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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고전주의란 나와 세계, 이상과 현실이 서로 어긋나지 않으며 내가 원하는 바, 내가 행동하는 바 모든 것이 인과율적 결과로 나타난다고 믿는 세계관이다. 이에 반해 낭만주의란 나와 세계, 이상과 현실이 서로 어긋나 분열되기 시작하고 내가 원하는 바, 내가 행동하는 바와 무관하게, 심지어 반대의 결과가 나타나게 되었을 때, 그 앞에 서서 절망하는 세계관이다. 그러므로 낭만주의 세계관을 이해하기 위해선 고전주의가 우리에게 무엇이며 어떤 것을 가져다 주었는가를 먼저 알아야만 한다.


고전주의적 세계관이 개인에게, 예술가에게 무엇을 던져주었는가를 알지 못한다면 낭만주의의 세계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분열적 세계 인식, 절망과 슬픔으로 뒤범벅이 된 표현, 종종 병적으로 보이는 도피적 양식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얼치기 낭만주의자들은 아름다운 사랑의 낭만 따위나 읊어대는 것이다. 낭만주의자들에게 있어 사랑이란 잡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사랑의 환상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즉 현실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 그 어떤 사랑을 구할 수 없다는 상황 인식을 기반하고 있는 것이다.


고전주의가 생에 대한 확신을 기반하고 있다면 낭만주의는 그 확신이 무너지는 시기의 양식이다. 그러고 보면 고전주의 시기는 언제나 선행하는 무질서를 전제로 하고 있으며 동시에 고전주의가 끝나면 곧바로 무질서가 오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르네상스 고전주의가 아주 짧은 시기, 그 절정기의 작품들을 보여주고 난 다음 매너리즘 양식이라고 하는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운 작품들이 나타난다. 우습게도 이러한 작품들을 그린 화가들 중에 절정기 르네상스의 위대한 예술가인 미켈란젤로와 티치아노도 포함된다.


매너리즘(Mannerism, Mnierismo)의 시대


우리가 이탈리아 르네상스라고 이야기할 때 대체로 종교개혁 이전의 이탈리아를 뜻한다. 그러므로 이탈리아 르네상스라고 이야기했을 때, 13세기의 초기 르네상스부터 16세기 매너리즘까지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16세기 중반 이후부터 이탈리아는 그 당시까지 누려오던 어떤 주도권을 잃어버리기 시작한다. 예술 작품들의 성격, 또는 양식의 변화가 정치경제적 환경의 변화에 전적인 영향을 받아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하기에는 예외적인 경우가 예술의 역사 속에서 빈번하기 때문에 함부로 주장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


매너리즘 시기의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선 이 당시 유럽의 격변을 이해해야만 한다. 초기 르네상스와 르네상스 고전주의가 눈에 보이는 세계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면 매너리즘은 이 확신과 자신감에서 후퇴하고 도피하는 양식이며 이는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전 유럽적인 상황이었다. 그래서 매너리즘 속에는 마키아벨리(Machiavelli, 1469~1527), 에라스무스(Erasmus, 1469~1536), 세르반테스(Cervantes, 1547~1616), 라블레(Rabelais, 1483~1553), 셰익스피어(Shakespeare, 1564~1616)가 포함된다. 어쩌면 폰토르모(Pontormo, 1494~1557), 파르미지아노(Parmigianino, 1503~1540),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 틴토레토(Tintoretto, 1518~1594), 브론지노(Bronzino, 1503~1572), 첼리니(Cellini, 1500~1571) 등과 같은 매너리즘 예술가들을 이해하기 위해 최초의 근대 소설이라고 일컫어지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Don Quixote)나 셰익스피어의 햄릿(Hamlet)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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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eus
Benvenuto Cellini
Bronze, 1545-54
Loggia dei Lanzi, Florence



매너리즘 양식의 정신적 배경



아마 역사 속에서 매너리즘적 태도를 드러낸 시기가 있다면 로마 말기와 20세기 이후의 현대일 것이다. 아마 로마의 위대한 황제들 중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121~180)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학문을 좋아했으며 플라톤을 존경하였던 이 황제는 황제가 되고 난 다음의 인생 대부분을 전쟁터에서 보였다. 그에게는 분명 어떤 정치 철학이나 로마 제국의 미래에 대한 구상이 있었을 지 모르지만, 불행하게도 그가 살았던 세계는 그의 그런 이상을 받아줄 수 없었다. 즉 이상과 현실의 분열이 극명하게 드러났던 시기였던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16세기, 진지하고 성실하며 때로 그 현명함으로 명성을 떨쳤던 이들은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절망하고 슬퍼하였다. 에라스무스는 이 시기의 대표적인 학자이면서 그가 남긴 <우신예찬>(愚神禮讚, Encomium Moriae)은 전형적인 매너리즘 작품에 속한다. 그는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의 종교 개혁 속에서 그 개혁이 가지고 있는 어떤 광신적 태도와 그것이 가져올 비극에 대해서 예리하게 지적하고 이에 대해 응수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기의 현실은 너무 거대해서 현자의 명성을 가지고 있었던 에라스무스마저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명성을 가지고 있지도 못했던 예술가들은 어떠했을까.


가끔 자기 환상을 가지게 된다. 가령 '지금은 보잘 것 없는 월급을 받는 회사원이지만, 나중에 사업을 해서 성공할 수 있을 꺼야. 그래서 지금의 나는 미래의 성공한 나를 만드는 계단이야'라고 말이다. 하지만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고전주의자들의 세계 속에서 이러한 생각은 어떤 자신감과 확신에 근거하였고 이를 밀어 부쳤다. 하지만 매너리즘의 세계 속에서 이러한 생각은 보기 싫은 현실을 잊기 위해 미래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즉 감당하기 힘든 현실 속에서 하루하루의 생을 지탱하기 위해 자기 환상을 만들어낸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그래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슬픈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것이다.


십대나 이십대, 또는 더 나이든 이들이 대중 스타에 대해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이들을 따라다니는 것은 이러한 자기 환상, 내지 자기 기만적 의식에 근거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에게 있어 미남 영화배우나 미녀 가수와 찍은 한 장의 사진만으로도 한동안 자기 인생의 의미를 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고전주의자들이라면 확고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자신의 진지한 사고, 성실한 행동이 자기 인생의 의미를 구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었다면 현대에서는 대중 스타와 찍은 한 장의 사진만으로도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즉 내일이 오늘보다 못할 수도 있다는 인식은 매너리즘 시대마다 공통적으로 상황인식이었다.


고딕 시대에 신과 인간의 분열이 시작되었다면 르네상스 시대에는 인간 속에서 신적인 것을 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르네상스 고전주의에서 그 믿음을 실현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매너리즘에서는 '인간 속에서 신적인 것을 구할 수 없구나'는 인식이 시작된다. 눈 앞에 보이는 현실 세계는 너무 혼란스럽고 불투명하기 때문이었다.


'분열'이 낭만주의의 핵심 단어라면 '자기 기만'은 매너리즘 시기의 핵심단어이다. 그리고 이것은 곧바로 자기 분열, 내지 자아 분열로 연결된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현실 세계 속에서는 '마키아벨리즘'으로 보여진다.



현실 정치(Realpolitik)의 시대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세상을 저렇게도 아름답게 볼 수 있구나'라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동시에 '아냐, 조금만 눈을 더 크게 뜨고 바라봐. 그럼 세상이 아름답다는 걸 알 수 있을 꺼야'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은 똑같은 시대의 사람들이고 똑같은 정신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즉 불투명하고 혼란스러운 현실을 보기 위해 어떤 이데올로기, 즉 관념적 허상을 끊임없이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현실에 대한 비극적 인식이 비극적 인식으로만 귀결된다면 그 속에는 죽음만 있을 뿐, 그 이상의 것은 없다. 그 속에서는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비극적 인식이 있으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눈에 보이는, 또는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 있으며 끊임없이 갈등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 때 우리가 바라보고 읽어내는 이 세계가 관념적 허상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한 부류를 만나게 되고 이 세계의 관념적 허상을 공고히 하고 세계는 아름다워 라고 말하고 행동하는 한 부류를 만나게 된다. 전자가 매너리즘 시기의 예술가들이라면 후자는 매너리즘 시기의 현실 정치가들과 이들을 옹호했던 지지자들이었다. 그리고 전자의 부류들은 끊임없이 후자의 부류들이 가진 허위와 기만을 폭로하려 한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君主論, II Principe)은 16세기 현실정치의 세계를 그대로 반영한 작품이다. 이제 고귀한 이상 같은 것은 없다. 신은 이미 사라졌고 눈 앞에는 현실만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현실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그 방법을 자연과학적 태도로 기술해 나가기 시작한다. 이제 악덕도 탐구의 대상이 되었다. 더러운 모략과 비열한 술수도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되었다. 마키아벨리의 세계가 매너리즘적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는 자신이 속한 세계를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그 세계가 가진 부도덕성과 허위를 폭로하는 것이다. 그래서 후대의 몇몇 학자들은 '전도(顚倒)된 이상주의자'라고 말하는 것이다.



매너리즘 예술가들과 양식적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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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ta Rondanini
Michelangelo
Marble, height: 195 cm, 1552-64
Castello Sforzesco, Milan



우리는 과연 원근법적으로 세계를 파악할 수 있을까. 그래서 멀리 있는 것이나 가까이 있는 것이나, 또는 중앙에 있는 것이나 가에 있는 것이나 상관없이 모든 것에 대해 존재 의의를 부여할 수 있고 이를 일관된 어떤 원리로 담아낼 수 있을까.


르네상스 고전주의 시기의 위대한 예술가였던 미켈란젤로는 말년에는 의문스러운 일련의 작품들을 만든다. <최후의 심판>이라는 벽화가 그러했고 저 <론다니니의 피에타>도 그러했다. 그래서 저 작품을 미완성된 작품이라고 추정하기도 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이들 중에서도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완성이라기 보다는 미켈란젤로의 생각대로 만든 것이며 도리어 이제서야 그 자신만의 정직한 시각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의심 많고 소문에 휩싸인 신비로운 천재이면서 끊임없이 내적 불안과 신을 향한 정열으로 고통스러워 했던 미켈란젤로는, 현대의 우리들이 가지는 천재에 대한 이미지를 그대로 그러낸 예술가였다. 아마 이러한 미켈란젤로에 버금가는 이가 있다면 유일하게 모차르트(Mozart, 1756~1791)일 것이다. 그래서 미켈란젤로는 생애 내내 매너리즘적 세계 속에서 살아가면서 젊었을 때는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확고한 신념과 열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세계에 대 경험이 쌓여갈수록 그냥 그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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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Judgment
Michelangelo
Fresco, 1370 x 1220 cm, 1537-41
Cappella Sistina, Vatican



'진실'이라는 단어만큼 이 시기의 예술가들에게 호소력 있는 것도 없었을 것이다. 이제 아름다움은 진부한 주제가 되었다. 아름답지 않더라도 모양새가 기괴하더라도 색채가 이상하더라도 그것이 바라보는 바 진실한 것이라면 그것은 감동적이고 호소력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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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onna dal Collo Lungo (Madonna with Long Neck)
Parmigianino (1503~1540)
Oil on panel, 216 x 132 cm, 1534-40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바로크(Baroque) 시기 이후의 화가들과 학자들이 경멸했던 양식이 바로 매너리즘이었고 이 같은 작품들이었다. 이제 세계는 이상해졌다. 신체의 비례는 이상해졌고 표정은 공허하며 색채는 몽환적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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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itation
Jacopo Pontormo
Oil on wood, 202 x 156 cm, 1528-29
San Michele, Carmignano (Florence)



폰토르모의 저 그림 속에서의 표정만큼 공허한 표정도 드물 것이다. 저들이 응시하는 곳은 과연 어디일까. 자 이제 자연 세계에 구하는 기하학적인 원리는 무너지고 우리의 관념, 또는 정신 속에서 어떤 원리, 어떤 이상을 구하는 시기로 들어선 것이다. '자의적 양식'이란 이럴 때 사용될 수 있다. 경험적이고 객관적 세계에 대한 바램이 어긋나자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세계를 우리들의 정신 속에서 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만은 도리어 슬프고 우울하며 끝없이 비극적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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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ast Supper
Tintoretto
Oil on canvas, 365 x 568 cm, 1592-94
S. Giorgio Maggiore, Venice



틴토레토의 의도는 다분히 '자연과학'적이다. 그가 생각하게 최후의 만찬은 이러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 자리는 우아하지도 고귀하지도 않을 것이다. 실내는 좀 어두웠을 것이고 사람들의 옷차림새는 남루했을 것이며 음식들은 여기저기 나뒹굴고 심지어 불결하기까지 했을 것이라고. 현실을 현실 그대로 파악한다는 자연과학적 태도가 도리어 매너리즘적 세계를 그러내는 것이다. 즉 매너리즘의 예술가들은 르네상스 고전주의의 태도가 진실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말년의 티치아노도 매너리즘적 양식을 보여준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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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laying of Marsyas
Tiziano
Oil on canvas, 212 x 207 cm, 1575-76
State Museum, Kromeriz


아마 매너리즘 예술가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이가 있다면 바로 엘 그레코일 것이다. 엘 그레코에게도 오면 매너리즘의 양식이 그 절정기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귀족 양식으로서 매너리즘은 그 세계를 극복하고 현실에 기반하고 있으면서 그것을 넘어서 다분히 감정적이면서도 끊임없이 상상력을 자극하는 양식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그래서 엘 그레코의 작품에서의 이상한 공간감이나 불균형, 비현실적인 분위기는 도리어 실제 현실을 극복하게 하는 어떤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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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ieta (The Lamentation of Christ)
El Greco
Tempera on panel. 29 x 20 cm, 1571-76
Philadelphia Museum of Art, Philadelph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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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isrobing of Christ
El Greco
Oil on canvas, 165 x 99 cm, 1583-84
Alte Pinakothek, Munich



대중문화적 매너리즘 예술



자기 기만과 허위만큼 매너리즘 예술가를 괴롭혔던 것도 없다. 이 속에서 몇 매너리즘 예술가들은 매우 불행했다. 미켈란젤로의 말년이 그러했던 것처럼 빠르미지아노나 폰토르모가 그러했다. 그리고 몇몇은 귀족의 후원을 받지 않으면서도 위대한 작품들을 남겼으며, 예술의 자율성은 고스란히 예술가 개인 속으로 수렴되었다.


하지만 이 시기는 현실정치의 시기였으며 고귀한 정신이나 선한 마음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던 시기였다. 루터의 종교 개혁이 뭔가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권력에 눈이 먼 루터는 독일의 평민들을 거부하였고 권력을 가진 실세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시기였다. 그래서 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예술가들이 있었고 이제 예술은 오직 유흥을 위해서만 제작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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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nus, Cupide and the Time (Allegory of Lust)
Agnolo Bronzino
Oil on wood, 147 x 117 cm, 1540-45
National Gallery, London



많은 책에서 이 작품의 속 뜻이 무엇인가 분석하고 있다. 중앙의 비너스와 그 옆의 큐피드는 근친상간적 소재라는 것에 시작하는 이런 분석에 대해 흥미를 느끼는 사람들이 무척 많을 것이다. 실은 파르미지아노의 <긴 목의 마리아>도 그런 분석이 가능하다. 파르미지아노는 심각할 정도로 연금술에 미쳐있었고 그것을 배경으로 그 작품을 분석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이들 화가들은 이런 분석이 가능할 정도로 작품 속에서 이러한 소재나 주제를 공공연히 사용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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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er
Giuseppe Arcimboldo (1527~1593)
Oil on canvas, 76 x 63,5 cm, 1573
Musee du Louvre, Paris



아킴볼도의 작품으로 오면 그 도를 지나쳐 매너리즘적 허위 속에서 뒹굴뒹굴거리는 양식과 마주하게 된다. 즉 이제 예술은 고귀한 이상이나 감동, 한 시대에 대한 통찰과는 무관하게 속된 재미나 자신이 봉사하고 있는 귀족이 좋아하는 것만으로 그려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꼭 하이틴로맨스 소설이 세계에서 가장 감동적인 문학작품이 되는 어떤 이들이 있는 것처럼 이 시기에도 그런 예술작품들이 존재했던 것이다.


현실에 안주한다는 것은 이런 뜻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 세계를 하나의 원리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비극적 상황 인식은 도리어 하루하루의 변명을 만들어내고 하루하루의 변명 속에서 사소한 재미나 쾌락에 가치를 부여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마 대중문화, 또는 키치(kitsch)라고 하는 것의 기원을 구한다면 매너리즘 시기의 예술 작품에서 구해야만 할 것이다. 매너리즘을 도피적 양식이라고 했을 때 이 속에는 이러한 의미까지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바라보기 싫은 현실을 잊기 위해 환상을 만들어내는 양식 말이다. 정직한 매너리즘 예술가들은 그 환상과 싸우기도 했지만, 종종 그 환상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예술가들도 있었다.

 



Comment +5

  • 2014.10.02 01:44

    비밀댓글입니다

    • 특별하게 참고한 책은 없습니다. 한창 책을 쓰고 공부하던 때라 수업 노트, 스터디 노트 등이 전부입니다.(참고문헌을 적는다면 엄청 많을 지도 모르겠네요) ^^;; 다만 한글로 구할 수 있는 책 중, 매너리즘에 대한 연구서로는 아놀드 하우저의 <<예술과 소외>>라는 책이 있습니다만, 지금은 헌책으로도 구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 외 16세기 지성사나 문화사 책이 도움이 될 것같네요. (또는 지성사나 문화사의 16세기 부분) .. : )

  • 2014.10.13 17:47

    비밀댓글입니다

  • 2014.10.13 18:36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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