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파아란 영혼


변증법적 문학이론의 전개 

(개정판: 맑스주의와 형식, 원제: Marxism and Form)

프레드릭 제임슨 Fredric Jameson (지음),  여홍상, 김영희(옮김), 창작과비평사 



책 뒷 장을 펼쳐보니, 1997년 5쇄라고 적혀있다. 지금 읽어도 쉽지 않은 이 책을 나는 1997년이나 98년 쯤 구입했을 것이다. 아마 인적이 뜸했던 그 대학 도서관 서가에서 꺼내 읽은 아래 문장으로. 


이처럼 벤야민(Walter Benjamin)의 평론들의 한 장마다에서 풍겨나오는 우울 - 사사로운 의기소침, 직업상의 낙담, 국외자의 실의, 정치적 역사적 악몽 앞에서 느끼는 비감 등 - 은 적합한 대상, 즉 종교적 명상에서처럼 거기에서 정신이 자신을 끝까지 응시할 수 있고 그 속에서 심미적인 것에 불과할지라도 순간적인 구원을 발견할 수 있는 어떤 표상이나 이미지를 찾아 과거를 더듬는다. 그리고 발견해낸다 - 30년 전쟁의 독일에서, '19세기의 수도' 빠리에서. 왜냐면 바로끄와 근대의 이 둘 모두가 그 본질상 우의적(allegorical)이어서 우의이론가의 사고과정에 걸맞기 때문인데, 자신을 형상화해줄 외부의 대상을 찾는 비구상화된 의도인 이 사고과정을 그 자체가 이미 '언어 이전'의 우의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 73쪽 ~ 74쪽 


그 때, 1990년 후반 문학전공자들의 일부는 발터 벤야민에 빠져 있었다. 아마도 이십 대 후반 이 책에서 유일하게 읽을 수 있었던 챕터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십년 가까이 지난 후인 올 8월부터 읽기 시작해 겨우 다 읽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벤야민은 죽은 채로 우리 옆에 앉아 속삭이고, 나에게 이제 독서란 1시간 이상 지속되기 어려운 일상이 되었고, 회사에서의 시간 이외에 나머지 시간들은 다 조각나 있었다. 길고 조용하게 이어지는 양질의 시간이 나에게 구하기 어려운 일이 되었고, 이 책의 독서 경험은, 최근 내가 읽는 다른 책처럼 조각나 있고 형편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대한 뒤늦은 독서는, 나에게 깊은 후회와 함께 이제서야 읽을 수 있다는 안도감을 갖게 하였다. 종종 어떤 책들은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마치 프루스트의 소설들처럼.  이 책은 나에게 헤겔-마르크스의 이론이 어떻게 문학 이론에 영향을 끼쳤는가를, 다소 얕게 알고 있었던 에른스트 블로흐와 루카치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었다. 프레드릭 제임슨은 아도르노부터 시작해 마르크스주의적 해석학의 몇 가지 형태라는 2장에선 발터 벤야민, 마르쿠제와 쉴러, 에른스트 블로흐를 다룬 후, 게오르그 루카치, 사르트르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시 말하자면 저자는 헤겔과 마르크스에 영향을 받은, 20세기 전반기 중요하게 여기지는 문예이론가들의 대표적인 저서들을 중심으로 비판적 서술을 전개한 후, 마지막 챕터에서 '변증법적 비평'에 대해 논의하며 책을 끝낸다. 종종 프레드릭 제임슨을 포스트모더니즘 이론가로 오해하기도 하지만, 헤겔-마르크스의 영향 아래서에서  현대 문화에 대한 적극적인 수용과 비판을 전개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제임슨의 태도가 잘 드러나는 책들 중의 한 권이며, 앞으로 그가 나아가게 될 어떤 이론적 지향점을 이해하게 해준다. 그 현대문화를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단어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이 책의 모든 부분들이 중요했지만, 아마 가장 중요한 부분은 마지막 챕터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예술작품에 대한 그의 시각을 확실하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아래 문장처럼. (프레드릭 제임슨을 읽다 보면, 종종 아도르노에 대한 편애같은 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가 연구한 싸르트르가 아니라... )


이제 우리는 상품사회에서 예술작품이 지니는 심원한 소명이 무엇인지 깨닫기 시작한다. 그것은 상품이 되지 않는 것이며 소비되지 않는 것이며 상품적 의미에서 불쾌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원리를 가장 충분히 전개하여 적용한 아도르노의 음악 분석으로 되돌아가도 무방할 터인데, 이 분석은 실제로 그의 여타의 비교적 헤겔적인 실천과는 대조적으로 그의 저서 가운데 가장 진실로 마르크스주의적인 부분을 이룬다. - 383쪽 


이 책 <<변증법적 문학 이론의 전개>>는 프레드릭 제임슨의 책으로 일찍 번역되어 국내 소개되었지만, 제대로 읽히지 못한 책들 중의 한 권이다. 문학이론 서적들이 드물던 시절, 나 또한 이 책에 대한 추천사를 읽지도, 듣지도 못했으니. 더구나 1장 아도르노에 대해 읽기 위해선 현대 음악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하고 그러면서 근현대의 여러 학설들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야 하니, 제대로 읽히지 못했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 일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아도르노의 저서들 중 <<신음악의 철학>>을 선택하여 아도로노의 고급문화주의자적 면모를 드러내면서 동시에서 문화산업에 대한 부정과 함께 그 속에서 작품이 상품이 되지 않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것은 이제 열정의 모방이 아니라 음악적 매체를 통하여 무의식에서 나온 신체적 충동들을 위장되지 않은 상태로 기록하는 것이며, 형식의 금기들이란 그러한 충동들을 검열하려 하고 그것들을 합리화하여 이미지로 전환시키려 하는 것이므로, 이런 형식의 금기들에 공격을 가하는 충격들 및 정신적 외상(trauma)들을 위장 없이 기록하는 것이다. 이처럼 쇤베르크의 형식적인 혁신들은 표현된 사물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후자의 새로운 리얼리티가 의식으로 뚫고 나오도록 도와주었다. 최초의 무조 작품들은 정신분석학의 꿈의 기록(transcript)이라는 의미에서 기록이다. ...... 그러나 이러한 표현상 혁명의 상처들은 그림과 음악 모두에서 원본능(id)의 밀사로서 예술가의 의식적인 의지에 저항하는 얼룩과 반점이며, 이들은 표면을 훼손시키고 옛날 이야기의 핏자욱처럼 추후의 의식적인 수정으로 씻어낼 수 없는 것이다. 참된 수난은 그것이 더 이상 예술작품의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표시로서 이것들을 작품 속에 남겨놓았다. 

- 아도르노, <<신음악의 철학 Philosophie der neuen Musik>> 42~43쪽 (40쪽에서 재인용)


문학(이론) 전공자에게 추천하지만, 만만치 않는 책이다. 이 책을 제대로 읽으려면 헤겔의 <<법철학>> 서문이나 <<정신현상학>>, 또는 마르크스의 <<독일이데올로기>> 정도는 읽거나 개론 수준의 이해를 가져야 할 터이고 소개된 여러 문학이론가들에 대해서도 기본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긴 그래도 쉽지 않을 것인데, 끊임없이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아나톨 프랑스도 나오고 페르난도 페소아도 등장한다. 작가 이름 뿐이긴 하지만 말이다. 가끔 이런 문장 - '무조성이란 말하자면 음악의 유명론(唯名論) 같은 것이다' - 이 등장할 때면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책은 흥미진진하고 많은 것들을 새로 읽고 되새길 수 있을 것이다. 


아놀드 쇤베르크, <<구레의 노래>>



기억해둘 만한 인용문들을 옮긴다. 시간이 나면 다시 읽어볼만한 책인데, 그럴 수 있을 지 모르겠구나. 


"따라서 역사가 우리로부터 시간적으로 점차 멀어지거나 우리가 사고 속에서 역사로부터 거리를 두게 되기만 하면 역사는 더이상 내면화될 수 없고 이해가능성을 상실하게 된다. 역사의 이해가능성이란 애당초 잠정적인 내면성에 부속된 단순한 환상에 불과했던 것이다." 

- 끌로드 레비-스트로스, <<슬픈 열대>> 중에서 (265쪽 재인용) 


"역사란 내가 깨어나려 애쓰는 악몽이다."

- 제임스 조이스, <<젊은 예술가의 초상>> 중에서 (302쪽 재인용) 


"문체와 관계를 맺는 것은 역사보다는 생물학이나 과거의 차원이다. 문체는 작가의 '대상'이며 영광이자 감옥이며 고독이다... ... 그 비밀은 작가의 육체에 파묻힌 기억이다. 문체의 암시적인 힘은 말해지지 않은 것이 일종의 언어적 간격으로 남아 있는 회화에서처럼 속도의 현상이 아니라 밀도의 현상이다. 왜냐하면 문체의 비유 속에 거칠거나 부드럽게 조합되어 문체 밑에서 견고하고 깊이있게 지속되는 것은 언어와는 전적으로 다른 한 현실의 단편들이기 때문이다."

- 롤랑 바르트, <<Le Degre zero de l'ecriture>>, 58~59쪽(331쪽 재인용)


"유력한 개개인이 그들의 정신과 성격의 특수한 자질로 인해 사태의 개별적 양상과 일부 특정한 결과를 변화시킬 수는 있지만 사태의 전반적인 추세를 바꿀 수는 없고, 이 추세는 다른 힘들에 의해 결정된다."

- 쁠레하노프, <<역사 속에서의 개인의 역할 The Role of the Individual in History>> (352쪽 재인용)


"세계가 어떻게 되어야 한다고 설교하는 데 대해 한 마디 하자. 이 문제에 대해 철학은 항상 지각생이다. 세계에 대한 사고로서 철학은 현실이 그 전개과정을 다 마친 이후에야 나타난다. 개념이 가르치는 것은 역사가 이미 필연적인 것으로 보여준 것이다. 현실이 성숙했을 때에야 이상은 현실적인 것과 대치되는 것으로 등장한다. 이때 이상은 이 세계의 본질을 포괄하는 지적 영역의 형태 속에서 이 세계를 스스로 재구성한다. 철학이 그 백발을 은빛으로 칠할 때 삶의 형식은 이미 노쇠했으며 이 은빛으로 칠한 백발은 삶을 회춘시킬 수 없으며 단지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날기 시작한다."

- 헤겔, <<법철학>> 서문에서. (356쪽 재인용) 


"변증법이 헤겔의 손에서 신비화되었다 하더라도 그가 변증법의 일반적 작용형태를 포괄적, 의식적으로 제시한 최초의 사람임에 변함이 없다. 그에게 있어서는 변증법이 거꾸로 서 있다. 신비화의 껍질 내부에서 합리적 핵을 찾아내려면 이를 다시 바로 세워야 한다."

- 칼 마르크스, <<자본론>> 제 2판 서문에서 (361쪽 재인용)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 1934 ~ )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모리스 블랑쇼에 대하여 - 10점
엠마누엘 레비나스 지음, 박규현 옮김/동문선



결혼을 하고 나이가 들고 직장에서의 내 위치가 올라갈수록 개인 시간을 만들기란 참 어려운 일임을 새삼 깨닫고 있다. 특히 돈벌이와 무관한, 개인적 시간은 가족의 양해를 구해야 하는 일임을. 그 중 하나가 책을 읽고 난 다음 짧은 서평을 쓰는 시간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읽은 몇 권의 책에 대한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 

이 책도 그 중 한 권이다. 쓰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쓰게 된다면, 적어도 그 책에 대한 찬사가 되어야 하고, 그 찬사가 그 책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에마누엘 레비나스의 '모리스 블랑쇼에 대하여'는 찬사를 받기에 충분한 책이다. 레비나스는 오래 동안 블랑쇼와의 깊은 우정을 통해 그의 세계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며, 레비나스의 애정 어린 철학적 시선은 이 짧은 책을 통해 모리스 블랑쇼 - 20세기 후반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에게 직, 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주류 문학이 아닌 비 주류 문학에 서서, 전통적 문학에 반기를 든 작가이자 이론가였던 - 가 지향하였던 문학과 예술을 탁월하게 재구성해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현대적 문학, 또는 다가올 예술에 대한 낯설고 기묘하고,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어떤 이론과 마주하게 될 것이며, 그 앞에서 서서 그동안 배워왔던 문학과 예술의 존재를 거부하게 될 것이다. 

아래 인용은 내가 그저 한 번 읽고 싶은 문구들의 일부이다. 이 책은 문학 이론서들 중에서 최고의 책들 중 한 권이 되겠지만, 아마 이 책을 언급하는 이는 드물다는 건 슬픈 일이다. 
 

** 


예술의 본질은 언어로부터 말할 수 없는 것으로 향하고, 작품에 의해 요소의 어두운 모습을 가시화하는 데 있다. 작품을 이렇게 모순과 더불어 묘사한다는 것은 변증법과 상관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대립항들의 교차로부터 타자를 삼키는 동일자가, 이 교차가 극복되고 그에 따라 모순이 완화되는 사유의 계획을 끌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사유가 이러한 변증법적 계획을 풀어놓아야 한다면, 즉 하나의 종합에 도달해야 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세계에, 가능성과 인간의 결단력의 영역에, 행동과 적합성 가운데 머무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문학은 그 어떤 사유도 다다를 수 없는 해안 - 문학은 사유할 수 없는 영역으로 향한다 - 으로 우리를 내던진다. 그 곳에서 존재-지각에 매달리는 관념론적 형이상학이 종결된다. 문학은 모든 가장 과감한 시도들에 의존해서는 벗어날 수 없는 세계의 모든 지평들을 성큼 건너가는 어떤 초월을 향한 유일한 모험이다. (23쪽) 


글을 쓴다는 것, 그것은 사물들을 말들로부터 벗어나게 하며 존재에게 메아리를 울리는 근원적인 언어로 되돌아가는 것일 게다. 사물들의 존재는 작품 속에서 명명된 것이 아니라 말하여지는 것이며, 말들은 사물들의 부재를 가리킨다. 존재한다는 것은 말하는 것을 가리키지만, 그것은 모든 이야기 상대자가 부재한 상황에서 말하는 것이다. (18쪽) 


블랑쇼에 의하면, 세계를 밝게 비추는 것과는 거리가 먼 예술은 세계의 기초가 되는 모든 빛이 차단된 황량한 지하의 세계를 일깨운다. 예술은 우리의 거주에, 그리고 사막에서의 오두막의 기능을 하는 건축물의 찬란함에 추방의 본질을 되돌려준다. (중략) 예술은 빛이다. 하이데거에게 이 빛은 위로부터 내려와 세계를 만들고 거주처를 구축하는 빛이다. 반면 블랑쇼에게 이 빛은 지하로부터 올라온 밤의 어두운 빛으로 세계를 해체하고, 그 세계를 기원으로, 되풀이됨으로, 중얼거림으로, 끊임없이 딸각거리는 소리로, 어떤 '깊은 옛날, 아주 먼 옛날'로 인도한다. 비현실에 대한 시적 탐구란 실재의 맨 밑바닥을 탐구하는 것이다. (31쪽)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5

  • 정말 좋은 글을 많이 개재하시네요. 아까 '서양 사상의 역사'로 댓글을 달았던 학생입니다. ^^ 링크 블로그도 걸어두었는데 좋은 글 읽으러 자주 들르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모리스 블랑쇼는 관심을 가져도 좋을 만큼 특이하면서도 무척 매력적인 작가입니다. 얼마 전 선집이 번역되어 나오고 있으니, 한 번 찾아 읽어보면 좋을 듯합니다.

    • 꼭 읽어보겠습니다. ^^ 수능 끝나고 부랴부랴 인문학 공부를 하니 읽을 책이 무척 많네요!

    • 이번에 수능 보셨어요? 훔훔.. 그럼 모리스 블랑쇼는 다소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인문학은 말 그대로 사람과 글에 대한, 즉 세상사에 대한 학문이므로 나이가 들수록 공부하는 재미가 나는 분야이지요. 대학 들어가기 전 한 번 읽을 만한 책들을 한 번 추려봐야 겠군요. ^^;;;

    • 네 현재는 푸코를 공부하고 있고 서양철학사도 함께 읽고 있습니다. 프랑스 유학 후에 전공할 학문이 철학이기에 철학이라는 학문이(혹은 인문학) 저한텐 더 각별하네요. ^^


미적 현대와 그 이후 - 10점
한스 로베르트 야우스 지음, 김경식 옮김/문학동네


한스 로베르트 야우스, 『미적 현대와 그 이후』, 김경식 옮김, 문학동네, 1999.

 


서가에서 책을 꺼냈다. 책 표지를 펼치자, 1999년에 내가 이 책을 읽었음을 드러내는 메모가 보였다. 한창 공부를 할 때였고, 벌써 십 여 년이 지난 일이다. 내가 읽었던 문학 이론, 혹은 미학 관련 책들 중에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할 이 책에 대한 일반의 관심은 거의 없었다. 놀랍도록 선명한 입장으로 미적 현대 이후의 탈근대를 설명해 나가는 한스 로베르트 야우스에 대한 연구는 일부의 독문학 전공자에게만 해당되는 일인 듯 보인다. 그의 주저 중의 한 권은 ‘도전으로서의 문학사’는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 된 듯, 문학과지성사에서는 절판을 시켰다. 이런 상황을 보면, 학문의 세계에도 트렌드와 패션이 있고, 학문의 진정성이나 깊이, 통찰과는 상관없이 트렌드와 패션에 민감하느냐, 민감하지 않느냐가 중요해진 세태를 보면 안타깝기만 하다.

한스 로베르트 야우스는 ‘수용미학’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한국에서 이해하고 있는 바 ‘수용미학’ 이상의 깊이와 통찰을 지닌 학자이다. 이젠 절판된 ‘미적 현대와 그 이후’는 한스 로베르트 야우스가 ‘연구했던 현대성의 개념사를 계몽주의에서 진척시키기 위해 쓴 논문들을 한 곳에 묶은 것’이다. 특히 미적이고 예술 수용적인 관점에서 미적 현대성(aesthetische Moderne)에 대해 살펴보고 되짚고 있다. 특히 ‘반(反) 자연으로서의 예술: 1789년 이후의 미적 전환에 관하여’든가 ‘이탈로 칼비노: 만약 어느 겨울밤에 한 여행자가 - 탈현대적 미학의 변호’는 흥미진진한 독서의 경험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1999년에 읽었고 그 이후 한 번 더 읽었던 이 책에 대한 독서 경험이 아직도 선명한 것은 그만큼 이 책이 가지는 호소력이 남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혹시 문학 이론이나 미학 전공자가 있다면, 이 책은 반드시 필독서이다.

아래 글은 2000년대 초반에 이 책에 대한 감상을 간단하게 적어놓은 것이다. 서가에서 책을 꺼냈으니, 당분간 이 책을 다시 읽어봐야겠다.
 


- 오래된 감상 -


누군가가 속물적으로 포스트모던을 이해하고 그것을 찬양하거나 그것을 배격한다면, 찬양하는 자에겐 ‘당신이 얼마나 근대적인 줄 아시오?’라고 물을 것이며 배격하는 자에겐 ‘당신이 얼마나 포스트모던적인 줄 아시오?’라고 물을 것이다. 미래가 우리에게 아무런 확신도 던져주지 못하고 우리의 이성이 고작 인간 이성의 한계 만을 드러낼 때,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일 때, 그 순간을 우리는 ‘포스트모던’의 시작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그러니 ‘포스트모던’은 ‘흄’부터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러나 아주 불행하게도 한국의 그 어느 것도 포스트모던적이지 않다. 지금 여기에서 포스트모던을 떠들고 있는 나는 ‘시대착오’이며 포스트모던적이라고 평가되는 작품은 한결같이 얼치기 패러디이거나 미숙아, 혹은 무뇌아적 산물일 뿐이다. 아마 이것을 정치경제학적으로 보자면 지배계급의 농간에 의한 미적 탈근대의 수용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80년대를 무겁게 짓눌렀던 정치경제학적 거대담론을 몰아내기 위한 전술이었고 지식인들의 자포자기적 반응들이 한국적인 탈근대적 상황을 만들어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상업주의에 대한 찬양이었으며(역겨운 문화담론들을 보라!) 허풍만 심한 (상업)영화르네상스를 불러왔고 돈에 혈안이 될 것이 뻔한 문화산업들에게로 대중의 시선을 돌리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가 지금 포스트모던을 향해가고 있음을 부정하지 못한다. 한스 로베르트 야우스가 ‘아직 근대를 끝나지 않았다’라고 말하는 몇 명의 근대주의자들에게 조심스럽게 탈근대를 옹호하고 있는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가치있는 저작일 것이다. 이 글에서는 책의 세부 내용은 다루지 않겠다. ‘루소에서 칼비노까지’라는 부제를 붙인 이 책의 세부를 다룬다면 이 글은 꽤 길어질 것이다.

참고로 누군가가 ‘주체가 죽었다’라고 단언했을 때, <‘주체가 죽었다’라고 말하는 자는 과연 누구인가?>라고 되묻는다면 그 물음은 포스트모던의 딜레마를 지적하는 매우 효과적인 것이 될 것이다. 그러니 포스트모더니즘을 말할 때, 그것이 ‘20세기판 허무주의’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할 것이다.

그리고 ‘문학비평’이 어떤 것인가를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은 매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적어도 문학비평가라는 수식어를 가지려면 이 정도의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만 할 것이다.


* 책 표지에 실린 한스 로베르트 야우스의 소개를 옮긴다.

수용 미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야우스는 1921년 독일에서 출생하여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프루스트 연구로 박사학위를, 중세 문학 연구로 교수 자격을 취득했다. 뮌스터 대학과 기센 대학을 거쳐 1966년부터 콘스탄츠 대학에 재직하면서 대학 개혁 프로그램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특히 문예학 분야에서 이른바 '콘스탄츠 학파'를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연구 집단인 '시학과 해석학'의 일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수용미학의 선언문'으로 불리는 '문예학의 도전으로서의 문학사'는 16개국 언어로 번역될 정도로 커다란 국제적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이때부터 그는 '수용미학'의 선구자로 불린다. 1987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도전으로서의 문학사'(1970), '중세 문학의 고대성과 현대성'(1977), '미적 경험과 문학적 해석학'(1977/1982) 등 일련의 저서를 출간했으며, 퇴임 후에도 왕성한 연구 활동을 통해 '미적 현대와 그 이후 - 루소에서 칼비노까지'(1989), '이해의 길들'(1994) 등 수준 높은 연구물들을 발간했다. 1997년 3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신고

Comment +0

어둠이 내렸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알 턱도 없었고 알기도 싫었을 것이며 알려는 의지도 없었다. 이미 선 긋기는 시작되었다. 저 땅은 아무리 노력해도 닿지 못하는 곳.....

웹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필립 솔레르스(Philippe Sollers)가 사드(Marquis de Sade)에 대해 인터뷰하는 영상을 보았다. 영상 속에서 한국에서 사드의 책을.....

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

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 This Craft of Verse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박거용 옮김, 르네상스 우리는 시를 향해 나아가고, 삶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리고 .....

대학로 그림Grim에서

"글을 쓰지 않아요?"라고 묻는다. 매서운 바람이 어두워진 거리를 배회하던 금요일 밤, 그림Grim에 가 앉았다. 그날 나는 여러 차례 글을 쓰지 않냐는 질문을 받았다. 가끔.....

아우스터리츠Austerlitz, W.G.제발트Sebald

아우스터리츠 Austerlitz W.G.제발트(지음), 안미현(옮김), 을유문화사 병상에 누워, 안경을 쓰지도 못한 채, 제발트의 <<아우스터리츠>>를 읽었다. 병상에서의 소.....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 다나카 준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 다나카 준(지음), 김정복(옮김), 휴머니스트 일본인 저자가 쓴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이라니! 놀랍기만 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The Sense of An Ending, 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The Sense of An Ending 줄리언 반스(지음), 최세희(옮김), 다산책방 나는 우리 모두가 이러저러하게 상처받게 마련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

쓸쓸한 커피숍

2016. 06. 10 오늘도 기다림은 이어진다. 그리움은 늘 그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다....

왕따의 정치학, 조기숙
왕따의 정치학, 조기숙
미학입문, H.오스본
미학입문, H.오스본
선대인의 빅픽처, 선대인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