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르네상스의 빛과 어둠

지하련 2003. 4. 6. 22:03
왜 굳이 르네상스로 가야하는 거지? 차라리 고딕의 세계가 낫지 않을까.
새로운 사랑을 찾아 모험을 나서, 끝없는 절망과 슬픔 속을 헤매는 것보다 그냥 포기하고 조용히 슬픔을 씹으면서 사는 것이 낫지 않을까.

모든 것들이 뒤죽박죽일 때, 굳이 우리는 그것들을 질서정연한 모습을 만들어야하는 것일까. 이라크의 어린이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에게 이성이 있고 용기가 있는 말은 허위이며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시위 한 번 참가했다면서 그것을 위안하는 것일까.

르네상스는 하나는 이전 세계를 동경하는 이들과 하나는 이전 세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들이 공존하던 세계였다. 이탈리아의 몇몇 도시들이 후자에 속했고 유럽 대부분의 지방은 전자에 속했다. 15세기를 풍미했던(이탈리아 르네상스 절정기에) 국제 고딕 양식은 중세 예술의 황혼기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호이징가의 "중세의 가을"은 이럴 때 의미를 가진다. 유비론적 세계관을 보여주는 국제 고딕의 양식.

비가 오는데. 비가 오는데. 옆에 선 결혼한 여자가 중얼거린다. 어제 그녀의 남편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전화도 없다. 이제 결혼한 지 2년 남짓. 그녀의 남편은 모험을 떠났다. 사랑의 모험을. 비가 오는데. 비가 오는데. 옆에 선 유부녀가 중얼거린다. 비오는 수요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