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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The Knight, Death and Devil  기사, 죽음 그리고 악마

Albrecht Dürer 알브레히트 뒤러 

1513, Copperplate 동판화

 

 

기사 옆으로 죽음과 악마가 그가 가는 길을 방해한다. 이 명료한 동판화는 르네상스 시기의 신념을 보여준다고 할까. 인간이 가는 길을 과거의 유물들 - 죽음, 악마 - 이 훼방 놓으며 가지 못하게 한다. 알브레히트 뒤러는 종종 후기 고딕적 양식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의 사상 만큼은 근대적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기사는 도상학적으로 진리를 수호하는 자로 해석된다. 과거 종교인이 가졌던 역할을 이제 기사가 가지게 된 것이다. 이 극적인 변화는 르네상스 시기를 문예부흥의 놀랍고도 아름다운 시기가 아니라, 급속하게 변화하는 혼돈기였음을 짐작케한다. 결국 고딕적 신앙이 뒤로 물러나고 기하학적 이성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본격적으로 서구의 근대(modern)이 시작되고, 그 이후 거친 풍랑 속에서도 이성을 버리지 않는다. 


거의 1세기 후에야 철학에서 근대적 이성을 이야기하게 된다는 점을 비추어 볼 때, 예술에서의 이러한 선취(先取)는 놀랍기만 하다. 이는 예술의 역사를 통해 자주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예술사에 빠진 이유이기도 하지만, 동시대 예술을 유심히 살펴보다 보면, 앞으로 펼쳐질 세계를 짐작하고 예견할 수 있다. 


까뮈의 <이방인>이 나왔을 때, 그 충격은 대단했다. 심지어 프랑스에선 이 소설을 도덕 교과서로 읽히곤 한다. 이유없는 살인은 용서될 수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이유없는 살인을 너무 자주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아마 까뮈도 자신의 '뫼르소'가 그토록 많이, 현실 속에 등장하리라 생각하지 않았을 테지만. 


양식(style) 상, 뒤러의 모든 작품들이 근대적이진 않다. 그는 양식적으로는 후기 고딕과 하이 르네상스(르네상스 고전주의) 사이를 오간다. 하지만 그가 외부 세계와 마주했던 태도는 르네상스 시기 그 어느 예술가들보다도 근대적이고 이성적이었다. 뒤러가 끊임없이 연구되며 후대의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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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예찬

지오 폰티(지음), 김원(옮김), 열화당 





너무 늦게 이 책을 읽은 걸까. 나는 지오 폰티가 적어나가는 건축과 예술의 새로운 표현들을 접하며 건축이 왜 예술과 멀리 떨어지게 된 걸까 하는 의심을 했다. 아마 한국에서는 건축 관련 학과가 예술대학과 멀리 떨어진 탓이 클 것이라는 추측만 했고, 예술의 역사에서 건축이 가지는 의미를 다시 되새겼다. 


이 책, 놀라운 책이다. 지오 폰티는 우아하게 건축과 예술을 찬양하며 현대적 예술이 지향해야 되는 바를 이야기해준다. 



건축 속의 침묵으로 인해 건축을 사랑하라. 그 속에 건축의 목소리와 은밀함과 강한 노래가 감추어진 침묵으로 인해 (17쪽) 



기계는 존재하기 위해, 그리고 이바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역학의 소산이다. 건축은 꿈의 소산이다. 꿈과 같이, 건축은 움직이지 않는다. 꿈은 제자리에 머물다가 사라질 뿐이다. 건축은 정지해 있다. 정지한 생명, 다시 말해서 희열의 생명을 지닌다. (46쪽) 



건축과 예술에 대한 경구들의 모음집 같은 이 책은 한 줄 한 줄 읽어나가는 것이 안타까웠다. 실은 어느 주장은 내 생각과 달랐지만, 중요한 부분은 아니다. 도리어 나는 왜 이 책을 이제서야 읽게 되었나 후회하고 있었다 


건축을 전공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건축이 지니는 형이상학적 가치가 무엇인지 일깨워줄 것이며, 다른 이들에게는 건축과 예술의 의미를 새롭게 깨우치게 해주는 책이 될 것이다. 




건축은 꿈에 속하는 것이다. 삶은 꿈이다. 예술은 그 꿈의 환영이다. 그 환영은 우리의 진리다. (189쪽) 





건축예찬

지오폰티저 | 김원역 | 열화당 | 2008.05.07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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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 10점
브뤼노 라투르 지음, 홍철기 옮김/갈무리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브뤼노 라투르(지음), 홍철기(옮김), 갈무리, 2009 





야만성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이야 말로 야만인이다. 

- 레비 스트로스(Levi-Strauss)






직장 생활을 하며 이런 책을 읽는 것이 얼마나 큰 도전인가를 새삼 느꼈다. 솔직히 끔찍했다. 사무실에 인문학 책을 꺼내놓을 시간적 여유가 없고 집에 돌아와 책을 읽는 건 불가능하며(연신 나를 찾는 이제 20개월 정도를 넘긴 아들 녀석으로 인해), 내가 책을 읽는 시간이라곤, 아들이 잠든 후나 이동 중인 전철이거나 잠시 들른 커피숍이 전부다. 이 푸념이 나에게도 생소하지만, 나와 비슷한 처지의 다른 이들에게 독서는 참으로 멀리 있는 것인 듯 싶다. 


좀 더 많은 시간과 여유를 가지고 집중해 읽었다면 라투르의 이 책은 보다 더 흥미롭고 내가 벗어나지 못할 근대적, 계몽적 사유를 보다 풍성하게 만들 기회를 가졌을 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몇 년 전 서점에서 우연히 구입했다.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는 제목이 무척 도전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이제서야 읽었다. 아마 한 두 번 읽으려고 했을 텐데, 저자의 표현방식에 적응하지 못했다. 실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가 쓰는 몇 개의 주요 단어들 - 하이브리드, 정화, 대칭적/비대칭적 등 - 에 대해선, 그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더 어렵고 모호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아마 프랑스학계 특유의 글쓰기 방식인 듯하지만(프랑스의 다른 인문학자들처럼). 



야생의 사유와 계몽된 사유는 때때로 서로 아름다운 화해에 도달하거나 무지개 빛깔을 발하는 간섭을 일으킬 수 있다. - 7쪽 



혹시 지금 우리 시대가 '근대'라고 느낀 적이 있는가? 데카르트적 근대 말이다. 아니면 20세기의 무수한 반-근대주의자들처럼 '포스트모던' 시대라고 느낀 적이 있는가? 정말로 그들의 책에서 이야기하듯 이 세상이 그렇게 만들어지고 움직이고 있는가? 


 


원시의 정신과 오늘 우리의 정신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존재한다는 주장은 거부될 것이다. 정보이론이 순수한 메시지에 집중한 반면에 원시 시대 사람들은 메시지의 물리적 결정론의 징후들을 메시지로 착각한다. ... ... 동식물계에서 감지할 수 있는 특성들을 하나의 메시지인양 다루고 그 속에서 '서명' 즉 기호를 읽어냄으로써 인간(원시정신의 소유자)은 엉뚱한 것을 중요한 요소로 삼는 오류를 범했다. 하지만 실제 의미 있는 요소가 어디에 있는지(미시적인 차원)를 알려줄 완성된 도구가 없었기에 인류를 해석을 통해 '희미하게' as through a glass darkly 나름대로 차이를 분간하였다. 이 원리의 발견적 가치와 현실의 정합성은 첨단 발명품들 즉 전기통신공학, 컴퓨터와 전자현미경 등을 통해서만 우리에게 알려진 바 있다. 

- 249쪽 (Levi-Strauss, 1966, p268)



브뤼노 라투르는 인류학에 의지해, 근대라는 개념은 개념일 뿐, 우리 세상을 그대로 비추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마치 애초부터 잘못 끼워진 단추처럼. 그리고 그 단추를 가지고 앞을 향해 나아갔을 뿐이다. 그리고 이 근대에서 시작된 '탈-근대'로 이상하긴 마찬가지. 


그렇다고 라투르가 '비-근대주의자'는 아니다. 그의 목표는 '화해'에 있으며,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출발점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나아가자는 데 있다.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나는, 인문학이 이 세계와 우리 삶 속에서 시작되었으나, 도리어 이 세계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해석 불가능하다고 단정짓고, 우리 삶을 기하학적으로 재단하고 억지로 정해진 어떤 틀 속에서 밀어넣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근대적 삶이고 근대의 이론들인 셈이다. 



아추아르족은 각자 폐쇄된 채로 대립을 피할 수 없는 두 세계 - 인간 사회의 문화세계와 동물 사회의 자연세계 - 사이에 존재하는 이와 같은 이율배반을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화의 연속적 가능성이 끊어지는 특정한 지점이 존재하는데, 여기서부터 인간에게는 극도로 낯선 야생의 세계가 시작된다. 문화의 영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자연의 이 조그만 조각은 소통관계가 수립될 수 없는 사물들의 집합을 포함한다.

- 53쪽 (Philippe Descola의 1986년도 저작에서 인용. 



아추아르족의 일상에서 우리의 일상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어쩌면 이 책은 인문학이 앞으로 어떤 태도로 걸어가야 하는가에 대한 적절한 지적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세계는 변하지 않았으나, 근현대 철학은 우리의 진정한 세계와 무관하게 전진했으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라투르는 근대의 학자들이 이야기하는 바 그 근대인은 우리가 아니다라고 말할 뿐이다. 



두서 없는 리뷰이지만, 여유가 되는 이들에게 이 책 읽기를 권한다. 좀 시간은 걸리겠지만, 꽤 흥미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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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야 하는 이유 - 10점
강상중 지음, 송태욱 옮김/사계절출판사



살아야 하는 이유, 강상중(지음), 송태욱(옮김), 사계절




결국 우리는 각자 자신이 꿈속에서 제조한 폭탄을 껴안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죽음이라는 먼 곳으로 담소를 나누며 걸어가는 게 아닐까. 다만 어떤 것을 껴안고 있는지 다른 사람도 모르고 나도 모르기 때문에 행복할 것이다. 

나는 내 병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유럽의 전쟁도 아마 어떤 시대부터 계속된 것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떤 우여곡절을 겪어 나갈지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계속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반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있다. 

- 나쓰메 소세키, <<유리문 안에서>> (산문집) 중에서 


강상중 교수의 <<고민하는 힘>>(사계절, 2009)이 번역되어 나온지도 몇 년이 지났음을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서 깨달았다. 그 사이 일본의 지진이 있었고 절망적인 원전 사태가 있었다. 우리를 둘러싼 현실이 우리와 적대적일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이 책은 그의 전작 <<고민하는 힘>>과 함께 반드시 읽어야할 책이다. 


그는 이번에도 막스 베버와 나쓰메 소세키, 특히 나쓰메 소세키에 의존하며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한다. 그리고 이 설명은 독자를 향한 것이기도 하지만, 강상중 교수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윌리엄 제임스의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를 인용하면서, '거듭나기twice born'에 기대어 고통스러운 번민과 나락으로의 절망이 새로운 앎을 열게 한다고 역설한다. 이는 전작 <<고민하는 힘>>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윌리엄 제임스)는 '건전한 마음'으로 보통의 일생을 끝내는 '한 번 태어나는 형once born'보다는 '병든 영혼'으로 두 번째 삶을 다시 '거듭나기'의 인생이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 121쪽 


책은 짧고 단단하다. '사랑은 상대를 통째로 받아들이는 것'(181쪽)처럼 자신을 포함한 세상 전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앞으로 나아가길 주문한다.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찾는 과정은 고통스러울 테지만,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한 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윌리엄 제임스는 19세기 말에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과학'은 틀림없이 종교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그러한 장에서는 "'자연의 법칙'이 '숭배되어야 할' 것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즉 과학이 신같은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 112쪽 


이는 계량적 세계의 질서처럼 논리적인 것이 아니라 도리어 종교적인 질문, 형이상학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강상중은 신을, 종교를 부정하는 도킨스, 히친스 대신 <<신을 옹호하다: 마르크스주의자의 무신론 비판>>의 테리 이글턴의 편에 선다. 결국 이 세상에 살아가는 의미를 구하는 현대인에게 과학은 의미를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덧없이 죽을 운명에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어디까지나 겸허히 인간적인 것을 긍정한다." 

- 테리 이글턴, <<신을 옹호하다>> 중에서


이번 겨울, 이 책은 흔들리는 현대인을 위한 작은 조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시작으로 나쓰메 소세키, 막스 베버로 이어지는 작은 독서 여행의 시작이 되기를! 


강상중 교수 (출처: 강상중 교수 홈페이지) 



<<고민하는 힘>>에 대한 서평

2011/12/26 - [책들의 우주/문학] - 고민하는 힘, 강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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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자주 최저 기온을 갱신하는 날들이 이어질 것이다. 출근길, 여러번 구두 바닥이 미끌,미끌거렸다. 그러나 미끄러져 넘어지는 사람을 보지 못했고 나 또한 미끄러지지 않았다. 내 바람이, 미래가, 우리들의 마음이 미끄러져 끝없이 유예되는 것과는 반대로, 내 낡은 구두 밑은 의외로 눈이 녹아 언 길 위를 잘 버텨주었다. 


잦은 술자리,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건강이 안 좋아졌다. 안 좋아지는 것만큼 세상도 안 좋아지고 개인 경제 상황도 안 좋아졌다. 말 그대로 올 한 해는 최악이다. 다행히 심심풀이 삼아 온 온라인 토정비결에선 내년 운이 좋다고 하니, 그걸 믿어볼까나. (이렇게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행운(저 세상의 논리와 질서)에 기대게 된다)


아주 오래 전 서양미술사 강의를 할 때, 이집트 미술을 설명하면서 '과연 파라오 밑의 국민들이 행복했을까요? 아니면 불행했을까?'라고 묻곤 했다. 나는 '당연히 불행했어요'라고 대답할 것이라 여기며 이런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행복했을 수도 있다'고 답할 지 모르겠다. 그리고 실제로도 불행하지 않았고 행복했다고 믿는 편이 낫고 타당하다. 이는 '합리적이고 성실하며, 세상 분위기가 그의 편인 군주 밑의 신분제 사회가 행복할 것'이라는 믿음과도 연결된다. 그만큼 이집트 사회는 변화가 없었고 흔들리지 않는 질서가 있었다. 몇 천년 동안 예측가능한 시기가 계속 되었다. 변화말로 사람들의 불안을 야기하는 어떤 것이다.  


사상의 자유라든가 발언/표현의 자유는 전적으로 근대(modern)의 산물이다. 어떤 위계질서를 버리고 극적인 변화와 새로운 질서 속에서 선택한 것이 개인의 자유이고 개인에 대한 (계량적) 믿음이다. 하지만 현대, 지금/여기에 이르기까지도 동시대 모든 사람에게 그런 근대적 의식을 바란다는 건 무리였다. 과연 누가 그들에게 근대적 의식을 강요하는가! 


근대적 의식은 변화를 긍정하고 변화 속에서 진정으로 나은 가치를 찾을 수 있다는 믿음에 기초한다. 그 대신 불안을, 두려움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내일을 택한다. 초기 근대 예술가들 - 말년의 미켈란젤로, 폰토르모, 파르미지아니노 등 - 이 보여준 불안, 두려움, 막연한 공포는 여기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기교적으로 능수능란하고 강렬한 자신감으로 가득차 있던 바로크 예술가들 - 몬테베르디, 바흐, 비발디, 푸생, 렘브란트, 베르니니 등 - 에 의해 이 불안은 극복되고, 데카르트, 라이프니츠는 합리적 세계관 속에서, 버클리와 흄은 경험적 세계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확신 - 진리가 없어도 잘 살아갈 수 있다 - 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근대적 의식은 오래 가지 않고, 20세기 후반 논의되기 시작한, 반-근대적이라 일컫어지는 '포스트-모던'(post-modern)은 근대의 가려져 있던 불안, 두려움, 공포를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한다. 그렇다면 한국은 포스트모던 사회인가? 그래서 전 근대적인 시기(후기 조선에 가까웠던 시기)에 대한 향수로 목 말라 하는 것일까? 


글쎄다. 잘 모르겠다. 우리에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룰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고, 1인당 국민소득 1천불에서 1만불로 가는 것과 1만불에서 2만불, 3만불 가는 것과는 질적인 차이가 있음을, 서로 다른 의견을 공유하고 나은 대답을 찾기 위해선 시끄러운 의견 조정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민주주의, 자유주의, 다원주의는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역설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관심을 가져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엔 이미지로서의 정치가 답이고, 매스미디어에 의해 사람들의 의식은 조장될 수 있고, 비판적 시각을 키울 수 있는 책 같은 건 살아 있는 동안 1권도 읽지 않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마당에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미래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글은 두서 없고 생각은 미끄러지기만 한다. 이런 주절거림은 결국 나를 위한 것이다. 내 패배감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올 한 해, 나는 패배했다. 근대의 반성적 자기 의식은 외부를 향하지 않는다. 의식의 지향성이란 이것이다. <매트릭스>의 니오가 선택한 알약도 바로 자신의 처지를 제대로 알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현상학자들은 그러한 알약의 시작이 어디인지 묻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현상학적 접근이다. 


척 맨지오니의 'Consuelo's Love Theme'을 듣는다. 안소니 퀸이 주연을 한 '산체스의 아이들' OST 앨범. ... 두툼한 LP를 꺼내어 듣고 싶지만, 지금은 사무실, 점심 시간을 이용해 적는 이 짧은 글. ... 결국 나는 근대인(homo modus)임으로 '내일의 나'를 향해 가겠지만, ... 16세기 사람들이 느꼈을, 그 불안함을 떨치지 못하는 건 어떤 이유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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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사회적 상상

찰스 테일러 지음, 이상길 옮김, 이음



기대했던 것만큼 책은 재미있지 않았다. 하긴 이런 인문서를 읽으면서 재미를 바란다는 것도 다소 당황스러운 종류의 일일 게다. 찰스 테일러는 역자의 말대로, '현재 도덕철학과 정치철학 분야에서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서구 사상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하지만 찰스 테일러의 이름을 듣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찰스 테일러의 이 책을 고른 이유는 그의 다른 저작, ' The Ethics of Authenticity'(불안한 현대 사회)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읽은 '근대의 사회적 상상'은 '불안한 현대 사회'과 비교한다면, 다소 재미있는 구상이긴 하지만 호소력 있는 저작은 아니었다. 도리어 헤겔주의자로서의 찰스 테일러를 드러내며, 근대의 여러 기획들은 계속 이어지며, 지속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의 독특한 시각, 근대(modern) 형성의 깊은 영향을 끼친 물질적 자본주의(혹은 경제적, 물질적 사회형태)의 변화 대신 근대의 관념적인 기획으로만 근대의 형성을 서술하면서, 단일화된 근대성이 아닌 다원적 근대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은 충분히 가치를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먼저 이 책은 두말할 나위 없이 근대성의 역사이자, 그에 대한 철학적 반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자의식'과 '자기비판'은 그 자체로 근대적 에토스의 핵심이기도 하다. 그런데 테일러는 다원적 근대성 개념을 통해 자신의 분석 대상을 '서구적 근대성'으로 상대화시킨다. 다원적 근대성 개념의 핵심은 근대성이 어디서나 동일한 형식으로 발전하게끔 되어 있는 동질적이고 수렴적이 과정이라는 시각을 거부하는 데 있다. 즉 근대적인 관념과 실천, 제도와 생활 양식은 배경 맥락에 따라 상이하게 나타날 수 있고, 따라서 언제나 복수형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서구의 역사적 사례를 근대성의 다양한 모델 가운데 하나로 '지방화'해야 하며, 어떤 식으로든 타자에게 함부로 부과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주장을 이면에 깔고 있다.
- 역자 후기 중에서


이 책을 읽는 또다른 재미라고 할 것은, 철학서 답지 않게 문화적 양식 분석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종종 흥미로운 사례와 분석이 등장하여 흥미로움을 더하기도 한다.

찰스 테일러와 근대의 시작과 발전에 대한 색다른 분석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은 읽을 만한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찰스 테일러의 또 다른 서적을 한 권 주문했다. 주문한 책은 그의 헤겔 연구서이다.



찰스 테일러의 다른 책(강력 추천)
- 불안한 현대 사회, 찰스 테일러 http://intempus.tistory.com/1323 



 

근대의 사회적 상상 - 8점
찰스 테일러 지음, 이상길 옮김/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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