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7년에 태어나 1962년에 작고한 소설가. 세계적인 대중적인 인기에 비해 현대 문학사에서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는 소설가이기도 하다. 그의 스타일은 19세기 낭만주의적이며 전혀 모더니즘적이지 않다. 이 점은 나로 하여금 마치 스트라빈스키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멋지게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영화가 아니면 보기 어려운 시대, 이 사진이 주는 묘한 매력 때문에 여기 올렸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지만(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담배를 피우는 예술가나 배우의 사진만큼 매력적인 것도 없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많은 이들이 따라 담배를 피운다. 그 영향으로 인해 대중 미디어에서 담배 피우는 사진이 사라지긴 했지만.
수십년 전 라디오 심야 방송을 듣다보니,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나 <<크눌프>>같은 소설 광고가 참 많이 나왔는데,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다. 소설 광고를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으니. 어떤 변화는 반갑고 어떤 변화는 쓸쓸하다. 때론 변화가 싫기도 하다.
변하지 않는 세상이 주는 안락함 같은 게 있을까. 마치 중세 시대의 '장원' 처럼. 하긴 그 세계는 늙은이를 볼 수 없는 늙은 세계였으니. 평균수명이 40대였으므로 백발의 노인은 보기 드물었을 뿐만 아니라 보기 된다면 다들 현자라고 받들어 모셨다. 실제 지혜롭지 않더라도. 변할 것이 없으므로 과거의 경험이 현재의 지혜가 되던 시기였다. 그러나 현재는 과거의 경험의 현재를 가로막는 장벽이 된다. 그래서 젊은이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문화가 되어야 하는데. 한국은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이번 봄엔 헤르만 헤세의 소설 한 두권 읽어야겠다. 몇 해 전 수필집 한 권 읽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