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 1092

Pervigilium Veneris

Pervigilium Veneris이라는 시이다. 오늘 읽은 그리스/로마 고전문학이라는 책에서는 99행이라고 하는데, 인터넷으로 찾은 시에는 94행이 전부다. 그리고 라틴어을 하지 못하는 관계로 영어 번역까지 있는 것을 찾아 겨우 옮겨본다. 기원 후 4세기이니, 로마의 번영과 영광은 끝나고 인간의 지성은 암흑을 건너며 신의 빛으로만 지탱해나가는 중세가 막 시작하는 무렵이다. (* 흔히 중세 시대를 암흑 시대라고 하는데, 이는 기원 후 3-4세기부터 13-4세기를 다 포함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기원 후 3-4세기에서 8-9세기 서부 유럽에만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실제 이 때의 삶이란 수풀이 우거진 숲 속에는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석조 건축물과 포장된 길이 있었지만, 그것은 고대의 유물이었고 실제 사람은 ..

토요일 오후, 모험을 떠나다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자화상 그 때 푼크툼은 마치 영상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 바깥으로 욕망을 내던져 버리는 것처럼, 일종의 미묘한 장외의 것이 된다. 나체의 '나머지 부분'을 향해서뿐 아니라, 하나의 실천의 환각을 향해서 그것은 욕망을 내던진다. 팔을 곧게 뻗고 빛나는 미소를 짓고 있는 이 청년은 - 그의 아름다움은 결코 현학적이 아니고, 화면의 한쪽으로 몰려서 사진으로부터 반쯤 튀어나와 있지만 - 일종의 경쾌한 성애를 구현한다. 이 사진은 나로 하여금 포르노 사진의 욕망인 무거운 욕망과 성애사진의 욕망인 가벼운 욕망을 구별하게 한다. 결국 아마도 이것은 '행운'의 문제일 것이다. 사진가는 이 청년(메이플소프 자신이라고 생각되는데)의 팔을 조리개 구멍의 알맞은 각도와 자연스러운 밀도 속에 고정시켰다. 조리..

Creep

시간은 영혼들의 슬픔을 먹고 자란다. 일 년이 지나고 또 일 년이 지나고, 그렇게 계절이 수십 번 바뀌는 동안 영혼들의 슬픔은 줄어들지 않고 시간만 앞을 향해 간다. 현실은 과거가 되고 기억이 되고 추억이 되고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얼마 전에 읽었던 어느 글 속에서 종이에다 적은 연애 편지가 오래 간다며 사랑을 이야기할 땐 연애 편지를 쓰라고 했다. email은 어딘가에 저장시켜놓지 않으면 언제 어떻게 될 지 모르고 디스켓도 영원하지 못하고 다른 어떤 매체보다 종이가 낫다고. 사랑. 참 좋은 단어다. 하지만 지금 사랑하고 있는 자에겐 축복받은 단어이고 지금 사랑을 꿈꾸는 자에겐 희망의 단어이지만, 지금 사랑을 잃어버린 자에겐 죽음과 절망, 두려움의 단어이다. 하지만 시간은 지나가는 것. 일이 있어 홍대..

일어나 차이코프스키를 들으며

아침에 일어나 '비창'을 들었다. 차이코프스키. 레너드번스타인이 지휘하고 빈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LP다. 가을이 들어서는 무렵 근처 중고 가게에서 구입했다. 오래된 원판이라 보이지 않는 먼지들로 레코드의 골이 빽빽하게 채워진 모양이다. 아마 몇 번 듣다보면 그 먼지들이 사라지겠거니 생각해버리곤 그냥 들어버린다. 그러고 보니 집에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이 세 개나 있다. 하나는 번스타인, 하나는 카라얀, 하나는 마젤. 내가 듣기에는 마지막이 제일 좋다. 개인적인 느낌이긴 하지만. 사진은 레너드 번스타인의 '비창' 이미지다. 작은 레코드 판은 번스타인이 직접 곡을 설명한 판이다. '비창'의 각 부분들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 판은 거의 듣지 않았는지 매우 깨끗하다. 웹을 검색해 링크를 달아놓았다..

꿈 속의 사막

하늘이 낮게 내려온 날, 더 낮게 헬리콥터가 대방로 위를 지나가고 있었다. 어제 잠을 잘못 잔 탓일까. 목이 약간 아프다. 머리도 아프다. 거리에서 잠시 멈칫하다보니 손가락 끄트머리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시간은 소리없이 나무들의 옷을 벗겼고 내 영혼의 옷도 벗기려고 한다. 황급히 내 꿈 속으로 도망쳤지만... 몇 년간의 직장 생활 속에서, 아주 오래 전 내가 손수 지었던 꿈 속의 도시는 사라지고 꿈 속의 사랑도 사라지고 ... 황량한 사막만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이제 어디로 가야할까. 시간은 계속 날 쫓아오는데. 제프 버클리의 '라일락 와인'을 듣는다. 이 친구도 꽤나 세상 험하게 살다가 간 모양이다. 이렇게 처량한 노래를 부르다니.

오노 요코의 이미지

오노 요코의 이미지. '오늘 뭘 할까' 생각보다 이 생활이 낯설다. 그동안 너무 치열하게 살았나. 이런 여유가 낯설고 부담스러우니 말이다. 아니면 너무 호사스럽게 산 것일까.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 운동장 한 바퀴 뛰고 난 다음 종일 책 읽고 음악 듣고 외국어 공부 좀 하다가 잠을 청한다. 특별한 일은 없고 회사에서 하던 일로 관련된 전화가 오는 것 이외에 날 불편하게 하는 것도 없다. 12월이 되면 조금 재미있어지려나. 나이가 들면 시골로 내려가 텃밭이나 일구며 살 생각을 했는데, 혼자선 절대 못 살 것같다. 심심해서.

천국보다 낯선

새벽 한 시 반이다. 내일부터 사무실에 나가지 않는다. 그런데 이 감정이란 미묘한 것이다. 자유의 몸이라는 기쁨과 경제적 공포라는 두려움이 동시에 날 스치고 지나간다. 또 이러다가 여러 개를 놓치고는 구속과 부자유의 제자리로 돌아오지나 않을까 조마조마하기도 하다. 하지만 내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 따지고 보면, 우연과 불확실이라는 테마는 우리를 고통과 절망 속에 밀어넣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의 희망을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어처구니없는 믿음을 가지게 만들기도 한다. 짐 자무쉬의 '천국보다 낯선'을 다시 찾아 봐야겠다. 오늘 아침 문득 내 방에 걸려 있는 이 영화의 포스터를 보면서 잠시 과거를 떠올렸다.

요셉 보이스

요즘 몸이 무척 좋지 않다. 아침에 일어나면 찌뿌둥하고 기분은 꽝이다. 종일 머리는 띵~하고 꼭 잠이 덜 깬 사람같다. 아무래도 육체적인 문제라기 보다는 그동안 받았던 스트레스, 심리적 불안 등이 한꺼번에 몰려와 괴롭히는 듯한 느낌이다. 뒤져보니 사간동 국제갤러리에서 '요셉 보이스'전을 하고 있었다. 토요일 여기에 가서 놀까.

나나를 만나는 꿈

오래된 노트를 꺼내 나만의 인생을 생각해본다. 그러나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나의 문학도, 나의 예술도, 나의 그녀도. 아예 있지도 않았다. 나나를 떠올린다. 한없이 슬프고 한없이 강한 그녀. 회사에 사표를 냈다. 이제 내 영혼은 폭풍우 치는 바다의 물결 위에 놓여졌다. 세찬 바람과 구름의 움직임 속에서 난 떠돌 것이다. 애초부터 내 것이란 없었기에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저 바람과 구름이 내 앞을 알 수 있으리라. 올 겨울, 나나를 만나는 꿈을 꾸다. 2003년 11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