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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황산 Acide sulfurique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문학세계사 (2006년 초판 1쇄) 



작년 이맘때쯤 프랑스에서 아멜리 노통브(Amelie Nothomb)의 신작 <<황산>>이 발표되었을 때, 프랑스 비평계는 뜨거운 논란에 휩싸였다. 한쪽에선 "스캔들!", "졸작!"을 외치며 "매년 신작을 내놓지 않아도 되니 힘겨우면 좀 쉬라"고 비아냥거리는 동안, 다른 쪽에서는 "비판을 위한 비판은 그만!" "프랑스에서는 대가를 치르지 않고 많은 책을 팔면 으레 미움을 사게 되어있다. 무엇이 문제인가?"라고 반박했다.

논쟁이 격렬해지자 서평 전문잡지 <<리르>>는 비판과 옹호의 글을 나란히 게재하기도 했다. 그 사이, 책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 205쪽, 옮긴이의 말 중에서


사놓고 읽지 않다가, 오늘 우연히 들고 읽었다. 두 시간 정도 들고 읽었으니, 매우 짧은 소설이고 쉽게 읽힌다. 2006년에 번역된 소설이 아직도 팔리고 있으니, 아멜리 노통브의 팬은 한국에도 꽤 많은 셈이다. 


하지만 (그 유명한)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을 이제서야 읽었다는 것 이외에 이 소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건 없다. 소설을 너무 쉽게 썼다는 것. 굳이 사서 읽을 필요 없는 소설이다. "매년 신작을 내놓지 않아도 되니 힘겨우면 좀 쉬라"라는 평가에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감동적이지도 재미있지도 않다. 비상식적이고 우화라고 하기엔 너무 허술하다. 이걸 소설이라고 내놓았다니, 너무 잘 나간다고 막 출판한 느낌이다. 사서 읽지 마시라. 후회한다. 



Ame'lie Nothomb (1966~ ) - 위키를 보면 알겠지만, 실제로 거의 매년 1권 이상의 소설을 내고 있다!! 





황산 - 4점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문학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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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한 나의 격한 집착은 뜰로 난 창문처럼 죽음을 향해 있네." - 조르주 바타유


바타이유(Georges Bataille, 1897~1962)의 "무신론대전"(La Somme athe'ologique)에 나온 문장으로, 원문은 'Ma rage d'aimer donne sur la mort comme une fenetre sur la cour'이다. 


위 사진은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죽은 자들의 백과전서Enciklopedija Mrtvih>>라는 다닐로 키슈Danilo Kis의 소설 첫 장을 찍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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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 - 세속을 노래한 시인

에리히 아우어바흐(Erich Auerbach) 지음, 이종인 옮김, 연암서가




좋은 책이다. 간결한 문장으로 핵심을 찌른다. 이종인 선생의 번역도 신뢰할 만하며 단테가 어떻게 문학적으로 성장해 나갔으며, 어떻게 근대 문학의 시초가 되었는가를 분석하고 예증한다. 단테 문학의 변화와 성장은 이 책의 중심 테마이며, <<신곡>>을 향해간다. 



인간에 대한 단테의 미메시스는 고전 고대의 미메시스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고, 그 이전의 중세 시대에는 전혀 없었던 미메시스를 도입한 최초의 인물이다. 단테는 고전 고대처럼 인간을 아득히 떨어져 있는 신화적 영웅으로 보지도 않았고, 중세 시대처럼 인간의 윤리적 타입을 추상적으로 혹은 일화적으로 재현하지도 않았다. 단테는 살아있는 역사적 리얼리티 속의 인간, 단일성과 전체성을 간직한 구체적 개인으로서의 인간을 재현했다. 

- 343쪽 



사실적인 표현과 문장이 동시대의 다른 작가들과 어떻게 구분되는가를 실제 문학 작품들을 예시하여 중세 후반기의 문학과 단테가 이룬 문학의 차이를 보여준다. 딱딱하고 어색했던 중세 말의 표현들이 어떻게 자연주의적으로, 감각적이며 세속적인 풍성함을 가지게 되는가를 말이다. 



조반니 피사로 이래 화가들은 세상에 대해 날카로운 지각을 개발해왔다. 그래서 단테와 그 시대의 위대한 화가인 조토 사이에는 어떤 유사점이 발견된다. 두 사람에게 사건은 자급자족적 리얼리티로 다시 태어난다. 두 사람은 고전적 감각을 지녔고 리드미컬한 구조를 구현한다. 또 이 세상의 감각적 구체성 속에서 사물에 내재하는 법칙을 파악하는 방법도 상당히 유사하다. 

- 195쪽 




하지만 단테 문학 이상으로 이 책에서 내 관심을 끌었던 것들이 있었다. 그 첫 번째가 플로티노스에 대한 짧은 설명이다. 몇 페이지에 걸친 플로티노스에 대한 설명에서 아우어바흐는 중세 초기 미메시스 예술의 몰락을 플로티노스를 통해 설명한다. 실은 이러한 관점에서의 이해는 나로서도 처음 읽는다. 그만큼 중세 초기 신플라톤주의에 대한 소개가 거의 없고 플로티노스 철학에 대한 번역이나 소개는 최근의 일이기도 하지만, 그냥 막연하게 중세 예술에서의 미메시스에 대한 무관심, 또는 경멸이 종교적인 이유에서의 엄숙주의라고 여겼던 것이 구체적으로 설명되었기 때문이다. 



신플라톤주의의 창시자 플로티노스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서 가져온 여러 요소들을 융합하여 그 자신의 유출주의를 만들어냈고, 신비하면서도 종합적인 명상으로 기울어졌다. 이렇게 하여 영(Spirit)이 참여하는 지상의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그렇지만 아름다움은 내적 원형(이데아)의 상태에서만 순수하다고 보았고 물질 속에서는 들어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플로티노스의 사상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형상 없는 질료는 플라톤의 비존재(non-being)와 동일시되어, 완전한 존재를 갖춘 이데아와는 정반대의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렇게 하여 질료(물질)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단순한 저항을 의미하지 않게 되었다. 물질은 그 다양성과 분할 가능성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의 악(惡)이 되었다. 영이 물질세계로 유출되기는 하지만, 다양하고 구체적인 물질은 피지스(physis: 이것은 개체화의 시작[principium individuationis]이 되는데 곧 저급한 영혼을 의미함)를 통하여 다시 한 번 악하고 불순한 것이 된다. 따라서 미메시스 예술은 경험적 리얼리티와 접촉하지 못하고 순수한 에우레시스(euresis: 내적 형상의 복사물)가 된다. 플로티노스는 미학의 영성적 체계에 대하여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지만 그 실제적 결과는 미메시스의 부정이었다. 그는 생성(becoming)보다 존재(being)를, 물질보다는 이데아의 우월성을 강조했고, 물질과 변화를 형이상학적 비존재(존재하지 않는 것)와 동일시했다. 이런 사상은 세속적 운명을 예술 속에서 재현된 가능성을 모조리 파괴했다. 

- 56쪽 



두 번째는 그리스도 스토리에 대한 설명이다. 성경을 종교 경전으로, 그리고 서양예술작품에서 표현된 다양한 종교적 주제나 소재의 원천 정도로만 여겼지, 그것을 하나의 서사 문학으로 접근하지 못했는데, 아우어바흐는 이를 분석하고 있었다. 




그리스도 스토리는 로고스logos의 비유(parousia) 혹은 이데아의 나타남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 51쪽 



그리스도 스토리는 개인적 생활의 강렬함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 다양성과 풍부한 형식 또한 보여준다. 그 스토리는 고대 미메시스 이론의 한계를 돌파한다. 그 스토리 속에서 인간은 지상의 위엄을 잃어버린다. 모든 일이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고, 고전주의에서 규정한 장르의 구분(합리와 우연의 구분)은 가뭇없이 사라진다. 숭고한 스타일과 천박한 스타일의 구분도 더 이상 없다. 복음서에는 마치 고대 코미디처럼 온갖 계급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어부, 왕, 고위 사제, 세리, 창녀 등이 그들이다. 지체 높은 사람이라고 해서 희극 속의 인물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그와는 전혀 다르게, 모든 사회적, 미학적 제한이 철폐된다. 그 무대는 다양한 종류의 인간을 허용한다. 그 무대에 오르는 캐릭터들은 하나의 집단으로 혹은 각각의 개별 인물로 등장하든 여전히 다양성을 유지한다. 각각의 개인은 온전하게 합법화되며, 그 합법화는 사회적인 기반과는 무관하다. 그의 현세적 지위와는 상관없이 그의 개성은 완전히 개발되며, 그에게 일어난 일은 고상하지도 천박하지도 않다. 예수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베르도도 엄청난 굴욕을 당한다. 그리스도 스토리가 갖고 있는 자연주의(자연스러운 사실주의)는 깊이나 넓이에 있어서 전례 없는 것이다. 고대의 시인이나 역사가들은 인간의 사건을 이런 방식으로 서술하지 않았고 그럴 능력도 없었다. 

- 53쪽에서 54쪽 



세 번째는 단테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관계다. 단테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에 깊이 심취해 있었으며, 그 철학이 단테의 문학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글을 쓸 때 단테처럼 철저하게 합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쓰는 사상가는 없을 것이다. 이런 단테에게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아퀴나스 철학이었다. 그가 믿고 따른 아퀴나스 철학은 개성적 형태를 중시하고 그에 대한 묘사를 정당화했다. 성 토마스는 이 세상이 하나의 이미지를 따라 창조되었다는 신학적인 교리로써 사물의 다양성을 설명했다.(...) 따라서 천지창조 전체를 두고 볼 때, 다양성은 완전함의 반대 명제가 아니라 그것의 적절한 표현이다. 더욱이 우주는 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움직임에 적극 참여하며, 그 움직임은 우주의 형식들을 움직여 자기-완성으로 나아간다. 이런 행동의 능력이 발휘되는 과저에서 다양성은 완전함으로 나아가는 필요한 과정이다.

- 178쪽에서 179쪽 



단테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세속적 자연주의는 아퀴나스 철학에 기반해 있는 셈이다. 마치 고딕 자연주의처럼. 


 

책 뒤에 수록된 '인명-용어풀이'도 꽤 재미있게 읽었다. 잘 알려져 있는 철학자에 대한 설명보다 가령 사랑이나 천국, 연옥 같은 단어에 대한 풀이는 그 자체로 흥미로운 것이었다. 에리히 아우어바흐의 책이라는 점에서 반드시 읽어야겠지만, 이 번역서 자체의 완성도도 나쁘지 않고 강력하게 추천한다. 꽤 밀도가 높은 책이라 읽는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것이다. 


아래는 사랑이라는 용어 풀이에 실린 아퀴나스의 사랑에 대한 정의다. 선한 것은 아름답고 사랑스럽다는 것일까. 선미(kalokagathia) 의식은 그리스의 것이라 여겼는데, 중세 후기에도 어김없이 등장한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선을 원함(velle bonum)이다. 자기 자신에게 또는 남에게 선을 원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랑은 이기적 사랑과 우정의 사랑으로 나뉜다. 사랑의 고유한 원인은 선이다. 사랑은 사람의 본성에 타고난 것이나 그 본성에 어울리는 것이다. 악이 선'처럼' 나타날 때 악을 사랑하게 된다. 아름다움(pulchrum)은 선과 같은 개념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름다움의 소유는 보는 것 또는 인식에 있는데, 선의 소유는 사랑 속에 있다. 사랑의 가까운 원인은 선에 대한 인식이다. 이 인식이 없으면 그것을 결코 욕심낼 수 없다. 사랑의 결과는 상호 침투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그것을 주는 자가 그것을 받는 자 속에 있고, 또 반대로 사랑 받는 자가 사랑하는 자 속에 있도록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엑스터시(황홀)는 사랑의 결과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영혼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와서 사랑의 대상으로 옮겨가기 때문이다. 격정과 질투는 사랑의 결과이다. 강렬한 사랑은 그것을 반대하고 가로막는 온갖 장애물을 다 물리치기 때문이다. 사랑은 사랑하는 자가 행하는 모든 것의 원인이다. 바로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행하게 되는 것이다." 

-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 2부 1편 중에서(367쪽 재인용) 

 


아우어바흐(1892-1957) 



단테 - 10점
에리히 아우어바흐 지음, 이종인 옮김/연암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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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바람이 부는 바다 앞에 서서 수면에 닿자마자 사라지는 눈들을 바라보곤 했다. 그 도시의 거리에나 그 도시 앞 바다에나 눈을 쌓이는 법이 없었다. 자주 만나면 사랑이 싹틀 것이라는 바람 대신 그녀는 다른 남자를 만나 떠나는 것처럼, 몇 시간 동안 내린 눈은 내린 시간 보다도 더 빨리 녹아 사라졌다. 


바다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통영은 그 도시 근처에 있지만, 자주 가지 않았다. 자주 갈 일도 없었다. 





거래처와 미팅을 하고 점심을 먹고 저녁을 먹었다.




윤이상 음악당이 통영국제음악당으로 이름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곤, 고 윤이상 선생의 세계를 알려고 해도 알지도 못할 이들이 나서서 명칭을 바꾸었다는 사실에 속으로 분개했다. 


'내 고향 남쪽바다'라고 일컫어지던 고향 앞바다를 떠올리며, 잠시 향수에 젖었다. 그러고 보니, 내 고향엔 세계적인 조각가가 있었다는 사실을 이 글을 쓰며 깨닫는다. 


어젠 사람들 앞에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Pieta'에 대해 한참 이야기했다. 그의 신앙심과 절망을, 그의 예술과 매너리즘에 대해서. 미켈란젤로에 대해 한 권을 책을 써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이가 들어... 


Michelangelo Buonarotti

Rondanini Pietà (론다니니의 피에타)

1552–1564, height 195 cm

Castello Sforzesco, Mi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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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 까페 하나가 생겼다. 몇 번 지인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그 까페 한 쪽 면의 창문들은 어두워지면 저 멀리 63빌딩이 보이고 강변북로를 잔잔하게 물결치는 파도처럼 수놓는 자동차 불빛들이 한 눈에 들어오는 야경을 가졌다. 사무실의 술자리를 줄이니, 동네 술자리가 늘어났다. 동네 술자리가 마음 편하다. 술을 많이 마실 염려도 없고 많이 마시더라도 걸어서 집에 가니 걱정 없다. 


비가 많이 내렸다. 내린 비만큼 내 치아와 잇몸 상태도 엉망이었음을 최근에서야 알았다. 매주 치과에 가서 치료를 받고 있다. 나이가 든다는 걸 마음보다 몸이 먼저 안다. 우리는 나이 드는 훈련을 받지 못했다. 늘 상투적으로 말한다. "몸은 늙었으나, 마음만은 이팔청춘이야"라고. 


그런데 저 상투적 표현이 얼마나 우리 사회를, 우리 마음과 몸을 병들이는가에 대해선 주목하지 않는다. 청춘의 마음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경험해본 이는 다 아는 사실 아닌가. 무수한 도전과 실패로 얼룩져 중년의 몸과 마음까지 영향을 주는 그 이팔청춘! 이팔청춘이 뭐가 좋다고. 


그래, 이팔청춘 시절 그대의 사랑은 행복했나요? 그대의 학창 시절은 즐겁고 유익했나요? 그대의 대학 시절은 바람직했나요?  


제대로 된 사회는 그 나이에 맞는 역할과 책임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제대로 된 역할과 책임에 대해 고민해 볼 시간 없이 오직 대학 입학만을 준비한다. 사춘기의 철없지만 향기롭게 들뜬 사랑에 대해서도 그 어떤 조언도 받지 못하고, 머리 가득하게 퍼지는 성적 유혹에 대해서도 온 몸으로 부딪히며 아파할 뿐이다. 그렇다고 대학이 딱히 나은 것도 아니어서, 그 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 성적 방종이거나 자유, 혹은 학문 탐구에 대한 무책임함이다. 그리고 이 때부터 갑자기 괴롭히는 것이 생기는데, 그건 취업 준비다. 



이팔청춘이 한참 지난 사람들끼리 모여 앉아 와인을 마셨다. 비는 쉴새없이 내렸고 투명한 유리잔은 채워졌다가 비워지길 반복했다. 말은 끊겼다가 이어졌고 시간은 쉼없이 흘렀다. 어느 새 나이가 들어 이제 살아갈 시간이 살아온 시간보다 적게 남은 우리들에게 청춘이란 무엇일까. 늙어간다는 건 무얼까. 인생은, ... ... 


그저 의미없이 지나갈 뿐이다. 아. 다행이다, 까뮈와 베케트를 읽어둔 것은. 까뮈와 베케트는 내가 젊었던 시절, 이 생이 아무 의미 없음을 알려주었기에, 나는 어떻게든 살아있는 것이다.


치과 치료가 있는 날이면 아련한 고통에 정신이 없다. 진통제를 먹어야 하나. 그나저나 목요일 통영에 가는데, 가서 뭘하지. 회의를 끝내고 뭘하지. 혹시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통영에 사는 이가 없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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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 나를 강하게 만든다

알렉상드르 졸리앙(지음), 성귀수(옮김), 책읽는수요일 




"오늘은 어제보다 덜 나빴다. 그런 오늘보다 내일은 좀 더 나을 것이고, 그렇게 계속 나아질 것이다.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 하기를. 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하나의 원칙만을 고수할 것이다. 마치 살아서 다른 할 일이 없는 사람처럼, 주님이 나를 세상에 내신 이유가 오직 그것뿐인 것처럼, 그리하여 오로지 그 하나를 이루는 일에 나의 구원이 달려 있는 것처럼, 모든 사소한 일, 작은 기도, 세세한 규칙들을 철저히 수행해나갈 것이다."

"이 원칙은 언제나 자기 자신을 자각하고, 자기가 하는 일에 전략을 다하며, 신이 지켜보는 앞에서 굳건히 매진할 것을 내게 요구한다. 하지만 정작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그런 원칙이 일상의 처음 취하는 동작에서부터 꼼꼼히 적용되어야만 한다."

- 교황 요한 23세, <<영혼의 일기>>, 1962년 12월 23일 (54쪽에서 재인용) 



부끄러웠다. 졸리앙의 글을 읽으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어느 순간 세속에 물들어 적당히 거짓말을 하고 적당히 타협을 하며 사소한 나쁜 행위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잊고 지내던 것이었다. 소년이었던 시절, 나는 내 삶의 지향점이 분명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으며, 사랑은 날 떠났고, 나에게 실패했으며, 모든 것들은 내가 원하던 대로 움직였다고 생각했으나, 그건 내 착오였다. 그 착오의 영향은 꽤 심각해서 아직도 허우적되고 있다. 그 때의 나는 오만했으며, 타인의 충고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터무니없는 낙관주의로 날 나락으로 몰아가고 있었지만, 그것을 알지 못했다. 



졸리앙은 그런 이야기를 하진 않는다. 다만 그의 육체적 고통에 대해서, 자신이 벗어나고 했던 그 불완전성에 대해서 끊임없이 싸워왔음을 이야기할 뿐이다. 인터넷 서점(혹은 책 표지)에서의 저자 소개는 아래와 같다. 



1975년 스위스 시에르에서 트럭운전사 아버지와 가정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탯줄이 목에 감겨 질식사 직전에 기적적으로 태어나 뇌성마비를 갖게 되었고, 3살 때부터 17년간 요양 시설에서 지냈다. 장애로 인해 불편과 고통, 난관에 수없이 부딪히면서 그는 내면에 잠자고 있는 인식에 대한 강렬한 갈증을 느껴 철학에 빠졌다. ... 

- 인터넷서점 작가 소개 




"실재성과 완전성을 나는 같은 것으로 이해한다." - 스피노자, <<에티카>>, 제2부 정의 6



스피노자의 저 한 마디는 졸리앙의 인생 전체를 위로 끌어올린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 이 표현은 아래의 글귀로 이어진다.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바 그 직관, 즉 우리 모두가 불성을 타고 났다는 위대한 깨달음과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 94쪽 




이 책은 '내려놓음'에 대한 명상과 그 서술로 이루어져 있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 졸리앙은 나직한 목소리로 그리스도교와 불교를 오가며 부족한 자신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그러나 저자는 자신의 육체를, 자신의 일상을 통해서 그것을 담담히(아마 처절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적는다. 그런데 그 울림이 작지 않아서, 책을 한 번 잡으면 놓지 못한다. 


나는 알렉상드르 졸리앙에 대해서는 신문 칼럼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역시 이 책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마치 짧은 힐링 여행 같은 책이라고 할까. 마음의 여유를 잃기 쉬운 요즘, 이 한 권의 책이 휴식이 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추천한다.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 나를 강하게 만든다 - 8점
알렉상드르 졸리앙 지음, 성귀수 옮김/책읽는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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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시대 The Age of Shakespeare 

프랭크 커모드(지음), 한은경(옮김), 을유문화사 크로노스 총서 11



책은 얇지만, 의외로 단단하고 빽빽하다. 셰익스피어(1564 ~ 1616)가 살고 활동했던 시대 전후로 셰익스피어 극작품에 영향을 주고 받은 다양한 환경적 요인이나 연극 제작, 그리고 개별 작품에 대해 분석하고 언급하고 있으니, 당연히 쉬운 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독자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 또한 그랬으니. 그래서 그런지 이 번역서에 대한 일반 독자의 반응은 좋지 않다. 너무 어렵다는.  


그러나 미 컬럼비아대 비교문학과 교수인 제임스 샤피로(James Shapiro)는 프랭크 커모드(Frank Kermode, 1919~2010) 교수 생전에 '현존하는 최고의 셰익스피어 안내자(reader)'라고 평가했다.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Frank_Kermode)


이 책의 대부분은 엘리자베스 시대의 연극 제작을 둘러싼 다양한 환경을 서술하고 분석하는 데 할애되어 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셰익스피어 극작품의 일부를 인용하여 어떻게 셰익스피어에게 영향을 미쳤는지까지 보여준다. 


엘리자베스 시대(이 용어는 편의상 제임스 1세 초까지 망라하기도 한다)는 전문 연극이 발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주목할 만하다. 

최초의 대중연극은 주로 임시 극장에서 공연되었고, 심지어 여인숙의 뒷마당이 무대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16세기 후기에 이르러 런던에는 최고 3,000명까지 수용할 수 잇는 전용극장이 여럿 생겨났는데, 이런 극장은 주로 극단주들이 소유했다. 대개 극단은 과거 길드와 구조가 흡사했으나, 셰익스피어의 극단은 다소 달랐다. 단원들이 연극은 물론이고 극장까지 소유했기 때문이다. '주주'들은 연극을 위탁하고 소유하고 출연했으며, 셰익스피어의 경우는 직접 연극을 쓰기도 했다. 그를 위시하여 일부 동업자들은 상당한 수입을 올리며 자산가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건 나중 일이었고, 엘리자베스 여왕 초창기에 극장 공연자들은 여전히 곡예사나 순회 공연자, 방랑자 정도의 취급을 받았다. 

- 10쪽 


(* 참고. 엘리자베스 1세(1533 ~ 1603), 제임스 1세(1566 ~ 1625). 엘리자베스 시대는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 초반으로 이해하면 된다. 예술사에서는 매너리즘 시대로 이해하는 기간이다.)


따라서 일반 독자에게 권하기는 다소 난이도가 있는 책이다. 더구나 2004년도에 런던에서 출간된 이 얇은 책을 내기 전 프랭크 커머드는 이미 10권 이상의 셰익스피어 저술을 썼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책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목차도 아래와 같다. 


- 종교개혁과 왕위 계승의 문제

- 엘리자베스의 영국

- 셰익스피어, 런던으로 가다

- 로드 체임 벌린스멘 극장

- 극장

- 초기의 셰익스피어 

- 글로브극장

- 글로브극장의 연극

- 블랙 프라이어스 연극 


셰익스피어 연극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진 이들에게 이 책은 보물단지에 가까워 보인다. 아마 그 정도 되려면 전문연구자일 테니, 프랭크 커모드를 모를 일 없을테지만.  영미문학에서의 프랭크 커모드는 상당한 유명한 연구자이며, 오래 전 <<종말 의식과 인간적 시간>>이라는 번역서가 나오기도 했다.  나 또한 이 책을 꽤 열심히 읽었으니, 프랭크 커모드의 책은 두 권을 읽은 셈이다. 


이 책은 16세기 후반과 17세기 초, 영국 상황에 대해서도 간단한 이해를 도울 수 있는데, '엘리자베스 여왕의 처녀성은 찬양과 희망을 표출한다는 은밀한 신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29쪽)라는 언급은 꽤 흥미로웠다. 왕이 아니라 여왕, 더구나 결혼을 하지 않은 여왕은 영국 귀족 사회에서도 상당히 골치거리였다고 한다. 이 책의 후반부에서는 셰익스피어의 주요 극작품에 대한 간단한 언급도 등장하는데, 중요한 부분이라 인용해본다. 먼저 <<햄릿>>에 대한 언급이다. 


이렇듯 다양한 스타일이 구사되는 이면으로 가족의 이중성과 그 외 여러 이중성에 대한 불안한 마음이 배어있다. 햄릿에게 클라우디우스는 삼촌이자 아버지이며, 그 자신이 조카이자 아들이다. 끔찍한 현실이다. 자신의 어머니와 계부가 몸을 합했다는 사실, 다시 말해서 그들의 간통이 실은 근친상간이라는 것은 혐오스러울 따름이다. 

대사는 언어학적인 이중적 의미로 가득하며, 전례가 없을 정도로 중언법이 많이 사용된다(중언법은 '하나를 통한 둘'을 뜻하며, 하나의 복잡한 개념이 형용사와 명사 대신 접속사로 연결되는 두단어로 표현된다.[옥스포드사전]). 사전에서는 중언법의 예로 <<햄릿>>이 인용된다. "의전법으로 잘 비준된 것 Well ratified by law and heraldry"(1막 1장 87).  이 때 '법과 의전 law and heraldry'은 '의전법'을 의미한다. 

- 148쪽 


아래는 <<맥베스>에 대한 서술이다. 


현재의 상황으로 만들어지는 미래는 다의적이다. 시간은 다의성의 대리인이다. 던컨을 살해하기로 결정한 것은 한 순간 어느 쪽으로도 진행될 수 있다. 그리고 이 결정은 시간이 정지된 순간에 이루어진다. 이 순간은 의도와 행위 간의 간극이며, 그 사이에 과거와 현재, 미래는 다의적으로 하나가 된다. 정당한 것은 사악한 것과, 실패한 것과 성공한 것과, 미래와 순간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 

- 176쪽 



영문학 전공자에게는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혹시 이 글을 읽게 되는 을유문화사 관계자가 있다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크로노스 총서를 계속 발간하는 것을 검토해볼 것을 권한다.아마 국내에 번역된 여러 인문 시리즈들 중 이 시리즈가 단연코 최고라고 여기는데, 나오다가 중단되었다(참고로 이 시리즈의 1권으로 번역된 폴 존슨의 <<르네상스>>는 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최고의 르네상스 개론서이다). 그러니 다시 나오기 시작한다면, 나라도 열심히 소개할 테니 .... )






셰익스피어의 시대 - 10점
프랭크 커모드 지음, 한은경 옮김/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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