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연습 - 로랑 모비니에 지음, 이재룡 옮김/현대문학 |
Apprendre 'a finir 이별연습
로랑 모비니에 지음, 이재룡 옮김, 현대문학
오늘, 광활한 대륙에서 밀어닥친 차갑고 건조한 바람들이 검은 아스팔트 위를 낮게 깔려 지나가는 순간, 지친 표정들로 고개를 숙인 채 걷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녀를 보았다. 순간 나도 모르게, ‘난 당신을 알아요’라고 큰 소리로 부를 뻔했다. 다행히도 난 황급하게 손으로 입을 막았고 그녀는 날 보지 않고 오던 길처럼 나머지 길도 그렇게 걸어갔다.
우리는 때때로, 아무도 나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야기하는, 이야기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다. 한때 그것은 ‘아무도 듣지 않는다’에 대한 강력한 부정, 또는 누군가가 내 말을 듣게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이제 우리에게 ‘아무도 듣지 않는다’는 사실을 바꿀 힘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러한 인식은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상황 속에서의 이야기하기’라는 행위가 다름 아닌 아무도 듣지 않는다고 믿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현대 소설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지나친 자기 고백 투의 문장이나 표현, 독백의 형식, 1인칭 시점의 남발 내지는 1인칭의 상실은 외부 세계에 대한 절망의 인정이 자아에 대한 끊임없는 공격과 폭로로 이어지게 되었고 현대 소설가들은 그러한 양식을 찾게 된다.
하지만 아무도 나의 말을 들어주지 않고 내 사랑의 단어들이 내 작은 입술에서 나오자마자 얼어 뚝뚝 떨어진다면, 그래서 내 바램이나 내 희망, 사랑 따위가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고 무너져 내릴 때, 어떻게 외부 세계에 대한 묘사나 표현이 가능하단 말인가.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인가.
오늘 차고 건조한 거리에서 보았던 그녀도 그러했다. 그녀.
이제 언제라도 기둥에 페인트를 칠해줄 사람이 생겼다. 터진 구멍을 메우고 금 간 벽을 새로 발라줄 남자. 쥐똥나무가 담 밖으로 넘어가거나 측백나무가 질식할 것 같으면 무거운 전지가위를 번쩍 들 수 있는 튼튼한 손과 정확한 눈대중을 지닌 사람이 생겼으니 이제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제 누군가가 생긴 것이다. 그 사람이 언젠가는 회복되리란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내일. 그 사람이 바로 내일 돌아올 거라는 소식을 들었다.
- p.7
그가 돌아온다는 소식에 흥분하는 그녀. 하지만 그는 바람난 남편. 그 남편이 돌아오는 것임을 우리는 한참 지난 후에야 알게 된다. 그녀는 그 사실을 숨기고 싶었던 게다. 그녀.
내가 그를 사랑한 적이 없었다는 말을 그 누구라도, 심지어 그 사람이라도 그런 말을 내뱉는다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아, 그래요? 내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다니? 라고 맞받아쳤을 것이다. 오로지 당신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권리만을 위해 모든 것을 잊은 여자에게 내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을 할 수 있나요. 자존심을 죽이고 당신만 바라보고 있는 여자에게. 당신이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이유가 오로지 그 여자만이 당신을 제대로 볼 수 있고 나는 당신 앞에서 그저 눈을 내리까는 수밖에 없다는 당신의 생각까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여자에게, 그래요, 맹세컨대, 그토록 애쓰는 여자에게, 그래요, 맞아요, 당신의 선택, 당신의 취향, 당신의 삶 앞에서 눈을 내리까는 여자, 아니, 눈을 감고 당신의 분노의 숨결을 자기 입안에 담아두는 여자에게 그런 말이 나오나요.
- pp.123-4
하지만 그런 일은 생기지 않는다. 하나로 견고하게 구축된 이 소설은 그녀 자신을 향한 그녀의 독백에서 시작해 그녀의 독백으로 끝난다. 군데군데 타인의 목소리가 들어오긴 하지만, 그녀의 독백에 휩싸여 그녀의 독백을 보충할 뿐이다. 소설은 절대로 그녀의 영혼 바깥으로 나가지 않는다.
이 세상은 털끝만치도 변하거나 움직이지 않을 것이고 심지어 미동도 하지 않겠지만 우리, 바로 우리만이 자칫하면 언제라도 쓰러지고 흔들리고 말 것이며, 우리의 살갗, 미소, 분칠을 한 우리의 얼굴, 심지어 우리의 머릿속에 있는 우리 삶의 역사까지도 아차 하는 순간, 한줄기 바람만 불어도 몽땅 휩쓸려 날아가 버릴 것이다.
- p.103
아차 하는 순간에 결정 나버리는 우리 인생하며, 우리 사랑하며, 아차 하는 순간 날아가 버리는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 우리 삶의 의미들. 우리에게 사랑은 얼마나 멀리 있는가. 멀어져 가는 우리들의 사랑을 잡기 위해, 길게 뻗은 손가락 끄트머리에 그 사랑의 자취라도 묻히기 위해 끊임없이 우리 스스로에 질문하고 위로하며 화를 내고 절망한다. 아직 희망은 있다고. 아니 희망이 있다고 믿는 건 나의 부질없는 믿음일 뿐이니, 여기서 그만 포기하라고, 아니, 그것은 거짓말이라고, ... ... 뫼비우스의 띠처럼 그렇게 돌고 돌면서 사랑을 잃어버린 그녀의 독백은 이어진다. 그 위로 사랑과 이미 멀리 있는 우리들의 독백이 겹친다.
그는 나의 이름을 부르지 않을 것이다. 젊은 시절에는 이름을 우습게 여기고 그저 ‘우리’라고 부르면 족했고 그 우리가 모든 기적을 일으켰지만 이제는 더 이상 ‘우리’라고 부를 일도 없을 것이다.
- 소설 서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