 사회에의 개입과 관계의 미학, 공동체 속의 주체의 인식에 대하여

(10쪽)

 

저자는 서문에서 현대미술이 가지는 여러 관심사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지만, 이 책에서 그 관심사들이 제대로 드러났는가에 대해선 의구심을 가진다. 매우 전문적인 영역이며 현대 미술가들이 첨예하게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어서 이 책에 소개되는 작가들만으로 이 주제들을 커버하긴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현대미술이론과 비평 전문가인 저자의 역량은 서문에서 끝난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의 내용 대부분은 대표적인 현대미술가들과 그 작품들에 대한 소개이다.  일부는 잘 알려져 있고 일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너무 쉽게 온라인에서 정보를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책이 가지는 가치는 소개 이상의 의미는 없다. 

 

저자는 토레스를 첫 번째 작가로 소개한다. 리움미술관에서도 전시한 바 있는 이 작가는 사랑에 대한 성찰로 유명하다. 한 때 많은 예술가들이 에이즈로 죽었는데, 토레스도 여기에 해당된다. 그는 자신의 동성 연인의 죽음에 대한 여러 작품들도 사랑과 사랑하는 이의 부재, 그리고 추억을 작품화하였다. 

 

1996년, 38세에 에이즈로 요절한 작가는 사랑과 죽음을 지극히 체험적 관점에서 다뤘다. 일명 '침대 빌보드'로 통하는 그의 사진작품은 에이즈로 죽어가는 연인과 사적 공간을 신체적 흔적과 함께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19쪽)

 

“Untitled”, 1991, F?lix Gonzalez-Torres

출처: https://www.moma.org/calendar/exhibitions/368? 

 

출처: https://elpulpofoto.com.br/es/felix/    

 

안토니 곰리가 한국에서 전시를 했던가. 가물가물하다. 나도 블로그를 통해 여러 번 소개했던 현대미술가이다. 현대미술은 참 다양한 영역에서 그 존재를 드러내는데, 이 작품도 최초에는 많은 반발이 있었으나, 지금은 그 지역의 상징물과도 같다고 할까. 

 

인체형태에 기계적인 긴 날개를 달고 있는 천사 조각은 200톤의 강철로 제작되었고 600톤의 콘크리트가 이를 받치고 있다. 20M의 높이는 5층 건물에 이르고 천사의 날개 너비는 자그마치 54M나 된다. 영국 최대의 조각인 이 작품은 이 도시의 역사를 함축하며 산업 발달의 밑거름이 된 광부들의 노동을 상징한다. (...) 이 조각은 도시를 대표하는 높은 위치에서 엄청난 바람을 견뎌야 하기에 그 지지대가 땅 밑 21M 깊이까지 박혀 있다. (213쪽) 

 

"Angel of th North", Antony Gormley, 1998 

 

아래 동영상은 영국의 북부도시 게이츠헤드에 작품을 설치하기 위해 작품이 이동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마치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 몇 미터나 되는 대리석 조각상을 설치하는 풍경처럼, 지금은 수십미터에 이르는 작품을 설치하는 것으로 바뀌었다고나 할까. 

 

 

2004년 예루살렘 자치구를 걸으며 녹색선을 남기는 퍼포먼스를 보여준 프란시스 알리스Francis Alys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의 이 퍼포먼스에 대해 '시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뭐랄까, 어떤 작고 사소한 행동이 엄청 나게 큰 울림을 가지는 경우가 있다면, 알리스의 이 예술 활동일 것이다. 그는 예루살렘 자치구의 경계선 24km를 이틀 동안 따라 걸으며 58리터의 녹색 페인트를 흘렸다. (...) 그의 시적 행위는 국가간 경계를 구축했던 때를 기억하게 하며 여상적 갈등을 되새기게 하였다. 

 

 

 

전영백의 이 책은 현대 미술 작가들에 대한 일반적인 소개를 담고 있다. 그래서 일반 독자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또한 재미있을 것이다. 

 

어쩌다가 보니, 현대미술은 어느 샌가 매우 특수하고 전문적인 영역이 되었다. 아니면 현대 사회의 여러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서 보다 혁신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며 문제 제기를 하고 실천하려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은 아닐까. 하지만 전문화되는 것은, 내가 알고 있는 한, 현대 미술가들이 그것을 원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그러니, 오래 고민해볼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