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 1048

2020.05.21. 드가와 함께 당구장에서

Billiard Room at Menil-Hubert, Edgar Degas, 1892, 오르세미술관 사는 게 쉽지 않다. 하루 24시간 중 가장 좋은 시간은 잠을 잘 때. 나머지는 조금 힘들거나 많이 힘들거나, 아니면 힘들었던 것들에 대한 걱정, 두려움, 후회같은 것으로 얼룩져 있다. 아주 짧게 그렇지 않은 순간이 있기도 하는데, 그건 사랑에 빠졌거나 사랑을 꿈꾸거나, 사랑에 빠진 듯한 봄바람, 봄햇살, 봄날을 수놓는 나무 잎사귀 아래 있을 때다. 그러나 이런 순간은 극히 드물어서 기억되는 법이 없다, 없었다. 원근법적 세계에 대한 그리움. 인상주의자들에게 원근법은 고민거리였다. 르네상스 시기부터 이어져온 어떤 원근법을 벗어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원근법을 무시할 순 없었다. 그건 우리가 보는 방식..

중앙의 정책, 지방의 대책

1.그래서 물어봤다. 중국에선 그런 권위주의에 저항하느냐고. 그는 '상유정책(上有政策) 하유대책(下有對策)'을 아느냐고 되물었다. 정부엔 정책이 있지만, 민간은 빠져나갈 대책을 세운다는 말이란다. 우한 봉쇄 전에 시민 절반이 타지로 빠져나간 것처럼 저항보다 살 궁리를 먼저 하는 게 '중국인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코로나19는 우한을 넘어 중국 전역과 전 세계에 널리 전파되었다. - , 양선희 - 선데이칼럼, 중앙선데이, 2020년 2월29일 2.중앙일보와 중앙선데이를 받아보다가 몇 달 전 끊었다. 지난 촛불 정국 때부터 받아보기 시작했다가 최근 끊은 것이다. JTBC의 활약이라든가 읽을거리가 풍부한 중앙선데이로 인해 중앙일보까지 받아본 것이다. 아파트까지 찾아온 신문영업 아저씨의 영업술 - 1년..

비오는 토요일의 근황, 단상, 잡담

2019년 봄부터 2020년 2월까지 일 외에 다른 것에 신경쓸 틈이 없었다. 10억원이 넘어가는 프로젝트의 PM을 맡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Agile 방법론으로 다수의 소규모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시켜야하는. 사정이 이렇다 보니, 책 읽기나 글 쓰기가 예전만 못했다. 다행(?)히 다시 연장된 프로젝트에 괜찮은 멤버들도 다시 셋팅할 수 있었기 망정이지, 계속 그 생활이 이어질 뻔했다. 그 프로젝트가 끝나고 다시 IT 영업과 컨설팅, 제안서 작성과 발표의 업무로 돌아왔지만, 역시 이 업무들도 만만치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이도 들고 대단한 미래가 보장되는 일상을 누리는 것도 아닌 탓에, 이런저런 준비도 같이 병행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코로나 시대, 외출이 부자연스러운 지금, 간만에 내리는 비소리를..

Campo Viejo Reserva Rioja 2013

Campo Viejo ReservaRioja 2013 스페인 와인이다. Tempranillo, Graciano, Mazuelo가 블랜딩된 리제르바 와인이다. 2020년이니, 벌써 6년 이상된 와인이다. 심지어 Wine Spectator에서 90점을 받은 와인이다. 하지만 엉망이었다. 미디엄 바디에 뭔가 부족한 느낌이 이어졌다. 거친 느낌이 계속 이어졌고 풍부하지도 않았다.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평판이 좋은 와인임에 분명하나, 그런 찬사가 이해하기 어려웠다. Vivino의 평점도 3.8이었으니, 그냥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와인 평론가나 와인 잡지의 평가도 믿을 것이 못 되나 보다. 위는 Wine.com에 나온 평점이다. JS는 James Suckling, TA는 Tim Atkin, WS는..

힉스 입자와 가짜 진공

우연히 가짜 진공(false Vacuum)이라는 개념과 함께 진공 붕괴(Vacuum Decay)를 듣게 되었다. 물체는 높은 에너지에서 낮은 에너지로 갈 때 보다 안정적인 상태로 가게 된다. 우리가 진공(Vacuum)이라고 할 때, 그건 어쩌면 우주에서 가장 낮은 에너지 상태, 가장 안정적인 상태를 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가짜라면? 그래서 더 낮은 에너지 상태로 갈 수 있다면? 이 때 진공 붕괴가 생기게 되고 이 우주는 그냥 소멸하게 된다는 것이 진공 붕괴다. 그리고 이것에 깊이 관여하는 입자가 힉스 입자(Higgs Particle)이다. 아래는 이와 관련된 동영상들을 모아둔 것이다. 시간날 때 천천히 보기 위해서.

Jazz, Jazzy, and Gonzalo Rubalcaba

토요일이 끝나고 일요일이 시작된다. 어수선한 주말이 흐르고 가족이 잠든 새벽, 음악을 듣는다. 그러나 예전처럼 쉬이 음악 속에 빨려들지 못하고 겉돌기만 한다. 나이가 들면 세상 사는 게 조금은 수월할 것이라 여겼는데, 예상과 달리 그렇지 않더라. 예전엔 화를 내고 분노하게 되는 상황임에도, 지금은 그냥 무덤덤하게 넘기고 있는 나를 보면서 쓸쓸해지곤 한다. 나이가 드는 건 좋지 않다. 이젠 마음이 뛰지도 않는다. Jazz를 들으면 Jazzy해질 것같지만, 그렇지 않은 것처럼. 곤잘로 루발카바는 한국에 여러 번 내한한 쿠바 하바나 출신의 피아니스트다. 그가 찰리 헤이든과 음반을 냈는데, 한국에선 이제 구하지 못하고 해외 주문을 해야 한다. 예전에는 음반을 구하기 위해 해외 나가는 사람에게 부탁하기도 했는데,..

LP바의 방랑

(신림동 우드스탁. 어두워서 사진이 엉망이다.) "내 나이 열아홉 살, 그때 내가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은 타자기와 뭉크화집과 카세트라디오에 연결해서 레코드를 들을 수 있게 하는 턴테이블이었다. 단지, 그것들만이 열아홉 살 때 내가 이 세상으로부터 얻고자 하는 전부의 것이었다." - 장정일, 턴테이블에 레코드판. 이것도 꿈이라면 꿈이었다. 하지만 서재에 있는 턴테이블과 레코드에 먼지가 쌓이기 일쑤다. 들을 시간도 없고 같이 들어줄 사람도 없다. 무관심해졌다. 음악을 듣는다고 삶이 윤택해지면 좋겠지만, 딱히 그렇게 되진 않더라. 하지만 그래도 마음 편하게 음악을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음악을 들으며 술을 마셨다. 아는 음악이 나왔고 모르는 음악이 흘러갔다. 그 선율을 따라 알코올도 내 혀와 식도,..

우리는 이제 우울하지 않을 것이다.

시인이자 의사인 노태맹의 글을 읽으며 내 단상을 적는다. 지금의 코로나 사태는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게 하며 깨닫게 한다. 실은 지금 우리 눈 앞에서 펼쳐지며 시시각각 변해가는 풍경은 우리들이, 이 사회가, 저 (빌어먹을!) 정치인들이, 그리고 국가가 만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노력하고 있다. 지난 정부 때는 참 바보 같았던 공무원들이 움직이고 그 중심에는 바뀐 대통령이, 그 뒤에는 촛불을 들었던 우리들이 있다. 한 때 국가가 어디 갔냐며 울었지만, 지금은 국가가 알아서 움직이며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압도적으로. 그럼에도 입만 열면 비난을 하고 트집을 잡으며 시비거리만을 찾는 야당 정치인들과 그 무리들, 자신들의 존재를 어젠 정권에 빌붙어 찬사를, 지금은 어떻게 든 흠..

종교, 신천지, 카불, 아프가니스탄

1972년 카불, 아프가니스탄 너무 유명한 사진이라서 굳이 설명을 덧붙여야 할까. 1972년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 시내를 걷는 젊은 여성들의 사진이다. 그리고 40여년 후 이들의 자녀들, 혹은 그 손녀들은 아래와 같이 입고 길을 걷는다. 2013년 아프가니스탄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왜 저렇게 변해버린 것일까. 이유를 묻는다고 해서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 오랜 내전, 외세 -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등 - 의 갈등과 간섭, 그리고 지원으로 카불을 점령한 탈레반은 이슬람 근본주의에 기반한 나라를 세운다. 알카에다도 탈레반이 지배하던 아프가니스탄에 자리를 잡는다. 불과 수십 년밖에 지나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지금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국가들의 공격으로 탈레반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