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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서양미술사 +25





그림을 본다는 것 Looking at pictures 

케네스 클라크Kenneth Clark(지음), 엄미정(옮김), 엑스오북스, 2012년 (원저는 1972년에 출판)






나는 그림이 주는 기쁨을 더 많이 더 오랫동안 느낄 수 있으려면 그림에 관해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 - 7쪽 



그림을 즐기기 위해선 배워야 한다고 케네스 클라크는 말한다. 우리가 뭔가 배울 땐, 성적 때문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서이다. 배움을 통해 우리는 세상의 비밀을 조금 더 알게 될 것이고, 과장해서 말하자면 세상은 빛으로 가득 찰 지도 모른다. 아마 중세를 지나 근대를 향해 가던 서유럽인들이 느꼈던 감정이 바로 이랬을 것이다. 배우고 알아가는 과정은 어두운 세계를 환하게 밝히는 것과 같다. 



우선 나는 그림을 하나의 전체로 바라본다. 그림을 보기 시작한 뒤 한참 후에야 나는 비로소 내가 의식하는 대상이 지닌 일반적 인상을 알아차리게 된다. 일반적 인상이란 색조와 부분, 형태와 색채의 관계에 좌우된다. 일반적 인상이 주는 충격은 즉각적이다. (...) 그러므로 최초의 충격 다음에는 그림의 부분 부분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색채는 조화로운지, 소묘는 대상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렸는지, 세부를 살펴보고 즐기라는 말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화가가 의도했던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 8쪽 




하지만 즐기기 위해 배운다는 것이 우리들에게 낯선 건, 그만큼 배운다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아온 탓일 게다. 의외로 미술에 대한 책은 잘 읽히지 않고, 잘 팔리지도 않는다. 갤러리가 많긴 하지만, 일반인들의 방문은 뜸하고, 전시를 열지만, 작품이 팔리지 않고 팔리지 않으니, 작품 가격은 비싸진다. 거기다 위작 논란까지. 그만큼 미술에 대한 진입 장벽은 높기만 하다. 그리고 현대 미술이든 고전 미술이든 다 어렵다고 여긴다. 심지어 현대 미술은 '난해한'이라는 수식어가 그냥 자연스럽게 붙어다닌다.


실은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도 어렵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이 책은 서구에선 중고등학생들이 읽는 책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국에선 대학생들도 어렵다고 하니, 한국 사람들의 책 읽기 수준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밖에.


이런 면에서 이 책도 어려울 지 모르겠다. 하지만 케네스 클라크는 읽는 이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그림을 보는 것의 의미를 새삼 물으며 서양미술의 역사에서 알아두어야만 할 예술가들과 대표작품을 다룬다. 초심자에겐 그림 보는 재미를, 이미 서양미술의 역사에 대해 이해를 갖진 사람들에겐 케네스 클라크만이 알려줄 수 있는 통찰이 흥미로울 것이다. 


책에선 더 많은 예술가들을 다루고 있으나, 여기서는 3명의 작가들에 대한 케네스 클라크의 생각을 옮겨본다. 



엘 그레코El Greco 



16세기 후반 최고의 작가는 단연코 엘 그레코다. 하지만 그는 수 백년 동안 잊혀져 있던 작가였다. 근대 시대의 매너리즘(마니에리스모) 양식에 대한 경멸은 16세기 후반 작가들의 무시와 천대로 이어졌다. 그리고 20세기 초 엘 그레코는 극적으로 부활한다. 


그럼에도 엘 그레코를 근대 회화의 선구자로 간주했던 1920년대의 비평가들은 옳았다. 첫번째는 엘 그레코가 비사실적인 두 양식, 곧 비잔틴과 마니에리스모 양식을 거치며 화가로서 입지를 다졌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형이상학적 사고 방식을 타고난 덕분에 고전주의적 전통의 주된 전제를 거부한 최초의 유럽화가였기 때문이다. 엘 그레코는 화면의 깊이보다 표면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 151쪽 



엘 그레코,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The Disrobing of Christ)

Oil on canvas, Height: 285 cm (112.2 in). Width: 173 cm (68.1 in). 

1577 ~ 1579, 톨레도 대성당 



표면을 중시했다는 표현과 함께 엘 그레코가 "미켈란젤로는 훌륭하지만 그림 그리는 법을 모른다"라고 말했다는 건 참 흥미롭다. 깊이 대신 표면을 중시할 때, 고전적 원근법적 세계는 흔들린다. 중심은 사라지고 모든 것이 균등해진다. 확고한 질서 대신 흔들리는 마음이 전면에 부상한다. 그래서 엘 그레코의 성상화들이 우리 마음을 울리는 것이다. 십자가 앞에서 흔들리는 마음을 엘 그레코는 알고 있었다. 



장 앙트완 와토Jean-Antoine Watteau





장 앙트완 와토(Jean-Antoine Watteau), 제르생의 간판(The Shop Sign of Gersaint)

Oil on canvas, 163 cm × 308 cm (64 in × 121 in)

1720-1, Charlottenburg Palace, Berlin

이미지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L%27Enseigne_de_Gersaint 



신고전주의가 자크 루이 다비드라는 걸출한 천재가 만든 양식이라고 한다면, 회화에서의 로코코 양식은 장 앙트완 와토의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와토의 이미저리는 그가 처음으로 전시했던 그림부터 유행하기 시작해 향후 100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심지어 와토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 후에 태어난 후배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1732 - 1806)는 여전히 와토의 정원, 말하자면 그의 이미저리를 활용했다. - 127쪽 



와토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우울해진다. 절반은 포기하고, 절반은 포기한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노는 것같다고 할까. 그 애상은 로코코 시대 전반을 물들였다. 한 시대(토지 귀족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부르조아지의 시대)가 오고 있었다. 계몽주의와 로코코는 같은 시대의 양식이다. '제르생의 간판'은 와토가 얼마나 대단했는가를 새삼 느끼게 해줄 것이다. 위키피디아 링크를 타고 들어가면 작품의 디테일을 확인할 수 있다. 




들라크루아 Eugène Delacroix




Eugène Delacroix, The Entry of the Crusaders into Constantinople 

oil on canvas, 81 × 99 cm (31.9 × 39 in)

루브르 박물관 

이미지출처: https://fr.wikipedia.org/wiki/Entr%C3%A9e_des_Crois%C3%A9s_%C3%A0_Constantinople 




오히려 그는 예술은 상상력을 비추어 사건을 재창조하므로 시의 특질을 띤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들라크루아는 아마도 매우 많은 이류화가들을 미혹했던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BC 65 ~ BC 8)의 조언, '시 같은 그림 ut pictura poesis'으로 성공을 거두었던 마지막 유럽 화가였을 것이다. - 93쪽 



H.W. 잰슨(서양미술사가)이었던가, 낭만적 고전주의와 고전적 낭만주의라고. 다비드가 낭만적이고 들라크루아가 고전적이라고. 어쩌면 케네스 클라크의 견해에 힘입어, 들라크루아는 전통적 의미에서의 마지막 고전주의자일 지도 모르겠다. 낭만주의였으나, 그의 마음은 확고하게 고전적이었다. 그는 작품을 통해 스토리를 전달하였으며, 의미를 담아냈다. 그런 양식으로 그림을 그렸던 위대한 예술의 마지막 장을 장식한다. 그 이후 나온 아카데미 화가들, 제롬이나 부게로 같은 이들은 무식하게(성실하게) 그림만 그린 이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시대가 어떻게 변하는지 몰랐으며, 그 변화를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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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

다나카 준(지음), 김정복(옮김), 휴머니스트 






일본인 저자가 쓴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이라니! 놀랍기만 했다. 더구나 꼼꼼한 연구서의 면모까지 지닌 이 책은 아비 부르부르크 생애 뿐만 아니라 주요 연구 성과, 그것에 대한 평가, 그리고 '미술사 연구'의 시작이 어떠했는가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 두서없는 리뷰를 양해해주길 바란다. 다나카 준의 꼼꼼한 서술을 따라 읽기에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겨우 다 읽은 후 쓰는 이 리뷰는 바르부르크의 주된 테마를 언급하는 데 그칠 것이고, 이 소개가 비전공자에겐 다소 재미없고 전문적이라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이 책은 전문 서적이다. 


인문학의 꽃은 철학이 아니라 역사학이며, 역사학 중에서도 미술사학이 가지는 흥미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감히 말하고 싶지만, 책읽기 좋아하는 직장인이 하기엔 주제 넘는 짓이다. 다만 신화나 종교에 대한 편협한 도상학적 이해만을 바탕으로 미술 작품을 평하는 국내 필자들에게 하나의 도상을 둘러싼 다양한 역사적 배경과 흐름, 그 속에서 벌어지는 정신들의 결투 같은 것에도 관심을 기울였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사유공간을 만들어내는 분리 운동과 마술적인 결합 강박은 언어와 도상의 한가운데 양극적인 긴장 상태를 유발한다. 아테네와 알렉산드리아 사이에 펼쳐진 세계를 '유럽'이라고 부른다면, 양극성을 유발하는 언어와 이미지 속에 응결되는 것은 유럽 정신의 무시간적 심층이다. 다시 말하면 유럽이란 이 무시간적인 구조가 강요하는 마신들의 회귀라는 반복운동에 의해 지배받는 시공간이다. (67쪽) 



바르부르크는 '무시간적 심층'이라고 표현한다. 즉 도상들은 시대와 지역을 넘나들며 이동하고 번역되면서 끊임없이 되돌아오고 잔존한다. 그리고 그는 이를 두고 '무시간적'이라고 평한다. 그래서 그에게 르네상스란 고대, 특히 마신적 고대의 부활이었다. 


기들란다요의 초상화를 봉납 밀랍인형과 똑같은 수준에 놓는다는 것은 그것을 이른바 역사인류학적인 시선 아래에서 물신숭배의 측면을 지닌 종교의례의 일부로 파악하려는 것이다. (209쪽) 



Domenico Ghirlandaio (1449-1494) 

Adoration of the Shepherds

1485

Cappella Sassetti(Santa Trinita, Florence)  


그 당시 교회에는 실제 인물과 동일한 밀랍인형이 가득했으며, 일종의 풍습이었으며, '도상마술(圖像魔術)'이 된다. 


"이교적인 미신을 믿는 에트루리아인의 자손인 피렌체인들은 극단적인 형식의 이러한 도상 마술을 발전시켜 17세기에 이르기까지 세련되게 다듬었다. (...) 여기서 논의하고 있는 '도상 마술'은 자신과 비슷한 밀랍제 인형, 은제 인형을 성스러운 화상의 봉납품으로 바치는 풍습이다. 피렌체의 산티시마 아눈치아타 성당은 권력자나 신분이 높은 이국인에게 실물크기로 자신의 형상을 밀랍인형(봉납물, voti 피렌체 방언으로는 boti)을 생전부터 성당 안에 전시하는 특권을 부여했다."(206쪽 - 207쪽)



기를란다요의 작품이 지니는 과도한 사실성은 이런 밀랍 인형과 같은 역할을 회화가 수행했음을 뜻하기도 한다. '봉납물의 신비한 힘을 믿고 있었던 피렌체인들은 여전히 '원시적'이었으며, 봉납물은 반드시 본인과 확실히 비슷해야 했다'(213쪽) 



Cappella Sassetti(Santa Trinita, Florence)   



바르부르크가 보는 르네상스의 모습이었다. 그는 기독교의 세계로부터 고대가 어떻게 부활하는가를 도상에 대한 연구로 시작한 셈이다. 


바르부르크의 관심은 어디까지나 고대의 부흥과 함께 '훌륭한 유럽인'이 열어놓은 점성술을 비롯한 마술적 행위 속에서 고대 그리스적인 '인간성Humanitat'을 재발견하려는 계몽을 위한 싸움에 있었다' (46쪽) 




Achilles at the court of King Lycomedes. 

Early 3rd century AD. marble

H. 1.08 m (42 ½ in.), W. 2.3 m (90 ½ in.), D. 0.8 m (31 ¼ in.)

출처: commons.wikimedia.org


책에서는 스킬로스 섬의 아킬레스 도판이 실려있으나, 이를 구하지 못한 관계로 다른 아킬레스 도판을 실는다. 위 로마 후기의 부조 작품의 유려한 표현을 감상해보자. 


문제는 어디까지나 시나 부조, 회화에서 조형적으로 처리된 운동의 표현이다. 그들은 그 표현을 위해 종종 고대의 시나 미술 작품을 모방했다. 그들은 고대적인 것으로서 발견하고 강한 관심을 가진 것은 고대 예술에 나타난 격렬하게 움직이는 부속물의 세부적인 형태이다. 고대 예술에 대한 관심 자체가 부속물의 운동에 대한 흥미로 인해서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움직임을 나타내는 부속물이야말로 고대적인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고대의 부조를 모방한 소묘에는 원작에는 없는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이 그려진 것이다. (161쪽-162쪽)


그리고 아래 보티첼리의 '봄'을 보자. 보티첼레 작품에서 옷의 주름이나 머리 장식이나 스타일 등 부속물에 주목해 보면, ... 


보티첼리가 위치하고 있던 곳은 '고대'를 둘러싼 판타즘과 각성 사이, 15세기 피렌체의 현실에 대한 '개입'과 고대 예술이라는 꿈에 사로잡힌 '방심'의 틈새였다. 그것은 합리적인 '사려 깊은 생각'과 '상상력'에 의한 감정이입이 서로 부대끼는 공존 상태다. 이 '너무나 유약한' 화가에게 현저하게 나타난 '고대'라는 판타즘에 관심이 없었다면, 바르부르크가 박사학위 논문을 보티첼리론으로 썼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175쪽)  



Sandro Botticelli (1445-1510) 

Primavera 

1482, tempera

203 × 314 cm (79.9 × 123.6 in)

출처: commons.wikimedia.org


베버가 바르부르크의 논문에서 읽어낸 것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상업자본주의에 있어서 '경제 형식과 윤리적 생활양식'의 어긋남이었다. 이 모순은 프로테스탄티즘의 '직업윤리'에 의해 통합된다. 베버는 모순을 극복한 후, 자본주의적 에토스가 성립하는 메커니즘에 관심을 가진다. 이에 비해서 바르부르크는 상업자본주의라는 경제형식과 기독교적 생활양식의 긴장 관계를 고전 고대와 기독교의 대립 관계로 상징한 다음에, 이것을 조정할 수 있는 방법을 통합불가능한 이 양자의 분열 상태의 한복판에서 찾으려고 한다. (238쪽) 


도상 연구자로서의 바르부르크의 연구 방향은 분명했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몇몇 선배들 - 뵐플린, 부르크하르트 등 - 이 존재했지만, 바르부르크의 연구 방식은 거의 최초였다.  그는 서양미술 뿐만 아니라 사진이나 일상 생활에서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무시간적 심층에 속해 있는 '고대 도상들의 이동과 흐름'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고 이 연구의 최종판은 '도상 아틀라스 - 므네모시네' 기획으로 이어졌다. 


마신적 고대의 부활은 그동안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감정이입적인 이미지 기억이 지닌 어떤 양극적인 기능에 의해 생긴다. 우리는 파우스트 시대에 살고 있다. 거기서 근대의 과학자들은 - 마술적 실천과 우주론적 수학 사이에서 - 자기와 대상과의 사이에 '진지한 생각'의 '사유 공간'을 획득하려고 노력했다. 아테네는 확실히 다시 알렉산드리아에서 재탈환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 아비 바르부르크, 1920년 (65쪽) 




- 일본 원서.  



- 아비 바르부르크 




Aby Warburg, Mnemosyne Atlas, Panel 79 (“The Eucharist”), 1929



"시간의 거울에 비친 '고대'를 재현한 이미지의 다양함은 각 시대의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인 선택경향을 보여주며, 그것에 의해서 소망이 형성되고 이상을 설정하는 집합적인 영혼이 세상에 명백하게 드러난 것입니다. 그러한 영혼은 구체화로부터 추상화로, 또는 그 반대로 향하는 주기적 왕복운동으로 인간이 절제Sophrosyne를 추구하며 벌여야 하는 싸움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309쪽) 



"고대풍의 역동적인 형태는 최대의 긴장상태에서 전승되는 것인데, 그것을 모방하고 흉내(상기)내는 자의 수동적 또는 능동적 에너지와의 관계에서 무극화된다. 시대와 접촉하고 나서야 비로소 양극화가 형성된다. 이것은 본래의, 고대에 있어 의미의 근본적인 역전(전도)에 이르는 것일 수도 있다." (309쪽) 


1929년 1월 19일 로마에서 므네모시네의 일부를 이루는 도상들로 바르부르크는 '기를란다요 공방에 있어서 고대 로마'를 테마로 강연을 했다. 아마 그의 논문이나 글보다 그의 강연은 수 배는 더 흥미진진하고 놀라웠을 것이다. 실제 도상을 앞에 두고 이루어지는 강의는 다양한 이미지들이 서로 얽히고 교차되면서 몇 가지의 주제나 이야기로 순식간에 수렴되기 때문이다. '맨 앞자리에 앉아서 바르부르크에게 개인 지도를 받듯이 강연을 들었던 케네스 클라크는 그 체험이 자신의 인생을 바꿨다고 회상한다.'(314쪽) 



점성술 그림과 정념정형은 고대의 재생을 경유한 변화의 기록이며, 바르부르크는 평생동안 탐구한 이 두 가지 테마를 도상 아틀라스의 계획으로 집대성하고자 한 것이다. (310쪽) 


*  *


한 때 미술사학자가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진 바 있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보자면, 아비 바르부르크는 평생 아마추어(*) 연구자였다. 다만 그의 집안이, 그의 형제들이 세계적인 은행을 가진 유대인 가문이었고, 그는 형제들에게 재정적으로 의존했다는 점에서 그의 연구는 어려움이 없이 이루어졌고, 한동안 정신병으로 고생했지만. 한국에서의 아마추어 연구자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하긴 요즘 같은 시기에, 국내든 해외든 석사나 박사로 미술사학을 전공하는 것은 스스로 백수가 되겠어요 라고 선언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어버렸으니. 


바르부르크가 연구하고 수집했던 책들이 있었던 도서관은 현재 바르부르크 연구소가 되었다.  


이 책은 전문 연구서이며 평전이다. 다만 르네상스 미술이나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흥미로울 수 있다. 일반 독자가 읽기에는 꽤 난이도 있을 지 모르는 책이니, 선뜻 추천하기 어렵다. 다만 이 정도의 평전이 일본 연구자에 의해, 일본어로 씌여졌다는 점에서 일본 인문학의 수준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새삼 부러움을 금할 수 없다. 



* 혹시 '아마추어'라는 단어에 대해 오해가 있을까 덧붙인다. 여기에서 아마추어라는 단어를 쓴 것은 그가 학교에 적을 두지 않고 자유로운 연구활동을 했다는 데에 강조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다시 읽어보니, 아마추어가 자칫 바르부르크의 학문 세계를 낮게 평가하는 듯 하기도 하다. 하지만 바르부르크는 서양미술사에 있어 도상학적 연구의 시초를 닦았으며 이후 그의 영향을 받은 일군의 미술사학자들을 바르부르크 학파라고도 한다. 여기에는 파노프스키(Erwin Panofsky), 작슬(Fritz Saxl), 빈트(E.Wind) 등이 있다.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바르부르크 연구소의 네 번째 소장을 지냈던 이는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에른스트 곰브리치였다. 다소 비약하자면, 20세기 거의 대부분의 미술사학자들이 아비 바르부르크의 직, 간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학교에 적을 두지 않고 자유로운 연구 활동을 할 수 있었던 아비 바르부르크와 달리 한국에서의 상황은 여의치 않아 보인다. 실은 이를 드러내고 싶어서 나는 의도적으로 '아마추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 지도 모르겠다. 특히 인문학의 경우는 그 상황이 더 열악해지는 듯 싶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프로라는 의식으로 인한 지적 불성실함보다는 아마추어적인 지적 열망이 더 필요한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뭐, 해답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 ㅡ_ㅡ;; 





- 곰브리치가 쓴 아비 바르부르크 평전. 


* 바르부르크 연구소 : http://warburg.sas.ac.uk/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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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가 요새.... 지하련님 추천 서적 읽다가 그지가 될판이긴한데 ㅋㅋㅋ 이 책도 땡기네여

  • 라보엠 2015.07.29 20:39 신고

    일본인 학자의 시각으로 본 바르부르크의 생애도 궁금하군요. 제가 지내는 곳에선 이 책을 구하기가 쉽지 않으니 먼저 곰브리치가 쓴 책을 찾아봐야겠습니다.

    • 저자는 곰브리치가 쓴 평전이 지니는 약점을 이야기하며 그 부분부터 서술해 내갑니다. 그래서 두 권 다 읽으면 좋을 듯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난 다음 므네모시네 관련 책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일본에선 므네모시네 전시를 했더라고요. 이런 걸 보면 일본이라는 나라의 저력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곰브리치의 평전을 위시리스트에 올려놓았으나, 언제 읽게 될지.. ㅎㅎ


큐비즘에 대한 세잔의 영향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 바가 없었다. 현대미술에 대한 세잔의 영향은 너무 거대하기 때문에, 큐비즘 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현대 미술가들은 세잔의 후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아마 내가 현대 미술에 대한 긴 글을 쓴다면, 뒤샹과 세잔만으로 글의 초반을 장식할 것이다. 뒤샹은 현대 미술을 난장판으로 만든 이라면, 세잔은 현대 미술을 견고하게 만든 이다. 과거와 단절하고 현대 미술이 끊임없는 혁신을 감행하게 된 계기는 뒤샹이고, 현대 미술이 과거의 역사와 단절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지며 현대 미술 또한 서양 미술사의 한 챕터임을 끊임없이 환기시키에 한 이가 있다면 그가 바로 세잔이 될 것이다. 


그는 현대 문화의 내향성을 최초로 들어내 보이며, 우리 마음 속의 기하학에 주목했다. 고전적 현대, 혹은 모더니즘을 새로운 고전주의라고 불리게 만든 예술가이다. 그리스 고전주의, 르네상스 고전주의가 외부에 존재하는 기하학을 찾았다면, 세잔은 우리가 본질적으로 기하학적임을 드러냈다. 


큐비즘은 세잔의 직접적 영향 속에서 기하학주의를 전면에 드러낸다. 세잔 이후 모더니즘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기하학주의로 예술을 지배한다. 아마 연구자들은 프랑스의 누보 로망이라든가, 전후 실존주의 문학이라 이후의 문학들 속에서도 기하학주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아래 피카소와 세잔의 작품을 한 번 비교해보라. 얼마나 닮아 있는지. 

(나에게 여유가 된다면, 이와 비슷한 음악과 문학 작품을 찾아 나열해볼 수 있을 텐데.. 아직 그럴 여유가 없구나.) 



Pablo Picasso, Bread and dish with fruits on the table, 1909, oil on canvas, 164 x 132.5cm, Kunstmuseum, Basel 





Paul Cezanne, Still Life, oil on canvas, 60*73cm, 1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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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문명 Civilisation 

케네스 클라크(Kenneth Clark) 지음, 최석태 옮김, 문예출판사, 1989년 

(현재 절판) 




책을 읽어나가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케네스 클라크Kenneth Clark. 이미 20세기의 저명한 미술사학자였지만, 그는 미술의 역사 뿐만 아니라 철학, 문학, 건축, 음악을 아우르면서 서양 문명의 역사를 개괄하고 있었다. 


가령 그는 장 안트완 와또와 존 키츠, 그리고 모차르트를 함께 비교하며 설명한다. 아래 그가 인용한 존 키츠의 시 구절을 옮긴다. 



Ay, in the very temple of Delight   

Veil'd Melancholy has her sovran shrine, 

Though seen of none save him whose strenuous tongue 

Can burst Joy's grape against his palate fine;  


아아, 환희의 신전 바로 그 안에서 

베일에 가린 우울은 그녀만의 자유로운 성지를 가진다. 

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지만, 오직 강렬한 혀로 

기쁨의 포도를 예민한 입 안에 넣고 터뜨릴 수 있는 자를 제외하고는.


- 키츠Keats, <우울에 부치는 송가 Ode on Melancholy> 중에서 

(이 책의 215쪽에서 옮기나, 문학 인용문에 대한 번역은 신뢰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수준이다. 이에 직접 번역했다. 뭐, 나도 신뢰할 수준이 안 되겠지만. 이에 원문도 함께 찾아 옮긴다.) 



케네스 클라크는 '와토보다 더 '예민한 입(palate fine)'을 가진 사람은 없었습니다'라고 말한다(번역서에서는 '민감한 입'으로 옮기고 있다). 대강 이해할 순 있으나, palate가 미각이나 감식력 등을 뜻하기 때문에, '탁월한 심미안' 정도로 받아들으면 된다(이럴 때 원문을 찾아 읽는 것이 좋다). 



와토가 세상에 나온 것은 18세기 초의 일이었습니다. 그의 걸작 <시테르 섬에의 순례 Pilgrimage to Cythera>는 1712년, 루이 14세가 아직도 생존 중인 시대에 그려졌습니다. 이 그림에는 모차르트 오페라에서 경험할 수 있는 특유한 경쾌함과 예민함이 있으며, 또 인생의 극적 요소를 파악하는 감각이 있습니다. 비너스 섬에서 한 나절을 보내고, 이제 귀로에 선 이들 남녀의 미묘한 관계는 <여자는 다 이런 것Cosi Fan Tutte> 속에서 자신에 넘친 연인들이 출발에 앞어서 전개한 무아 상태의 흥분을 연상시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모차르트의 그 오페라는 70년 이상이나 뒤에 작곡되었습니다. (215쪽) 




Jean-Antoine Watteau, Pilgrimage to Cythera



지금도 그러한지 모르겠으나, 내가 경험한 한국의 인문학자들이나 인문학 전공 교수들 대부분이 가진 편협한 전문성 - 자신의 학위 논문 주제만 딱 알고 나머지는 전혀 모르는(심지어 인문학 전공 교수이면서 서양 철학사 한 권 제대로 읽어 내지도 못하는 지적 무능함까지 갖춘) - 과 대비되는 케네스 클라크의 이 책은, 1969년 그가 쓰고 직접 출연한 영국 BBC 다큐멘터리 <문명 Civilisation>의 방송 대본을 책으로 옮긴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방송 대본이라고 낮게 치부하기에는 책은 의외로 탄탄하고 폭넓은 주제를 아우르면서 인문학과 서양 예술에 깊은 관심을 가진 독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쉴새없이 자극한다. 


실제 다큐멘터리가 13부로 나누어 방송된 것처럼, 이 책도 13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구사 일생The Skin of Our Teeth>로 시작해 13장 <영웅적인 물질문명Heroic Materialism>으로 끝나는 이 책은 중세부터 19세기말, 20세기 초까지의 서양 문명을 탐구한다.


대부분의 지성사 책들이 철학이나 사상에 기울어져 서술되는 것과 달리, 이 책은 압도적으로 건축과 시각 예술 작품에 많은 부분이 할애되어 있다. 그래서 책에는 다수의 미술 작품 도판이 있으며, 해당 작품에 대한 상세한 해설을 읽을 수 있다. 



(13부 전체를 볼 수 있으나, 아, 한글 자막은 없다. 짧은 듣기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는 다큐멘터리다.) 



서양 미술사에 대해선 전문가 수준이라고 자부하는 나에게도 이 책은 중세 후기, 근세 초기 북유럽 미술에 대한 설명은 무척 유용했다. 또한, 가령 이런 문장들은 흥미로웠다. 


중세와 르네상스의 건축이 현대 건축보다 훨씬 나은 이유의 하나는 그 건축가가 예술가였다는 점에 있습니다. (...) 본직이 아닌 모든 건축가들 중에서 미켈란젤로는 가장 모험적이며, 고전주의적 원칙이나 기능면의 여러 가지 요구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덜 제약받았습니다. 그것은 그가 실제적이 아니어서가 아닙니다.(...) 아마도 미켈란젤로만이 미완성의 커다란 골치덩어리였던 성 베드로 대성당을 정돈할 만한 정신적 정력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결국 그의 독자성으로 이 건물을 혼연일체의 통일체로 만드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164쪽 - 165쪽) 


 

케네스 클라크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알브레히트 뒤러를 비교하며, '뒤러는 아주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였스니다. (...) 그에게는 우선 강렬한 자의식과 과도한 허영심이 있었습니다'(147쪽)라고 말한다. 



Raphael, Portrait of a Cardinal, oil on wood, 79cm*61cm, about 1510 


라파엘로의 어느 추기경은 '최고의 교양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균형과 자제심을 갖춘 사람'으로 느껴지지만, 


오스발트 크렐은 지금 막 히스테리를 일으킬 것같습니다. 저 노려보는 듯한 눈, 자의식이 강한 내성적인 얼굴, 얼굴의 볼륨을 불안정하게 함으로써 뒤러가 아주 잘 파악한 저 불안, 이건 얼마나 독일적일까요? 그리고 독일 이외의 나라였다면 또 얼마나 이상한 일이었을까요? (140쪽) 



Albrecht Durer, Portrait of Oswolt Krel, oil on panel, 50cm * 39cm, 1499



우리가 알고 있다고 여겨지는 북유럽 르네상스 미술의 양상은, 의외로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이 시기(15세기와 16세기)의 건축과 미술은 고딕에서 국제 고딕, 혹은 후기 고딕으로 이어지면서 동시에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기법들을 받아들여 양식 상으로는 르네상스로 향하는 듯 여겨지나, 정신적으로는 중세에서 바로 종교개혁으로 이어진다. 


말이 종교개혁이지, 이는 성직자의 차원에서였지, 실제 일반 대중에게서는 일종의 반달리즘으로 표현되었다. 이 시기에는 16세기 이탈리아 매너리즘의 경향까지도 보이는 바, 16세기 북유럽 미술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와는 판이하게 다른 미술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케네스 클라크는 뒤러의 작품을 저렇게 설명한다. 


이 책의 몇 부분을 옮기며 설명하다 보니, 일반 독자에게 이 책은 꽤나 까다롭게 여겨질 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이 앞선다. 이미 절판된 책이니, 구하기는 무척 어려울 것이고, 도서관에서도 찾기 쉽지 않아 보인다. 또 번역된 문장들 상당수가 비문들이어서 이 부분에 까다로운 독자들은 화를 낼 만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수준의 책을 한글로 접하긴 어려운지라, 독자들에게 과감하게 추천한다.


(또는 이 책의 번역서가 새로 나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생생한 컬러 도판들과 함께.)  



Amazon Link : http://www.amazon.com/Civilisation-Personal-View-Kenneth-Clark/dp/B0016XQ7LQ/ref=sr_1_5?s=books&ie=UTF8&qid=1410690328&sr=1-5 




예술과문명

케네드클라크저 | 최석태역 | 문예출판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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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보엠 2015.07.24 19:51 신고

    북유럽 르네상스 미술의 행보는 정말 복잡해서 공부할 부분이 많아요.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기도 하고 또 반대로 이탈리아에 회화적 영향을 주는 게 보이니 이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에겐 기쁜 일일까요? 저는 반종교개혁이라고도 불리는 카톨릭 종교개혁 시대의 북이탈리아 회화와 기억술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 학생인데, 추천해주신 클락크의 다큐는 꼭 볼게요. 시작페이지에 저장해두었어요. 매일 한 편씩 보려고 합니다. 추천 고맙습니다.

    • 16세기는 정말 흥미로운 시기입니다. 16세기 초반 이탈리아는 르네상스 절정기였으나, 북유럽은 이탈리아와 비교해보면 너무 경직되어 있지요. 그리곤 곧바로 종교개혁이 일어납니다. 마치 르네상스 인문주의를 건너뛰고 곧바로 근대로 뛰쳐나가는 듯합니다. 제대로만 공부한다면 현대, 그리고 앞으로 오게 될 어떤 시대에 대한 무수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 (아마 제가 계속 공부를 했더라면 그 시대를 열심히 공부했을 텐데 말이죠. ㅎㅎ )


카메라 루시다는 하나의 광학 장치이며, 카메라 옵스큐라는 일종의 광학 현상을 이야기한다. 원래 이 글은 좀 길고 자세하게 적을 생각이었으나, 그럴 시간이 좀처럼 생기지 않는 터라, 대강 정리해보기로 한다. 


카메라 루시다는 광학자이면서 물리학자, 화학자 였던 윌리엄 하이드 울러스턴(William Hyde Wollaston)이 발명한 광학 장치이다. 일종의 드로잉 보조 도구로, 사진이 발명되기 전까지 무척 활발하게 사용되었던 장치다. 프리즘에 135도 각도의 반사면 두 개를 설치하여 비치는 이미지를 관찰자의 눈에 전달하는 장치였다. 


출처: 위키피디아 


실제로 그림의 초안을 잡거나 디테일한 부분들을 보다 정확하게 잡아내기 위해 자주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것도 일종의 도구인지라, 어느 정도의 연습과 숙련이 필요했다. 아래 사진을 보라. 카메라 루시다를 활용해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를. 이렇게 초안을 잡고 그 위에 보다 정확하고 자세한 드로잉과 페인팅을 한다. 




출처: 위키피디아 



실제 카메라 루시다의 모습이다. 지금도 구할 수 있다. 꽤 정교하게 생기지 않았는가. 




출처: http://perspectiveresources.blogspot.kr/2012/03/how-to-use-camera-lucida.html  



카메라 루시다를 활용할 경우, 위 사진처럼 물체의 정확한 길이나 비례, 위치나 각도를 잡을 수 있다. 이것은 19세기 초에 발명되었고 상당히 많이 통용되었다. 그렇다면 카메라 루시다를 이용한 화가들와 그렇지 않은 화가들의 차이는? 큰 의미 없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지금 사진기를 활용하는 화가와 그렇지 않은 화가를 구분지어 가치판단하려는 것과 동일하다. 위의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실제 작품성을 결정짓는 것은 카메라 루시다를 모든 화가들이 사용했다고 해서 진짜 재능은 카메라 루시다와는 무관한 것이었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기원전 아리스토텔레스도 언급한 광학적 현상이다. 방을 어둡게 하고 창 틈의 작은 구멍으로 외부에서 빛이 들어오도록 하면, 외부의 상이 거꾸로 벽면에 비치는 현상이다. 바로 아래처럼. 


abelardo morell : ‘camera obscura’ (photography)

The Chrysler Building in Hotel Room, Camera Obscura image

gelatin silver print, 1997 

website : http://www.abelardomorell.net/photography/cameraobsc_01/cameraobsc_01.html 



아, 이걸 사진 작품의 소재로 이용하는 사진가가 있을 줄은 나도 몰랐다. 그런데 이건 카메라 루시다보다 더 사용하기 어려워서 대단한 인내를 요구했음에 분명하다. 아래 이미지를 한 번 보라. 




출처 : http://etc.usf.edu/



아휴, 이걸 어떻게 그리고 있을 것인가. 일반적으로 화가들은 어두운 방 안에 있고 모델이나 그림의 소재가 되는 피사체는 밝은 바깥에 위치하여 아래와 같이 벽면에 비치도록 하였다. 그리고 당연히 벽면에 비치는 피사체는 거꾸로이고. 하지만 초상화라면 얼굴의 윤곽 - 눈, 코, 입, 턱선 등 - 만이라도 스케치해놓으면 작업은 매우 수월해진다. 



출처: http://blog.staedelmuseum.de/verschiedenes/techniken-der-fotografie-die-camera-obscura-teil-210 



그런데 이런 카메라 옵스큐라를 경험할 수 있는 도구는 쉽게 만들 수 있다. (아, 이런 걸 왜 미술 시간에 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했는데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 아래는 카메라 옵스큐라를 볼 수 있는 도구를 만드는 법이다. 

출처: http://galleryhip.com/how-to-make-camera-obscura.html 



그리고 이건 실제로 만든 샘플. 



출처: http://galleryhip.com/how-to-make-camera-obscura.html  



카메라 루시다, 카메라 옵스큐라와 미술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명화의 비밀>>을 보면 보다 자세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도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진짜 위대한 예술가들은 달랐다는 점이다. 결국 도구는 도구일 뿐이다. 


이 글을 쓰면서 카메라 루시다를 찾아보니, 아마존에서는 몇백불이면 구할 수 있다. 혹시 이런 도구를 통해 드로잉을 한다는 것을 경험해보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그런데 요즘에는 사진이 더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어서. (참고로, 인상주의 대가 끌로드 모네도 카메라를 들고 다녔다. ) 



LUCY Drawing Tool: Another Camera Lucida from the Makers of LUCID-Art  (아마존으로 연결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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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 철학으로 읽기

조중걸저 | 한권의책 | 2013.03.04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몬드리안의 <구성>은 이러한 이념의 회화적 대응물이다. 거기에는 어떠한 종류의 재현적 요소도 없다. 그것은 서로 단지 네모들의 집합일 뿐이다. 세계는 결국 그와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우리의 추상적 창조물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이렇게 되어 모방으로써의 예술은 완전히 종말을 고한다. 이제 창조로써의 예술만이 남게 되었다.(307쪽) 



이렇게, 묵시록적으로 끝나는 이 책은 단순히 서양미술사에 대한 소개나 이해로만 머물지 않는다. 하나의 양식, 하나의 작품 속에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많은 것들이 숨겨져 있다. 그리고 그것은 도상학적 해석으로만 이해되지 않는다. 예술(혹은 예술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온전히 그 시대로 돌아갈 필요가 있고, 그 시대의 생각, 사고, 감정, 웃음과 눈물을 편견없이 받아들여야만 한다. 이 책이 때로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가 그 시대로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기 때문이고, 그 시대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대부분이 스스로의 마음을 어루만지지도 못하는데, 어찌 과거로 돌아가 그 시대 사람의 마음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예술은 그렇게, 옛날이나 지금이나 우리와는 다소 떨어진 어느 자리 쯤에 위치해 있고 지금의 예술가들이 변방에 있듯이(혹은 소수의 지지 속에서) 옛날에도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예술은 나와는, 우리와는 참 멀리 있는 듯 느끼기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 이 책은 서양 미술의 역사에 대한 폭넓고 깊이 있는 이해를 줄 수 있는 몇 되지 않는 책들 중의 한 권이 될 것이다. 그것도 한국을 떠나, 세계적으로.


이 책에 대한 서평은 굳이 필요없다. 그냥 사서 읽으면 된다. 비단 예술에 관심있는 이뿐만 아니라 인문학에 관심있는 이들 모두에게 추천한다.



함수의 도입과 바로크baroque 예술의 발생은 필연적인 관계를 맺는다. 함수는 이제 근대 세계에 있어서 중시되기 시작한 운동법칙, 곧 인과율의 수학적 표현이었다. 바로크 예술가들은 이러한 함수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한 것이다. 따라서 바로크 예술의 역동성과 X축의 독립변수의 연속적 변화에 따른 종속변수의 운동법칙은 같은 것이다. 이것은 카라바조Caravaggio의 그림 몇 점만 보아도 금방 확인되는 사실이다. 

형이상학적 해명이 없는 예술사는 도상학이나 도상학적 연대기밖에는 되지 않는다. 필자는 인간의 정신이 그 이상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형이상학적 해명은 필자의 신념이다. 고딕은 단지 건축적 기법의 문제가 아니며, 다위니즘Dawinism은 하나의 생물학적 가설의 문제만은 아니다. 어떤 심미적이거나 학구적인 업적도 동시대의 세계관에서 자유롭지 않다. 오히려 그것들은 동시대 이념의 선구이거나 반영이다. (서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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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잠을 깼다. 메일을 확인하고 앞날에 대한 걱정을 잠시 했다. 나이가 들수록 걱정만 늘어난다. 이 시대 탓인가, 아니면 나이가 들면 원래 그런 건가, 내가 유독 그런 건가, 이런 잡념들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 잡은 책이 조중걸의 <<서양미술사 철학으로 읽기>>다. 나에겐 일종의 복습이고 반복이 되겠지만, 돌이켜보니, 서양미술의 역사에 빠져 공부하던 시절이 행복했음을 깨닫는다. 



서양미술사 철학으로 읽기

조중걸저 | 한권의책 | 2013.03.04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아리스토텔레스가 군사전문가 테미스토클레스Themistocles를 '불구'라고 조롱하면서 전인적 인간을 이상으로 삼고, 신학자들과 과학자들이 다윈Charles Robert Darwin과 헉슬리Thomas Henry Huxley에게 야유와 경멸을 퍼부어대고, 현대의 강단 철학자들이 감상적이고 우아한 어구를 인용하며 학생들을 헛된 이념 속에 가둬두려 하는 것은 모두 그들이 기득권자이기 때문이고 또 자신들의 기득권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256쪽) 




몬드리안의 <구성>은 이러한 이념의 회화적 대응물이다. 거기에는 어떠한 종류의 재현적 요소도 없다. 그것은 단지 서로 다른 네모들의 집합일 뿐이다. 세계는 결국 그와 같은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추상적 창조물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이렇게 되어 모방으로써의 예술은 완전히 종말을 고한다. 이제 창조로써의 예술만이 남게 되었다. (307쪽) 




결국 '언어는 존재의 집'(하이데거)이고, '언어는 세계를 비추는 거울'(비트겐슈타인)이니, 추상적 기호 이외에 남는 건 없었다. 사랑도 그랬고, 그녀도 그랬던 셈이다. 그래서 보드리야르는 '시뮬라크르'가 실재를 압도할 것이라고 여겼던 것일까. 


어쩌면 내가 지금 진짜라고 믿는 것들은 다 시뮬라크르인지도 모르겠다. 실은 내가 나비였고, 인간이 된 꿈을 꾸는 것일게다. 정말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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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예술 : 형이상학적 해명 - 10점
조중걸 지음/지혜정원




현대예술 : 형이상학적 해명 

조중걸(지음), 지혜정원 




읽고 난 다음 서평을 쓰지 못하는 책들이 있다. 쓰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책에 대한 소개 대신 무조건 '읽어라'라고 하는 편이 낫고, 몇 문장의 인용은 도리오 책에 대한 누(累)가 되어 인용하지 않는 것보다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서평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에 대한 시도이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글이란 서문 일부의 인용 정도가 되지 않을까? 



언어학, 인류학, 기호학 등의 연구에 매달렸던 많은 사람들이 나름의 통찰에 준해 현대의 형성에 공헌했다. 그러나 이것들이 현대라는 전적으로 새로운 세계를 형이상학적으로 설명하지는 못한다. 그것들 역시도 현대의 한 현상일 따름이다. 이 책은 이러한 성취의 이면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형이상학적 세계관을 포착하려는 시도이다. 따라서 이 연구는 탐구의 탐구이며, 설명의 설명이다. 독특하고 때때로 도발적으로 느껴지는 낯선 현대 예술은 이러한 토대 위에서만 포괄적으로 설명된다. 궁극적인 도전에 의해서만 현대예술과 그 예술가들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다. 20세기의 새로운 언어학이나 분석철학이 현대를 설명하기보다는 현대가 오히려 새로운 학문들을 해명한다. 현대의 저변을 형성하는 형이상학에 대한 고찰만이 언어학이나 기호학의 본질적 의미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현대예술은 언어학이나 기호학과 병존한다. 모두가 현대의 형이상학 위에 기초한다. 모든 것은 물결 위의 포말이다. 하상엔 굴곡진 형이상학이 있다. 

현대에 시도된 다채로운 예술적 성취들은 당혹과 분노, 경멸과 외면의 대상이기도 했다. 현대예술은 감상자들을 소외시키며 발생했다. 사람들은 새로움이 가져다주는 이익에보다는 손해와 결여와 책임에 훨씬 민감하다. 과거는 금의 시대이고 현대는 타락한 시대이다. 현대는 그러나 모든 시대가 그렇듯이 가치중립적이다. 다른 어떤 시대, 다른 어떤 생활 양식이 현대에 비해 더 많은 가치와 미덕을 지닌 것도 아니었다. 현대에 이르러 더 많은 자율성과 독립성에 대한 요구가 증가한 만큼 증가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한 공평한 인식이 현대에 대한 이해를 높일 것이다. 혐오는 때때로 몰이해와 무지가 동기이다. 파라켈수스가 말한 바 "지식이 사랑을 부른다"

현대예술은 야유와 냉소를 동반한다. 진정한 예술은 감상적 위안을 거부한다. 깊이와 진실은 언제나 자기 부정을 전제하듯이 현대의 유의미한 성취는 전통과의 완전한 단절에서 출발한다. 전현대성에 젖은 시대착오적 센티멘탈리스트들이 현대에 대해 느끼는 거부감은 그러므로 이들의 자기부정의 부정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자기만족과 자기위안보다 더 역겨운 것도 없다. (8쪽 - 10쪽) 



아마 이 책을 읽을 독자들은 경험하게 되는 바, 어렵고 난해하게 여겨지는 문장들을 읽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고 심지어 감동까지 받을 수 있다는 것에 놀라게 될 것이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현대예술을 알게 되고, 철학 전반에 대해서, 나 자신과 우리 시대에 대한 깊이있는 공감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독서의 놀라움을 전해준다. 고작 책 한 권인데... 하지만 어떤 책 한 권은 어떤 이에게는 그동안 알고 있었던 모든 것들을 송두리째 뒤흔들어놓기도 한다. 바로 이 책, <<현대예술 - 형이상학적 해명>>처럼. 


그리고 이 책은 내가 아는 한에 있어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가장 정확하고 깊은 이해를 도울 수 있다. 실제 포스트모더니즘 작품, 특히 서사문학에서의 사례들 - 리처드 브라우티건, 움베르토 에코, 존 파울즈,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도널드 바셀미, 저지 코진스키, 마르케스 등에 이르는 문학작품들에 대한 이해와 분석은 한국어로 씌여진 바 최고의 책이다. 


강력하게 추천하는 바, 일독을 권한다. 아마 책을 펼치는 순간, 덮지 못할 것이며, 자연스럽게 두 세 번 읽게 되겠지만. 



책의 속 표지에 적힌 문구. '불안 속의 영혼들에게'. ... 어쩌면 이 책만큼 절망에 빠진 현대의 우리들에게 위안이 될만한 책이 또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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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를 정리하다가 메모 해놓은 것을 옮긴다. 수지 개블릭의 당연한, 하지만 종종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표현에 대한 지적이다. 보스와 초현실주의를 연결짓는 것은 설명의 용이성 탓이지, 실제로 보스가 초현실주의와 관련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오해하기에 이른 것이다. 보스의 작품은 지극히 후기-중세적이고 고딕적이다. 


신의 세계가 가졌던 호소력이 이른 아침의 안개처럼 정오를 향해가면서 사라져갈 때, 그 안개를 못내 아쉬워하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보스의 작품은 먼저 중세말, 근대초의 심리적 방어를 위한 공포적 상상력이 숨겨져 있다. 


우리는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을 경우, 자신의 의지를 강제할 외부의 제어 수단을 바라기 마련이다. 중세 사람들에게 신의 세계란 이 세상의 시작과 끝이었고, 보스는 그 세계가 존재함을 시각적으로 그려냈다. 이 점에서 수지 개블릭의 '종교적 사실주의자'라는 표현은 매우 타당하다.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와 초현실주의를 같이 연결시키는 것이 너무 당연하게 간주되어 와서 그러한 비교를 하는 것은 매우 단순하고 그릇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보스는 동시대 사람들이 괴물에 대하여 갖고 있던 관념을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그의 그림이 없었다면 이 관념은 중세의 '불가사의'로 전해졌을 수도 있다. 오늘날 정의, 원자력, 산업 등과 같은 가장 '최신'이거나 혹은 전통적인 개념과 느낌을 '표현하는' 사회적 사실주의자(social realist)'가 존재하듯이 보스도 '종교적 사실주의자(religious realist)'였다. 
- 수지 개블릭, <<르네 마그리트>>, 14쪽 (천수원 옮김, 시공사) 



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 Bosch's most widely known triptych, El Prado Museum 

(출처: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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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의 무대가 되는 멜크 수도원은 9만여권의 장서를 가진 도서관을 가진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976년 레오폴드 1세(남부 오스트리아의 군주)는 지금의 멜크 수도원 자리에 자신의 성을 지었고 그의 후손들은 이 곳에서 지냈으며, 1089년 레오폴드 2세가 베네딕트 수도회에 성을 주었다.(*) 에코의 ‘장미의 이름’의 배경은 바로 이 시대부터 시작된다. 12세기 많은 수도사들이 멜크 수도원에서 성경을 옮겨 적으며, 도서관을 만들게 된 것이다.




현재의 멜크 수도원은 18세기 초 Jakob Prandtauer에 의해 새롭게 지어졌다. 이로 멜크 수도원은 중부 유럽의 대표적인 바로크 건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수도원 건축물의 발달은 종교개혁으로 인한 구교의 위기 의식에 기초하고 있다. 트리엔트 공의회(Council of Trient, 1545 ~ 1563) 이후 많은 수녀회, 수도회가 생겨났으며, 기존 수도회도 개혁을 시도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도는 자연스럽게 수도원 건축물에 대한 투자로 이어졌고 카톨릭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던 지역의 귀족들과 국왕들은 일반 민중을 중심으로 그 세력을 확장해나가던 개신교에 대응하여 수도원 건축물에 지원을 한 것이다.


멜크 수도원의 아름다움은 이러한 정치적 배경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신앙과 믿음의 상징인 수도원도 정치적, 경제적 상황에서 무관치 못했다는 점은 종교가 역사 속에서 성스러운 신앙 이전에 막강한 정치적 권력이었음을 알게 해준다.


* ‘기증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10세기 이후 세속의 군주들은 자신의 신앙심을 과시하며 일반 민중으로부터의 지지를 구하고 종교 권력으로부터의 인정을 받기 위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부와 권력을 종교에 아낌없이 기부하였다. 중세 후기의 교회 건축물들은 이러한 정치적 배경 속에서 막대한 투자를 바탕으로 지어진 것들이다.


참고 문헌)
프레데렉 다사스, '바로크의 꿈 - 1600 ~ 1750년 사이의 건축', 시공디스커버리
멜크 수도원 홈페이지 http://www.stiftmelk.at/englisch/index.html 
이미지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Melk_Abb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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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ian. The Young Englishman. c.1540-1545. Oil on canvas. Palazzo Pitti, Galleria Palatina, Florence, Italy


이 오래된 초상화는 16세기에 제작된 초상화들 중에 가장 뛰어난 것들 중의 하나에 속하리라. 16세기 베네치아 최고의 예술가였던 티치아노는 눈에 보이는 세계 너머 보이지 않는 영혼의 숨결까지 담아내는 듯 보인다. 르네상스 시기, 일군의 화가들의 붓에서 시작된 위대한 초상화 양식들은 새로운 시대의 한 획을 그으며, 20세기까지 이어진다. 양식의 변용과 혁신을 거듭하면서.

초상화 양식의 역사와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고, 아래 초상화를 보자. 이 흥미로운 초상화는 티치아노가 교황 파울루스 3세(재위 1534 - 49)의 손자를 그린 작품이다.



Titian. Portrait of Ranuccio Farnese. 1542. Oil on canvas. The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USA



권세가의 자제라서 그런 걸까. 고종희의 <르네상스의 초상화 또는 인간의 빛과 그늘>에서 한 문장을 인용해본다. "아이의 경력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다. 12세에 기사가 되었고, 베네치아에 거주하면서 어린 나이에 산조반니푸르라리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는가 하면 14세에는 나폴리의 대주교가 되었고, 1년 후인 15세에 추기경에 임명되었다."

황당하기 짝이 없긴 하다. 이 때 교황은 결혼까지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종교 권력이 세속 권력과 한 판 전쟁을 벌이는 시기였던 16세기의 그리스도교는 현대와는 많이 달랐다. (종교, 또는 신앙이라고 하는 것도 일종의 문화적인 양식이므로, 다양한 변화를 겪어 왔다. 따라서 변하지 않는 종교와 신앙이 없다. 무한자의 세계를 유한자가 알 수 없으므로 무한자의 세계란 결국 철부지 같은 유한자들의 입맛에 맞게 편성된 세계에 지나지 않는다. 윌리엄 오캄의 세계가 아직도 호소력을 가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어리석은 신앙인들은 윌리엄 오캄의 극적인 신앙에 대해 그 어떤 감동이나 전율을 느끼지 못하겠지만)

결국 초상화라는 양식은 권력을 가진 자들의 양식으로 시작되었다. 작품의 완성도 후대 사람들은 깊은 감동을 받지만, 정치적인 의도를 가진 프로퍼갠더로서의 기능도 수행하였음을 알게 되었을 때는, 예술 양식의 자율성에 대한 추구라는 것이 지극히 현대적인 태도라는 점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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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쉽게 읽힌다. 문화일보에 연재하던 글을 책으로 묶어낸 듯하다. 무수한 예술가와 사상가들을 배출한 나라 이탈리아. 책의 서두에서 아래의 문단을 인용해본다.


이탈리아의 문화적 저력은 오랫동안 지속돼온 지방분권의 정치체제에서도 기인한다. 이탈리아가 통일이 된 시점은 1860년대에 불과하다. 로마제국 이후 이탈리아는 독립적인 도시국가로 형성되었다. 이를테면 로마와 그 주변 지역은 교황청에 속해 있었으며, 밀라노는 공작이 지배하던 롬바르디아의 수도였고, 베네치아는 그 자체가 베니치아 공화국이었다. 피렌체는 공화국으로, 때로는 토스카나 공국으로 정치적 옷을 갈아입으며 발전해나갔다. 한편 만토바, 파도바, 우르비노, 시에나, 라벤나와 같은 중소도시들은 각기 독립된 국가로서 혹은 주변국가의 지배를 받으며 성장, 발전, 쇠퇴의 길을 걸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이러한 정치적 상황에서 씌어진 것이다. 도시국가를 통치하던 군주(principe)들은 자신의 궁전을 최고 걸작으로 장식해야 한다는 개념과 안목을 일찍부터 지니고 있어서 당대 최고의 거장들을 초대하여 예술적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주곤 했다. 정치적 목적으로 시작된 예술 후원이었지만 결국 정치도 사람도 다 가고 지금은 작품만 남아 있으니 인생은 짧고 예술은 영원하다는 말이 틀리지 않다. (9쪽)



이 책은 기행산문집이라기 보다는 이탈리아 여러 도시들에 가면 볼 수 있는 미술 작품에 대한 안내서라고 이해하는 편이 적당할 것이다. 나같은 이에게 이 책은 너무 쉽게 읽히는데, 다른 독자에겐 어떨지 모르겠다. 딱딱한 역사책만 읽다가 가끔 이런 책은 여유를 가질 수 있게 해주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보지 못한 작품의 도판이라도 나오면 매우 흥미로워진다.

학술적인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또한 고종희 교수의 글은 과욕을 부리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잘 이야기해준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몇 개의 도판을 덧붙인다. 책을 읽으면서 기억에 남는 작품들이다. 더 있으나, 이미지를 구하지 못했다.


 http://www.lib-art.com/paints/pilate.html 
틴토레토의 작품이다. '빌라도 앞의 그리스도'인데, 위의 url로 들어가면 이 테마로 그려진 많은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요즘 들어 16세기 이탈리아 회화를 보면, 어딘가 외롭고 쓸쓸해보인다. 위의 그리스도도 그렇다.

 

http://en.wikipedia.org/wiki/Siena_Cathedral

이탈리아에서 고딕 성당을 보기 어렵다. 고딕은 확실히 프랑스로 가야 된다.하지만 이탈리아에서도 볼 만한 고딕 성당이 있다면 시에나 대성당을 들 수 있다. (밀라노 대성당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지) 

 

 

Cristo deriso di Beato Angelico.

Ce ne parla: Gregorio Botta, giornalista

http://www.radio.rai.it/radio3/arcimboldo/quadri/cristo_deriso.htm


베아토 안젤리코(프라 안젤리코)의 작품이다. 눈을 가린 그리스도의 모습이 흥미로웠다. '조롱당하는 그리스도'로 옮기고 있는데, 이 작품이 가지는 도상학적 설명은 나오지 않았다. (찾아보고 다시 언급할 예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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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어느 문화센터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중적이지 못한 강의였고 다소 어려운 주제를 다루었던 관계로 한 번으로 끝났습니다만, 그 때 정리해놓은 강의 노트가 있습니다. 여러 참고 문헌, 그리고 제가 배웠던 서양미술사를 바탕으로 하였습니다.

 

제 이력이 유별나,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야 제대로 된 인문학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서양미술사는 인문학의 꽃입니다. 철학사(혹은 지성사)와 비슷하게 움직이며, 언어가 아닌 다른 것으로 우리들의 정신적 세계를 보여주며, 그 시대의 보이지 않는 모습까지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서양미술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작품들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동시의 철학 책이나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제 경우, 16세기 미술사를 제대로 알려주기 위해 마키아벨리, 세르반테스, 세익스피어, 에라스무스, 루터 등을 이야기하지만, 서양미술사를 배우는 학생에게나 이를 가르치는 선생에게나 곤혹스러운 일입니다.

 

인문학의 위기는 우리 시대가 게을러지고 편한 것만을 찾기 때문에 온 것이지, 인문학이 더 이상 필요 없거나 그 가치를 상실하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큰 활자에 예쁜 그림으로 채워진 대중미술서들이 난무하는 요즘, 몇 백 년전의 고리타분한 작품을 앞에 두고, 정치철학자 마키아벨리, 그동안 완역되지도 않았던 세르반테스,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거리는 다 알려져 있으나, 정작 읽어본 이는 드물고, ‘우신예찬의 에라스무스는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 도대체 몇 번이나 들을 수 있을까요? 인문학 전공이라고 하더라도 말이죠. 심지어 인문학 전공으로 대학원을 마치더라도 우신예찬표지도 보지 못하고 석사 학위 논문을 내는 사람들이 수두룩할 텐데 말입니다.

 

인문학의 위기는 인문학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아 생기는 것입니다. 서양미술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형편없는 작품들을 예로 들면서 양식적 설명이나 도상학적 설명만을 주절주절대면서, 정작 그 작품이 왜 형편없는지, 혹은 왜 감동적인지에 대해서 한 마디 설명도 없습니다. 미술 작품은 감상과 감동의 대상이 아니라 분석하고 주석을 다는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술관에 가서 온전히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 따져 묻고 작품 속 어떤 형체를 보면서 그 의미를 궁금해 합니다. 천박한 방식입니다.

 

먼저 전체를 보고 감상하는 훈련부터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훈련은 매우 어렵습니다. 마치 클래식 음악을 듣지 않는 이에게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듣게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얼마나 지루하고 졸리겠습니까. 그러니 선생은 활자 크고 경박스러우면서도 재미 있는 사실들과 일화들로 채워진 다이제스트를 팔아야 학생과 대중에게 인기가 있습니다. 이러면서 천천히 하향평준화가 시작됩니다.

 

작년에 읽은 어느 서양미술사 번역서에는 ‘arete’를 번역할 수 없는 단어라고 하였습니다. 이 번역자는 프랑스에서 역사학까지 전공한 이였습니다. ‘arete’를 번역하지 못한 이라면, 간단하게 말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한 번도 읽지 않았음을 알게 합니다. 역사학 전공자라면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도 읽지 않았습니다. 이 얼마나 한심한 일입니다. 읽었다면 제대로 읽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virtue’으로 번역하는 arete라는 단어는 군주론에서 매우 중요한 단어이기 때문입니다.(한국어로 번역된 군주론에도 이 단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있습니다.)  

 

원래 희랍어에서 유래한 arete의 그리스적 사용은 다소 다릅니다. 영어의 virtue처럼 단독으로 사용될 수 있는 단어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변화되는 단어였습니다. 희랍인들에게는 무엇의 arete인가?’ 또는 누구의 arete인가?’라는 표현도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arete는 단독으로 불완전한 단어였습니다. 레슬링 선수들의 arte, 말타는 사람의 arete, 장군의 arete, 노예의 arete가 있으며, 정치적인 arete, 가정적인 arete, 군사적인 arete가 있습니다. arete는 어떤 특정의 일에 있어서의 숙달 도는 능함을 의미했고, 따라서 그와 같은 능함은 종사하는 일에 대한 적절한 이해와 지식에 의존한다는 것을 뜻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단어가 시간이 흘러 여러 사람들에 의해 일반화되어 현대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참조: ‘희랍철학입문’, W.K.C. 거드리 지음, 박종현 옮김, 종로서적)

 

이제는 CEO를 위한 인문학 강좌들도 생겼습니다. 이 얼마나 황당하고 기가 차는 노릇입니다. 심지어 창의적 경영을 위해 인문학 전공자들이 중요해졌다고 해댑니다. 하향평준화도 이런 하향평준화가 없습니다. 그만큼 인문학 전공자들의 수준이 지적으로 무능하고 현실적으로 형편없으며, 인문학 선생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 아닐까요? 하긴 프랑스에서 역사학까지 전공하였으며, 전문번역자라는 이가 ‘arete’를 번역하기 어려운 단어라고 넘어가며, 이를 제대로 교정해줄 출판사 직원도 없는 마당에, 과연 인문학이 제대로 될까요?

 

글이 길어졌습니다. 이젠 주위에 공부하는 이도 드물고 같이 책을 읽을 사람도 없습니다. 매월 말 영업 실적 정리하고 다음 달 마케팅 전략, 영업 계획 세우는 일상 사이로 미술 전시 기획하고 돈과는 무관한 책을 읽습니다. 그러다 보니, 푸념이 길어졌습니다. 매우 사적인 푸념이니, 못 들은 척 하는 배려를 가져주세요.

 

 

이번에 정리할 노트는 근대 미술입니다. 아마 꽤 긴 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글이 그 시작입니다. 제가 그동안 정리해놓은 미술사 강의 노트를 모두 정리해볼 생각입니다. 이런 식으로.

 

 

서양의 15세기, 16세기는 발명과 발견의 시대로 통칭됩니다. ‘콤파스가 발명되었고 동양으로부터 화약이 전파되어 왔으며, ‘종이가 보급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하나가 거대한 역사적 전환을 만들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콤파스의 발명은 장거리 항해를 가능하게 만드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도 이 발명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화약으로 뭐가 바뀌었을까요? ‘화약으로 인해 기사 계급이 결정적으로 와해됩니다. 이제 전투의 양상은 무거운 갑옷을 입고 창과 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대포와 총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기사 계급이 필요 없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이 시대의 슬픈 자화상입니다.)  ‘종이야 두말 할 필요 없이 인쇄술의 발달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 시대는 이렇게 변화합니다. 결국 과거가 물러나고 미래가 다가오게 됩니다. 새로운 시대가 도래합니다. 종교(구교)의 시대가 물러나고 시민(신교)의 시대가 오게 됩니다. (막스 베버는 한참 후에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를 이야기합니다만, 실은 이 무렵 시작된 어떤 현상을 정리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잠시 질문을 해볼까 합니다.

 

진시황은 왜 분서갱유(焚書坑儒)를 했을까요? 우리는 분서갱유라는 단어를 많이 들었습니다만, 이 일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선 잘 모르고 있습니다. 진시황은 중국 최초로 중앙집권에 성공한 이입니다. 그는 많은 부문에서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사상은 너무 자유로웠습니다. 나라의 모든 것들이 황제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만들고 있으나, 사상은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나라의 혼란은 사상이 자유로운 데 그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결과 분서갱유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한 무제는 분서갱유를 거울삼아 사상의 통일을 이루어냅니다. 그것이 공자 사상을 중심으로 한 유학을 나라 사상의 근간으로 삼습니다. 정치적인 이유로 주류 사상과 비주류 사상으로 나누어지게 되는 겁니다.

 

이는 서양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와 미래는 현재에서 만나 싸우면서, 실은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이유로 대립하지만, 겉으로는 과학과 예술, 사상의 문제로 포장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오르다노 브루노는 화형을 당하죠.

 

Ubi materia, ibi geometria. 물질이 있는 곳에 수학도 생겨난다. 이제 본격적으로 수학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중세시대 내내 잊고 있었던 학문입니다. 그 전까지 가치(value)란 질적으로 파악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신을 중심으로 한 위계질서처럼, 가치로 그렇게 유비적(analogical)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근대 초기, 가치를 양적으로 파악하기 시작합니다. 즉 계량화된 가치 체계가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르네상스란 바로 이것입니다. 질적 가치 체계에서 양적 가치 체계로의 변화. 르네상스의 이념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이 될 것입니다.

 

질적 가치 체계 속에서 유지되던 것들이 양적 가치 체계로 오면 맥을 추지 못합니다. 이렇게 묻는 편이 간단할 것입니다.

 

나에게 네 사랑을 증명해줘?’라고 묻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중세인과 근대인의 태도는 극명하게 다릅니다. 중세인이라면, 보여주지 못하는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삶에서 하나하나씩 소박하게 행위로 보여줄 것입니다. 하지만 근대인이라면 사랑한다는 사실을 계량적으로 나열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몇 번 사랑한다고 말을 했으며, 몇 번 데이트를 하고, 몇 번 같이 식사를 했으며, 몇 번 선물을 하고, 몇 번 성행위를 했는가 표현할 것입니다.

 

이제 세상이 바뀌게 됩니다. 모든 가치를 수로 표현할 수 있다는 믿음이 싹튼 것입니다. 콤파스를 든 신의 모습이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시인이자 화가인 베이컨의 그림을 떠올리면 쉬울 것입니다.) (기하학)으로 이루어진 신이 등장합니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은 기하학으로 풀 수 있으니, 이 세상 모든 것에 신이 편재해있다는 믿음으로 달려나갑니다. 이것이 르네상스적 범신론입니다.

 

지오르다노 브루노(Giordano Bruno)우리는 일정 불변의 자연법칙 또는 이 법칙 속에서 호흡을 같이 하는 심정으로 가득 차고 경건한 느낌을 통해서만 신을 알아차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먼저 수학적 법칙이 있고 그 법칙 속에서 경건해질 때 신을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는 화형을 당합니다. 이 얼마나 불경스러운 표현입니다. 마치 교회를 무시하고 성직자의 밥벌이를 빼앗기 위해 작정한 듯한 표현이기 때문에, 정치적인 이유로 화형을 당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직 세상은 교회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경건하고 성실했던 수사가 마르틴 루터가 성경을 통해 신을 만날 수 있다고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이후로부터 교회는 필요 없는 곳이 되며, 독실한 기도와 성경이 자기 신앙의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종교혁명은 이렇게 시작되었으며, 르네상스적 이념과도 결탁된 것입니다.

(
그렇다면 요즘의 한국 기독교는 과연 마르틴 루터와 칼뱅이 이야기했던 그 기독교가 맞을까요? 안타깝게도 한국의 개신교는 루터와 칼뱅을 버리고 중세적 마인드로 복귀하고 있습니다. 시대는 앞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주, 아주 자연스럽게 뒤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다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이유 탓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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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 6점
제라르 르그랑 지음, 정숙현 옮김/생각의나무


아마 서양 역사에 대한 책들 중 가장 많이 번역되거나 국내 저자에 의해 책으로 나온 시대를 말하라고 하면, 그것은 20세기(근현대)와 르네상스가 될 것이다. 서양 미술에 흥미가 없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정도는 한 번쯤 들어보았을 텐데, 이 3명의 예술가도 르네상스 시대를 살았던 이들이었다. 출판된 책들이나 우리들에게 알려진 인물들로 보나, 르네상스는 서양 역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대이다. 이 책은 그 시대 예술에 대한 입문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런 종류의 책은 대체로 재미가 없고 난삽하기 십상이다(그래서 쓰기 어려운 책이기도 하다). 천연색 도판이 책을 꺼내던 이들을 유혹하지만, 도판은 도판일 뿐이다. 또한 성의없어 보이는 번역 문장은 르네상스를 알고자 하는 독자를 실망시키고 화나게 한다.

책은 13세기 고딕 후반에서 르네상스의 시작, 그리고 16세기 후반 매너리즘에 이르는 과정을 다루고 있으며, 연대 순으로 배열하였으나, 르네상스에 대한 깊이있는 탐구보다는 개별 작가와 작품에 대해 언급하며 스쳐지나간다. 문제는 너무 많은 작가들이 등장하고 각 작가에 대한 설명은 한 페이지를 넘기는 법이 없다. 그래서 독자는 많은 예술가들을 만났다고 생각하나, 기억나는 이름은 없고 르네상스와 매너리즘에 대해서 읽기는 했으나, 그것이, 그 시대에 현재의 우리에게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도판이 있으나, 도판의 선정 기준도 모호하다. 체계적인 구도를 가지고 지어진 책이라기 보다는 그냥 편하게 시간 순서대로 병렬적으로 나열해버린 책이다. 그래서 저자는 쓰기 쉬웠겠지만, 독자는 읽고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 되어버렸다.

* * *

이 책에 나왔던 몇몇 작품들의 도판을 인터넷에서 구해 올린다. 르네상스 미술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을 지 모르겠다.


Luca Della Robbia(1400-1482) - 이탈리아 조각가

피렌체의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미술관에 소장된 루카 델라 로비아의 칸토리아(Cantoria, 성가대석) 부조다. 15세기(콰트로첸토) 초반 르네상스 자연주의를 가장 잘 드러내주는 작품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이 작품은 어린 아이의 풍부한 표정, 물결치는 듯한 몸의 움직임과 옷주름의 섬세한 표현이 특징적이다. 


아래의 두 작품은 위 칸토리아에 있는 부조들의 일부다. 중세 시대의 부조 작품들이 다소 경직되어 있다면(고딕 성당의 부조작품들), 확실히 르네상스 미술은 우리의 감정에 충실하고 자연스럽다.




Antonello de Messine(1430 - 1479) - 이탈리아의 화가

역사적 예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실제 예수 그리스도의 생김새에 대한 의견들도 자연스럽게 오간다. 그리고 결국엔 예수 그리스도를 그린 대부분의 서양 미술 작품들이 실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그린 것이라기 보다는 자신이 생각했던 바, 혹은 자신들과 함께 살던 동시대 사람들의 얼굴에서 영향받은 것임이 드러나게 되었다. (실은 아무나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의 것이지만, 종교적인 것에 대한 논의는 늘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15세기 대단한 성공을 거둔 안토넬로 데 메시나의 이 작품은 이후 무수한 작가들에 의해 리바이벌되었다.

기둥에 묶인 그리스도, 1446년, 루브르박물관


안토넬로 데 메시나는 인물들의 표정 처리에 탁월한 감각을 가졌음에 분명해 보인다. 성모 마리아의 얼굴에서 우리는 신중함과 사려깊음, 동시에 결단력을 동시에 느낀다. 이는 위의 예수 그리스도를 그린 작품에서도 동일하게 느낄 수 있다.

수태고지(Virgin Annunciate), 1476년, 팔레르모 국립 미술관, 피렌체


Enguerran Quarton(1420-1466) - 프랑스의 화가

1454년경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앙게랑 카르통의 '피에타'를 위의 루카 델라 루비아나 안토넬로 데 메시나의 작품들과 비교해보면, 카르통의 작품이 딱딱하고 다소 경직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르네상스 미술에 대한 이해를 어렵게 하는 것들 중의 하나가 지역에 따른 시대차이다. 동일한 시대라고 하더라도 이탈리아와 나머지 유럽 대륙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여주었다. 제라르 르그랑는 위 책에서는 이 피에타 작품이 안토넬로 데 메시나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추측하지만, 실제 그랬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더구나 이 당시에 이탈리아의 화가이 프랑스의 화가에게서 영향을 받았다는 건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 도판은 위키피디아와 http://www.artcyclopedia.com 등에서 가지고 왔으며, 상업적 목적으로는 이용할 수 없는 도판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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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예술 양식을 이야기할 때, '환영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위의 그림에서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벽화인데, 꼭 창문인 것처럼 그렸다. 그래서 창 너머로 다른 건물이 있는 듯하다. 그 옆의 그림은 꼭 액자 속에 담겨져 있는 듯 하다. 그리고 그 너머에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있는 것처럼 보인다.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의 세계, 그리고 그 세계 너머의 어떤 다른 세계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

오래 전에 업로드한 이미지다. 폼페이 유적에서 나온 벽화 사진으로, 시중에 나온 서양 미술사 책에는 거의 나오지 않는 로마 시대의 회화 양식에 대해서 알게 해준다. 실제 로마 시대 내내 회화는 실내 벽 장식으로 주로 그려졌다. 북아프리카에서는 나무판에 그려진 초상화들도 있지만, 로마 전역에 유행했기 보다는 지역적인 경향으로만 보아야 할 것이다. 

폼페이에서 발굴된 회화들의 특징 중의 하나는 창문 너머에 어떤 세계가 있는 것처럼 그려졌다는 것이다. 또한 원근법과 단축법이 제대로 구현되어 있으며(그래서 원근법이 르네상스 시대의 발명이라는 평가는 잘못된 것이다), 도리어 뛰어난 화가였던 로마인들의 회화 작품들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이 도리어 낯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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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멋지네요.이거 보니까,이스탄불 여행할 때 곳곳에 눈에 띄었던 로마양식 건축물과 벽화들이 기억나네요.^^

    • 이스탄불에서 만날 수 있는 로마양식은 동로마제국, 미술사에서는 비잔틴 양식이라고 합니다. 로마 양식 + 동방 양식 + 기독교 등이 혼합되어 나타난 것입니다. ^^


중심의 상실 - 6점
한스 제들마이어 지음, 박래경 옮김/문예출판사



제들마이어는 중세의 낙오병으로 그보다 훨씬 민감하고 환상을 보는 데에 도통한 점쟁이들을 모방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논의가 이처럼 코기토 인터룹투스(Cogito Interruptus)의 정말 탁월한 실례가 될 수 있는 것은 그의 암시적이고 이해를 갈망하는 듯한 태도 때문인데, 그는 어떤 기호에 대해 언급할 때마다 우리를 팔꿈치로 슬쩍 찌르며 윙크를 한 다음 "당신에게도 보이죠?"라고 말한다.
- 움베르코 에코, '철학의 위안'(새물결, 조형준 옮김), 116쪽


이 책은 한스 제들마이어라는 독일의 미술사학자가, 1948년도에 썼다고는 믿겨지지 않을, 낯설고 기묘하며, 반-현대적이며, 도덕적인 교설과 주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근대 예술은 예술의 혼란이며, 반-휴머니즘이고, 반-인간적이며, 결국 중심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그는 세잔에 대해서, '그의 회화는 그의 내면적 의도에 따라서 가시적인 세계의 모든 지적이고 감정적인 요소들의 혼합으로부터 순화된 순수한 시각을 발견하고 이를 표현하는 것이다. 순수한 시각을 갖기 위한 이 같은 투쟁은 그 자체가 상당히 중요한 징후'(230쪽)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태에서는 모든 것은 죽어 있고, 낯설며, 인간은 그저 외적인 것만을 보게 되고, 다른 사람의 정신 생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의식하지 않는다. 그리고 동시에 세계는 불안정한 것이 되어가기 시작한다.'(235쪽)

제들마이어의 시각에서 모든 근-현대 미술은 인간성의 상실을 뜻하며, 그래서 우리는 예술을 치료해야 된다는 것이다. 

유일한 처방은 새로운 상태 안에서 인간의 영원한 상을 확립해 재형성시키는 것이다. (465쪽) 


다소 황당한 결론을 향해 가는 이 책은 매우 난삽해서, 많은 미술사적 사실에 대한 평가들이 있지만, 한 번 읽어서는 책의 내용이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또한 서술의 시작에서 기대되는 내용과 서술의 끝에서 읽게 되는 내용은 종종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해 있기도 하다. 마치 고집불통 노인이 젊은 날의 방황을 아름답게 노래하다가 그 방황이야말로 내 인생의 과오였으며, 치명적인 비도덕이며, 잘못이었다라는 말로 끝내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이런 논리적 허점을 움베르토 에코는 '코기토 인터룹투스'라고 평하는 것이다. 하지만 미술사를 전공하는 학생이라면, 이 책을 통해 다양하고 많은 미술사의 정보들과 논평들을 확보할 수 있으며, 현대 미술에 대해서 시대착오적 도덕주의의 시각에서 어떻게 평가될 수 있는가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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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치, 우리들의 행복한 세계 - 10점
조중걸 지음/프로네시스(웅진)




키치, 우리들의 행복한 세계
조중걸(지음), 프로네시스

 

키치’(Kitsch)를 바라보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우리가 흔히 ‘키치’를 ‘이발소 그림’으로 이해하는 것은 키치를 설명하기에 구체적인 스타일이 있는 작품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어떤 인식론적 태도라고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카르스텐 해리스도 이러한 입장에 서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내 저자들은 키치를 이발소 그림으로 이야기한다). 인식론적 태도라고 이야기하는 순간, 키치를 이야기하기 위해선 영국 경험론을 이야기하고 현대 물리학과 현대의 추상 미술의 기원을 탐구해야만 한다. 이를 다 설명해야만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데, 실은 이 설명을 듣고 있는 (지적으로 무능하거나 성실하지 못한 대부분의 한국의 대)학생의 입장에서는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이렇게 설명할 수 있는 교수나 강사도 드물다. 

이 책은 ‘키치’라는 단어에 대해 적고 있지만, 실은 우리 마음 속에 숨어있는 ‘허위’에 대한 집요하고도 논리적인 공격으로 이루어져 있다. 키치라는 단어 대신 ‘불행하다고 여기는 현대인들이 행복을 가지기 위해 받아들이는 허위적 태도’로 표기해도 무방할 정도다. '키치'라는 단어가 일반 독자의 귀에 솔깃하고 흥미로워 보이겠지만, '키치'와 '키치가 뜻하는 바' 사이에는 소쉬르의 의견대로, 자의적 관계가 있을 뿐이다. 아무런 필연적 연관 관계도 없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키치'를 이성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가능하다. 몇몇 독자들은 쉽게 이해하고 흥미롭게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이를 감정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의 정신과 삶 전반에서 키치적 것들을 다 몰아내고 한순간이라도 진실하게 살기 위해서 분투한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될까? 이 책을 읽는 독자들 중에서 이런 생각을 해 본 이가 있을까?   

오지 않는 고도(Godot)를 기다리는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공은 불이 꺼진 무대에서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각해보면, 너무 아찔하지 않은가? 같은 침대에 누워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연인의 입술이 실은 거짓말이라고 탄로난다면 우리의 사랑은 어떻게 될 것인가? 신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고 신이 있다고 이야기하면 할수록 저 뾰족한 고딕 성당의 첨탑처럼, 공중 부벽처럼, 두터운 벽을 장식하고 있는 조각상들처럼 기괴하고 현란하며 경련적으로 변하게 된다면? 고흐가 미쳐갈 때, 세잔은 자신의 내부에 견고한 기하학의 성을 쌓고 외부세계로 나가지 않는다. 고흐의 터치와 색상이 자신의 삶을 포기했을 때 나오는 것이라면, 세잔의 고전적인 기하학은 자신의 삶을, 자신의 영혼을 저 불가해한 현실 세계 속에서 지키고자 했을 때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예술가 모두 이 세계 속에서는 이방인이었으며, 침묵했다.

정말로 이 세계에는 아무런 질서도, 원리도 없는 것일까? 우리의 삶에는 아무런 목적도 없고 방향도 없으며, 그저 우연하게 왔다가 무의미하게 살다가 죽는 것일까?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끊임없이 그것을 반복하며, 현대의 철학자들과 예술가들은 그렇게 여겼으며, 철저하게 그들의 학문과 예술에 매진했음을 강조한다. 그 앞에서 우리는 그 말을 믿어야 하는 것일까? 

현대의 고전주의자들인 모더니스트들이 자신의 내부에 견고한 성을 짓고 고전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모더니즘 이후의 예술가들은 그마저도 거짓과 허위라며 부정해버리고 정처 없이 떠돌기 시작한다. 이러한 정처 없는 떠돌이 생활은 도리어 자본주의와 흥미로운 결탁을 만들어내며, 거짓된 이미지들을 소비하는 어떤 양식을 만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현대 예술의 문제 의식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거짓된 이미지들로 이루어진 예술 작품들을 보면 볼수록 예술과 세계에 대해 궁금해지듯이, 우리의 정신적 방황은 끝나지 않은 셈이다.

(나에게 서양 미술사를 가르쳐 준 분이기도 한) 저자는 지성사(특히 철학과 역사)를 바탕으로 예술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고대 철학(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과 데카르트를 구분짓는 방식으로 기하학을 이용한다. 좌표 평면 상에서의 직선의 움직임을 이야기하면서 근대에 있어서의 ‘운동’에 대한 변화된 인식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것과 바로크 예술의 연관관계를 설명하기도 했다.

아르놀트 하우저가 인상주의 미술을 이야기하면서 베르그송의 철학과 드뷔시의 음악, 프루스트의 소설을 이야기하는 것도 이러한 지성사적 이해에 기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하우저는 철저하게 유물론적 입장에 서있었기 때문에 고딕 양식이나 르네상스 고전주의에 대해서는 통찰력을 보여주지 못한다. 조중걸의 말대로 ‘예술은 기술의 문제라기 보다는 예술의욕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술의욕’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예술에 대한 기술은 매우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렵게 된다. 왜냐면, 기술은 철저히 인과적 관계 위에서 예술을 설명할 수 있지만, 예술의욕은 인과적 관계를 무시하며 그 당시의 사람들의 심성, 일상적 삶, 학문과 역사 등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먼저 요구한다. 이 책에서 미술과 문학을 넘나들고 철학과 과학을 가로지르는 것도 바로 여기에 있다.

미술을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여러 번 읽기를 권한다. 적어도 현대 예술은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아니 그래야만 자기 자신에 대해서 최소한 진실해질 수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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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공저로 미술사 책을 낸 적이 있었다. 다시 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먼저 블로그에 초고 노트를 정리해 올릴 계획이다. 2~3년 하다 보면, 책을 낼 수 있는 모양새를 갖출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Introduction to ‘History of Western Art’


1. 예술(Art)이란 무엇인가?
  art(영어), ars(라틴어), techne(희랍어)

  - 예술의 가치는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 ‘예술의 역사’가 예술 이해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2. 다양한 시대의 미술 작품과 우리들의 감동이 가지는 연관관계
  - 우리는 어떤 작품을 고전이라고 말하는가?
  - 과연 미술교과서는 우리를 감동시키는가?

3. 기술과 예술은 어떤 관계를 가지는가?
  - 보이는 것(형태)과 보이지 않는 것(정신)
  - 예술의욕(Kunstwollen)

4. 미술사, 미학, 미술비평은 서로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 미술사: 여러 다양한 역사들 중 하나에 대한 역사
  - 미학: 보이지 않는(추상적인/관념적인) 어떤 것에 대한 탐구
  - 미술비평: 전시되고 있는 작품에 대한 언어(meta-language)

5. 플라톤(Platon)과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os) 
  
 - 플라톤: 변하지 않는 세계에 대한 염원. 이분법적 세계관은 비극적이고 슬픈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함.
 
  - 헤라클레이토스: 이 세상은 변화함. 운동을 긍정. 그러나 그는 거만한 귀족주의자.
 
  - 사상(세계관)과 자신의 삶(혹은 예술작품)은 어떤 관계를 맺는가?

6. 고전적 세계관과 낭만적 세계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7. 서양미술사의 시대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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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책 내시면 꼭 보고 싶습니다. 미술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많은 질문에 대한 답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네요 ^^

    • ㅎㅎ. 저도 쉐아르님의 생각대로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미술 뿐만 아니라 인생에 대해서 뭔가 이야기할 수 있는... 뭐, 몇 년 이내로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 noi 2008.06.19 18:02 신고

    멋진 프로젝트를 시작하시려는 참이군요. 책으로 나오는 그날까지 화이팅입니다. 저는 옆에서 열심히 얻어들으며 배우겠슴다.^^

* <삶은 늘 우리를 배반한다>를 쓰기 전에 적어놓은 노트입니다. 바로크 예술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1. 바로크: 근대성Modernity의 시작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를 어떤 세계일까? 그러나 이 물음에 대한 명확한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꼭 이 물음은 '나는 누구인가?'라든가 '살아가는 것이란 무엇인가?' 따위의 물음과 유사한 것이다. 그래서 정확하게 맞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떤 특징을 부각시켜서 말하거나 아예 이 물음에 대한 답에는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너무 거대한 질문이라 실제 우리의 삶과는 무관해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 본다면 상황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지금 이 세계에 대해서 자주 듣게 되는 단어들, 신자유주의, 개인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등과 같은 것의 근원을 거슬러올라가다 보면 17세기 서구사회와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 17세기와 2004년과의 관계를 알기 위해,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 홉스(Thomas Hobbes, 1588-1679)와 같은 철학자가 구상하였고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 1598-1680), 카라바지오(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 1606-1669), 푸생(Nicolas Poussin, 1594-1665)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비발디(Antonio Vivaldi, 1678-1741)와 같은 예술가들이 재현하였던 그 당시의 세계와의 관계를 알기 위해서 한적한 일요일 오후에 자동차를 타고 도시를 가로지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자동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다 보면 몇 가지의 규칙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신호등이라는 교통시스템만 지키면 도로가 연결되어있는 원하는 목적지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이동 속에서 자동차 안과 밖은 명확하게 구분된 공간이라는 점. 밖이 아무리 춥더라도 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근대 최초의 기획들은 기계론이다. 인과율적 체계의 다른 말이기도 하며 근대 자본주의가 그 기틀을 명확히 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드디어 시계가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는 공간으로 진입한 것이다. 이제 세계는 기계론적 관점에서 시간과의 싸움에 몰입하기 시작한다. 이 때 미래는 그 의미를 가지기 시작한다.

하나의 질서가 있다. 그 질서는 신으로부터 흘러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신의 질서와 자연과학의 질서가 등가적 관계를 이루게 되고 이 사이를 예술가가 자리잡게 된다. 이것이 르네상스적 세계관이자 미학관이다. 그러나 르네상스적 세계관은 얼마 뒤 매너리즘적 세계관에게 자리를 내어주게 되는데, 우리들의 삶이나 현실은 신적이지도, 자연과학적이지도 않다는 인식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매너리즘에서는 나와 너, 이상과 현실, 어제와 오늘이 분열하게 된다. 고딕적 분열의 연장선상에 놓이면서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종종 겪게 되는 분열을 이미 매너리즘 시대의 예술가들은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이 분열은 바로크 시대에서 극적으로 해소된다. 그리고 그 해소의 방법은 생각하는 나를 중심으로, 이상 대신 현실을, 어제 대신 오늘, 그리고 내일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드디어 오늘날 우리가 이야기하는 근대성(Modernity)는 이 시대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인간적인 것이 가장 우선시되는 세계. 인간들이 만든 규칙이 신의 규칙과 똑 같은 위상과 가치를 지니게 되는 세계. 유한한 세계 속에서 무한한 가치를 가질 수 있는 세계. 아니 무한한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믿고 그것을 포기하지 않는 세계. 이제 무한한 세계에 대한 탐구는 끝이 나고 유한한 세계에 대한 탐구가 시작된다. 드디어 세속적이며 경험적인 세계가 승리를 거두게 되는 것이다. 바로크에 들어서 고딕적 분열 양상은 인간적이며 유한한 세계를 중심으로 해소되기 시작한다. 그것이 완전한 해소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살아가면서 별 불편함 없이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의 해소로도 바로크 예술가들은 만족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인간적이며 유한한 세계를 긍정하는 시대였다.

바로크는 절대왕정의 시대이면서 과학혁명의 시기요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의 시대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들의 시대이면서 우리들의 약점들이 무수한 장점들로 가려져있던 시대이기도 하다. 이 시대의 예술가들에는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i, 1567-1643), 바흐, 헨델(George Frederick Handel, 1685-1759), 카라바지오, 베르니니, 벨라스케즈(Diego Rodriguez de Silva Velazquez, 1599-1660),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 렘브란트, 베르미르(Jan Vermeer, 1632-1675), 푸생, 끌로드 로렌(Claude Lorrain, 1600-1682)이 속하며 셰익스피어의 몇몇 작품들과 라신느(Jean-Baptiste Racine, 1639-1699), 꼬르네이유(Pierre Corneille, 1606-1684), 몰리에르(Moliere, 1622-1673) 등의 프랑스의 극작가들, 그리고 존 밀턴(John Milton, 1608-1674), 존 던(John Donne, 1572-1631)이 여기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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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ne Descartes
Frans HALS, c. 1649
Oil on panel, 19 x 14 cm
Statens Museum for Kunst, Copenhagen


2. 무한한 우주 속의 유한한 인간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가 먼저 이야기했지만, 갈릴레오(Galileo Galilei, 1564-1642)에 와서 비로소 논쟁거리가 된 '지동설'은 인간이, 인간이 살고 있는 이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변방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이 당시 천문학의 발전은 이 우주에는 끝이 없으며 끝 없는 우주에서 인간은 그저 티끌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천동설의 세계 속에서 인간은 신(무한자)과 가까이 있었으며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었고 그것은 신으로부터 물려받은 인간의 가치를 증명해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동설의 세계 속에서 지구는 우주의 변방이며 인간은 신(무한자)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것이었다. 즉 드디어 인간은 신과 무관한 어떤 존재, 심지어 신에게서 버림받은 존재로 떨어지게 된다. 이는 파스칼에게서 두드러지며 바로크 양식의 어두운 그림자에 해당된다. 하지만 뉴턴(Isaac Newton, 1642-1727)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해내며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1-1506)는 신대륙을 발견하고 데카르트는 '생각하는 나'의 확실성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서 티끌 같고 언젠가 죽어야만 하는 인간의 불안은 이 현실 세계 속에서 뭔가를 할 수 있고 알아낼 수 있다는 자신과 자만으로 변모한다. 이것은 정치 세계 속에서 나타나는데, 서구에서는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전제군주제가 확고하게 뿌리내리기 되었다는 점이다. 태양왕 루이 14세의 신화는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 세계의 안정을 바탕으로 상업이 발달하였으며 많은 것을 포기한 구교와 경제적으로 적절한 지위를 부여 받은 개신교 사이의 분쟁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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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of Louis XIV
Hyacinthe Rigaud, 1701
Oil on canvas, 279 x 190 cm
Musee du Louvre, Paris



바로크의 세계는 유한한 인간이지만, 그 인간에 대한 무한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진행된 양식이다. 그래서 바로크의 회화 속에서는 '진리를 잡기 위해서 운동하는 나' 즉, 데카르트적 자아가 있으며 그 운동이 모아지는 빛나는 중심으로 삶의 격정, 활력이 흘러나온다. 드디어 어둠 속에 묻어두었던 헤라클레이토스(Herakleitos)적 세계가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만물은 유전한다. 한 번 담근 강물에 두 번 다시 담글 수 없다. 그러나 바로크 시대를 살았던 이들은 한 번 담그는 그 강물 속에서 강물의 본질을 잡아낼 수도 있으리라는 신념을 가진다.


3. 정지에서 운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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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barkation of St Paula Romana at Ostia
Claude Lorrain, 1637-39
Oil on canvas, 211 x 145 cm
Museo del Prado, Madrid



움직이는 모든 것을 하나로 모아낼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는 것이 고전주의이다. 그것은 기하학적이며 무한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 모든 것이 변하지 않는 어떤 것으로 모아진다. 그래서 이 세계 속에서는 운동이나 생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크는 반대로 운동이나 생성 속에서 어떤 진리를 찾아낼 수 있다고 자신들의 생각을 전개시킨다. 인간은 언젠가는 죽는다. 나는 지금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경험적 세계 속에서 나는 내 가치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드디어 진리를 향한 삶의 성실성이 요구되기 시작한다.

다시 말하자면 모든 것을 알 수 없다는 것의 포기는 경험적 세계 속에 있는 유한한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바뀌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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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Matthew and the Angel
Caravaggio, 1602
Oil on canvas, 232 x 183 cm
Formerly Kaiser-Friedrich-Museum, Berlin
(* 현재는 소실되어 없으며 그 당시 불경하다는 비난을 받았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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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nspiration of Saint Matthew
Caravaggio, 1602
Oil on canvas, 292 x 186 cm
Contarelli Chapel, San Luigi dei Francesi, Rome



하나는 교회로부터 거절당했으며 지금은 사라진 작품이고 하나는 교회에 걸렸고 아직까지 남아있는 작품이다. 카라바지오만큼 바로크 시대에 걸맞은 예술가도 드물 것이다. 그는 난봉꾼에 일자 무식에 매일 사고만 치는 건달이었지만, 그는 예술가였다. 드디어 지적 교양을 가진 예술가에서 지적 교양 없이도 예술 작품을 남기는 예술가의 시대로 변해온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낭만주의 시대의 예술적 영감을 중요시하는 일군의 예술가들은 바로 한 발짝이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시작된 자연과학적 태도는 신의 질서를 자연 속에서 파악할 수 있다는 신념에서 시작되었지만, 예술의 세계 속에서는 그 반대의 결과를 가지고 오게 된다. 매너리즘 예술가인 틴토레토의 <<최후의 만찬>>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모든 것을 하나하나 분석하는 이 태도는 실제 있었던 그것을 그대로 표현해내는 것으로 변화하였으며 바로크에 이르는 그 절정을 이룬다. 그래서 카라바지오의 세계에서 성 마태와 천사는 한 쌍의 연인처럼 붙어있는 것이다. 신의 진리를 알려고 노력하는 고독한 성인과 그 고독을 위로해주는 천사로 말이다. 하지만 카라바지오의 세계는 교회로부터도 거부당했고 그 당시의 일반 대중으로부터도 거부당했다. 아마 21세기에서도 카라바지오의 작품이 불경하다고 여기는 기독교도가 있을 것이니, 17세기 때의 기독교도라면 그 거부는 당연한 것이었으리라.


4. 경험적 세계 속으로

우리 앞에서 지금 두 개의 세계가 놓여있다. 하나는 기하학적이며 영원불멸하며 경건하고 신성한 신의 세계이며 하나는 경험적이며 유한하고 언젠가는 죽게 될 인간의 세속적 세계가 놓여있다. 하나는 파르메니데스(Parmenides)의 세계이며 하나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세계이다. 하나는 정지된 공간의 세계이며 하나는 끊임없이 변화는 시간의 세계이다. 그리고 바로크는 전자보다는 후자에게 그 가치를 두는 양식이다.

베르니니에게 신과의 교감은 인간적인 그 어떤 것으로 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즉 경험해보지 않은 것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아니면 도리어 그의 경험이 신과의 교감과 비슷한 유형이었을 것이라고 믿게 되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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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cstasy of Saint Therese
Bernini, 1647-52
Marble Cappella Cornaro, Santa Maria della Vittoria, Rome
 


더 이상 인간적인 것은 수치이거나 불경한 것이 아니다. 도리어 인간적인 것이야말로 최고의 가치를 지닌 것이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그것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 한 치의 주저함이나 물러남 없이 자신의 모습이 왜소해지고 얼굴에 주름살이 늘어나는 모습을 그대로 화폭에 옮긴다는 것. 이제서야 인간적인 것이 그 나름의 가치를 인정 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데카르트의 세계이면서 우리가 이야기하는 모더니티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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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f-Portrait
Rembrandt, 1627
Oil on wood, 23,5 x 17 cm
Staatliche Museen, Kass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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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f-Portrait
Rembrandt, 1668-69
Oil on canvas, 82,5 x 65 cm
Wallraf-Richartz Museum, Cologne
 



어쩌면 예수도 늙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북유럽 르네상스의 대가인 뒤러가 자신의 초상화에서 자신의 모습을 마치 예수처럼 그렸듯이 렘브란트는 그도 늙는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
 


이제 드디어 변화한다는 것이 가치를 가지기 시작한다. 변화는 운동이며 생성의 세계, 경험적 세계를 뜻한다. 그것은 현실이면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죽는다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바로크 예술가들에게 이것은 훈장과도 같았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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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의 파사드
프란체스코 보로미니(Francesco Borromini, 1599-1667), 로마
 

건축에 도입된 유려한 곡선은 직선적인 느낌을 강조하던 이전의 건축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건축 속에서 도입된 이러한 운동감은 조각에서는 더욱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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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ollo and Daphne
Bernini, 1622-25
Marble, height 243 cm
Galleria Borghese, Rome
 


조각에서 극적인 장면을 만들어내라고 한다면 베르니니만큼 잘 구현했을 만한 조각가도 없었을 것이다. 사랑에 빠진 아폴론과 이 사랑을 거부하는 다프네가 올리브 나무로 변해가는 순간을 표현한 이 조각에서 바로크 시대의 사랑을, 바로크적 비극이 어떤 것인가를 알게 된다. 이제 드디어 언젠가는 헤어질 수 없는 사랑이 누군가의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사랑이 되는 것이다. 세속의 사랑이 주제가 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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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Lady at the Virginals with a Gentleman
Vermeer, 1662-65
Oil on canvas, 73,3 x 64,5 cm
Buckingham Palace, London
 


한 여인이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그 옆에 한 남자가 서서 그 음악 소리를 듣고 있다. 그는 가만히 서서 그녀가 연주하는 음악 속에 빠져있다. 그는 그녀를 사랑하지만, 그녀에게서 그 사랑을 거절당하지 않을까. 이건 이 작품에 대한 추측이긴 하지만, 이제 세속의 사랑, 불경하면서 비도덕적인 사랑도 예술 작품의 소재나 주제가 되기 시작하였으며 종교적인 그림을 그려지는 작업실에서 동시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5. 두 개의 바로크들


매너리즘이 전유럽적 양식이었다면, 바로크는 그 지역마다 각기 다른 형태로 발전한 양식이다. 그래서 바로크는 양식 상으로는 지역에 따라 매우 이질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한 전시실에 나란히 푸생의 'Et in Arcadia Ego, 루벤스의 Raising of the Cross, 베르미르의 Woman Holding a Balance가 걸려있다면, 이 세 작품이 같은 시대의 양식이라고 설명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푸생은 확실히 고전적이다. 어떤 이는 푸생의 작품들을 두고 '바로크 고전주의'라고 말하기도 한다. 유한한 세계 속에서의 진리를 찾아낼 수 있다는, 그래서 끊임없이 운동하는 바로크적 신념은 진리를 찾아낼 수 있다고 믿었다는 점에서 고전적이며 푸생은 소묘를 중요하게 생각하였으며 자신의 작품이 기하학적이길 원했다는 점에서 당시의 다른 화가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고전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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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 in Arcadia Ego
Poussin, 1637-39
Oil on canvas, 185 x 121 cm
Musee du Louvre, Paris
 

하지만 바로크는 고전주의가 될 수 없는 시대였다. 바로크의 예술가들이 잡으려고 노력했던 바 진리는 시간과 변화를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하학적이며 영원불변하는 진리관과는 다른 것이었다. Et in Arcadia Ego, 아르카디아 속에서도 나는 있다는 말은 우리가 꿈꾸는 이상향 속에서도 죽음은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깐 이상향 속에서도 시간이 흐르고 그래서 우리는 늙어 죽는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이 작품 속에서 나오는 여인을 크로노스(시간의 여신)이라고 해석한다.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는 말은 죽음을 막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라는 말이기 보다는 언젠가는 죽을 것임을 알고 살아있는 동안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라는 것을 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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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ill-Life
Pieter Claesz, 1633
Oil on oakwood, 38 x 53 cm
Staatliche Kunstsammlungen, Kassel
 

푸생이 소묘를 중요하게 생각하였다면 이에 비해 루벤스는 색채를 중요하게 여겼던 것같다. 이는 이후에 푸생주의와 루벤스주의의 대립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더욱 격정적이며 회화 속에서 바로크적 운동이 어떤 식으로 표현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격정적인 색채감은 와토나 부셰, 프라고나르 등의 로코코 화가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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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sing of the Cross
Rubens, 1610
Oil on panel, 460 x 340 cm (centre panel), 460 x 150 cm (wings)
O.-L. Vrouwekathedraal, Antwerp
 

루벤스가 궁정적 바로크의 대표적인 화가라면 렘브란트와 베르미르는 시민적 바로크의 대표적인 화가들이다. 특히 베르미르는 수수한 색채 속의 개신교적이며 시민적인 바로크를 보여준다. 네덜란드에서 유행했던 이러한 양식의 바로크는 개신교적 성격과 초기 자본주의 세계 속에서의 예술 양식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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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man Holding a Balance
Vermeer, 1662-63
Oil on canvas, 42,5 x 38 cm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네덜란드의 시민계급들이 좋아했던 것은 풍경화였다. 이러한 풍경화는 끌로드 로렌의 풍경화와는 틀리다. 이러한 풍경화 양식의 차이는 이탈리아와 네덜란드를 비교해보면서 확연히 드러난다. 이탈리아, 특히 베네치아의 풍경화는 화려하면서도 인상주의적 면모를 보여주지만, 네덜란드는 정적이면서 소박한다. 이러한 소박함은 인간적인 것에 대한 겸손으로 이어져 여러 바로크 정물화에서는 유한한 인간임을 인식하고 현실 세계에 보다 충실히 복무하라는 도덕적 메시지를 담게 된다. 또한 그들이 가지고 있던 사치품들을 정물화의 소재로 이용함으로써 동시에 현실 세계에서 축적한 부를 자랑하는 기회로 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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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dscape with a View of Haarlem
Ruisdael, 1670-75
Oil on canvas, 52 x 65 cm
Staatliche Museen, Ber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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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퍼하는 아테나를 왜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 고전주의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는걸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스 사람들이 생각했던 그 '운명'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그 운명이 어떤 것이었던 간에, 젊은 미켈란젤로를 매혹시켰고 자끄 루이 다비드로 하여금 그 대단한 천재성으로 고전주의 양식을 꽃피우게 했던 것이리라.

라신느를 읽은 지도 오래 되었다. 라신느를 읽을 수 있는 여유가 나에게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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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useppe Arcimboldo
Fire.
1566. Oil on wood.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Austria


쥬세페 아킴볼도의 작품이다. 매우 특이한 그림들로 유명한 이 매너리즘 화가는 초현실주의적 원조격으로 추앙받기도 하지만, 천재적이거나 위대한 통찰력을 가진 예술가는 아니다.(* 르네 마그리트가 그렇듯이)

불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초상화는 그려진 모든 것들이 불타고 있거나 불에 잘 타는 것들로만, 즉 우리가 불을 붙일 때 사용하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다른 초상화에서는 과일과 꽃들로만 그리기도 한다.

16세기 매너리즘의 주요 경향들 중의 하나가 '알레고리화의 유행'이다. 위 초상화의 도상학적 의미는 연구서적을 봐야 정확하게 알 수 있겠지만, 추측컨대 불의 알레고리, 혹은 불이 관련된 어떤 알레고리를 응용한 작품이다. 중세, 특히 고딕 무렵에 활성화되기 시작한 알레고리의 경향은 매너리즘에 와서 그 절정기를 맞이하며 바로크까지 이어진다. 낭만주의 시대에서 알레고리화가 그려지기도 하지만, 일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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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최근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 경향의 작품을 보면서 경탄해 하는 이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이들은 정교하게 제작된 Painting을 곧잘 사진과 비교해가며 대단하다는 표현을 금하지 못합니다. 아직까지도 Painting에 ‘발전’이라는 것이 존재하며 그것은 사진에서 보여지는 바의 ‘사실적(realistic)’인, 그 어떤 것을 향해가는 것이라고 믿는 이들이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인상주의의 등장이 사진술의 등장과 발달 때문이라고 이해하는 이들이 많은 모양입니다. 그리고 이 때 리글이 말하는 바의 ‘예술의욕’을 다시 한 번 되새길 필요성이 생기게 됩니다.


예술의 역사 속에서 ‘진보와 퇴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피카소가 비슷하게 말한 바 있듯이 ‘그 시대는 그 시대에 맞는 표현양식을 찾기 마련’입니다. 리글이 미술사 저술에 있어서 현대적인 기틀이 마련하였고 이후 대부분의 미술사가들이 리글의 영향권 안에 놓이게 되는 이유는 ‘사건의 주체를 인간으로 보지만 더 이상 역사의 흘러가는 목표를 파악하지 않으며 단 그 흐름의 법칙성만을 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즉, 인류의 역사가 어떤 목적점을 향해간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며 단지 역사의 흐름에 대한 법칙을 발견하려고 노력하였으며, 동시에 의미에 대한 문제가 오직 미술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오늘날까지 미술사 저술의 모범으로 인정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리글이 말하는 바 ‘예술의욕’은 무엇일까요? 실은 리글은 그의 여러 저서 속에서 ‘예술의욕’을 확실하게 정의 내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의 <>(* 영어번역본 제목)에서 인용해보겠습니다.(* 참고했던 미술사 서적(<<미술사학의 이해>>(헤르만 바우어 지음, 홍진경 옮김, 시공사)의 번역이 리글이 쓴 저서의 내용과 차이가 있어 제가 다시 번역해보았습니다만 엉망이군요. 그래도 참고한 서적에서 파악할 수 있는 것보다는 많이 이해할 수 있는 듯하여 옮깁니다.)


“그러한 모든 인간의 의욕(Wollen)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자기 만족을 향해 있다(말에 대한 가장 폭넓은 감각 속에서 인간 존재가 외적으로, 내적으로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관계를 맺는 것처럼). 창조적인 예술의욕(Kunstwollen)은 인간과 인간의 감각을 통해 인지하게 되는 대상 사이의 관계를 정리한다(regulate).; 이것은 우리가 항상 사물로부터 형태와 색채를 받아들이는 방식이다(꼭 우리가 시작품 속에서 예술의욕(Kunstwollen)을 통해 그것을 시각화시키듯이). 그럼에도 인간은 (수동적으로) 그의 감각을 통해 한정적으로 인지하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능동적으로) 욕구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인간은 인간의 내적 추동력(국가, 장소, 시대에 의해 변해질 수 있는)에 따라 쉽게 인지되어진 세계를 해석하기를 원한다. 이러한 의욕(Wollen)의 성격은 (용어에 대한 폭넓은 감각 속에서) 주어진 시대(Weltanschauung)에서의 세계에 대한 개념(conception)이 무엇이라고 불려지는가에 따라, 즉 종교, 철학, 과학 뿐만 아니라 보통 지배하는 것이라고 말해지는 하나 이상의 어떤 형태들, 정부, 법률 등에 의해 항상 결정되어진다.”

- Alois Riegl, 중에서(<* The Art of Art History : A Critical Anthology> ed. Donald Preziosi, Oxford University Press, p.174)


이러한 예술 의욕으로부터 한 시대를 특징짓는 양식이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양식의 변화에는 ‘진보와 퇴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즉 이집트의 예술 양식에서 그들이 자연주의적 표현 방식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또는 비의도적으로’ 사용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리글 이후 뛰어난 미술사가들 한 명으로 인정 받고 있는 한스 제들마이어의 경우에는 리글을 부정적으로 해석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정신사로서의 미술사(Kunstgeschichte als Geistesgeschichte)’라는 개념은 알로이 리글에게 해당되는 것이라기 보다는 막스 드보르작과 한스 제들마이어에게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신사로서의 미술사’라는 개념을 사용한 제들마이어는 알로이 리글의 ‘예술의욕’의 한계를 아래와 같이 정리합니다. 그리고 아래의 주장은 대체로 긍정적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1. 미술은 다른 것으로부터 파생될 수도 또 대체될 수도 없는 인간의 자율적인 표현수단이라는 이론. 실제 리글은 미술을 일종의 ‘수반현상(Epiphanomen)’이라 파악하고 있다.


2. 천부적인 재능, 어느 개인, 혹은 예술가가 제1차적인 주체라고 하는 관찰. 이와 같은 관찰로 리글은 자신의 집단적 의욕이라는 것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3. 인간의 본성과 이성이 통일성과 불변성을 지니고 있다는 가정. 왜냐하면 인간정신은 사실 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4. 미술가는 항상 그대로 남아있는 자연을 꾸며진 것으로 모방하거나 양식화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제들마이어에게 현대미술(Modern Art)는 ‘타락한 예술 작품’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해 움베르토 에코는 ‘코키토 인터룹투스(Cogito interruptus)’라는 표현을 써가며 조목조목 따집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제들마이어가 그렇게 주장했던 이유는 미술사에 대한 생각이 남달랐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그는 ‘정신사로서의 미술사’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특정 시대의 미술을 유전학적으로 해석함에 있어서 신과의 관계에서 출발한다고 본다. 따라서 정신사로서의 미술사는 구체적으로 보자면 종교사로서의 미술사로 이해될 수 있다. 정신사로서의 미술사에 놓인 핵심은 ‘숭배사로서의 미술사(Kunstgeschichte als Kultgeschichte)’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신에 대한 관계가 진지해질 때 숭배의 표현이 생기기 때문이다. … ‘정신사로서의 미술사’의 초기 과정에 놓인 특성은 그 방법론이 바로 완성되고 있는 단계에서 멈춘 것이다. ‘정신사로서의 미술사’가 내놓으려 했던 것은 ‘세계관(Weltanshauung)’의 역사로 본 미술사였다. 세계관의 개념은 학문사의 과정에서 일종의 유행어가 되어버렸는데, 이는 그 개념이 매우 포괄적인 의미를 지녔기 때문에 아무 것에나 쉽게 적용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교사로서의 미술사에서 세계관이라는 개념의 비중이 확대되자 그 개념은 곧 종교적 특성 혹은 ‘종교적 사상’의 역사에 주로 적용되기 시작했다.”

- H. Sedlmayr, “Kunstgeschichte als Geistesgeschichte”(1949) (* 헤르만 바우어, <<미술사학의 이해 Kunst-Historik>>, p.125에서 재인용)


이런 식으로 제들마이어는 ‘정신’이 놓였던 자리에 ‘신’을 대체시키기 시작하면서 그의 미술사는 미술신학의 자리로 옮겨가게 됩니다. 이러한 제들마이어가 보기에 현대미술이 제대로 평가 받았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원래 그의 스승 막스 드보르작에게 있어서의 미술사는 절대성을 향한 인간의 정신적 발전이라기 보다는 부르크하르트의 문화사적인 관념론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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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시커50-회화

롤프H.요한젠저 | 황현숙역 | 해냄 | 2002.03.11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롤프 H. 요한젠, <클라시커 50 회화>, 황현숙 옮김, 해냄



1.
서평이란 책을 평가하고 읽는 이, 또는 읽을 이를 위해 씌어진 글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글 쓰는 이의 사정에 따라 그 글의 모양새가 달라지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책에 있다기 보다는 책의 외부에 있다. 즉 책을 온전하게 평가하기 못하고 책이 놓여있는 Context에 너무 얽매이게 되는 것이다. 이는 미술사(학)라는 한국에 아직 낯선 학문분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예술을 포함한) 전반에 해당된다는 점에서 서평을 쓰는 이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요컨대 한국의 학문 연구 풍토가 어떠하며 대학 교육이 어떻고 독자의 수준이나 태도가 어떠하다는 말은 되도록 하지 말아야 된다는 것이다. 원래 시대가 혼탁할수록 책에 대한 글에 정확한 시선과 정갈함이 요구되며 가치 있는 책들이 일반 독자에게 읽혀져야만 한다.

2.
미술 작품을 소개하거나 해설하는 책들은 예상 밖으로 많다. 하지만 그 책의 내용이나 질이 의심스러운 책들 또한 많다. 모든 책들이 정확하고 전문적인 지식을 전달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정적인 제목과 허술한 내용과 논증으로 독자를 기만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위험한 그림의 미술사'는 선정적인 제목의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가? 독자의 주머니가 넉넉하다면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나 잰슨의 '서양미술사' 같은 책이 좋다. 혹자는 이러한 '미술의 역사'에 대한 책보다 개별 화가나 개별 작품들에 대한 책으로도 미술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지 않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전체 미술사를 이해하고 있어야만 개별 미술 작품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가능하다.

한 예를 들어보자. 장 프랑수와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1857년)이라는 유명한 작품이 있다. 너무나도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지경이고 곧잘 광고 소재로 이용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작품을 보고 감동을 받는 이는 몇 명쯤 있을까? 아마 고등학교는 말할 것도 없이 대학에서 미술을 가르치는 교수들 중에서도 많지 않을 듯 싶다. 그리고 감동 받지 않았으면서도 너무 유명한 작품이라 자세하게 설명하거나 감동적인 작품이라고 가르친다면 자기 기만적인 행동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이와 가장 유사한 예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가 될 수 있겠다).

Millet, Jean-Francois,
Les Glaneuses, 1857


2002년을 살아가고 있는 나를 포함한 미술작품을 보는 모든 이들이 1857년에 완성된 이 작품을 온전히 감상하기 위해서는 19세기 중반 유럽 사람이 될 필요가 있다(19세기 중반의 사람에게 백남준이나 요제프 보이스의 작품이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하듯이 우리가 19세기 중반에 완성된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 19세기 중반의 사람이 되어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오래된 미술 작품을 보고 이해하고 감동 받기 어려운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이 가지는 의미 내지는 당시 미술계에 던진 충격은 이 작품이 완성되고 난 다음 6년 후의 작품인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터키 목욕탕'을 옆에 두고 보면 쉽게 알 수 있다(눈을 감고 한 화랑에 밀레의 작품과 앵그르의 작품이 나란히 걸려있다고 상상해보라). 자끄 루이 다비드의 제자인 앵그르는 그 당시 프랑스 미술계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었고 그 당시 미술계에서는 앵그르류의 작품들을 최고로 평가하고 있었다. 이 때 공개된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은 한 마디로 충격적인 작품이었다. 롤프 H. 요한젠의 표현을 빌면, '그것은 얼굴에 주먹 한 방을 날리는 것 같은 충격을 주었음에 틀림 없다'.(p. 184)



Ingres, Jean-Auguste-Dominique,
The Turkish Bath, 1862
;Oil on canvas on wood, Diameter 108 cm (42 1/2"); Musee du Louvre, Paris


3.

한 예를 더 들어보자. 주위에 클림트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특히 젊은 여성들이 좋아하는데, 여기에 대해 무척 흥미로운 추측을 해보자. 나에게 클림트의 작품은 뛰어나거나 감동적이지 않은데, 그 이유는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욕심많은 한 화가의 집요함이 너무 눈에 거슬리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고유한 역할을 상실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여성을 비방하고 그녀에게 무한한 애로틱한 힘을 부여하여 그녀 앞에 다가온 남자를 살해하는 요부로 그린다'.(p.214) 이처럼 클림트는 여성에 대해 적대적이었다. 적어도 그의 작품들은 이러한 혐의를 벗기 어렵다. 그런데 이토록 여성을 비하하고 있는 그의 작품들이 도리어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것은 여성들 스스로 이러한 요부를 선호하고 이러한 요부가 되길 꿈꾸는 것은 아닐까? (이것은 추측이기 때문에 자신이 클림트를 좋아한다고 해서 화를 내거나 흥분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러한 추측도 작품에 대한 미술사적 이해를 바탕으로 할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가령 '유디트 I'을 보면 유디트로 표현된 여성의 볼이 붉게 상기되어 있는데, 이는 여성을 성적 대상(또는 노리개)로 파악할 때의 여러 미술 작품들에게 주로 보여진다. 이러한 여성이 빼곡히 그려진 기하학적인 문양들 속에 갇혀있으니, … …


Klimt, Gustav
Judith I ,1901
; Oil on canvas 60 1/4 x 52 3/8 in. (153 x 133 cm) Osterreichische Galerie, Vienna



4.
그러나 이러한 흥미진진한 미술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책은 드물다. 서점에 많은 책들이 나와있기는 하지만, 그 책들을 다 읽을 사람도 없겠거니와 다 좋은 책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내가 대학 일이학년 때 읽은 진중권의 '미학오딧세이'를 지금 읽어보면 무척 식상하고 재미없게 읽혀지지만, 그래도 일반 독자에게는 진중권의 그 책처럼 친절하게 하나하나씩 설명해주는 책들이 더욱 많이 필요하다(대학의 교양 교육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니). 하지만 국내 연구자에 의해 씌어진 우수한 책은 찾아보기 힘들고 그나마 있는 책들은 번역서적들인데 대부분 전문연구서들 일색이다. 지금 내가 소개하고자 하는 책은 일반독자를 위해 씌어진 책이라 할 수 있지만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전문서적 못지 않은 지식과 성찰을 보여주고 있어 일반 독자가 부담을 가지지 않고 읽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이 책 '클라시커 50 회화'는 해냄에서 나오는 시리즈물로서 원래 독일에서 출판된 시리즈이다. 여러 분야들에게 대한 책들이 나와있는데, 미술에 대해서 디자인에 대한 책이 한 권 더 있다. 책은 총 50개의 미술 작품(전적으로 회화에만 국한된)과 이에 대한 상세한 해설, 화가에 대한 간략한 요약으로 구성되어있다. 르네상스 초기, 흔히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의 시작이라고 평가되는 지오토의 '그리스도에 대한 애도'부터 시작해 앤디 워홀의 '마를린'까지 미술사에서 중요하게 평가되는 웬만한 작품들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독을 권해볼 만한 하다. 또한 작품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그 화가의 다른 작품들이나 다른 화가의 작품들까지 곁들이고 있어 독자로 하여금 작품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도와주고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의 일부분을 예로 들어 독자에게 이 책이 읽어볼 만한 책이면서도 만만치 않은 책임을 보여주기로 하자.


DURER, Albrecht
Selbstbildnis im Pelzrock (Self-Portrait in Furcoat, Self-Portrait at 28), 1500
Oil on panel, 67 x 49 cm Alte Pinakothek, Munich


작품의 창작을 수학적인 질서로 파악하고자 했던 뒤러는 휴머니즘(인본주의)를 바탕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의 양식화된 자화상 속에서 인간은 기하학과 미(美)를 통해 그 가치가 상승된다. 그것은 인간과 신이 동일화된 근원을 갖기 때문이다.(p.49)

'자화상'은 뒤러와 르네상스 시대 사람들의 새로운 자의식을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자의식은 바로 신이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했다는 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화가는 신의 뒤를 잇는 제 2의 창조자이다.(p.53)


Millais, John
Ophelia 1851-52
Oil on canvas 76.2 x 111.8 cm (30 x 44 in) Tate Gallery, London


라파엘 전파의 기본 원칙은 자연에 대해 최대한 충실하자는 것이다. 그들은 이상화된 라파엘로의 방식을 거부했다. 초기 르네상스회화, 특히 보티첼리와 초기 르네상스 화가들에서 그들의 전형을 찾았다. 밀레이는 모든 식물과 꽃들을 식물학적 특성으로 파악했다. 그것은 파엘 전파가 추진했던 하나의 '세부적인 사실주의'였지, 결코 포괄적인 사실주의는 아니었다. 밀레나 쿠르베의 동시대적 사실주의와 그들은 전혀 공통점이 없었다. 라파엘 전파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기는 하지만 그 사물과의 직접적인 논쟁을 피한다. 그들의 그림은 비현실적이며 풍경은 상상에서 비롯된다. 지속적으로 영향을 남긴 그들만의 특징이라면 젊은 신부나 죽은 애인으로 또는 남자의 자기 파괴적인 성적 호기심의 대상으로 - 성모이거나 '팜므 파탈'로 - 나뉘어지는 여성상의 분열이었다(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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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Baroque)와 로코코(Rococo)를 분리된 예술사조로 보기는 힘들다. 왜냐면 로코코는 자신감 넘치던 바로크의 숨겨진 이면을 예술가 스스로가 깨닫게 된 것에 불과하니깐. 그리고 예술사에서도 흔히 로코코를 바로크 예술의 후기 경향으로 분류한다.



바로크 예술가로는 바흐, 베르니니, 카라바지오, 렘브란트, 푸생, 루벤스, 베르미르 등등이 속한다. 음악에서는 통저음과 변주의 형식이 등장하고 미술에서는 인간적인 면모의 강조와 빛에 대한 집착으로 나타난다. 형식에 있어서의 고전주의적 화풍은 확고한 질서 속에 대상들을 위치시키길 원하지만 바로크는 끊임없이 변하고 운동하는 이 세상의 우연 속에다 대상들을 위치시킨다. 그래서 인간이 태어나 병들어 죽는 풍경을 자신만만하게 묘사하기도 하고, 종교적 황홀경에 빠진 수녀의 표정이 꼭 오르가즘에 빠진 여인네의 표정과 별반 다르지 않고, 칼로 목을 베는 장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기도 한다. 요즘 말로 하자면 ‘하드보일드’하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인간으로 태어난 것을 자랑스러워했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세상 속에서 같이 움직였다. 그리고 그 움직임은 이 세상의 진리를 포착하겠다는 예술가적 본능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정점에 이른 바로크를 ‘바로크적 고전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적인 면모’를 강조하다보면 어떻게 되는가를 로코코의 예술가들은 보여주고 있다. 즉 뜨거운 사랑이 지나가고 난 다음 남는 것이 섹스에 대한 공허한 갈망이듯이 로코코 예술가들은 그것을 진실하게 보여준다. 


Fragonard의 <그네>라는 작품을 보면 바로크가 어떻게 로코코로 향해갔는가를 알 수 있다. 운동과 빛에 대한 배려가 이 작품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관능성이 지나쳐 지극히 퇴폐적이다. 그리고 그네를 타고 있는 여인의 치마 속을 상상해 본다면 로코코의 퇴폐성이 어느 정도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관음증환자 처럼 그네 바로 아래 한 남자가 올려다 보고 있다. 바로크의 빛과 운동은 그네를 타는 한 여인의 치마 속을 향해버리고 말았다. 이러한 로코코는 와또와 모짜르트에게 와서 끝도 없는 유미주의로 빠져버리고 만다. 와또가 화려한 색채로 그의 그림을 꾸미는 이유는 여인의 치마 속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즉 바로크적이고 매우 건강했던 사랑이 희미해지자 사랑을 지탱시키기 위한 도구로서의 관능이 등장하고 그 관능이 생의 거짓된 안락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예술가들은 자신들이 꾸며놓은 작품 속에 자신의 꿈을 새겨넣는다. 즉 로코코는 바로크의 숨겨진 이면인 셈이다.



현대는 매너리즘의 시대이면서 군데군데 로코코적 장식을 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강수지나 나스타샤 킨스키같은 여자들이 인기를 독차지 했던 시대가 로코코 시대였다. 바로크에서는 건강한 여자들이 인기가 많았지만 그 건강성도 로코코에 와서 그 실체를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현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넌 사랑을 믿니? 훗, 난 섹스를 믿어. 한 번 하자’라고 공공연하게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섹스를 하나의 정치적 도구로 사용하자는 말 속에는(* 지극히 예술사적으로 파악하는 것이지만) 자신의 퇴폐를 숨기기 위한 거짓된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차라리 그냥 ‘프리섹스’를 주장하는 편이 훨씬 진실된 모습이다.


* 요즘 읽고 있는 책들 중 하나가 프랭클린 보머의 『유럽 근현대 지성사』(현대사상사)인데, 위의 글과 관련된 언급을 하려고 한다.


푸생은 1642년에 친구에게 “나는 기질상 혼잡함을 피하고 잘 정돈된 사물을 찾고 사랑할 수 밖에 없다. ...”고 썼다. 또한 프랑스의 모든 화가 중에서 가장 ‘고전주의적’이고 가장 지적인 이 화가는 특히 생애 중반에 그린 풍경화에서 - 케네스 클라크의 말에 따르면 - 자연에게다 “질서와 영속성이라는 풍채”를 부여하고자 시도하였다. <포키온의 장례식>(1648)과 같은 그림에서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다. 자연은 기하학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수평선적 요소와 수직선적 요소가 조화로운 균형을 이루고 있다. 푸생은 이런 균형을 얻기 위하여, 주로 고대양식에 따른 건축물과 신전 등을 도입하였는데, 이는 의심할 바 없이 이상(理想)과 영원함에 대한 감정을 부각시키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63쪽)


-- 보머의 시각은 프랑스의 고전주의를 푸생과 브왈로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이 말은 그 당시 유럽 대륙의 예술적 경향들 속에서 상대적으로 프랑스는 ‘고전적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는 말이다. 17세기는 바로크의 시대였지만, 프랑스 문학에서는 라신느, 꼬르네이유, 몰리에르로 대표되는 고전주의 문학이 휩쓸고 지나간다. 이 불일치에 그렇게 당황할 필요는 없다. 보머가 지적하고 있듯이 17세기의 사람들은 “새로운 항구적인 사물체계”를 원하고 있었으며 그 속에서 이 시기의 고전주의자들은 말 그대로 ‘고전’을 통해서 질서를 파악하려고 했을 뿐이다. 그리고 “파악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 믿음을 변화무쌍한 세계 속에서 하나의 질서를 포착할 수 있다는 예술적 자신감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 자신감이야말로 ‘근대인’을 특징짓는 성격들 중의 하나이다.


* 제르맹 바쟁의 『바로크와 로코코』(시공사)은 꼭 자료집같다는 느낌 때문에 재미있게 읽히지 않는다. 그리고 이 책만 읽고서는 바로크가 무엇이며 로코코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서문에 뵐플린을 빌어 고전적 미술과 바로크적 미술을 설명한 문장은 깔끔하다. : 


“고전적인 미술은 자연에 등을 돌리지 않으므로 관찰의 미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목적은 현상의 무질서함을 넘어서 세상의 질서 이면에 놓여있는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다. 고전적인 구성은 단순하고 명료하며 구성의 각 부분들은 제각기 독립적이다. 또한 정적이며 틀 안에서 폐쇄된 형태를 하고 있다. 반대로 바로크 미술가들은 다채로운 현상에 참여하고자 하며 끊임없이 생성 소멸하는 사물의 유동성에 관심을 가진다. 그들의 구성은 역동적이며 개방되어 있고 틀을 깨고 외부로 확장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구성을 이루는 형태들은 하나의 유기적인 행위 안에 서로 연관되어서 따로 따로 분리될 수 없다. 바로크 미술가들은 확장하고자 하는 기질로 인해 정적이며 육중한 형태보다도 ‘유동하는 형태’를 선호하였으며, 고전주의자들이 강인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 주고자 하였던 것과는 달리 그들은 파토스를 선호하여 고통과 감정, 삶과 죽음의 모습을 가장 격렬한 형태로 묘사하였다.”(6쪽에서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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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1998년 예술사 수업 과제물로 제출한 리포트이다. 참고용으로 활용하기 바라며, 인용 시 출처를 밝혀야만 할 것이다.


1.
지금 당장 밖에 나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그린다면 그것도 하나의 풍경화(landscape painting)가 될 수 있을까? 가령 건조한 표정으로 서있는 건물들이나 건물 앞 둔탁하게 생긴 구조물과 초췌한 빛깔의 나무들, 혹은 건물들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그린다면 말이다. 그렇게 해서 풀밭이나 산이나 강을 그린 화가에게 깊은 겨울의 우울함으로 물들어있는 도시의 풍경을 그린 그림을 들이밀면서 '이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화인가요'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먼저 우리가 여기에 대해 말하기 위해선 우리가 '풍경화'라고 할 때의 그 '풍경'과 철학이나 미학에서 말하는 '자연'-풍경화의 대상이라고 여겨지는-이라는 단어에 대한 정의부터 내려야할 것이다. 철학에서 '자연nature'은 인간에 의해 변형된 세계 바깥의 그 무언가를 의미한다. 그래서 주로 문명이나 문화의 반대를 뜻하며 특히 루소에게는 시원이자 어머니였으며 개인과 사회의 인습을 대체할 수 있는 모델이었다. 하지만 예술에서의 '풍경'은 우리가 어떻게 자연을 바라보는가에 대한 한 양식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그래서 원근법적으로 구성된 자연의 대상도 '풍경'이며 추상적으로 구성된 자연의 대상도 '풍경'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19세기의 보들레르는 지금 우리에게 삭막하게 보이는 도시를 그린 그림도 '풍경화'라고 말했을 것이다. 아니 19세기의 모더니스트라면 모두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2.
중세적 의미에서의 '자연'은 신적인 것과 대비되어 나타난다. 장원이나 성채, 혹은 도시 주변에 펼쳐진 자연, 정확히 말해 '숲'은 이교적 정신의 소유자들의 도피처였으며, 은둔자들, 연인들, 방랑 기사들, 산적들, 무법자들이 도피했던 곳이다. 자크 르 고프의 말을 빌면, "동방에서는 나무가 문명을 의미했지만 서양에서는 그것이 야만을 의미했다. (... ...) 서양 중세에 있어서 모든 진보는 가시덤불과 소관목, 또는 만일 불가피하거나 기술과 장비가 허용된다면, 거목과 처녀림, 페르스발의 '황량한 숲', 단체의 작품에 등장하는 '침침한 숲'에 대한 개간과 투쟁과 승리의 결과이다."(『서양중세문명』, 문학과 지성사) 즉 후세 사람들 눈에 중세가 어느 정도의 어둠으로 뒤덮여 있다고 믿어지듯이, 중세인들에게 숲은 신의 찬란한 빛이 닿지 않는 않는 곳이었다(낭만주의시대 부활되는 중세란 이러한 숲의 중세였다).

하지만 이러한 중세인들의 일반적인 생각과 조형예술의 영역에서 이루어졌던 풍경의 묘사와는 약간의 거리가 있음을 인정해야할 것이다. 왜냐면 중세의 모든 학예활동이 신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듯이 예술에 있어서의 중세 '풍경'은 중세의 '유비론(doctrine of analogy)'으로 인해 '상징의 풍경(Landscape of Symbols)'이었기 때문이다. 즉 꽃이나 정원, 나무들 모두 종교적 상징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은 신의 권능을 찬양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러한 상징성은 고딕을 지나면서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한다. 이러한 사라짐과 함께 고대 그리스 이후 잃어버렸던 양식 상의 자연주의도 천천히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우리는 랭부르 형제(Limbourg Brothers)의 <<베리 공의 시력(時曆) 그림>>을 통해서 중세 말의 풍경화가 어떠한 모습을 띄었는가를 대략적으로 알 수 있다. 시기적으로는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화려하게 꽃을 피우던 15세기(꽈뜨로첸토)였지만 그 당시 북유럽은 아직 고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정확히 말해 '국제고딕시대'). 이 그림에서 우리는 자연에 대한 묘사가 이전과 달리 매우 자연주의적이며 세련되어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늘은 본래의 파란빛을 되찾았으며 길과 토지는 섬세하게 표현되어있는 것이다. 즉 여기에서 우리는 고딕 말에 이루어진 자연주의의 회복이란 다름아닌 자연에 대한 관심의 회복(또는 증대)임을 알 수 있다. 아마 근대의 자연과학이란 이러한 관심에서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3.
르네상스의 원근법은 그 당시의 사람들이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은 고전적인 자연의 이념이라고 할 수 있는 아르카디아(Arcadia)의 이상을 회복하길 원했고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염원했다. 하지만 현실의 자연은 아르카디아가 아니었고 그 때문에 자연 속에서 인간이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그러한 이상은 명확하고 항구적이라고 여겨지던 기하학에 기초한 원근법으로 반영되었으며 그리고 당시의 풍경화를 특징지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분명하게 이해하고 넘어가야할 사실은 이 당시에 '풍경화'라는 장르는 없었다는 점이다. 그러니 지금 이 글에서 이야기되는 풍경화란 풍경 그 자체를 주제로 한 것이 아니라 인물의 배경으로 사용되는 풍경이라는 것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겠다. 그리고 언제나 고전적 시대에는 풍경은 그리 중요한 주제나 소재가 아니었다. 그러니 보다 고전적이라 여겨지는 피렌체의 화가들보다 상대적으로 덜 고전적이며 색채를 중시했던 베네치아에서 풍경화가 많이 그려졌다. 그리고 이 풍경화들은 한결같이 목가적이며 시적인 분위기를 자아내었고 이상화된 상상의 자연을 묘사하였다(조르조네(Giorgione)나 티치아노(Tiziano)의 작품들).

그러나 북 유럽의 풍경화는 이탈리아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즉 고딕의 자연주의가 더 앞으로 나가 북 유럽에서는 실제 풍경에 대한 묘사로 이어진 것이다. 특히 알트도르퍼(Albrect Altdorfer)의 풍경화가 보여주는 사실성은 베네치아의 그것과는 매우 다르다. 우리가 고전적으로 알고 있는 뒤러마저도 매우 사실적인 몇몇 채색풍경화를 남기고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이러한 풍경화들은 자연에 대한 동경이나 혹은 거부와 같은, 어떤 특정한 세계관에 기초해 있는 것이라기 보다는 고딕 시대로부터 이어진 자연에 대한 관심의 증대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할 듯 싶다. 그리고 몇몇 풍경화들은 '풍속화'나 '지도'의 역할도 했음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4.
바로크 시대에 있어서 가장 고전주의적 면모를 보인 푸생(Nocolas Poussin)에게 있어 풍경은 지극히 인본주의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연에다 '질서와 영속이라는 풍채'를 부여하고자 시도했다. 가령, <포키온의 장례식>(1648)과 같은 그림에서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으며, 자연은 기하학적으로 구성되어 있고 수평선적 요소와 수직선적 요소가 잘 조화되어 균형을 이루고 있다. 푸생은 이런 균형을 얻기 위하여 주로 고대 양식에 따른 건축물과 신전등을 도입하였는데, 이는 의심할 바 없이 이상과 영원함에 대한 감정을 부각시키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하지만 같은 시대 끌로드 로렌(Claude Lorrain)의 그림은 약간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는 시간에 따라 변하는 자연 풍경의 인상을 최초로 표현한 화가였으며(인상주의 화가들이 그랬듯이) 언제나 대상을 감싸고 빛나게 하는 빛으로 가득차 움직이는 대기를 통해 작품의 통일성을 유지하였다.

로렌과 비교해, 아니 전 바로크의 화가들과 비교해도 푸생은 확실히 고전주의적이다. 하지만 르네상스 고전주의자들과는 전적으로 다른 세계관에 기초해있으며 그래서 그에게 있어 아르카디아의 이상이란 한낫 허구에 지나지 않았으며 그 이상향 속에서도 사람은 죽는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아르카디아에도 내가 있다(Et In Arcadia Ego)'라는 작품을 그렸던 것이다. 그러므로 양식 상의 유사점을 들어 상이한 시대의 비슷해 보이는 양식을 동일한 심리적 경향의 반영이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가 어떤 항구적인 것을 염원하였음은 분명하지만 르네상스의 화가들처럼 확고한 것은 아니었다.

5.
바로크가 정지해 있는 것보다는 움직이는 것, 존재보다는 운동에 더 비중을 두었듯이 이 양식에서 보여지는 풍경화는 매우 다양한 모습을 띤다. 그리고 우리가 바로크적 풍경화라고 말했을 때 이 단어에 가장 적당한 그림은 아마 루벤스(Peter Paul Rubens)의 <스텐 성이 있는 풍경>(1636)이 될 것이다. 뵐플린은 여기에 대해 "루벤스는 그것(풍경)을 너무도 판이하게 그려내어 우리는 실제 대상 자체가 다른 것이 아닌가 오해할 정도이다. 지면은 온통 구불구불하게 휘어져 있고 나무줄기는 열정적으로 휘감아 올려져 있는가 하면 잎부분은 하나의 덩어리처럼 다루어져 뤼스데일이나 호베마 같은 화가들은 그에 비하면 극도로 꼼꼼한 묘사가로만 느껴진다"(『미술사의 기초개념』, 시공사)고 말한다.

바로크 시대에 있어서 가장 흥미있는 점들 중의 하나는 네덜란드와 플랑드르의 비교일 것이다. 이는 풍경화에 있어서도 그러한데, 가령 네덜란드의 몇몇 풍경화가들-야콥 반 루이스달(Jacob van Ruisdal), 얀 반 호이엔(Jan van Goyen), 마인데르트 호베마의 작품들과 루벤스의 작품을 놓고 본다면 확연히 구분된다. 네덜란드 풍경화에 대해서 말하기 위해선, 그리고 바로 인접해있으면서 양식상 매우 상이한 것에 대한 의문에 대해선 아놀드 하우저의 견해가 설득력을 가질 것이다. 즉 플랑드르는 구교의 세계였고 네덜란드는 개신교의 세계였으며 시민계급이 주류인 사회였기 때문에 플랑드르와 달리 네덜란드에서는 범속한 시민계급의 취향을 위해 풍경화가들이 많았으며 편안하고 끝이 확 트인 풍경화를 주로 그렸던 것이다.

대체로 바로크 양식의 후기 경향이라고 여겨지는 로코코 시대에 풍경화가 활발하게 그려진 곳은 베네치아였다. 특히 이 도시의 궁전이나 운하, 베네치아인들의 생생한 삶을 묘사한 풍경화를 베두테(vedute)라고 불려졌고 이 그림들은 전 유럽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와 달리 실제의 공간과 상상의 공간이 혼합된 풍경화를 카프리치오(capriccio)라고 불렀는데, 이 양식은 목가적이고 전원적인 풍경을 선호하였고, 환상적인 구성과 장식적인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베두테와 카프리치오만 놓고 비교해본다면 후자가 더 로코코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특히 프랑스의 로코코 화가들이 보여준 페트 갈랑트(fe^te galante)류의 그림들 속에서 우리는 로코코의 화가들이 자연을 어떻게 보았는가를 알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바로크에서의 보여주던 자연에 대한 치밀한 묘사가 다분히 후퇴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 자연은 그 생동감을 잃어버리고 화려하고 다분히 향락적인 색채로 치장되어 있으며 도피적이면서 이국적이다. 우리는 앞에서 말한 바 있는 '아르카디아'가 로코코에 와서 어떻게 변했는가를 유심히 살펴보아야할 것이다. 즉 현실의 색채를 잃어버리고 꼭 꿈에서 보았던 것처럼 한없이 몽환적인 색채를 보이고 있는 로코코의 풍경은 고전적 신념이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가를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실제의 자연 대신 그들은 꿈 속의 자연을 택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6.
풍경화가 현대적인 의미로 이해되기 시작한 것은 낭만주의시대부터이다. 특히 영국의 풍경화가들은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전해주었다. 특히 터너의 경우 인상주의 작품들처럼 대상과 풍경은 구분되지 않는데, 그가 끌로드 로렌을 의식하고 있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이다. 터너는 로렌의 그림이 지니고 있었던 명료함과 구체성, 그리고 고요함을 버리고 동적이며 화려하고 현란한, 그야말로 자연이 모든 것을 삼킬 듯할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존 콘스터블은 언제나 야외로 나가 스케치를 했으며 자신의 눈으로 정직하게 자연을 파악하기를 원했고 그런 그림을 그렸다. 이때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picturesque'라는 단어는 이 당시 영국 풍경화가들의 그림들에게 붙여졌다. 로렌이 상상 속으로 헤매이고 있었다면 콘스터블은 인상주의자들이 했던 방식으로 했던 자신이 바라보는 바의 풍경으로 다가간 것이다. 아마 인상주의자들이 사용했던 주석튜브가 만들어졌다면 그는 야외에서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작품들이 한결같이 자연을 소재나 주제로 삼았다고 해서 자연이 우리에게 친근하게 다가오고 있는 중은 아니었다. 도리어 자연은 인간에게서 멀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빅토르 위고는 <크롬웰 서문>에서 '인간은 지상을 향하여 몸을 구부릴 뿐만 아니라, 자신의 본향인 하늘을 몸을 내던지고 있다'고 말했다. 낭만주의자들은 계몽주의를 거부했으며 합리적이며 과학적인 사고들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고 자연은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될 수 있다기보다는 이해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그 무엇을 의미하였다. 특히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일련의 작품들에서 인간은 보이지 않거나 고작 뒷모습만을 드러낼 뿐이며 언제나 자연풍경은 광대하며 끝없이 이어져 있다.

칸트의 '숭고'는 낭만주의의 풍경화가 무엇을 의도했는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단어들 중의 하나일 것이다. 숭고의 느낌은 무형이나 기형(광대함 혹은 강력함)에 직면할 때 체험된다. 미가 오성과 관계한다면 숭고는 이성과 관계하며 생명력의 일시적 정지에 따른 감동이며 외경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나 낭만주의의 풍경화 속에서 인간은 고전주의가 가지고 있었던 중심의 자리를 상실하고 풍경 속에 묻히거나 그 일부가 된다.

7.
낭만주의가 인간 이성의 한계를 말한 최초의 거대한 흐름이었다면 인상주의는 그것을 극단까지 밀고간 양식이라고 말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18세기 후반 영국 풍경화가들가 인상주의를 잇는 19세기 초의 프랑스의 화가들, 으젠느 들라크르와, 장 바띠스트 까미유 꼬로, 사를르 프랑스와 도비니, 나르시스 디아즈, 귀스타브 꾸르베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대해서 언급하기 시작한다면 이 글은 매우 길어질 것이고 한편으로는 이들이 바라보았던 풍경들은 바로 인상주의의 풍경화로 귀결되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아도 좋을 듯싶다.

이제 '자연 그 자체'란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르네상스 고전주의 화가들의 풍경은 인간의 눈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의 풍경이었지만 인상주의에서의 풍경은 파악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의 풍경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즉 내가 보는 풍경과 네가 보는 풍경은 다르며, 그래서 진정한 자연주의란 한 개인의 감각 경험에 집중하는 것이며 이제 풍경화는 시시각각 변하는 빛의 변화에 충실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 시대, 19세기 후반을 보면서 우리는 자연의 이상성이라든지 숭고함, 또는 루소적인 의미에서의 자연이 사라졌음을 알 수 있다.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esse est percipi'를 실현하는 인상주의는 자연의 광경을 계속 새롭게 하기 위해서 순간적인 것으로 환원시켜버린다.

발레리가 문학에서 있어서 묘사에 대해서 말하기를, '묘사란 일반적으로, 위치를 바꿔 놓아도 좋은 문장으로 이루어진다. 나는 이 방을 그 순서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일련의 문장으로 묘사할 수 있다. 시선은 원하는 대로 방황한다. 이런 방황보다 더 자연스럽고 더 진실한 것은 없다. 왜냐하면 진실은 우연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던 방식과 똑같이 우리는 인상주의자들의 그림에 대해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드디어 '행동에 의해 지배되는 행동의 종속물로서, 풍경은 멋있는 것이 있는 장소, 몽상의 거주지, 방심한 눈의 즐거움이 된다. 그리고는 인상이 승리한다. 질료와 빛이 지배한다.'(폴 발레리, 『드가, 춤, 데생』, 열화당)

인상주의의 풍경화-모네, 피사로, 드가, 르느와르의 작품들을 정확하게 말하자면 '반자연'적이라고 말해야할 것이다. 즉 자연법칙이란 항구적이지도 불변하는 것이 아니며 자연 그 자체란 인간의 이성으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자연이란 각각의 개인이 가지고 있는 감각이 구성해내는 각기 다른 자연들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낭만주의자들이 인간 이성에 대한 신뢰 대신, 그 반대 급부로 자리잡은 자연에 대해 한없는 경외감을 품었다면 인상주의자들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가 외부 세계에 존재하는 자연마저 무시하고 아예 '자연은 상상력이 없다'라고 말하는 보들레르나 '예술이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예술을 모방한다'고 말한 오스카 와일드에 더 가까이 있는 것이다.

이제 예술가들이 집중하는 것은 외부 세계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내부 세계로서의 자연이며 그 속에서 풍경화는 구체성 대신 추상성을 띄기 시작한다. 세잔느의 기하학주의는 이러한 경향의 최초의 움직임이라고 말해야할 것이다. 세잔느는 '사람의 얼굴도 하나의 대상으로서 그려져야 한다'고 믿었으며, '예술가는 이 완벽한 예술작품을 쫓아야만 한다. 모든 것은 자연에서부터 나온다. 즉 우리는 자연을 통해 존재하며,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란 오직 자연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파악한 자연은 외부 세계에 있는 자연이 아니라 그의 내부에 있는 자연이었다. 그래서 인상주의 이후의 풍경화를 '내면의 풍경화'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적절해 보인다.


* 보론 - 자연주의에 대하여

자연주의란 사실주의라는 단어에서 가치나 도덕, 혹은 신념 따위를 뺀 용어이며 이 용어 또한 사실주의와 비슷하여 그 명확한 정의를 내릴 수 없다. 하지만 예술사에서 자연주의는 사실주의보다 그 사용이 더욱 빈번하고 위의 글에서는 나는 '자연주의'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으므로 적어도 이 글 내에서 자연주의가 어떤 용례로 쓰였는가를 말해야 옳을 듯 싶다.

자연주의란 이성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기 보다는 다분히 심리적인 그 무엇에 기반을 두고 있는 용어임에 분명하다. 그래서 우리는 사진보다 인상주의의 그림을 더 자연주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고딕의 조각들이 로마네스크의 조각보다 더 자연주의적인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자연주의적이라고 말할 때 그 기초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것의 기초는 우리의 지각에 있다. 우리가 보는 바 우리의 감각에 더 충실한다면(매우 모호한 표현이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우리에게 더 자연스럽게 보인다면') 그것이 더 자연주의적인 양식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상주의는 '반자연적인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감각으로 받아들였던 자연을, 그들의 작품들을 통해 도리어 자연을 부정한 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부분에서의 '자연'과 '자연주의'를 혼동하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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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내렸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알 턱도 없었고 알기도 싫었을 것이며 알려는 의지도 없었다. 이미 선 긋기는 시작되었다. 저 땅은 아무리 노력해도 닿지 못하는 곳.....

웹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필립 솔레르스(Philippe Sollers)가 사드(Marquis de Sade)에 대해 인터뷰하는 영상을 보았다. 영상 속에서 한국에서 사드의 책을.....

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

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 This Craft of Verse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박거용 옮김, 르네상스 우리는 시를 향해 나아가고, 삶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리고 .....

대학로 그림Grim에서

"글을 쓰지 않아요?"라고 묻는다. 매서운 바람이 어두워진 거리를 배회하던 금요일 밤, 그림Grim에 가 앉았다. 그날 나는 여러 차례 글을 쓰지 않냐는 질문을 받았다. 가끔.....

아우스터리츠Austerlitz, W.G.제발트Sebald

아우스터리츠 Austerlitz W.G.제발트(지음), 안미현(옮김), 을유문화사 병상에 누워, 안경을 쓰지도 못한 채, 제발트의 <<아우스터리츠>>를 읽었다. 병상에서의 소.....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 다나카 준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 다나카 준(지음), 김정복(옮김), 휴머니스트 일본인 저자가 쓴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이라니! 놀랍기만 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The Sense of An Ending, 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The Sense of An Ending 줄리언 반스(지음), 최세희(옮김), 다산책방 나는 우리 모두가 이러저러하게 상처받게 마련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

쓸쓸한 커피숍

2016. 06. 10 오늘도 기다림은 이어진다. 그리움은 늘 그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다....

혼술의 My Way
혼술의 My Way
테슬라의 Market Cap(시가 총액)
음악 소비는 이제 스트리밍이 대세
혼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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