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152

이상한 날씨, 올리비아 랭

이상한 날씨 (Funny Weather - Art in an Emergency) 올리비아 랭Olivia Laing(지음), 이동교(옮김), 어크로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전달하기 위해 이미지를 만든다. 이미지로 하여금 우리가 갈 수 없는 곳에 가고, 더는 할 수 없는 말을 하게 한다. (205쪽) 예술은 학문이 아니다. 그것은 즉흥적으로 도달한 비상구, 한때 사람이 살았던 섬뜩한 공간을 오가는 일이다. (209쪽) 오랜만에 예술 관련 책을 읽었다. 좋았다. 그건 예술 관련 책이라서기보다는 올리비아 랭이었기 때문이다. 우선 그녀의 글은 상당히 좋다. 예술에 대한 사랑이 있고 예술가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 그녀는 예술을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사랑하는지 안다. 그래서 글은 깊이 있으면서도 따뜻한 진지함..

헬레니즘 모자이크화, 터키 제우그마 Zeugma

가끔 고대의 예술 작품을 보면 놀라게 된다. 위 작품은 비교적 최근에 발굴된 유리 모자이크화로 기원전 2세기 경 지금의 터키 내륙에 위치한 제우그마(Zeugma)라는 곳에서 발굴되었다. 이 도시는 알렉산더 대왕의 장군 중 한 명이었던 셀레우쿠스 1세 니카토르(Seleucus I Nicator)가 자신의 이름을 따서 Seleukia-on-the-Euphrates으로 알려진 도시이기도 하다. 기원전 64년 로마제국에 의해 현재의 제우그마라고 불리게 된다. 유프라테스 강 인근에 위치해 있는 이 도시는 현재 바레인댐의 건설로 일부 강물 속에 잠겨 있으며, 고대 그리스 로마 유적들이 유실될 것으로 우려해 최근 집중적으로 발굴되기도 했다. 제우그마 모자이크 박물관은 세계에서 가장 큰 모자이크 박물관이기도 하며 한 ..

메이플소프와 패티 스미스, 1969

메이플소프의 꽃 사진이 아닌, 미국 내에서조차 논란을 불러일으킨 작품들을 올리고 싶지만, 아마 바로 차단당할 것이다. 섹슈얼리티는 논란의 대상이다.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이 조금 이상하지만, 여하튼 그렇다. 메이플소프는 독실한 카톨릭 집안에서 태어났고 어렸을 땐 신부님께 종교적 의미가 담긴 그림을 그려 주기도 하였다. 그가 갑자기 변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스스로에게 자연스러워졌을 뿐. 몇 해전 시간을 내어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메이플소프 전시를 보러 갔다. 좋았다. 패티 스미스는 라는 책을 통해 메이플소프를 이야기했다. 나는 이 책이 번역되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미국에서 출간된 후 몇 해 지나지 않아 국내에서 번역출간된 걸 보면 조금은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다. 며칠 전 메이플소프 다큐멘터리를 보면..

타타르인의 사막, 디노 부차티

타타르인의 사막 Il deserti dei Tartari 디노 부차티Dino Buzzati(지음), 한리나(옮김), 문학동네 "저야 알 도리가 없지요.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으리란 건 다들 압니다. 하지만 사령관이신 대령님이 배운 카드점에 따르면, 아직까지 타타르인들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옛 부대에서 잔류한 타타르 병사들이 여기저기에 뿔뿔이 흩어져 있다고 말이지요." (69쪽) 사막 너머 타타르인들이 살고 있으며, 언젠가 우리를 침략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있고 지키고 있는 이 요새는 그 예정된 전쟁을 막기 위한 최전선이다. 그 곳에 새로 부임한 신참 장교 조반니 드로고도 결국 그 전쟁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그 요새를 지키다가 떠나간 많은 군인들이 그러했듯이. 그러나 전쟁은 일어나지 않고 전쟁이 일어날..

내 부모My Parents,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데이비드 호크니.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이 작가는 현대적 방식으로 원근법을 재해석하였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언뜻 보기엔 원근법적이지만 자세히 보면 교묘하게 원근법을 비틀어, 반-원근법적인 서사를 구성한다. 일종의 해체. 그러나 이건 분석하기 좋아하는 이들의 화법일 뿐(그래서 데이비드 호크니는 현대 비평의 측면에서도 성공한 작가이다). 호크니의 실제 작품은 이 비평적 언어를 뛰어 넘어 아득한 감동을 선사한다. 그것은 그의 작품들이 이 세계의 불완전함 위에 서 있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파스칼적 구도랄까. 우리는 세계와 싸우며, 해석하고, 저 외부 세계 속에 자리 잡으려고 하나, 세계는 우리가 자리 잡게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리 잡지 못한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정지한 시공간과 ..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줌파 라히리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줌파 라히리(지음), 이승수(옮김), 마음산책 극히 일부의 작가들만 여러 개의 언어로 글을 썼다. 또한 어떤 작가들은 모국어 대신 다른 언어로 글을 썼다. 사무엘 베케트는 영어와 불어로 글을 썼다. 대표작인 는 불어로 먼저 썼고 후에 스스로 영어로 번역했다. 조지프 콘래드는 모국어인 폴란드어 대신 영어로 글을 썼으며, 러시아 태생의 나보코프도 영어로 글을 썼다. 나보코프는 어렸을 때부터 러시아어 뿐만 아니라 영어, 프랑스어를 배웠다고는 하지만, 그의 영어 문장은 압도적이다. 루마니아 태생의 에밀 시오랑은 젊은 시절 루마니아어로 글을 쓰다가 아예 파리에 정착해 불어로만 글을 썼다. 그의 불어 문장은 20세기 최고라는 명성을 얻었다. 줌파 라히리도 모국어는 뱅골어지만, 어렸..

발상의 전환, 전영백

발상의 전환, 전영백(지음), 열림원 책을 다 읽었으나, 메모를 하거나 리뷰를 하지 못한 책이 여럿 된다. 이 책도 그 중의 한 권이다. 올해 초에 즐거운 마음으로 읽었는데,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오늘 예전 노트를 꺼낼 일이 있어 보다가 이 책을 읽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이젠 뭘 읽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책과 거리를 두게 된 것일까, 아니면). 개인이 겪는 상실의 아픔, 사랑과 그리움, 내면의 고통과 불안, 그리고 지극히 사적인 신체적 경험과 그 감각, 그리고 작가의 손에 관하여 미학으로는 미술작업에서 경험하는 관조와 사색, 개입과 참여, 몰입과 침잠, 그리고 포스트모던 아트가 추구하는 주체의 체험과 감각에 대하여 문화에서는 문화번역의 문제, 국가주의와 다른 진정한 문화적 특징에 관한 모색,..

살아 있는 누군가 마음 속에서의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데미안 허스트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살아있는 누군가 마음 속에서의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이라는 뭔가 심오한 제목을 가지고 있지만, 글쎄다. 얼마나 심오한 철학을 담고 있을 지는 현대미술 전문가들의 손길에 기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들은 상당히 어려운 단어들로 포장해서 설명할 것이다. 가령 아래와 같이. 1980년대 이후 현대미술은 신체에 대한 폭력성과 자기 분열을 보이는 일종의 '신경증적 리얼리즘neurotic realism'을 나타냈다고 말한다. 허스트의 개념미술은 그러한 증상을 표현한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 전영백, , 106쪽 '신체에 대한 폭력성'이 다소 낯설지만, 내가 이해하는 바대로 풀어보자면..

나의 사적인 도시, 박상미

나의 사적인 도시 박상미(지음), 난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상도터널 옆 김영삼도서관. 몇 년 동안 빈 건물로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작년 겨우 개관할 수 있었다. 텅 빈 건물을 보며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는데, 최근에 문을 열고 동네 사람들의 휴식 공간이 되고 있었다. 아직 책이 많지 않고 장서 분류에 따라 몇 층으로 나누어져 있어 계단을 오가는 것이 불편하지만, 그래도 새 책이 많다는 것이 좋다. 인근의 동작도서관가 장서 목록이 묘하게 겹치지 않는 것도 흥미롭다. 한 때 모든 걸 그만 두고 사서가 되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런데 사서가 된다고 해서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책을 가까이 하고 싶다는 사소한 희망이었지만. 대부분의 취미, 혹은 사랑은 늘 마주하는 직업이 되는 순간 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