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 1048

텅빈 주말의 사소한 희망

설 연휴가 지난 어느 토요일, 종일 집에 틀어박혀 두 권의 책을 다시 펼쳤다(리뷰를 쓰지 못했기에). 젤딘의 과 바라트 아난드의 . 그리고 한 권의 책, 게오르그 짐멜의 를, 억지로 다 읽었다,고 여기기로 했다. 과 를 정리해 블로그에 올렸다. 오랜만에 트래백(trackback)을 해볼까 했더니, 네이버 블로그엔 그런 기능이 아예 없었다. 아난드는 콘텐츠의 미래는 '연결관계connection'에 있다고 했는데... 아이와 함께 노량진수산시장에 가서 전복과 산낙지를 샀다. 며칠 전부터 전복 스테이크를 먹고 싶다고 해서 주말에 간 것인데, 살아있는 낙지를 보더니, 그것도 먹고 싶다고. 결국 전복과 산낙지를 사와 집에서 산낙지부터 회로 준비했다. 하지만 살아있는 걸 자르려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는 거의 ..

렘브란트와 짐멜

짐멜의 를 열심히 읽고 있다. 2018년 독서 결산 포스팅도 못하고, 작년 연말에 읽었던 몇 권의 책 서평도 못 쓰고 있다. 대신 짐멜을 열심히 읽고 있다. 책은 딱딱하고 난삽하지만, 마치 뵐플린이 양식의 측면에서 르네상스와 바로크를 조망하듯, 짐멜은 렘브란트의 작품 세계를 르네상스, 혹은 그 이전의 예술가들과 보편성/개별성의 관점에서 비교하며 근대로 어떻게 나아가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렘브란트의 은 개별성에 집중하면서 각 인물마다 개성적인 포즈와 역동성을 부여하여 르네상스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걸작을 만들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내 독서는 늘 파편화되어 있는 탓에, 절반 정도 읽었지만, 딱히 기억에 남는 구절도 없이 어렴풋하게 펼쳐질 뿐이다. 여유라도 되면 '짐멜 읽기' 모임같은 거라도 하면 좋을련만..

이사와 근황

작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이런저런 이유가 겹쳤다. 결국 감행했다. 그리고 책을 버렸다. 백 권 넘는 책들을 버렸다. 어떤 책은 지금 구할 수 없는 것이고 어떤 책은 지금 읽어도 흥미진진한 것이다. 책마다 사연이 있고 내 손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주인집 할머니의, 폐기물 사업을 하는 지인이 가지고 가기로 하였으나, 몇 주 동안 그대로 있길래 동네 헌책방 아저씨를 불렀다. 아침 일찍 아저씨는 작은 자동차를 끌고 와서 책을 살펴보았다. 권당 만원씩으로만 따져도 백만원치였지만, 아저씨는 나에게 삼만원을 건네주었다. 그러면서 요즘에도 이렇게 책을 읽는 이가 있구나 하는 혼잣말을 했다. 그 옆에 서서 삼만원을 들고 서 있던 나... 버릴 예정이었으니, 삼만원도 큰 돈이다라고 생각했다. 요즘은 일이 너무 많아, 책..

어항, 금붕어, 달팽이

공항 이마트에서 공짜로 받은 금붕어 3마리. 한 달 정도가 지난 지금, 매우 건강해보인다. 그리고 나는 주말마다 어항 청소를 한다. 특별한 건 없다. 물 갈아주고 어항에 끼인 녹조류를 깨끗하게 닦아준다. 그런데 오늘 달팽이인지, 고동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녀석들 몇 마리를 발견했다. 그래서 부레옥잠들이 힘을 잃고 있나. 다음 청소 때 잡아 없애야 겠다. 관련 까페를 검색해보니,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좀 더 큰 어항으로 바꾸면 바닥에 자갈같은 것들을 깔아줘야 겠다. 금붕어 노는 모습, 정말 좋다. (2007년 11월 3일) ** (2018년 10월 10일 업데이트)블로그에 방문하는 이들의 검색 엔진 방문 키워드를 보면 흥미롭다. 10여년 전, 어항으로 사용하던 저 투명 플라스틱 용기를 얼마 지나지..

일요일 오후 사무실

주말 난지캠핑장에 갔다. 동네 지인들과 함께 간 곳은 잠을 자러 온 곳이라기 보다는 술을 마시러 온 공간 비슷했다. 사진 속으로 보이는 공간들은 모두 잠을 잘 수 있는 곳이긴 하지만,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바닥이 흙먼지로 쌓여 있었다. 몇 번을 닦아냈지만, 계속 흙이 묻어나와 불편했고 결국 아침까지 술을 마시다가 집에 올 수 밖에 없었다. 밤바람이 다소 시원해진 탓에 즐거운 한 때를 보내긴 했지만, 토요일은 종일 잠만 자는 불상사가.... 토요일 잠에서 깨어 창 밖을 보니, 어둠이 내려 앉은 도시의 풍경이 들어왔다. 매번 보는 풍경이라 익숙하지만, 이 풍경도 보지 못하면 꽤 보고 싶을 지도 모르겠다. 하긴 매일 바다를 보던 시절도 있었는데. 아직도 나는 바다 앞에 가서 살고 싶은 바람을 버리지 못했다..

자정의 퇴근길

자정이 지난 지하철 9호선. 선정릉역에서 김포공항역으로 달려가는 급행. 신논현역. 즐거운 유흥을 끝낸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수다를 나누며 등장. 자신의 취하고 지쳐보이는 얼굴 사이로 피어나는 웃음의 어색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하철 안으로 들어서는 모습이 별안간 낯설게 여겨졌다. 실은 요즘 내 모습에 스스로 상당히 낯설어 하곤 있지만, 어쩌면 나이 들면 갑작스레 이 세상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집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나오자, 거리엔 사람들이 없었고 택시마저 보이지 않고, 대신 밤을 지키는 술집들이 나를 향해 손짓을 했다. 다행이다. 밤을 지키는 술집들이 있다는 건. 어쩌면 아직 살만한 곳임을 알리는 징표 같은 게 아닐까. 수백년 전 밤길을 가던 나그네의 눈에 비친 주막의 불빛처럼, 그렇게. 찰칵..

슬퍼하는 아테나Mourning Athena와 나이가 든다는 것

나이가 들수록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 하나 그 모습을 드러낸다. 비밀스러운 속살이라기 보다는 굳이 알 필요 없는 구차함에 가깝다. 인과율의 노예라서 '왜 이렇게 살 수 밖에 없는가'에 대한 이유나 배경으로 끼워 맞출 수 있다는 것 이외에 쓸모없는 것들이긴 하지만, 그런 것들이 쌓이면 이 세상이나 우리 삶은 참 슬픈 것이라는 생각에 휩싸인다. 아마 하우저가 그리스 고전주의 정점을 'The Contemplating Athena'로 여기게 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게다. 부연하자면, 알기 때문에 피하게 되고 알기 때문에 멀리하게 되며 알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게 된다. 알기 때문에, 결국 자신감을 잃어버리게 된다. 회한과 눈물의 밤을 보내고 젊음을 부러워하고 되돌릴 수 없는 추억에 자신의 마음을 맡기게 된다..

비 내리는 날의 녹턴

이렇게 비 올 땐 쇼팽이구나. 쇼팽의 녹턴만 들으면 왜 고등학교 때 가끔 주말마다 가던 창원 도립 도서관 생각이 나는지 몰라. 노오란 색인표를 뒤져가며 책을 찾기도 하고 빌리기도 하고 혼자 온 나를 사이에 두고 앞서 책을 빌리던 아저씨는 무슨 책을 빌렸나 뒤에 빌린 그 소녀는 무슨 책을 빌렸나 궁금해 했지. 아무 말 없이 서서 물끄러미 창 밖을 보며 아주 잠시 내 미래를 생각했어. 그 옆을 지키던 네모난 색인표를 넣어두던 서랍장과 책들 사이로 지나는 서늘하고 무거운 공기들 사이로 계단이 이어지고 해가 살짝 기울어, 도서관 앞 나무들의 그림자가 길어지기 시작할 때쯤 나들이 나선 여학생들의 깔깔거리던 소리들과 ... 지금도 그 자리에, 그 도립도서관은 그대로 있을려나. 내가 타고 다니던 그 시내버스도 그대로..

비 오는 날

비가 내렸다. 우산을 챙겼다. 우산 밖으로 나온 가방, 신발, 입은 옷들의 끝자락들, 그리고 내 마음과 이름 모를 이들로 가득한 거리는 비에 젖었다. 비 내리는 풍경이 좋았다. 내 일상은 좋지 않지만, 비 속에 갇힌 거리의 시간은 음미할 만 했다. 아주 가끔 있는 일이다. 그런데 요즘은 글도 그렇고 마음도 그렇고 .... 술이나 마셔야 하나. (그러기엔 너무 일이 많구나) 비 오는 그림을 좀 찾아봤는데, 거의 없다. 비 내리는 풍경이 회화의 소재로 나온 것도 이제 고작 1세기 남짓 지났으니.. Gustave Caillebotte (1848-1894)Paris Street; Rainy Day, 1877

현충일 국립묘지 방문기

현충일 국립묘지엘 간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하철에서부터 사람들이 빼곡했다. 동작역에서 나와 보니, 경찰관들이 임시 횡단보도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 유가족들도 있었고 군인들도, 경찰관들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현충원 여기저기를 두리번 거리면서, 위패봉안관에 갔다. 평소에는 개방하지 않는 곳이지만, 현충일 유가족들을 위해 개방하고 있었다. 위패봉안관,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나,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유골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 위패만 모아둔 곳이다. 위패봉안관 옆에선 유가족 유전자 시료 채취를 하고 있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유해를 발굴하게 되면 그 뼛조각과 유가족의 유전자와 비교해 유족을 찾아주는 것이다. 유해발굴감식단의 활동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는데, 위패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