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298

나를 지켜낸다는 것, 팡차오후이

나를 지켜낸다는 것 팡차오후이(지음), 박찬철(옮김), 위즈덤하우스 이 책, 천천히 읽어야 한다. 아주 천천히 오랜 시간을 두고 하나하나 되새겨가며 내 일상을 반추하며 내 몸 깊이 받아들여 내 삶을 바꿀 책이다. 현대의 우리들은 서양의 학문을 먼저 접한다. 몇 구절을 암송하기는 하나,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고 ‘천자문’을 익히기는 하나 입시용일 뿐이다. 서양의 학문은 이미 확고하게 있는 나란 존재를 기반으로 외부 세계에 집중한다고 하면, 동양의 학문은 흔들리는 내 마음과 알 수 없는 외부 세계를 하나로 이어나간다. 수신(修身), 자신을 직시하여 한계를 깨는 힘. 나는 어떤 사람이고, 내 인격이 어떠하며, 나는 과연 본받을 만한 사람인가. 저자는 ‘설령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하더라도 그 본질적 목적은 자아완..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 김동조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김동조(지음), 북돋움 경제학 책을 읽었지만, 경제학의 생리에 대해 파악하진 못한 듯 싶다. 이 점에서 이 책은 매우 유용하다. 저자는 금융 회사에서 종사하는 트레이더이지만, 그가 쓴 글은 경제학의 관점에서 시사적이며 흥미롭기만 하다. 경제학은 '사물의 응당 그래야만 하는 면'보다는 '현상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느냐'에 더 주목한다.- 8쪽 확실히 기준이 있다는 건 다양한 현상과 사건 앞에서 동일한 논조로 설명 가능하다. 이 책은 그런 관점에서 일관되게 서술되어 있다. 여전히 공부(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를 통해 사회적 지위를 끌어올리는 것은 가능하며, 공부는 다른 방법이 지닌 불확실성에 비해서 무척이나 분명하고 불확실성이 적은 성공 방법이다. - 161쪽 특히 평등과 분배, ..

휴머니즘과 예술철학에 관한 성찰, T.E.흄(Hulme)

휴머니즘과 예술철학에 관한 성찰 T. E. 흄(Hulme) 지음, 박상규 옮김, 현대미학사 위대한 화가란 모든 사람들의 비젼이 되었고, 또 장차 비젼이 될 어떤 사물의 비젼을 처음으로 가졌던 사람들이다. - 133쪽 토마스 어네스트 흄(Thomas Ernest Hulme, 1883 - 1917)이라는 영국의 예술 비평가가 쓴 을 번역한 이 책은 다소 의외의 번역본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 1980년대 초반 박상규 교수(홍익대)가 번역한 문고판 책을 현대미학사에서 관심을 가져 새로 낸 듯하지만, 대단한 명성을 가지고 있었던 책은 아니기 때문에 전공자가 아니면 꺼내보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2000년대 초반에 구입하였으니, 한창 공부하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그간 읽지 않고 서가에 꽂아두고 있다가 ..

책, 그 살아 있는 역사, 마틴 라이언스(지음)

책, 그 살아 있는 역사 마틴 라이언스(지음), 서지원(옮김), 21세기북스 책이 없었더라면 서구 역사의 위대한 전환기적 사건이 과연 가능했을까? 르네상스, 종교개혁, 과학혁명 그리고 계몽주의 모두 활자의 힘을 빌려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고 영속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다. 지난 2500여 년동안 인류는 필사본 혹은 인쇄본 형태의 책을 이용해 자료를 기록하고, 국가를 통치하고, 신을 숭배하고, 후대를 교육했다. (7쪽) 책의 시작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책을 둘러싼 이야기를 시대순으로 배열한 이 책은 풍부한 도판과 저자의 흥미진진한 설명으로 독자를 즐겁게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스럽게 알게 된 사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나오자 마자, 금서와 검열의 역사도 같이 시작되었다는 것. 그리고 저자들보다 ..

새로운 소설을 찾아서, 미셸 뷔토르

새로운 소설을 찾아서 (Essais sur le roman) 미셸 뷔토르 Michel Butor(지음), 김치수(옮김), 문학과 지성사 문체에 관한 노력이 있을 때마다 작시법이 있다. - 말라르메 소설가란 아무 것도 헛된 것이 없는 어떤 사람입니다.- 헨리 제임스 소설 쓰기를 포기한 채, 소설론에만 관심이 갔다.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고 형식에만 관심 있었다. 소설 속 사건은 이미 신문의 사회면, 자극적인 인터넷 기사, 혹은 막장 드라마에 밀린지 오래다. 사건에 대한 평면적 전달 속에서는 사건의 특이함만이 시선을 끌게 된다. 현대 소설가들 대부분은 사건의 입체적 전달을 고민해 왔다. 프랑스의 누보 로망도 여기에 속한다. 소설가를 꿈꾼다면 이 책 읽기를 권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것과 베스트셀러 작가가 ..

딸과 떠나는 인문학 기행, 이용재

딸과 떠나는 인문학 기행이용재(지음), 디자인하우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나도 책 한 권 써서, 쓴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경제적인 위기에서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아주 비현실적인 상상이긴 하지만, 혹시라도 뭔가 힌트를 얻을 요량으로 이 책을 읽었다. 나는 잘 팔리는 책과는 거리가 먼 필자에 가깝기 때문에, 잘 팔리는 책은 어떠한가 살펴보기 위해.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목적이 아니었다면, 정말 후회했을 것이다. 이 책은 글의 조탁(彫琢)이라든가, 단어의 선택, 문맥의 흐름 따윈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심지어 글의 내용과는 무관한 누군가의 리뷰가 글 초반에 인용되기도 하고(재미 삼아 옮긴 듯한) 인문학 기행이라고 하기엔 너무 빈약했고 마치 짧은 참고서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

거짓말의 힘, 우테 에어하르트 외(지음)

거짓말의 힘우테 에어하르트, 빌헬름 요넨(지음), 배명자(옮김), 청림출판 "거짓말은 쓸모가 많다. 거짓말은 삶의 일부이고 소통의 필수 요소이며 갈등을 없애고 성공을 도우며, 모순처럼 보이는 우리 내면의 충동들이 공존하는 것을 돕는다. 거짓말은 삶을 더 행복하게 한다." (6쪽) 책을 펼치자 말자, '거짓말'은 나쁘지 않고, 도리어 장려되어야 된다는 식의 문장들로 시작되는 책. 읽는 독자가 무안해질 정도로 솔직하고 직설적이며 과감해서 심지어 야하다는 생각까지 들게 만든다. 우리는 관습적으로 진실된 말이 옳고 거짓말은 나쁘다고 생각하지만, 저자들은 전혀 그렇지 않고, 이미 독자들은 거짓말쟁이 대열에 서 있음을 하나하나 사례를 들어가며 지적하고는 도리어 건강이나 행복한 삶, 그리고 사랑에는 필수불가결한 요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들, 한스 블루멘베르크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들 - 논문들과 연설 하나 Wirklichkeiten in denen wir leben 한스 블루멘베르크Hans Blumenberg(지음), 양태종(옮김), 고려대학교 출판부 한스 블루멘베르크의 (Die Lesbarkeit der Welt, Suhrkamp, 1981)은 문학동네 모더니티총서로 번역, 출간될 예정이었으나 어떤 연유에 의해서인지 몰라도 출간되지 못했다. 나는 이 총서의 목록을 통해 흥미로운 제목인 으로 그에 대해 흥미를 느꼈고 그의 책이 번역되길 기대했다. 하지만 꽤 시간이 흐른 뒤에야 짧은 책 한 권이 번역되었을 뿐이고, 오늘 내가 리뷰하고자 하는 이 책이다. 그러나 내 리뷰는 피상적인 수준에서 그칠 것이다(이 블로그에 자주 오는 사람이라면 알 수 있듯 나는 직장인이..

일방통행로, 사유이미지 - 발터 벤야민

일방통행로, 사유이미지 발터 벤야민 지음, 김영옥/윤미애/최성만 옮김, 도서출판 길 우리에게 필요한 시간이란, 5분, 10분, 5분, 이런 식으로 조각난 것이 아니라, 1시간, 2시간, 혹은 하루나 이틀 이상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시간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간을 요구하는 것이 사치스러운 일상이 되어버린 2013년 가을, 내가 집어든 책은 도서출판 길에서 나온 ‘발터 벤야민 선집 1권 - 일방통행로, 사유이미지’이다.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내 조각난 시간 틈 속으로 들어와 사뿐히 내려앉은 벤야민의 글들은 번뜩이는 통찰이 어떻게 짧은 글들로 조각나 고딕 교회의 모자이크화처럼 구성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다. 결국 발터 벤야민은 20세기의 전반기를 살았다고 하기에는 너무 급진적이었다. 그것은 그의 인식..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브뤼노 라투르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 브뤼노 라투르 지음, 홍철기 옮김/갈무리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브뤼노 라투르(지음), 홍철기(옮김), 갈무리, 2009 야만성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이야 말로 야만인이다. - 레비 스트로스(Levi-Strauss) 직장 생활을 하며 이런 책을 읽는 것이 얼마나 큰 도전인가를 새삼 느꼈다. 솔직히 끔찍했다. 사무실에 인문학 책을 꺼내놓을 시간적 여유가 없고 집에 돌아와 책을 읽는 건 불가능하며(연신 나를 찾는 이제 20개월 정도를 넘긴 아들 녀석으로 인해), 내가 책을 읽는 시간이라곤, 아들이 잠든 후나 이동 중인 전철이거나 잠시 들른 커피숍이 전부다. 이 푸념이 나에게도 생소하지만, 나와 비슷한 처지의 다른 이들에게 독서는 참으로 멀리 있는 것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