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예술가 100

술병이 있는 자화상, 뭉크

턱 밑까지 더위가 올라와 얼굴을 천천히 물들인다. 피곤한 피부 위로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저주의 언어들, 혹은 절망, 아니면 실패자의 체념 같은 것. 발터 벤야민이었던가. 우리가 희망을 얻는 것은 과거의 불행했던 사람들로부터라고. , 저 작품을 보고 있으면, 저 작품을 그린 예술가는 참 불행하게 살다갔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에드바르트 뭉크(노르웨이, 1863-1944). 하지만 의외로 평안한 노년을 보냈다. 몇 번의 사랑이 실패로 돌아가긴 했으나, 낙담하지 않고 평생 혼자 지내며 작품활동을 하며 보냈다. 그리고 후기에 그렸던 작품들 대부분을 기증하여 뭉크 미술관이 만들어졌다. 우리에게 알려진 널리 그의 작품들을 보자면, 참 불안하고 슬프고 절망적이긴 하지만 뭉크는 다행히도 그 젊은 날의 불안, 격정,..

내 부모My Parents,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데이비드 호크니.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이 작가는 현대적 방식으로 원근법을 재해석하였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언뜻 보기엔 원근법적이지만 자세히 보면 교묘하게 원근법을 비틀어, 반-원근법적인 서사를 구성한다. 일종의 해체. 그러나 이건 분석하기 좋아하는 이들의 화법일 뿐(그래서 데이비드 호크니는 현대 비평의 측면에서도 성공한 작가이다). 호크니의 실제 작품은 이 비평적 언어를 뛰어 넘어 아득한 감동을 선사한다. 그것은 그의 작품들이 이 세계의 불완전함 위에 서 있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파스칼적 구도랄까. 우리는 세계와 싸우며, 해석하고, 저 외부 세계 속에 자리 잡으려고 하나, 세계는 우리가 자리 잡게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리 잡지 못한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정지한 시공간과 ..

헤르만 헤세, 그리고 담배

1877년에 태어나 1962년에 작고한 소설가. 세계적인 대중적인 인기에 비해 현대 문학사에서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는 소설가이기도 하다. 그의 스타일은 19세기 낭만주의적이며 전혀 모더니즘적이지 않다. 이 점은 나로 하여금 마치 스트라빈스키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멋지게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영화가 아니면 보기 어려운 시대, 이 사진이 주는 묘한 매력 때문에 여기 올렸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지만(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담배를 피우는 예술가나 배우의 사진만큼 매력적인 것도 없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많은 이들이 따라 담배를 피운다. 그 영향으로 인해 대중 미디어에서 담배 피우는 사진이 사라지긴 했지만. 수십년 전 라디오 심야 방송을 듣다보니, 헤르만 헤세의 이나 같은 소설 광고가 참..

살아 있는 누군가 마음 속에서의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데미안 허스트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살아있는 누군가 마음 속에서의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이라는 뭔가 심오한 제목을 가지고 있지만, 글쎄다. 얼마나 심오한 철학을 담고 있을 지는 현대미술 전문가들의 손길에 기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들은 상당히 어려운 단어들로 포장해서 설명할 것이다. 가령 아래와 같이. 1980년대 이후 현대미술은 신체에 대한 폭력성과 자기 분열을 보이는 일종의 '신경증적 리얼리즘neurotic realism'을 나타냈다고 말한다. 허스트의 개념미술은 그러한 증상을 표현한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 전영백, , 106쪽 '신체에 대한 폭력성'이 다소 낯설지만, 내가 이해하는 바대로 풀어보자면..

에릭 사티 Erik Satie

에릭 사티(Erik Satie)의 '짐노페디Gymnopédies'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지만, 정작 에릭 사티에 대해선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아가드 멜리낭(Agathe Melinand, 툴루즈국립극장 공동극장장)은 2016년 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에릭 사티(1866~1925)에 대해 묘사하려니 복잡한 심정이 된다. 그의 성품에 대해 말하려니 조심스럽다. 그는 반항적이었고 농담을 즐겼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등을 돌렸고, 거처인 아르쾨유의 오두막에 처박혀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그를 되살리는 것은 아슬아슬한 곡예와 같다. 벨벳 정장차림의 젊은 혁명가와, 공증인 차림을 한 사티 중 누구 이야기를 해야 할까? 아니면 언제나 걸어서 교외 생제르맹의 노아유 마을을 가끔 방문하던 사티? 아니면 아르..

메리 카사트 Mary Cassatt

Mary Cassatt (American, 1844 - 1926). Young Mother Sewing, 1900. Oil on canvas. https://www.metmuseum.org/ 마음이 따뜻해진다. 봄날의 바느질. 아이의 표정에서는 날 왜 보느냐는 듯하면서도 맞은 편에 대한 궁금함이 묻어난다. 창 밖은 푸르고 집 안은 고요하다. 엄마와 아이 뒤에 있는 꽃화병은 흥미로운 오브제다. 저 화병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상당해 보인다. 잠시 저 곳에 나도 앉아있었으면! 메리 카사트Mary Cassat. 미국 출신의 인상주의 예술가. 그리고 대단한 명성을 누렸던 여성 화가(역사상 거의 최초에 가까운). 평생 독신이었으며 에드가 드가가 죽을 때까지 교류했던 이였다. 작업실도 5분 정도 거리였고 둘..

한영수 (1933 - 1999)

밀린 신문을 읽다가 '한영수'를 발견한다. 사진가다. 자세히 알진 못하나, 광고 사진가로 유명했다고 한다. 가끔 광고 사진가라고 하면, 상업 사진가로 이해한다. 전형적인 방식으로 시선을 속이며 자극하며 사람을 끌어당긴다고. 하지만 한영수 앞에선 이러한 생각은 편견이 되어 무너진다. 실은 그의 광고 사진을 검색해도 잘 나오지 않는다. 도리어 광고 사진보다는 젊은 시절 그가 찍었던 전후 서울의 모습만 빼곡하게 검색된다. 그래서 한영수는 우리에게 지나간, 경험하지 못한, 아련하게, 소문으로만 떠돌던 그 때 그 장소를 비밀스럽게 드러낸다.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알지 못한다. 흔적도 없었다. 그 땐 배고프고 힘들고 아팠다는 소리만 들었다. 그러나, 한영수 사진 속의 서울은 그렇지 않다. 어쩌면 그 때 그랬던 곳이..

어빙 펜Irving Penn의 '데이비드 스미스David Smith'

어빙 펜(Irving Penn)의 사진을 자주 보았지만(그만큼 유명한 탓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전형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전형적이라고 여기게 된 것은 어빙 펜 이후의 많은 패션 사진 작가나 사진기자들이 어빙 펜의의 사진을 따라하였기 때문임을. 최봉림의 글을 읽으면서 어빙 펜과 함께, 어빙 펜이 찍은 데이비드 스미스(David Smith)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새롭게 알게 되었다기 보다는 아마 관심에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다. 데이비드 스미스에 대해서. 회화에 잭슨 폴록이 있다면 조각에는 데이비드 스미스가 있다고 해야 하나. Portrait of Smith by an unknown photographer 데이비드 스미스(David Smith)는 피카소, 홀리오 곤잘레스(Julio Gonzale..

The Death of Bara, 1794. - 자끄 루이 다비드

The Death of Young Bara, Joseph Bara or The Death of Bara is an incomplete 1794 painting by the French artist Jacques-Louis David, now in the musee Calvet.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The_Death_of_Young_Bara 1793년 12월 7일 대서양 연안의 Vendee에서 왕당파 당원들에 의해 살해당한 13살의 소년 'Bara'. 고전주의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서정적이며 슬프고 애처로운 느낌을 자아낸다. 어쩌면 자끄 루이 다비드만이 그릴 수 있는 작품일 지도. 신고전주의는 의도된 고전주의다. 자끄 루이 다비드는 '혁명 정신'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

올림픽과 예술 - JR (프랑스 예술가)

리오데자네이루의 어느 아파트 위에 설치된 높이뛰기 선수의 모습. 전형적인 프로퍼간다(propaganda)이지만, 보는 이의 시선을 잡아끄는 건 작품 자체가 가지는 완성도 때문일 게다. 프랑스 예술가인 JR은 이미 이 분야에선 세계적인 명성을 지녔다. 올해 봄, 그의 장기인 눈속임으로 파리 루브르 박물관을 이렇게 만들었다. 루브르 광장 앞 피라미드에 아래와 같이 작업한 것이다. 그의 의도는 분명했다. 1989년 미국인 건축가 I.M.페이에 의해 만들어진 투명 피라미드는 17세기 지금의 모습으로 재건축된 루브르 궁와 묘한 대비를 이루면서 근대와 대비되는 현대의 정신을 보여준다고 할까. JR는 이 투명 피라미드를 살짝 지우면서, 다시 이 유리와 철로 이루어진 피라미드에 담긴 어떤 태도를 되새기길 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