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iness Thinking/마케팅

하이엔드 오디오 기업들의 마케팅 전략

지하련 2008. 2. 6. 10:11


1.
쉐아르님의 포스트를 보고 몇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특히 윌슨 오디오의 마케팅 전략은 다른 기업이 따라 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생각을 정리하면서 윌슨 오디오(다른 하이엔드 오디오 기업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의 예외적인 사례를 통해 마케팅의 기본을 다시 정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본으로 돌아가서 생각하고 접근하는 것, 이는 비단 기업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2.
최근 오디오 시장은 Digital Music의 급속한 발달과 변화로 인해 시장의 구도가 많이 변하였다. 최근에는 iPod와 같은 MP3 플레이어와 호환되는 오디오 기기들도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AV(Audio-Visual) 오디오 시장의 확장은 기존 하이파이(Hi-fi) 오디오 메이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기존 소수의 전문화된 고객들을 대상으로 마케팅하고 판매하던 하이파이 오디오 메이커들은 DVD 재생을 기본으로 하는 AV 오디오를 통해 Mainstream Market(Mass Market)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이에 하이파이 오디오 시장은 AV 오디오 시장으로 인해  다소 위축되기는 하였으나, 아직까지 하이파이 오디오 시장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각주:1]AV오디오는 일반적으로 5개 이상의 스피커와 스크린(TV), DVD 플레이어, 리시버앰프 등으로 구성된다. 영화나 뮤직비디오, 오페라 DVD 등을 보기 위한 시스템으로 현장감 있는 사운드 재생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하이파이 오디오는 기본적으로 2개의 스피커, 시디 플레이어, 앰프(인티앰프, 혹은 프리앰프와 파워앰프) 등으로 구성한다. 이 오디오 시스템도 현장감 있는 사운드 재생을 목표로 하지만, AV 오디오와 하이파이 오디오는 서로 다른 지점을 향하고 있다. AV오디오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서라면, 하이파이 오디오는 무대에서 실제의 연주가 흘러나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따라서 AV 오디오 시스템과 하이파이 오디오 시스템을 따로 설치하기도 한다. ">

3.
하이엔드 오디오 구입을 고려하게 되는 고객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부류는 순수하게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이다. 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보다 좋은 환경에서 듣기 위해 노력한다. 이 노력의 일환으로 하이엔드 오디오를 구입하지만, 오디오보다는 음반이 먼저이기 때문에 오디오에 자신이 가진 경제력 이상을 투자하는 법이 없다. 두 번째 부류는 오디오라는 재생 장치에 매료된 이들이다. 이들은 특히 오디오의 섬세한 소리와 기능, 디자인에 매혹된다. 오디오를 끊임없이 바꾸며, 자신이 원하는 소리를 찾아 자신의 경제력 이상의 돈을 투자하기도 한다. 음악 장르에 대한 선호가 가지고 있는 오디오에 따라 바뀌는 경우도 종종 있다.(오디오에 빠졌을 때, 심한 경우는 자신의 경제적 상황을 악화시키기도 한다. 그만큼 중독성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두 부류가 Mainstream Market을 형성하지도, 형성할 수 있지도 않다. AV 오디오 시장은 Mass Market을 형성하고 있지만, 하이엔드 오디오 시장은 전혀 그렇지 않다. 소니, 삼성, LG 같은 가전 기업들이 하이엔드 오디오 시장으로 진입하지 않는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까다로운 고객들이 존재하며, 높은 기술 진입 장벽이 있고, 시장 규모나 수익률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4.
기술수용주기를 바탕으로 해서 하이엔드 오디오 마켓을 보자면, 고객들 대부분은 innovator와 early adopter에 속한다. 이들은 전문적인 지식으로 무장하고 오디오 구입에 정성을 쏟으며, 구입한 오디오를 중고 시장을 통해 다시 내다 판다. 정기적으로 오디오 잡지를 구입해서 읽으며, 동호인들끼리 서로 정보를 교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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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하이엔드 오디오 메이커가 Early Majority로 넘어가는 경우는 (내가 알고 있는 한) 없다. 특히 하이 파이 오디오에 주력하는 하이엔드 오디오 메이커는 이 시장을 타겟으로 하지 않는다(AV 오디오로 접근하면 다소 상황이 달라지지만, Mainstream Market의 직접적인 경쟁 상대는 다른 오디오 메이커가 아니라, 가전 기업들이기 때문에 여러 면에서 불리하다고 볼 수 있다).

5.
기업은 자신의 비즈니스에 맞는 고객 그룹을 찾아야 한다(만들어야 한다). 하이엔드 오디오 메이커들은 분명한 고객 그룹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고객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분명히 알고 있다. 그들 대부분, 회사를 운영하기 이전에 이미 오디오 애호가였다.

6.
하이엔드 오디오의 마케팅과 판매는 일반적인 가전 기업들과는 다르다. 일종의 전문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이 점에서 고가의 수동 카메라 시장과 비슷하다). 세계적인 전문 잡지들이 존재하고 각 나라마다 전문 잡지들이 출간되고 있다. 고객 커뮤니티가 유별날 정도로 발달해 있으며, 커뮤니티 안에서 끊임없이 중고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1950년대에 만들어진 앰프와 스피커가 아직까지 거래되고 있으며, 종종 이렇게 낡고 오래된 제품들 중에 수 천 만원 이상 하는 기기가 나오기도 하여 오디오 애호가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도 한다.

새로운 기기가 나오면 전문가들이 포함된 고객들에게 청음 테스트 및 시연회를 하고, 바로 잡지에 리뷰가 실린다. 그리고 하이엔드 오디오 기업은 이러한 유별난 고객들을 잘 알고 있으며, 이러한 고객들을 대상으로만 마케팅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7.
하지만 다른 대부분의 기업들은 Mainstream Market을 목표로 움직인다. 그런데 이는 잘못된 접근일 수도 있지 않을까?

모든 이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란 존재하지 않는다. 시작은 작지만 분명한 Needs를 가진 고객들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 윌슨오디오와 같은 하이엔드 오디오 기업들은 이 점에서 아주 분명하다. 또한 그 고객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고객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알고 있다.

8.
목표 고객(Target Customer)을 찾기 위한 고객 분류(Customer Segmentation)은 매우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은 고객의 인구학적, 경제학적 통계의 특성이 아니라, 오직 고객들의 니즈(Needs)여야 한다. 윌슨 오디오의 경우에는 창업자 그 자신이 이미 한 명의 까다로운 고객이었기 때문에, 윌슨 오디오가 목표로 하는 고객이 어떤 니즈를 가지고 있는지 알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9.
윌슨 오디오와 같은 하이엔드오디오 기업들의 높은 기술진입장벽은 높은 기술력이 고객 가치(Customer Value)를 기반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기술력으로만 보자면, 거대한 글로벌 가전 기업들이 더 뛰어날 수 있다.
하지만 오디오에 반쯤 미쳐 있고 하루에도 몇 시간 이상씩 음악을 듣는 이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무엇을 요구하는지 정확하게 알기는 어렵다. 하이엔드 오디오 기업들이 종종 고객 출신의 장인들로 이루어져 있는 듯한 인상을 풍기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10.
고객으로부터 시작된 비즈니스는 Mainstream Market과 무관할 수 있지만, 작은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할 수도 있음을 윌슨 오디오와 같은 하이엔드 오디오 기업들을 통해 알 수 있다.

11.
다 적고 보니, 특별한 내용이 없다. 며칠 고민하면서 머리를 어지럽게 하는 질문은 '과연 기업들은 Mainstream Market으로 진입해야만 하는 것인가?'였다. 진입하려고 하는 무리한 요구로 인해 많은 기업들이 몰락했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은 그들의, 작지만 공통된 니즈를 가진 타겟 고객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지금은 없어진 넷스케이프 대신에 파이어폭스가 있다. 넷스케이프가 파이어폭스나 오페라 같은 전략을 구사했다면 어땠을까? 하나의 거대 시장은 모자이크와 같이 잘게 나눌 수 있는 무수한 작고 전문화된 시장들로 다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종종 하나의 거대 시장만 볼 뿐, 작고 전문화된 시장들은 자주 놓치는 듯하다.





  1. "AV오디오와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