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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옥토버 

2017.12.8 - 2018.1.31. 

아르코미술관 제 2 전시실 




몇몇 작품들은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대단한 느낌은 없었다. 결국 설치작품들은 규모와 공간의 문제일까. 스펙터클이 중요한 것일까. 꼭 그런 건 아닐 것이다. 


작품을 보기 전에 작품에 대한 설명을 읽거나 들어야 한다는 것은 작품의 해석과 수용에 치명적이다. 결국 조형 예술이 활자언어에 종속되어 그것의 해석/비평에만 의지하게 된다. 무채색의, 별 감흥없이 서있다가 설명을 듣거나 읽었을 때야 비로서 '아'하고 반응한다면, 그것은 독립적인 조형작품이 아니다. 대체로 이 전시의 작품들이 그랬다. 


현대 미술은 너무 자주 비평적 언어에 종속되어, 먼저 개념적 어젠다를 설정한 후, 마치 개념의 설계도를 따라가듯 작품이 만들어지거나, 그렇게 전시된다. 러시아 혁명에 대해 살펴보면서 한국 현대를 이야기하고자 한 이 전시는 실패했다. 애초에 '러시아 혁명'은 우리로부터, 일반 대중으로부터 너무 멀리 있다. 즉 관객과 공감하기 어려운 주제다. 프랑스 혁명의 귀결이 '나폴레옹'이듯 러시아 혁명의 귀결은 '스탈린 체제'와 '냉전'이다. 차라리 혁명이 아니라, 혁명을 부르게 되는 상황에 주목하고, 그 상황에 대한 보다 나은 해결책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엄밀하게 말해 예술가의 역할로 보긴 어렵거나 제한적일 것이다. 


이상엽의 사진이나 양유연, 이우성의 작품은 이미 보았다. 양유연의 최근 작품은 처음이었으나, 그 변화가 나쁘지 않았다. 페인팅에서의 스타일의 변화는 사각 평면에 담긴 것 뿐만 아니라 사각의 평면을 어떻게 구성하는가, 페인팅이 담기는 매체, 또는 형태도 중요하다. 이상엽의 사진은 잘 알려져 있는 작품들이다. 



전시 팜플릿에 이번 전시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옮긴다. 



- 지금도 자본주의는 여전히 지배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지만, 다른 체제로의 이행은 역사적 필연일 것이다. 비록 지금은 존속하지 않지만, 100년 전 인류의 한 사회는 자본주의와는 다른 길로 사회주의 혁명을 관철했다. 러시아혁명이라 명명되는 이 사건은 인류의 역사에 내재되어 있던 본성을 끄집어낸 사건이었으며, 사회주의나 공산주의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유토피라와 같은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드러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 이 전시 <<옥토버>>는 1917년 10월 러시아에서 일어났던 러시아혁명에 주목하면서도 한국사회에서의 계급투쟁과 계급적대를 한국의 근현대사와 당대의 운동을 통해 고찰하고자 한다. 


- 이처럼 <<옥토버>>는 시대와 상황은 다르지만, 지배/피지배 계급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계급적대와 계급투쟁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하며, 더 나은 사회와 체제를 이성적으로 열망하고 희망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사회의 진보적인 힘에 대해 예술언어는 어떻게 응답하는지를 담아내고자 한다. 




양유연, 얼룩, 장지에 아크릴릭, 198x138cm, 2017




이상엽, 자본주의_모스크바, 종이에 잉크젯, 100x150cm, 2004



이상엽_울란우데, 부랴트공화국_Epson 9800 K3 ink, Hahnemuhle paper, monochrome_17×17 _2006


이상엽_모스크바, 러시아_Epson 9800 K3 ink, Hahnemuhle paper, monochrome_11×14 _2007 



이상엽의 사진 작품 몇 개 더 찾아 올린다. 사진이 좋은 점은 실제 보는 것과 모니터로 보는 것과의 차이가 다른 장르보다 덜하다는 것이다. 양유연이나 이우성의 작품은 실제로 봐야 하지만.. 



이우성의 아르코 전시 작품 이미지는 구하지 못했다. 대신 학고재 전시 풍경을 학고재 웹사이트에서 일부 옮긴다. 학고재






2009/02/09 - [예술의 우주/리뷰] - 그림 좋다 展 과 Propose 展 - 순수와 상업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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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크백 마운틴 Close Range: Wyoming Stories 

애니 프루Edna Annie Proulx(지음), 조동섭(옮김), media 2.0,2006년 





잭이 말했다. "이 생각을 해봐. 나도 이번 한 번만 말하겠어. 있지. 우리는 같이 잘 살 수도 있었어, 진짜 좆나게 잘. 에니스, 네가 안 하려고 했어. 그래서 이제 우리에게 남은 건 브로크백 마운틴 산 뿐이야. 거기 몽땅 다 있어. 우리가 가진 건 그것 뿐이야. 씹할 그것 뿐이라고.(...)" - 345쪽 


 


소설집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브로크백 마운틴>은 앞서 읽었던 거칠고 고통스러우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끝까지도 비명을 지르지 않는 사람들의 군상들과 겹쳐져, 위 문장 쯤에선 눈물이 나올 정도다. 브로크백 마운틴 뿐이라니! 


아마 한국에서 특정 지역을 소재로 애니 프루처럼 소설을 썼다면, 소설이 나오자마자(아니면 대다수가 책 따윈 읽지 않으니 그냥 묻힐려나) 작가에 대한 무수한 인신 공격과 소설에 대한 판매 금지 신청, 소설의 문학성이나 완성도 따윈 이야기할 틈 없이 무참히 공격당하다가 소설가는 끝내 절필 선언까지 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리고 법정까지 끌려가 탈탈 털릴 게 분명하다. 해당 지역 사람들이 소송을 걸거나 고발이 들어오거나 자신의 옳고 강직한 소신과 신념을 드러내기 위해 검사가 수사를 진행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만큼 이 소설집은 처음부터 끝까지 폭력이 난무하고 (대체로) 여성과 장애인은 인간 대접 받지 못하며 끔찍한 방식으로 대상화된다. 심지어 동성애 장면은 너무 노골적이어서 그런 묘사가 있다는 걸 정부 관계자들이 안다면 19금 소설로 포장해 판매하라고 할 것이다. 소설들 속에선 다치는 건 늘 있는 일이고 가난은 벗어날 수 없으며 망해가는 목장이거나 트레일러가 그들의 거주지다. 


소설을 읽으면서 묘하게 한국과 겹쳐지는 이유는 문학과 현실의 경계는 어디일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특정 실존 인물이나 특정 지역 사람들에 대한 문학적 해석과 재창조는 어떤 것일까. 하긴 이 소설을 읽은 미국 사람들이 와이오밍 관광청에 전화를 해서 브로크백 마운틴이 어디에 있는 거냐며 묻는다고 한다(하긴 나도 브로크백 산이라, 어디 있는 거지 하면서 구글 맵에서 찾았으니). 그런데 실제 존재하지 않는 산이다. 


결국 우리는 꿈을 꿀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잭은 죽고 그의 유언은 브로크백 마운틴에 유골이 뿌려지는 것이었는데. 그 산은 실제론 없다. 


11개의 단편들로 이루어진 이 소설집은 거칠고 황량한, 거대한 자연 앞에서 순응하며 인생과 싸우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진창The Nud Below>에서 다이어몬드는 어머니에거 '아버지가 누구냐'며 따지지만 끝내 알지 못한다. <목마른 사람들People in Hell Just Want a Drink of Water>에서는 끝없는 호기심과 모험, 도전으로 와이오밍 밖으로 나간 라스가 교통사고로 인해 고향으로 돌어와 죽는 이야기다. 실은 너무 끔찍한 이야기라서 적지 않는 편이 좋겠다. 하긴 이 소설집에서 어느 것 하나 끔찍하지 않은 이야기가 어디 있으랴. 


이안 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틴>은 보지 않았으며 그저 애니 프루의 소설이 궁금했을 뿐이다. 읽는 내내 불편했고 끔찍했으며 이 소설집을 읽는 한국 독자들이 궁금했다. 이렇게 폭력적인 세계를 너무나도 태연하게 묘사하는 애니 프루에 대해서 어떻게 여길까. 이 소설이 한국어 쓰여져 출판되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더구나 특정 지역, 특정 사람들을 등장시키며 일반화시킨다면 사람들은 뭐라고 할까. 이런 식의 단상이 꼬리를 물었다. 결국 내 이야기가 아니라 네 이야기라 찬사를 거듭하는 건 아닐까. 트레일러나 목장에서의 삶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까닭에, 노골적으로 높게 평가하는 건 아닐까. 트레일러나 목장 옆에서 지내는 여자아이이거나 성인 여성이거나 장애인이 아니기 때문에, 새로 번역되어 나온 건 아닐까. 


가끔 한국이 싫어지곤 하는데, 그건 너무 이중적인 잣대로 세상을 바라보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렇지 않아 보이는 이들까지 한 패가 되어. 


결국 우리가 기댈 곳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브로크백 마운틴 뿐이다. 이 세상에선 금지된 꿈이, 용납되지 못할 사랑이 시작되고 화려하게 꽃 피우고 소리없이 묻힐, 저 산 뿐이다. 








브로크백 마운틴 - 10점
애니 프루 지음, 조동섭 옮김/Media2.0(미디어 2.0)

내가 읽은 책이다. 절판되어 구할 수 없다. 그래서 읽는다면 아래 책으로.  



브로크백 마운틴 - 10점
애니 프루 지음, 전하림 옮김/f(에프)





애니 프루(1935 ~ )



소설을 다 읽고 난 다음 참고로 읽으면 좋을 기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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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드런 액트 The Children Act 

이언 매큐언 Iwan McEwan(지음), 민은영(옮김), 한겨레출판



살만 루시디(Salman Rushdie)가 추천한 이언 매큐언의 <칠드런 액트>. 소설을 읽는 내내, 루시디가 추천하는 몇 권의 책 안에 들 정도는 아닌데 하는 생각하지만, 다 읽고 난 다음 그가 왜 이 소설을 왜 추천했는지 알게 된다. 


몇몇 이들은 이 소설을 영국의 아동법 등의 여러 법률에 근거한 법과 종교의 문제로 해석하지만, 그건 잘못된 해석이다. 판사가 나오고 소설의 많은 장면들이 법정이거나 법과 관계된 사람들로, 혹은 종교와 관계된 이야기가 나온다고 해서 이를 법과 종교의 문제, 그 갈등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면, 모든 이들이 탁월한 소설 비평가가 될 것이다. 


결국 읽는 이에 따라 소설에 대한 해석은 달리 되어, 터무니없이 낮게 평가되거나 비상식적으로 높게 평가되기도 한다. 나에게 이 소설은 그간 읽어왔던 소설들 중 최고는 아니었지만, 살만 루시디에게 이 책은 최고의 소설이었을 것이다. 적어도 살만 루시디에게는. 


소설은 두 개의 이야기가 서로 교차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피오나와 잭과의 관계. 피오나와 애덤의 관계. 이 두 관계는 서로 만나지 않지만, 이 소설의 큰 두 축이다. 하나는 성관계가 없는 중년의 판사와 교수 부부 이야기이며, 하나는 신앙으로 인해 수혈을 거부하는 한 소년과 수혈 집행 명령을 내리는 판사 이야기다. 두 이야기는 관계 없는 듯 하지만, 하나의 주제를 공유하고 있다. 이 두 이야기는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과 그 환경 속에서 개인은 어떻게 영향을 받고 어떤 사고를 하고 어떤 행동을 하며 궁극적으로 어떤 자유를 가지는가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진다.  


소설은 우아한 몸짓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지만, 그 속에는 의외로 심각한 주제를 담고 있는 셈이다. 살만 루시디는 이걸 알고 있었다. 그는 우리가 어떻게 태어났고 어떻게 나이를 먹으며 어떻게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는가에 대해 이미 경험했다. 집을 나간 잭이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오고 피오나가 다시 잭을 받아들이게 되듯, 애덤은 수혈을 받게 한 피오나의 결정에 대해 찬사를 하지만, 결국 자신의 의지로 수혈을 거부한다. 이는 수혈 거부에 대한 법적인 기준에 질문이 아니다. 결국 '이것 아니면 저것'(키아케고르)이며, 우리가 종국에는 어떤 행동과 결정을 내리게 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내외적으로 무수한 갈등과 고민, 방황을 하지만, 이렇게 아니면 저렇게 할 수 밖에 없는 현실. 


아마 살먼 루시디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무수한 이슬람 사람들을 떠올렸을 것이며, 자신의 무모한 신앙으로 지하드를 감행하는 이슬람의 젊은이들을 생각했을 것이다. 서방에서 태어났건 동방에서 태어났건 상관없이, 결국에는 그들의 조상이 믿었고 그들 가족이 지키고 있는 그 신앙을 따라, 그 자신 스스로의 종교적 신념과 자유의지로 다시 이슬람 근본주의를 향하는, 일부는 지하드를 벌이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이 소설이었던 셈이다. 아마 루시디는 이 소설 속에서 피오나가 애덤에게 수혈을 명령하는 판결문을 읽으면서 울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 판결문은 동시에 애덤이 결국 수혈을 거부하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법은 최소한의 장치일 뿐이고 결국 우리가 기대게 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의지일 뿐이다. 그것이 이해가능한 것이든 이해불가능한 것이든. 소설은 결국 우리의 무수한 시도들은 애초에 예정되었던 어떤 행동에 대한 변명만 만들어줄 뿐임을 말한다는 점에서 꽤 비극적이며 소설의 시작으로 다시 돌아온다. 피오나와 잭은 같은 집에 사는 부부이고, 애덤은 예정된 대로 수혈을 거부한 채 죽는 것이다. 이 소설을 다 읽은 독자들은 소설을 덮고 무수한 상념에 빠질 것이지만, 그 뿐이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여러 사람들의 조언을 듣는다고 해서 우리가 탁월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건 아니다. 결국 우리 자신의 문제이며, 우리의 자유 의지가 결정하게 될 것이다. 이것 아니면 저것. 고민하기 전에, 조언을 듣기 전에 우리는 이미 이것, 아니면 저것을 할 것임을 알고 있다.  


이언 매큐언의 소설은 이번 처음이었다. 매큐언의 <속죄>를 영어로 읽다가 잠시 쉬고 있는 터라(아직도 영어 소설을 읽어내는 속도가 너무 느려서), <칠드런 액트>가 처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번역이라서 그런가. 번역된 영어권 작가들의 소설을 읽으면 다들 비슷해보이니 말이다(그러니 영어로 읽어야 된다). 


끝으로 조금 길긴 하지만, 피오나가 애덤의 강제 수혈 집행을 명하는 판결문 일부를 옮긴다.


A는 스스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나이에 근접해 있습니다. 종교적 신념을 위해 죽음을 각오한다는 사실은 그 믿음이 얼마나 심오한지 증명합니다. 또한 그의 부모가 끔찍이 사랑하는 자식을 신앙을 위해 희생시킬 각오를 한다는 사실은 여호와의 증인이 고수하는 교리의 힘을 보여줍니다. (...) 

바로 이 힘때문에 저는 멈춰 서게 됩니다. 왜냐하면 A는 17세가 되도록 종교적, 철학적 사고라는 격변하는 영역에서 다른 표본을 접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기독교 종파는 신자들 간의 열린 논쟁이나 반대의견을 장려하는 문화가 아닙니다. 회중의 신자들은 자신들을 '다른 양'이라 부른다는데요. 적절한 명칭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겠습니다. 저는 A의 정신, 견해가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A는 아동기 내내 강력한 하나의 세계관에 단색으로, 중단없이 노출된 채 살아왔고, 그런 배경이 삶의 조건을 좌우하지 않았을 수는 없습니다. 고통스럽고 불필요한 죽음을 감수하는 것. 그리하여 신앙을 위해 순교자가 되는 것이 A의 복지를 도모하는 길은 아닐 것입니다. (... ...) A는 그의 종교로부터, 그리고 자기자신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합니다. 

- 167쪽에 169쪽 



Iwan McEwan(1948 ~ )



칠드런 액트 - 8점
이언 매큐언 지음, 민은영 옮김/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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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되어버린 남자 Das Buch

알폰스 슈바이거르트(지음), 남문희(옮김), 비채, 2001 



원제는 '그 책'이고 내용은 번역본 제목 그대로 책이 되어버린 비블리 씨에 대한 것이다. 정말로 책이 된다. 책이 되어 사람을 공격하기도 하고 서가에 꽂히기도 하며 읽히기도 하고 땅 속에 파묻히기도 한다. 그러나 책이나 독서에 대한 깊은 사색이 묻어나오지 않으며 그저 책이 된 채 떠도는 이야기이다. 독특하기는 하나 깊이 없다. 책은 짧고 금방 읽힌다. 그리고 왜 읽었을까 하고 반문한다. 그래서 책 앞에 인용된 독일 저널들의 찬사는 어색하고 난감하다. 왜냐면 내가 잘못 읽은 게 아닌가, 내 감식안이 형편없는 건 아닌가 하고. 제목은 사람의 시선을 끌지만, 시간 내어 이 책을 읽진 말자. 

(그래서 독일 아마존에서 이 책을 찾아보았으나, 나오지 않는다. alfons schweiggert로 검색하여 목록을 대강 훑었으나....) 




책이 되어버린 남자 - 6점
알폰스 슈바이거르트 지음, 남문희 옮김, 무슨 그림/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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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 철수가 남의 일 같지 않다. 하긴 나이 들고 남의 일 같지 않은 일이 한두 가지일까. 


지금 고향인 창원(마산, 진해 포함)도 경기가 엉망인데, 그 곳의 경제를 지탱하던 한 축인 조선업이 엉망이 되었기 때문이다. STX조선이 무너지자, 관계된 여러 기업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졌고, 월세나 전세집이 나가지 않으며,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심지어 어린이집들까지 폐업하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기업의 생존은 기업 구성원을 너머 그 지역 사회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러니 군산에서의 GM 철수는 GM군산공장에 다니는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주 중앙선데이에서 <한국GM사태로 본 '주식회사 대한민국' 구조조정>이라는 특별 기사가 실렸다. 기사에 이번 GM사태는, 실은 예상된 문제라고 지적한다. 여기에 대해 나도 깊이 공감한다. 이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GM는 미국 정부의 지원으로 죽다 살아났다. 이 때 해외 공장은 후순위로 밀린 상태인 셈. 그리고 2014년에 취임한 CEO 메리 바라는 강력한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돈이 안 되면 철수한다"라는 신념으로 유럽에서 쉐보레를 철수하고 오펠은 팔았다. 인도네시아, 태국, 러시아 공장을 닫았다. 그리고 GM을 정상 궤도로 올려놓고 있는 중이다. 그러므로 과거 한국 정부와 2대 주주인 산업은행의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 때부터 GM 철수에 대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마련해두고 준비해야 되는 것이다(하지만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를 말해서 뭐라고 할까. 그 정부 밑의 산업은행 또한!).


중앙선데이의 관점은 아래와 같다. 


정부 주도의 톱다운(Top-Down) 방식 구조조정에 익숙해진 금융 업체와 기업들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정부만 쳐다보는 일을 되풀이하고 있다. 한국 GM뿐만 아니라 대우조선해양, STX조선, 금호타이어 등 수많은 기업이 이 같은 함정에 빠져 허둥댄다. 


BCG의 TURN(기업 구조조정 및 회생)부분 대표인 라스 파스테의 인터뷰가 실렸는데, 톱다운(하향식) 구조조정에 대한 언급을 인용해보자면, 


"경쟁력 개선보다는 금융에 초점을맞춘다. 어떻게 하면 추가로 투자를 유치하거나 저금리 자금을 끌어다 눈앞의 어려움을 해결해야 할지에 집중하는 것이다. 정부의 자금지원을 어떻게 받을 지 궁리만 하게 된다." 


현재 한국GM의 접근법이나 한국정부, 산업은행의 접근법도 톱다운이다. 그러나 투자 유치나 자금 조달에 대해서 관련 사모펀드 관계자들은 부정적인 의견이다. 


"가장 중요한 비즈니스 플랜이 없다. 재무적 문제는 자금을 투입해 해결할 수 있지만 전망 있는 사업 계획의 부재는 다르다. 나라면 투자하지 않는다." 


이에 라스 파스테는 "하향식(Top-Down)이 아니라 상향식(Bottom-up)으로 접근해야 한다. 생산과 영업 현장을 샅샅이 뒤져 최고의 품질과 서비스를 만들어 생존 가능한 길을 찾아내야 한다. 임금 구조도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점에서 대우해양조선에 대한 접근법에 대해서도 "공적 자금을 거제 지역 실업 대책이나 대안 산업 발전에 썼어야 한다"는 관련 전문가의 언급을 기사에서 인용하기도 한다. 


아마 다들 아래와 같은 관점이 담긴 기사들를 한 두번은 읽었을 것이다. 


한국 GM의 생산량은 가장 많았던 2011년에 비해 40% 가까이 줄었다. 지난해 적자는 9000억원에 달했다. 내수 판매, 수출 모두 줄었지만 임금은 꾸준히 올랐다. 2013~2016년 성과급은 매년 1000만원씩 지급됐다. 이 기간 기본금은 해마다 2.7~5% 올랐다. 


여기에 대해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서 <GM 사태는 '철밥통' 노동자 때문?>라는 방송을 내보내기도 했다. 


GM 사태를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소리 소문 없이 작은 기업들은 문을 닫고 있다. 임금 체불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것이다. 그런데 대기업이라고 해서 정부가 지원해주는 것에 대해 고개를 한 번 갸우뚱하게 된다. 


많은 부분 중앙선데이의 의견에 공감하는데, 무엇보다도 대기업 노조에 대한 불신이 크기 때문이다. 직원 협의체가 있는 회사를 다니긴 했지만, 고만고만한 중소기업에서의 노조나 직원 협의체는 큰 힘이 없다. 특히 IT 기업에서는. 업계 자체가 워낙 이직이 자유롭고 프리랜서도 많기 때문에 노조 결성에 대한 필요성도 많이 느끼지 못한다. 실은 임금 체불을 하거나 퇴직금 미지급 등의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바로 관공서나 법으로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노조가 개입될 여지가 적고 있다손 치더라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도리어 공적 인프라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지(정부나 유관 기관의 정책), 노조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아마 IT 뿐만 아니라 많은 중소기업들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즉 대기업 노조는 그냥 그들만의 세상이고 그들만의 리그다. 동시에 기업이 지역 사회나 나라 경제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고 해서 계속 정부의 정책 지원이나 공적 자금 투입은 한 번 고민해볼 문제다. 도리어 그 기업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그 기업을 그만두게 될 사람들의 재취업이나 인프라를 지원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지만 후자의 방식은 아직 준비되지도 않았고 준비하기도, 실행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중앙선데이의 특집 기사들은 공적 자금이 투입되는 구조조정에 대해 정부나 산업 은행의 역할이 더 중요하며,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결국 하향식이 아니라 상향식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결론 내린다. 


마지막으로 BCG의 라스 파스테의 의견을 인용해본다. 원래 컨설팅 펌 사람들은 좋은 말만 하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그래도 약간의 긴장감을 가지기 위해선 귀기울여 들을 필요도 있다. (군터 뒤크라면 아니라고 말했을 테지만) 


-평소 '지속적인 강박 관념(Constant Paranoia)'을 강조했는데

"그렇다. 경영자는 언제든지 경제와 시장 상황이 바뀌어 회사가 위기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매 순간 긴장해야 한다. 요즘처럼 경쟁이 살인적인 상황에서는 상장 기업 세 곳 가운데 하나가 5년 안에 사라진다. 50년 전에는 20곳 가운데 하나가 망했다." 

-위기의 자동차 기업을 되살리기 위해 또 다른 조언은 무엇인가.

"난 디지털을 강조하고 싶다. 많은 경영자가 디지털을 구조조정의 일부로 여기지 않는 경향이 있다. 자동차 회사를 포함한 모든 비즈니스 리더들은 디지털 기술에 투자해 고객의 경험을 풍요롭게 하고 상품과 서비스 질을 높이며 내부 효율을 개선해야 한다." 

-상향식 분석을 해보니 뽀족한 수가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존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이 발견되지 않으면 상업적인 측면에서 볼 때 생존 가능하지 않다는 의미다. 정부의 지원금에만 기대 살아야 하는 기업이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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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자본론 

마스다 무네아키(지음), 이정환(옮김), 민음사 




처음 읽을 땐 꽤 시간이 걸렸다. 두 번째 읽을 때 금방 읽었다. 그러나 처음이나 두번째나 이 책을 읽기 잘했다는 생각은 똑같았다. 도리어 늘 고객가치라는 단어를 듣고 읽지만, 정작 실무에선 그걸 잊어버린다는 걸,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깨달았다. 


고객 가치를 우선하라. 세계 최초를 추구하는 일의 공허함 (12쪽) 


우리는 고객 중심이라는 이야기를 떠들고,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론을 적용하며 오랜 기간의 관찰과 설문,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프로젝트를 수행하고도 정작 놓치는 것이 고객 가치라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만큼 실현하기 어려운 게 고객 가치다. 어쩌면 고객 가치를 추구하는 많은 기업들은 고객 가치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 제안되는 고객 가치들끼리의 경쟁 구도일까.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고객 가치 실현이란, 정교한 방법론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이칸야마 츠타야서점'이 편안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건물이 좋아서가 아니라. 사실은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간이 중요하다. 건물과 건물의 거리, 그 곳에 비쳐드는 햇살과 그늘의 조화 ... ... 즉, 풍경이다. 빛이 풍경을 만들어낸다. 빛이 없으면 사람은 사물을 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식도 불가능하다. 사람에게 풍경을 느끼게 하는 것은 빛과 눈의 위치다. 거기에 가장 적합한 위치를 찾아내는 것이 건축가나 디자이너의 작업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다. (32쪽에서 33쪽) 


츠타야 서점으로 유명한 마스다 무네아키는 디자이너가 되라고 말한다. 디자이너는 기획자이며 제안자이자 실행가이다. 저자는 '기획'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그러기 위해선 먼저 자유로워야 된다고 이야기한다. 책은 짧지만, 메시지는 분명하고 호소력이 있다. 강력 추천하는 책이다. 




* 츠타야로 검색하면 많은 기사나 자료를 확인할 수 있다. 찾아 읽어보길 바란다. 

‘츠타야’ 성공신화 마스다 무네아키를 아시나요, 비즈한국, 2016년 5월 


 



지적자본론 - 8점
마스다 무네아키 지음, 이정환 옮김/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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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지음), 양윤옥(옮김), 현대문학 



소설 쓰는 게 영 쉽지 않다는 걸 깨달은 후부터 소설 쓰는 법에 관심을 기울인 듯 싶다. 실은 소설 쓰는 법 따윈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도 된다. 소설 쓰는 법을 배우고 소설가가 되는 경우보다, 그냥 소설가가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우연히 소설가가 되고 소설가로서의 명성을 쌓은 후, 몇몇 작가들은 소설 쓰는 법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나는 그 작법 이야기를 읽거나 듣는다. 결국 내가 소설 쓰는 법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소설 쓰기와는 무관하게, 소설 쓰기에 대한 동경 같은 게 아직 남아 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 그리고 소설 쓰는 법을 이야기할 정도로 수준 있는 소설가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내 동경은 계속 유지되고 있는 것일지도. 


젊은 하루키가 이제 노년의 하루키가 되었고, 나는 중년이 되었다. 한 때 하루키를 이해하지 못했던 오에 겐자부로는 최근에 하루키에 대해 찬사를 한다(오에의 아들 히카리도 중년이 되었다). 나는 그 찬사가 적절하다고 여긴다. 십수년 전 어느 무크지에 하루키와 관련된 칼럼이 기고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고 그 때 읽은 <해변의 카프카>가 마지막이었다. 과한 진지함이 나를 망쳐버렸다. 하루키를 좋아하지만, 그는 진지한 주제를 심도있게 끌고 나가는 소설가는 아니다라고 평가절하했다. 그런데 진지한 주제를 심도있게 끌고 나가야만 하냐고 내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 더 좋을 뻔 했는데 말이다. 그건 평가절하의 요소가 아니라 내가 바라보는 기준과 다른 방향에 서있었을 뿐이다.



이 책은 하루키가 자신의 소설 쓰기에 대해 적은 에세이집이다. 그가 소설을 어떤 계기로 썼고 어떻게 첫 번째 소설을 완성했는지, 그 이후 자신은 어떻게 소설을 써왔는지를 말한다. 심지어 '어떤 인물을 등장시킬까?'같은 챕터도 있다. 책은 가볍고 재미있다. 하루키 팬이라면 당연히 읽을 수 있는, 그리고 읽어야 하는 책이다. 


그러나 진지하게 소설을 어떤 식으로 쓰는가, 진짜 소설 작법에 대해 궁금한 독자들에게 이 책은 큰 도움은 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왜냐면 하루키는 너무 쉽게 이야기하니까(아니면 작법 따윈 필요없으니 그냥 바로 시작하면 돼 라고 생각할지도). 하루키를 보고 있으면, 너도나도 소설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야구장에서 불현듯, '그래,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소설을 쓰기 시작해, 그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신인상을 받았으니까. 


그런 기분, 나도 느끼고 싶지만, 나에겐 기회가 없었고 나와는 맞지도 않다. 나는 아예 어렸을 때부터 작가를 꿈꾸었으니. 하지만 지금은 블로그에 올릴 글조차 쓸 시간이 없다. 그냥 이렇게 늙어가는 게다. 


올해 하루키를 한 번 읽어볼까, 글쎄다. 아마 읽고 실망할 게 뻔하다. 차라리 젊었을 때의 하루키가 낫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다시 읽는 것. 그게 나을 지도. 확실히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그 때까지 나온 일본 소설들과 달랐고, 그 소설이 한국의 젊은이들에 끼친 영향은 거대했다. 그 때만 해도 번역소설에 대한 연구나 분석 따윈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심지어 왜 번역소설만 읽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으니. 하지만 그 정도로 쓰는 한국 소설가는 몇 명 되지도 않았다. 지금도 별 반 다르지 않은 듯 느껴지지만(요즘엔 거의 소설을 읽지 않으니, 이건 내 추측일 뿐이다) 


이 에세이집 초반에 하루키는 어떻게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썼는지 이야기한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비난을 받았는지도. 아래는 하루키의 첫 장편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밝히는 부분이다. 그 일부만 메모해두었다. 무척 흥미로운 과정이다.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영어로 된 소설을 꾸준히 읽어, 어느 정도 될 것이라 여겨지지만, 고등학교 영어 성적은 그와 비례하지 않았다고 한다. 소설가가 된 후, 미국 대학에서 강의까지 할 정도였으니. 너무 늦은 나이이긴 하지만, 나도 영어 소설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수준까진 가보자. 하루키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쓸 때 일본어 초고 --> 첫부분을 영어로 번역 --> 다시 일본어로 옮기는 과정을 거쳤다. 이러면서 자신만의 문장 리듬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한다. 한 번 시도해볼 만한 방법인 듯하여, 아래 메모해둔다. 


하지만 대충 '아마 이럴 것이다'라는 어림짐작으로 소설 비슷한 것을 몇 달 동안 써 본 것인데, 다 쓴 것을 읽어봤더니 내가 생각하기에도 별로 재미가 없어요. '에이, 이래서는 아무 짝에도 못 쓰겠다'하고 실망했습니다. 뭐랄까, 일단 소설의 형식은 갖췄는데, 읽어도 재미가 없고, 다 읽은 뒤에도 마음에 호소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48쪽) 


만년필과 원고지가 눈 앞에 있으면 아무래도 자세가 '문학적'이 되어버립니다. 그 대신 붙박이장에 넣어두었던 울리베티 영자 타자기를 꺼냈습니다. 그걸로 소설의 첫 부분을 시험삼아 영어로 써보기로 했습니다. 아무튼 뭐든 좋으니 '평범하지 않은 것'을 해보자, 하고. 

물론 내 영작 능력이라야 뭐, 뻔하지요. 한정된 수의 단어를 구사해 한정된 수의 구문으로 글을 쓸 수 밖에 없습니다. 문장은 당연히 짧아집니다. 머릿 속에 아무리 복잡한 생각이 잔뜩 들어있어도 그걸 그대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어요. 내용은 가능한 한 심플한 단어로 바꾸고 의도를 알기 쉽게 패러프레이즈하고, 묘사에서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깎아내고 전체를 콤팩트한 형태로 만들어 한정된 용기에 넣는 단계를 거칠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몹시 조잡한 문장이 되어버립니다. 하지만 그렇게 고생해가며 문장을 써 내려가는 동안에 점점 내 나름의 문장 리듬 같은 것이 생겨났습니다. (49쪽) 


아무튼 그렇게 외국어로 글을 쓰는 효과의 재미를 '발견'하고 나름대로의 문장의 리듬을 몸에 익히자 나는 영자 타자기를 붙박이장에 넣어버리고 다시 원고지와 만년필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책상 앞에 앉아 영어로 쓴 한 장 분량의 문장을 일본어로 '번역'했습니다. 번역이라고 해도 딱딱한 직역이 아니라 자유로운 '이식'에 가깝습니다. 그러자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새로운 일본어 문체가 나타났습니다. 이건 나만의 독자적인 문체이기도 합니다. 내가 내 손으로 발견한 문체입니다. (51쪽) 


* 내 블로그에서 하루키로 검색하면 몇 개의 포스팅을 확인할 수 있다. 찾아보니, <해변의 카프카> 이후 하루키도 많은 소설을 낸 것도 아니다. 쉽게 쓰는 스타일이라 여겼는데, 그렇지도 않은 듯 싶다. 이에 비한다면 아멜리 노통브는!! 노통브의 소설 한 권 더 읽어봐야 되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 8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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