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목마와 숙녀

지하련 2006. 8. 28. 18:13


문득 목마와 숙녀가 생각났다. 사춘기 시절, 외우던 몇 편의 시들 중 하나였는데, 지금은 기억나지도 않는다. 시라고 하기엔 그 완성도가 현저히 떨어지지만, 모던한 허무주의는 늘 매력적이다. 금요일, 토요일 술을 마셨고 일요일에는 두 시간 동안 운동을 했다. 토요일에는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하는 ‘인상주의’전시를 보았는데, 돈벌기 위한 전시라서 그런지 그 전시 공간에 놓인 작품들이 애처로워 보였고 그 공간 속에서 줄을 서서 길게 보는 사람들이 애처로워 보였다. 한국의 자본주의는 예술과 사람을 애처롭게 만들고 있었다. 애처로운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목마(木馬)와 숙녀(淑女)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生涯)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傷心)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庭園)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愛憎)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女流作家)의 눈을 바라다 보아야 한다.
... 등대(燈臺)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意識)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는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通俗)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