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38

세계의 박물관 미술관 예술기행, 차문성

세계의 박물관 미술관 예술기행 - 유럽편 - 차문성(지음), 책문(성안당), 2013년 초판/2015년 장정개정판 좋은 책이다. 비전문가인 저자가 전문가가 되어간 과정이 녹아있다. 성실한 내용과 애정이 담긴 글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박물관학 석사 과정을 마쳤으나,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특히 유럽 주요 도시에서 가기 쉬운 미술관/박물관을 선정해 보여주었다는 점도 이 책이 꽤 실용적임을 증명한다. 내가 이 책을 읽은 목적은 유럽의 여러 도시에 흩어진 미술관, 박물관에 대한 체계적인 정보를 얻기 위해서 였다. 그러나 이 책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대한 체계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책 제목 그대로 예술기행이다. 런던, 파리, 암스테르담, 프랑크푸르트, 생페테르부르그 등의 도시에 있는 미술관/박물관..

현기증.감정들, W.G.제발트

현기증. 감정들 Schwindel. GefühleW.G.제발트(Sebald) 지음, 배수아 옮김, 문학동네 하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 우연히 일어난 피부 접촉은 늘 그랬듯이 무게도 중력도 없는 어떤 것, 실제라기보다는 허상과도 같은, 그래서 한없이 투명한 사물처럼 나를 관통해가는 성격을 띠고 있었다. (95쪽) '벨, 또는 사랑에 대한 기묘한 사실', '외국에서', 'K박사의 리바 온천 여행', '귀향'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단편소설집일까, 아니면 장편소설일까. 아니면 이 구분이 그냥 무의미한 걸까. 장편소설이 아니라 단편소설집이라고 하기엔 4개의 이야기는 하나의 주제의식을 공유하는데, 그건 여행(에의 기록/기억)이다. 서로 다른 인물들의, 서로 다른 도시로의, 서로 다른 시기 속에서의, 하지만 ..

새벽 3시 고요한 더위

도심 한 가운데 호텔 입구의 새벽 3시는 고요하기만 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호텔 안으로 들어가거나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있는 풍경이 연상되는 것은, 호텔이라고 하면, 놀러오는 곳이라는 인상이 깔려있어서다. 떠.나.고.싶.다.모.든.것.을.버.리.고.저.끝.없.는.우.주.여.행.을. 호텔은 해마다 한 두 번씩 돌아오는 낯선 우주다. 호텔의 하룻밤은 아늑하고 감미로우며 여유롭지만, 그와 비례해 시간은 쉽게 사라진다. 새벽 3시. 여의도 콘래드 호텔 바로 옆 빌딩에서 며칠 째 새벽까지 일을 했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고 원하지도 않았으며 끌려다녔다. 이런 식이라면 그만 두는 게 상책이나, 관계란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를 일이다. 관계는 우리는 견디게 하고 지치게 하며 상처 입히고 미소짓게 만든다. 관계..

용유역 바다

9호선을 타고 김포공항에서, 다시 공항철도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그리고 다시 자기부상열차를 타고 용유역으로 가면 바다를 볼 수 있다. 큰 건물의 회센터가 있고 파도소리를 들을 수 있고 작은 배들을 떠있는 얕은 바다와 마주할 수 있다. 그냥 전철 타고 가서 회 한 접시 먹고 와도 좋을 것이다. 바로 옆엔 네스트호텔이 있으니, 하루 밤 보내고 와도 될 것이다. 아무런 계획 없이 훌쩍 떠나고 싶은 요즘이다.

일요일의 인문학, 장석주

일요일의 인문학 장석주(지음), 호미 "책은 소년의 음식이 되고 노년을 즐겁게 하며, 번역과 장식과 위급한 때의 도피처가 되고 위로가 된다. 집에서는 쾌락의 종자가 되며 밖에서도 방해물이 되지 않고, 여행할 때는 야간의 반려가 된다." - 키케로 일종의 독서기이면서 에세이집이다. 서너 페이지 분량의 짧은 글들로 이루어진 이 책은, 시인이면서 문학평론가인 장석주의 서정적인 문장들로 시작해, 다채로운 책들과 저자들을 소개 받으며, 책과 세상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에 빠질 수 있게 해준다고 할까.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 이 책은 가벼울 것이고 어떤 이들에겐 다소 무거울 수도 있다. 깊이 있는 글들이라기 보다는 스치듯 책들을 소개하고 여러 글들을 인용하며 짧게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면서 끝내는 짧은 글들이 대부분이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시미즈 레이나(지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시미즈 레이나(지음), 박수지(옮김), 학산문화사 La', tout n'est qu'ordre et beaute',Luxe, calme et volupte' 그 곳에선 모든 것이 질서와 아름다움,호화로움, 조용함, 쾌락 뿐.- 보들레르, 중에서 나에게 행복이 있다면, 그건 길을 가다 우연히 들른 서점에서 이미 절판되어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책을 우연히 구하는 것. 1990년대 중반, 여행이라도 가게 되면, 나는 그 지역의 서점과 레코드샵을 찾아 다녔다. 작은 서점 구석에 낡은 문고판 책이나 문학 전집의 낱권을 샀다. 작은 도시의 서점에 있을 법 하지 않은 인문학 책을 구할 때면, 신기함마저 느끼곤 했다. 대학 시절, 얼마 안 되는 용돈이었으나, 그 돈으로 틈만 나면 책과 ..

어떤 술은 참 오래된 벗.

어떤 술은 참 오래된 벗.에라주리즈 에스테이트 까베르네쇼비뇽. 이 가격대(1만원 ~ 2만원 사이)에서 가장 탁월한 밸런스를 보여준다고 할까. 가벼운 듯 하면서도 까쇼 특유의 향이 물씬 풍기는 와인. 이 와인을 즐겨 마신 지도 벌써 10년. 그 사이는 나는 이 와인을 참 많은 사람들과 마셨구나. 아직 만나는 사람도 있고 연락이 끊어진 이도 있고. ... 흐린 하늘의 춘천을, 사용하지도 않을 우산을 챙겨들고 갔다 돌아온 토요일 저녁, ... 한없이 슬픈 OST를 들으며 ... 참 오랜만에 혼자 술을 마신다. 오마르 카이얌도 이랬을까. 인생은 뭔지 모르지만, 술 맛은 알겠다고...

2013년 속초 여행의 기록

여행에 대한 기억은 사진으로 되살아난다. 사진이 없으면 여행은 없다. 그저 사라질 뿐이다. 여행 이후 쌓이는 건 사진이고 추억은 사진에 기생하는 어떤 것이 된다. 작년 늦가을 속초를 다녀왔다.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한, 사람은 나고 자란 곳을 잊지 못한다. 내가 자란 곳이 중소 도시이듯, 이런 도시에 가면 살고 싶어진다. 바람이 막힘없이 흘러가는 도시, 조금만 움직이면 산과 바다를 볼 수 있는 도시, ... ... 나도 서울에 지쳐가고 있었다. 내가 서울로 올라온 지도 벌써 20년이 넘었다. 누군가는 여행에 대해 이렇게 적는다. "여행을 통해 사람들은 사회적 죽음을 겪는다. 자기가 속한 사회에서 벗어남으로써 부재를 경험한다. 나 없이도 잘 돌아가는 세상을 지켜보며 자신의 가치를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

쌤소나이트의 아트 콜라보레이션 Samsonite - Art Collaboration

기업은 예술, 혹은 예술가를 원하고 예술은 기업을 찾는다. 하지만 쉽지 않다. 그리고 의외로 성공 사례도 많지 않다. 한국의 많은 기업들이 연례 행사처럼 'Art Calendar'를 만들기도 하지만, 직접 제작 경험을 가진 나로선, 그것이 얼마나 요식 행위인지 잘 알고 있다. 이런 식의 일회성 진행보다 체계화된 '아트 콜라보레이션 Art Collaboration' 프로젝트는 여러 모로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쌤소나이트의 '아트 콜라보레이션'은 이미 2011년부터 진행하여 이번이 네 번째라는 점에서 놀라웠다. 2011년 배병우, 2012년 이용백, 2013년 황주리. 국내 최고의 작가들과의 예술 협업, 즉 아트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였고 2014년은 네 번째 아트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다. 쌤소나이트의 이..

딸과 떠나는 인문학 기행, 이용재

딸과 떠나는 인문학 기행이용재(지음), 디자인하우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나도 책 한 권 써서, 쓴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경제적인 위기에서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아주 비현실적인 상상이긴 하지만, 혹시라도 뭔가 힌트를 얻을 요량으로 이 책을 읽었다. 나는 잘 팔리는 책과는 거리가 먼 필자에 가깝기 때문에, 잘 팔리는 책은 어떠한가 살펴보기 위해.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목적이 아니었다면, 정말 후회했을 것이다. 이 책은 글의 조탁(彫琢)이라든가, 단어의 선택, 문맥의 흐름 따윈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심지어 글의 내용과는 무관한 누군가의 리뷰가 글 초반에 인용되기도 하고(재미 삼아 옮긴 듯한) 인문학 기행이라고 하기엔 너무 빈약했고 마치 짧은 참고서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