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세계화시대의 우리 동네

지하련 2007. 5. 22. 13:23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글이다. 그런데 논리적으로 보면 일반화의 오류인가. 하지만 일반화의 오류이든, 아니든 그게 무슨 상관이랴. 이렇게 변하고 있다는 걸 대체로 공감하고 있지 않은가.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이며, 어디부터 고쳐나가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내버려둬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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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시대의 우리 동네
  글쓴이 : 정지창     날짜 : 07-05-22 09:15    
대략 서른 집에 40여명이 모여 사는 경상도의 한 마을에서 이태째 마을 ‘청년’들이 죽어나갔다. 청년이라고 해봤자 50을 넘겨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대부분이 70 이상의 노인이 사는 이 마을에서는 그래도 젊은 축에 드는 박씨와 정씨가 사라지면서 마을 고샅은 더욱 쓸쓸해졌다.
 
농사꾼이 농사지을 생각을 접고
 
박씨는 7, 80년대에 해외 건설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꼬박꼬박 부쳐준 돈을 춤바람이 난 아내가 탕진하고 집을 나가는 바람에 혼자 사는 처지가 되었고, 정씨는 걸핏하면 마누라를 패는 술버릇 때문에 가족의 버림을 받아 혈혈단신이 되었다. 외로움과 불면증을 술로 달래다보니 걸핏하면 아무한테나 시비를 걸고 술주정을 부리는 것이 예사였고, 그러다가도 몇날 며칠이고 바깥 출입을 하지 않은 채 방구석에 처박혀 있기도 하였다.
 
지겨운 술주정과 버릇없는 욕지거리에 고개를 내저으면서도 이웃집 할머니는 그래도 자기 딸과 동갑내기인 박씨가 불쌍하다고 끼니를 챙기셨고, 몇 년 전 빈집을 얻어든 정씨는 돌아가신 영감님과 먼 일가뻘이라고 이것저것 보살펴 주기를 잊지 않으셨다. 술만 안 먹으면 부지런하고 착한 사람들이었다고 할머니는 허전해 하신다.
 
사실 두 사람은 논농사와 밭농사, 과수재배에 능통한 것은 물론이고, 감나무 접붙이기, 야산에서 더덕이나 약초를 캐다가 텃밭에 옮겨 키우기, 헤진 슬레이트 지붕 수리하기, 고장난 경운기나 농기계 수리하기 등 손재주도 뛰어난 농사꾼이었다. 그러나 죽기 몇 년 전부터는 “차라리 아무 농사도 안 짓는 편이 낫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면서 아예 농사지을 생각을 접고 지냈다.
 
작년 겨울에 죽은 박씨는 한 겨울에 불을 넣지 않은 냉골에서 발견되었으므로 과음에 뒤이은 동사로 기록되었고 올 봄에 죽은 정씨는 과음에 의한 돌연사로 보고되었다. 그러나 이웃집 할머니는 박씨가 토해놓은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무언가 먹고 죽은 것 같다고 뒤늦게 귀띔을 했다. 그러면서 정씨도 그냥 술 먹고 죽은 것 같지는 않으나 자세히 따질 사람도 없고 그러다가는 일이 복잡해지니까 화장해서 치워버린 것이라고 토를 달았다.
 
두 사람의 장례는 상여도 없이 간단히 화장으로 치러졌고 유골은 야산에 뿌려졌다. 가족이라고 해봤자 박씨의 경우에는 가끔씩 찾아오던 대학생인 아들과 딸이 상주 노릇을 했으나 집나간 마누라는 나타나지 않았다. 정씨는 근처에 산다는 개가한 노모가 화장장까지 따라갔다고 한다.

확성기 소리, 술주정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이제 우리 동네에는 한미 FTA나 골프장 반대 플래카드를 내걸고 과격한 폭력시위를 하거나 보상금을 내놓으라고 터무니없이 떼를 쓰는 농민은 모두 사라졌다. 남은 것은 혼자 사는 할머니들과 죽을 날을 기다리는 극노인들 뿐이다.
 
1970년대의 유신시대에 씌어진 이문구의 『우리 동네』에는 술김에라도 국가시책에 어깃장을 놓는 팔팔한 농민들이 등장하지만, 30년이 지난 세계화시대의 우리 동네는 마을회관의 확성기나 경운기 소리, 술주정 소리조차 좀처럼 들리지 않는 평화로운 적막강산이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