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9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1년 8월호

르몽드 디블로마티크, 2021년 8월호 Le Monde Diplomatique 창간호부터 약 2년 가까이 매월 사서 읽다가 그만 두었다. 의외로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고 굳이 읽을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다른 나라의 지엽적인 부분까지 다루고 있어, 차라리 다른 책이 낫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또한 종이 종류나 두께(살짝 두꺼워 제대로 접히지 않는다), 그리고 사이즈도 애매해서 서가에 보관하기도 쉽지 않았다(반으로 접어 세우면 서가에 들어가지 않는 칸이 더 많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 잡지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그나마 돈 주고 사서 읽을 만한 거의 유일한 잡지에 가까워서, 종종 사서 읽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다른 책을 들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이번에, 마틴 스콜세지의 헌사, “펠리니와 함께 시네마..

문득 스페인에 가고 싶은 일요일

세스 노터봄의 여행 산문집 은 절판이다. 어렵게 중고로 구했는지, 이젠 중고 책들이 온라인 서점에 많아졌다. 어떤 책에 빠지면, 그 곳에 가고 싶고 그녀를 만나고 싶고 그 요리를 먹고 싶다. 노터봄의 이 책을 읽으며 스페인에 가고 싶어졌다. 유럽이면서 유럽이 아닌 곳, 스페인. 해외 여행은 이제 몇 년 후의 바람이 되었으니, 가고 싶은 여행지 목록이나 만들고 있어야겠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스페인의 내륙지방, 여기서 가고도 참 어려운 곳, 소리아가 궁금해졌다. 1960년대 초반 스페인의 지방 도시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한 사람은 소리아Soria로 가면 된다. 관광객으로 흥청거리지 않으니 멀쩡한 옛날 건물을 헐 이유도 없고 볼썽사나운 콘크리트 블록으로 도시를 망가뜨릴 일도 없다. 나무를 알루미늄으로 바꿀 ..

수도원 맥주 유럽 역사를 빚다, 고상균

수도원 맥주 유럽 역사를 빚다고상균(지음), 꿈꾼문고 책을 읽고 난 다음, 맥주 생각이 나긴 했다. 하지만 젊은 하루키의 소설만큼은 아니다. 맥주를 간절히 원하게 만드는 건 역시 맥주 소개서가 아니다. 와인 가이드를 보며 와인 생각이 간절해지지 않듯이. 수도원 이야기(혹은 종교이야기)와 맥주 이야기를 섞어놓았다는 점에서 흥미롭지만, 역사책도 아니고 전문적인 맥주 소개서적도 아니다. 이 둘 사이에 걸쳐있는 산문집 정도. 루터의 부인이자, 한때 수녀이기도 했던 카나리나 본 보라의 맥주 제조 실력이 뛰어났다는 이야기는 특히 흥미롭다. 전체적으로 쉽게 읽히고 재미있지만, 나같은 독자에겐 적당하지 않다. 그냥 맥주 전문 서적이었으면 더 흥미진진했을 텐데, 맥주 이야기와 수도원 이야기가 번갈아 나오며 자주 애매해지..

베를린에 없던 사람에게도, 한은형

베를린에 없던 사람에게도한은형(지음), 난다 한은형의 산문집을 읽었다. 실은 그녀의 소설을 읽는 것이 나았을 뻔했다. 그녀도 후기에서 밝히듯 상당히 어렵게 쓴 글들이다. 어쩌면 베를린과 그녀는 어울리지 않았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나는 뤼벡과 드레스덴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었다. 뜬금없이 이 산문집을 읽게 된 건, 십수년 전 그녀의 짧은 글들을 무척 좋아했기 때문이다. 최근 그런 글을 읽은 적이 거의 없고 글과 무관한 삶을 살고 있는 터라, 우연히 그녀의 산문집을 산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내가 읽었던 그 때의 글과 비교하면, 긴장감은 거의 없고 그냥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글이랄까. 살짝 우울해졌다. 그녀가 찍은 듯 보이는 사진도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베를린과 소설가 한은형은 어울리지 ..

면도, 안토니스 사마라키스

면도안토니스 사마라키스 Antonis Samarakis (지음), 최자영(옮김), 신서원, 1997 전후 그리스 소설이 번역된 것이 드물었던 탓에 1997년에는 꽤 주목받았던 듯싶은데, 지금은 거의 읽히지 않는 듯 싶다. 번역자 또한 소설을 전문적으로 번역하는 이라가 아닌 탓에, 번역된 문장이 매끄럽게 읽히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마라키스를 한국에 소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찬사를 받아야 할 것이고 사라마키스의 소설은 다소 거친 번역 속에서도 유쾌하고 감동적이며 왜 뒤늦게 이 소설을 읽었을까 하는 후화까지 하게 만든다. 전후 그리스의 대표적인 현대 소설가. 그러나 그리스는 고대의 그리스가 아니다. 마치 이집트처럼. 서구 문명의 시작이었으나, 20세기 그리스는 격랑의 현대사 중심에서 벗어나오지 못한 채..

호황 VS 불황 - 무엇이 경제의 라이프사이클을 움직이는가, 군터 뒤크

호황 VS 불황 - 무엇이 경제의 라이프사이클을 움직이는가 Abschied vom Homo Oeconomicus 군터 뒤크Gunter Dueck(지음), 안성철(옮김), 원더박스, 2017년 (* 2009년에 '호황의 경제학 불황의 경제학'으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가 작년에 개정판이 다시 나왔다.) "네가 배를 만들고 싶다면, 목재를 구하고 작업도구를 준비하고 과제를 나누고 일을 분배하기 위해서 남자들을 불러 모으지 마라. 대신에 남자들에게 끝없는 바다에 대한 열망을 가르쳐라." - 생텍쥐베리 자연에서는 대부분 육식동물보다 초식동물이 더 빠르게 번식한다(은행강도보다는 저축자가 더 빠르게 증가하는 것처럼). 이러한 현상을 생물학에서는 '제3볼테라 법칙'이라고 부른다. 초식동물에게는 빠르게 증식하는 것이 무엇..

세계의 박물관 미술관 예술기행, 차문성

세계의 박물관 미술관 예술기행 - 유럽편 - 차문성(지음), 책문(성안당), 2013년 초판/2015년 장정개정판 좋은 책이다. 비전문가인 저자가 전문가가 되어간 과정이 녹아있다. 성실한 내용과 애정이 담긴 글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박물관학 석사 과정을 마쳤으나,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특히 유럽 주요 도시에서 가기 쉬운 미술관/박물관을 선정해 보여주었다는 점도 이 책이 꽤 실용적임을 증명한다. 내가 이 책을 읽은 목적은 유럽의 여러 도시에 흩어진 미술관, 박물관에 대한 체계적인 정보를 얻기 위해서 였다. 그러나 이 책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대한 체계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책 제목 그대로 예술기행이다. 런던, 파리, 암스테르담, 프랑크푸르트, 생페테르부르그 등의 도시에 있는 미술관/박물관..

바로크의 꿈 - 1600 ~ 1750년 사이의 건축

바로크의 꿈 - 1600 ~ 1750년 사이의 건축 프레데릭 다사스(지음), 시공디스커버리총서 “형태(형식)는 그것이 재료 속에 살아 숨쉬지 않는다면, 정신의 관점(추상)에 불과하거나 이해하기 쉽게 기하학으로 표현된 영역에 대한 사변에 지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퍼져 있는 잘못된 생각처럼, 예술은 결코 환상적인 기하학이나 그보다 더 복잡한 위상지리학이 아니다. 예술은 무게와 밀도와 빛과 색채와 연결된 그 무엇이다.” - 앙리 포시옹, ‘형태들의 삶’, 1939년 ('앙리 포시용의 형태의 삶'으로 학고재에서 번역 출판되었음) 이 책은 시공디스커버리총서 시리즈들 중에서 제법 어려운, 하지만 바로크에 대해서 그 어느 책보다 충실한 내용을 가진 책이다. 프레데릭 다사스의 ‘바로크의 꿈’은 건축을 중심으로 바로크..

거울에 비친 유럽, 조셉 폰타나

거울에 비친 유럽 조셉 폰타나(지음), 김원중(옮김), 새물결, 1999 다양한 시각과 가치체계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일까, 아니면 안 좋은 일일까? 나는 위계질서가 분명했던 이집트 시대와 위계질서가 불분명했던 헬레니즘 시대를 비교하면서 다양한 시각과 가치체계가 있었고 그것들이 충돌했을 때의 비극적 상황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술 양식 상의 비교이긴 하지만, 적어도 다양한 시각과 가치체계가 있다는 건 타자를 인정하고 배려해주는 문화로 가기 보다는 자신의 시각과 가치체계를 타자에게 주입하고 강요할 가능성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인간이 현대와 같은 '다원주의적 세계'에 놓여있었던 때가 얼마나 될까? 하지만 현대와 같은 다원주의적 세계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타자, 다른 사상, 다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