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예술

음악은 사회적이다, 에드워드 사이드

지하련 2008. 12. 8. 23:36

에드워드 사이드의 음악은 사회적이다 - 10점
에드워드 W. 사이드 지음, 박홍규.최유준 옮김/이다미디어



음악은 사회적이다
에드워드 사이드(지음), 박홍규, 최유준(옮김), 이다미디어


클래식 음악을 본격적으로(?) 듣기 시작한 것이 채 몇 년 되지 않았다. 짧은 기간이니, 내가 알고 있는 이들이라고 해봤자 몇 명 되지 않는 작곡가와 연주가들 뿐이다. 다룰 줄 아는 악기도 없으니, 음악에 대한 내 지식은 보잘 것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귀라는 존재가 흥미로운 것인지, 좋은 연주을 곧잘 인지하는 것이다. 심지어 남들은 잠 오는 음악, 혹은 소음이라고 평가하는 음악(현대 음악)을 곧잘 듣고 심지어 감동까지 받는 지경이니,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모를 지경이다. 좋은 말로 하자면, 음악에 대해서도 특유의 심미안이 있다고 할 수 있으나, 나쁜 말로 하지만 완전 겉멋과 착각에 빠져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솔직히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대학시절 읽었으나, 그다지 감동스럽지 않았다. 하긴 수업 시간에 읽은 것도 아니고 누가 옆에서 어려운 내용을 설명해준 것도 아니니, 대부분 이해하지 못한 채 넘겼을 가능성이 높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영문학자로 알려져 있으나, 실은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연주해왔고 줄리어드 음대까지 들어가기도 했다. 그 스스로 아마추어라고 하지만, 아마추어라고 하기엔 음악에 대한 그의 지식은 전문가 수준을 뛰어넘는다.

이 책은 1985년 캘리포니아 대학 얼바인 캠버스에서 있었던 3차례의 강연을 옮긴 것이다. 그는 이 강연을 하면서 음악을 들려줘야 할 부분들은 직접 피아노를 쳐가며 설명을 했다. 그리고 이 책에는 많은 악보들이 실려 있다. 아마 서점에서 이 책을 들춰보았을 많은 이들이 악보를 보고 기겁하지 않았을까. 

에드워드 사이드도 책에서 지적하듯이 현대 지식인들의 음악에 대한 무지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 전통 음악은 말할 것도 없고 클래식도 별반 다르지 않다. 바흐도 알고 모차르트도 알고 베토벤도 알겠지만, 그들의 음악을 듣는 것은 아니다. 연주할 수 있는 것도, 그렇다고 진득하게 앉아 감상하는 것도 아닌 그저 배경 음악일 뿐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에드워드 사이드는 음악은 사회적인 것임을 강조하게 되는 것일 지도 모른다.

이 책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음악의 연주, 내용, 경험 등이 어떤 이유로 사회적인 것인가를 설명하고, 그것을 파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강조한다. 나같은 독자는 내가 들어본 곡이 나왔을 때나 꼼꼼히 읽었을 뿐이겠지만, 에드워드 사이드는 현대 철학, 현대 문학의 풍부한 인용을 통해 음악에 무지한 독자들을 배려하고 있다. 그래서 책은 무척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폴 드 만에 대한 지적은, 팔레스타인 출신인 그의 아픈 상처까지 투영되어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책을 읽어보라고 권유하고 싶지만, 어디 읽을 책이 이거 뿐이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권할 수 있다면, 그것은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졸리지 않게 된 이후에야 가능한 상황이 될 듯 싶다. 문학도, 미술도, 음악도, 모든 예술은 먼저 경험해보아야 한다. 그것도 좋은 문학, 좋은 미술, 좋은 음악으로. 형편없는 문학, 미술, 음악을 수십 년 읽고 보고 들어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다. 그런데 요즘 세상은 형편없는 문학, 미술, 음악이 너무 많으니, 그리고 그것으로 몇 년 단련된 뒤에 좋은 문학, 좋은 미술, 좋은 음악을 아무리 권해도 먹히질 않는다. 그냥 그럴려니 하고 넘길 수 밖에. 


"이 프로그램은 (중략) 힌데미트의 '제3소나타' 마지막 푸가 부분의 놀라운 유려함과 천재적인 해석의 연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Glenn Gould - Paul Hindemith , Piano Sonata No. 3 - Fug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