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스페이드의 여왕, 푸슈킨

지하련 2003. 2. 12.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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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드의 여왕
푸슈킨, 문학과지성사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 그리고 투르계네프의 문학에 대한 세계의 반향이 아무리 크고 높다 할지라도, 러시아인과 러시아 작가들의 사랑과 숭배에 있어 그들은 결코 푸슈킨을 능가하지 못한다’라는 책 첫머리 <기획의 말>에 적힌 문장만으로도 푸슈킨이 어떤 위치에 있는 작가인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푸슈킨은 아직 일반 독자에게는 낯설다.

나의 경우 푸슈킨의 시를 먼저 읽었고 소설은 이번이 처음이다. 꽤 오래 전부터 이 책을 추천받아왔는데, 이제서야 읽게 된 것이다. 읽고 난 다음, 쉽게 푸슈킨의 세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지 못했다. 푸슈킨의 낭만적 세계 속으로.

푸슈킨은 러시아의 위대한 산문 작가임에 분명하다. 그의 정신은 소설과 시가 만나는 낭만주의의 정점에 서있다. 독일 낭만주의나 프랑스 낭만주의와 확연히 구분되는 그의 소설은 러시아 낭만주의가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다.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생 페테스부르크나 일리야 비친가 그렸던 결투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추운 대륙에서의 삶은 거칠면서도 경건하고 환상적이며 심오한 것임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매혹되거나 감동받는 부분은 이 부분이다. 특히 <고 이반 폐트로비치 볠킨의 이야기>는 더욱 그러하다. 푸슈킨은 당대의 고귀하고 열정적인 삶을 그대로 옮겨놓고 있다. 심지어 파탄에 이르는 열망에 대해서까지 환상과 흔들리는 심리를 적절한 단어들로 풀어내고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푸슈킨의 낭만주의는, 그의 삶이 그랬듯이, 충동적이며 감상적이다. 그렇다고 영혼의 아름다움이나 무한한 공간에 대해 경외도 아니다. 그것은 열정적 삶에 대한 무분별한 예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