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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수업

시 창작 수업이다. 5월. 1층 강의실 옆 잔디에 한 무리의 학생들이 대낮부터 막걸리와 소주를 펼쳐놓고 술을 마시고 있다. 의례 술잔 옆에는 시집이나 소설 몇 권이 나뒹굴고. 강의를 하러 들어온 교수는, 출석을 부르다 말고 고개를 돌려 창 밖으로 술판을 벌이고 있는 학생들 틈에서 이 수업을 들어와야할 학생들이 있음을 발견하곤 한심한 눈으로 강의실에 앉아 있는 학생들을 쳐다본다. 이 좋은 봄날에 자네들은 강의실에서 뭐하는 짓인가. 자네들은 시를 쓸 수 없겠구만. 하곤 2시간 강의를 꼬박 채우고 창 밖 학생들의 술자리로 간다. 강의실에 앉아 있던 몇 명의 학생들도 투덜대면서 술자리로 간다. 그렇게 어느 대학 봄날 오후가 지나간다. ----------- 생각해보면, 대학 2학년 때, 군대 가기 전 낮술이 정말..

바다와 나비, 김기림

바다와 나비 아모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모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나려 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저러서 공주처럼 지처서 도라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어서 서거푼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김기림 시집이 있었다. 가끔 꺼내 읽었는데, 누군가에게 빌려주고는 돌려받지 못했다. 그리고 빌려준 그 이는 먼 유럽으로 유학을 떠나버렸다. 한 밤 중에 바다와 나비라는 시를 작은 소리로 읽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