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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면도

안토니스 사마라키스 Antonis Samarakis (지음), 최자영(옮김), 신서원, 1997 




전후 그리스 소설이 번역된 것이 드물었던 탓에 1997년에는 꽤 주목받았던 듯싶은데, 지금은 거의 읽히지 않는 듯 싶다. 번역자 또한 소설을 전문적으로 번역하는 이라가 아닌 탓에, 번역된 문장이 매끄럽게 읽히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마라키스를 한국에 소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찬사를 받아야 할 것이고 사라마키스의 소설은 다소 거친 번역 속에서도 유쾌하고 감동적이며 왜 뒤늦게 이 소설을 읽었을까 하는 후화까지 하게 만든다. 


전후 그리스의 대표적인 현대 소설가. 그러나 그리스는 고대의 그리스가 아니다. 마치 이집트처럼. 서구 문명의 시작이었으나, 20세기 그리스는 격랑의 현대사 중심에서 벗어나오지 못한 채 침몰과 구조를 번갈아 가며 겨우겨우 버티고 서 있다. 그 현대사를 고스란히 겪고 이를 소설로 쓴 안토니스 사라마키스. 그는 20세기 초반 유럽을 비극적으로 물들인 전체주의를 극도로 혐호하며 문학의 가치와 자유의 중요함을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 책 <<면도>>의 초반 몇 편의 단편들보다 후반 단편들 - 정치적 메시지가 분명하고 노골적인 - 이 훨씬 감동적이다. 아마 그의 생애 전반이 전체주의와 독재 정권과의 갈등과 싸움의 연속이어서 그럴 지도 모르리라. 


디미트리스가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묻힌다. 모두들 달려들어 그를 에워쌌다. 그를 가슴으로 껴안는다. 먼저 그의 어머니 엘레니. 너무 꼭 껴앉은 탓에 저고리 단추 하나가 수갑에 끼어 떨어져 나갔다. 그 다음 모두들, 모두 같이, 어떤 이는 안고, 어떤 이는 입맞춤하고, 어떤 이는 말을 건넨다. 

"우리 디미트리스!"

기쁨이 가득한 이런 장면을 나는 일찍이 본 적이 없다. 환희에 찬 인생.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춤을 춘다. 모두들 무엇 때문에 오늘 저녁 여기 모였는지를 잊어버렸다. 당연히 내가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모두 잊어버렸다. 내 마지막 장례를 위해 이리로 왔다는 것을. 내 아들 디미트리스가 내 것을 훔쳐가 버렸다. 그런데 나도 나 자신을 잊어버린다. 내가 이미 죽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모두가 나누는 기쁨에 동참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본다. 육칠 미터 저만치 떨어진 곳. 저 쪽에 서서 그를 쓰다듬고, 웃고, 눈짓으로 가슴으로 말을 건넨다. ... 잘하는 일이다! 나는 괜찮다. 나 에브리피디스는 아무 것도 아니다. 하나의 보잘 것 없는 주검일 뿐. 그러나 저기 저 디미트리스. 내 아들 디미트리스는 삶. 바로 그것이다. 삶의 아름다움이요, 희망이다. 언젠가 우리의 삶이 더 나은 것으로 탈바꿈하고 조금이라도 덜 비인간적이 될 것이라는 희망. 

- 137쪽 ~ 138쪽 


반정부 투쟁을 하다가 잡혀들어간 아들. 그 아들이 수갑을 찬 채 뒤늦게 아버지의 장례식에 온다. 아버지의 관 뚜껑은 닫히지 않았고 사람들은 기다리던 그 젊은이를 반갑게 맞이한다.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슬픔은 사라지고 미래의 희망이 싹튼다. 다시 구치소로 가게 될 터이지만, 디미트리스는 괜찮다. 이미 죽은 아버지는 그 아들을 보며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도 잊은 채 기뻐한다. 그가 삶이며 희망이라며. 짧은 단편의 한 부분이나, 사마라키스의 소설 세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어쩌면 안토니스 사라마키스의 삶도, 문학도 그랬는지도 모른다. 전후 그리스 소설가들 중에서 가장 널리 해외에 알려진 작가이기도 한 그는 현대 유럽의 참여 문학이 어떤 것이 알려준다. 실존주의 소설가들이 개인의 고독과 사색에 파묻혀 결국엔 누보로망으로 이어졌으나, 안토니스 사라마키스는 우리가 왜 사는지, 우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이름없는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드러낸다. 


그래서 그는 삶의 가치와 죽음에의 거부를 주장한다. 


"아무 가진 것이 없다 해도, 세상 어딘가에는 당신이 조금이라도 덜 불행하게 해주고, 조금이라도 외로움을 덜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그 때문에 당신은 존재할 가치가 있으며, 아무도 아무것도 누구도 당신을 부정하지 못한다!"

"당신은 스스로 죽을 권리가 없다! 당신이 조금이라도 덜 불행하게 해주고, 조금이라도 외로움을 덜어줄 수 있는 사람은 언제나 있다. 단 한 사람이라 해도 그는 당신을 삶으로 끌어낸다. 삶과 동시에 타인과 관계를 맺게 한다. 단 한 사람이라 해도 그는 당신이 삶의 가치를 확인하고 의지할 곳이다. 이 단 한 사람이야 말로 당신에게 살 가치를 부여하는 탯줄이다. 고통과 진부함, 걱정과 슬픔과 기쁨이 엇갈리는 지금 이 곳의 일상 속에서 말이다. 그렇다. 당신은 죽음을 택할 수가 없다! 죽음을 택할 권리가 없는 것이다! 한 사람과 또 한 사람, 두 사람만 있으면 삶은 의미를 갖는다. 두 사람만 있으면 [죽음을] '거부'할 가치가 있다."

- 안토니스 사마라키스, <<거부>> 중에서 


그리고 대화를 나누며 앞으로 전진해야 하고 문학은 가치있다고 주장한다. 어쩌면 문학의 내부로 침잠해 들어간 현대 문학의 주된 경향에 반발하고 전통적인 견지에서의 문학의 가치를 말한 보기 드문 소설가였던 셈이다. 그는 정치적 투쟁을 주장하지 않는다. 그는 우리의 삶을, 고통을, 미래를, 사랑을 이야기한다. 이 소설집의 어느 단편에서는 자살을 결심한 어떤 이가 끝내 자살하지 못하는 에피소드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 이유는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건물 바로 밑 거리를 가득 메운 반 정부 시위대 때문이기도 하고 그 아파트의 이웃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우리는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고 그 연결은 한 개인의 운명이 그 한 사람의 몫이 아닌 여러 사람들과 연결된 어떤 것임을 사라마키스는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문학은 지고의 위안이다. 인간의 광기와 생존 경쟁의 거칠고 암담한 지평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진부한 일상과 사회생활의 혼선과 갈등 속에서 문학은 오로지 위안을 가져오고 신비로운 환희로 우리에게 용기를 심는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타인과의 사이에 깊디깊은 이해의 다리를 잇는 것이다. 독자듥돠 말이다. 문학은 대화의 시작이다.

가치있는 문학은 독백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독자와의 연결고리다. 문학은 친구가 내미는 손이다. 따라서 응답 없이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문학과 예술의 마력은 타신의 손, 독자의 손이 당신 손에 뜨거운 우애로 와닿을 때 나타난다. 문학은 밤의 메이라이며 암속 속에 외침이다. 메이라가 없으면 모든 것은 무의미하며 미완성일 뿐이다. 

- 234쪽 


책 말미에 실린 사라마키스의 자서전은 현대 소설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문학이란 어떤 것이어야 하며, 우리 삶은 어떻게 흘러왔는가를 한 번 돌이켜보게 만드는 글이 될 것이다. 헌책으로는 쉽게 구할 수 있으니, 구해서 읽어보길 권한다. 그리고 새로 출간된 신간으로도 구할 수 있다. 나 또한 사라마키스의 다른 소설들도 읽을 생각이니까. 




안토니스 사라마키스 기념 우표. (현대 그리스 문학에서의 사라마키스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아래 책은 역사 관련 학술서적을 전문적으로 내는 신서원에서 1997년에 전집 형태로 번역 출판된 이후 절판되었다. 그리고 2006년에 다시 <<손톱자국>>이라는 제목으로 그림글자라는 출판사를 통해 두 권으로 다시 출간되었고 지금도 새 책으로 구할 수 있다.  

면도 - 8점
안토니스 사마라키스 지음, 최자영 옮김/신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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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황 VS 불황 - 무엇이 경제의 라이프사이클을 움직이는가 Abschied vom Homo Oeconomicus 

군터 뒤크Gunter Dueck(지음), 안성철(옮김), 원더박스, 2017년 

(* 2009년에 '호황의 경제학 불황의 경제학'으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가 작년에 개정판이 다시 나왔다.)




"네가 배를 만들고 싶다면, 목재를 구하고 작업도구를 준비하고 과제를 나누고
일을 분배하기 위해서 남자들을 불러 모으지 마라. 대신에 남자들에게 끝없는 바다에 대한 열망을 가르쳐라."
- 생텍쥐베리 




자연에서는 대부분 육식동물보다 초식동물이 더 빠르게 번식한다(은행강도보다는 저축자가 더 빠르게 증가하는 것처럼). 이러한 현상을 생물학에서는 '제3볼테라 법칙'이라고 부른다. 초식동물에게는 빠르게 증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종족 보전의 요소가 된다. 반면 육식동물은 각자의 영역이 필요하므로 그렇게 빠르게 증가하지 못한다.(29쪽) 


책은 호황과 불황을 특정 지역의 초식동물과 육식동물 간의 상관관계로부터 비유하여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호황과 불황에 대한 경제학 책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군터 뒤크는 수학자이며, 기업가였다. 그는 경제학의 기본 가정을 무시한다. 


경제학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경제적 목적만을 고려해서 행동하는 이른바 '호모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라고 한다. 엄격하게 합리적인 잣대로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시킨다는 것이다.(22쪽) 


그리고 호황과 불황을 나누고 이 시기에 따라 사람들이, 우리들이 어떻게 변하고 대응하는지를 설명한다. 심지어 이러한 시기마다 널리 호응을 얻는 경제학 이론들이 따로 있다고 말한다. 


호황기 초기에 사랑받는 이론, (신)자유주의

계속되는 호황기에 사랑받는 이론, 지속적인 혁신을 통한 성장과 모두를 위한 복지 

불황 초기에 사랑받는 이론, 케인즈의 국가프로그램

계속되는 불경기에 사랑받는 이론, 감량경여과 리엔지니어링

불경기 후반에 사랑받는 이론, (신)고전주의 


결국 호황과 불황이 일종의 사이클이라면 그것을 느리게 하는 방법은 절제 뿐이라고 말한다. 필요한 만큼 생산하고 소비하는 것.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거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저자는 알고 있을 것이다. 책 초반에 나오는 '국부적 영리함'은 우리가 일상에서 늘 경험하는 종류의 영리함이지만, 그 영리함으로 인해 전체 시스템이 실패하게 된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 우리 모두 잘 사는 방법 대신 장기적으로 우리 모두 몰락하게 되는 방식을 택하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다시 '죄수의 딜레마'와도 연관지어 설명한다. 


이러한 호황과 불황의 라이프 사이클 위에 우리들이 어떻게 대응하고 살아가는가를 살펴보면서 결국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은 '스트레스'라고 군터 뒤크는 말한다. 자본주의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호황에서 불황으로 넘어갈 때 우리에게 가해지는 스트레스 때문에 우리들은 자주 잘못되고 사려깊지 못한 대응들, 행동들을 하게 되고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자초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현대의 경영 이론들 대부분은 기업 구성원들에게 긴장과 스트레스를 주어 생산성과를 높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책은 다소 딱딱하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내용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가볍지 않다. 하지만 긴장과 스트레스 속에서 탁월한 업무 성과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즐기는 이들이 보기에 이 책은 어쩌면 불순하게 여겨질 지도 모를 일이다. 이를 저자는 미국과 유럽을 나누어 비교하기도 한다. 전자가 미국적 방식이라면, 유럽적 방식은 느긋하며 긴장과 스트레스가 없는 상황에서 업무를 처리한다고. 


아마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자기 자신은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이 속한 기업은 어떤 문화를 지향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될 것이다. 또한 호황과 불황이 발생하고 어떤 사이클을 그리게 되는 여러 이유에 대해서 생각하게 될 것이다.  




호황 vs 불황 - 10점
군터 뒤크 지음, 안성철 옮김/원더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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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박물관 미술관 예술기행 - 유럽편 - 

차문성(지음), 책문(성안당), 2013년 초판/2015년 장정개정판 


좋은 책이다. 비전문가인 저자가 전문가가 되어간 과정이 녹아있다. 성실한 내용과 애정이 담긴 글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박물관학 석사 과정을 마쳤으나,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특히 유럽 주요 도시에서 가기 쉬운 미술관/박물관을 선정해 보여주었다는 점도 이 책이 꽤 실용적임을 증명한다. 


내가 이 책을 읽은 목적은 유럽의 여러 도시에 흩어진 미술관, 박물관에 대한 체계적인 정보를 얻기 위해서 였다. 그러나 이 책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대한 체계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책 제목 그대로 예술기행이다. 런던, 파리, 암스테르담, 프랑크푸르트, 생페테르부르그 등의 도시에 있는 미술관/박물관에 대한 소개와 그 곳에 대한 간단한 느낌이나 감상, 그리고 소장 전시되고 있는 주요 작품들에 대한 짧은 안내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니 내 목적은 달성하지 못한 셈이다. 


하지만 매우 부러웠다. 한 달 이상 파리에 체류하면서, 일 드 프랑스와 생-제르맹 거리를 오가며, 갤러리에만 있었던 건 아닌가 후회를 한다. 누구나 다 가는 루브르와 오르세만 간 걸 이제서야 후회하다니. 다시 가게 되면 꽤 오래 머무르며 작품들을 보고 와야 겠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작품들 대부분은 이미 여러 미술 관련 서적에서 본 내용들인 탓에, 빠르게 읽었다. 서양미술의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꽤 도움이 될 내용이었다. 


대부분의 유럽 여행객들이 미술관 관람이 목적이 아닌 만큼, 이 책에서 언급된 도시에 가게 될 경우, 이 책은 꽤 유용할 수 있겠다. 



렘브란트, <예루살렘의 멸망을 탄식하는 예레미야>, 1630,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Rijksmuseum)


구약의 선지자 예레미야를 그렸다. 렘브란트가 24세라는 젊은 나이에 이런 깊이를 가진 작품을 그렸다는 건 놀랍기만 하다. 아마 그만큼 신앙심이 깊었을 것이다. 예레미야의, 고통을 지긋이 누르며 곤혹스러워하는 얼굴 옆으로 불타는 예루살렘이 보인다. 바로크 특유의 명암법은 화면 전체를 감싼다. 한 쪽은 밝고 한 쪽은 어둡다. 하지만 밝은 쪽은 슬픔으로 가득하고 어둠 속으로는 절망감이 감돈다. 그리고 팔을 괴고 있는 모습 아래로 성경이 보이고 그 밑으로는 바빌론의 왕 느부갓네살로부터 받은 금은보화로 보이는 것들이 놓여져 있다. 전체적으로 사선으로 비스듬하게 기대고 있는 예레미야의 모습을 통해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바로크의 고민이 보인다. 확실하 바로크는 과거를 향하지 않는다. 미래로 열린 양식이다. 한 쪽은 밝고 한 쪽은 어둡다. 그러나 우리 시선은 어두운 쪽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 그래서 저 반짝이는 금속물질의 물건은 참 흥미롭기만 하다. 


이 책에선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을 소개하면서 이 작품을 언급했다. 위 설명은 내가 별도로 작성한 것이라 책 내용과는 다소 다를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두 작품이 눈에 들어왔는데, 마네의 베르트 모리조 초상화와 렘브란트의 위 작품이었다. 마네와 베르트 모리조의 관계에 대해선 다음에 한 번 언급하기로 하자. 혹자는 19세기 미술사 가장 아찔한 로맨스라고도 하니 말이다. 대체로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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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의 꿈 - 1600 ~ 1750년 사이의 건축
프레데릭 다사스(지음), 시공디스커버리총서



“형태(형식)는 그것이 재료 속에 살아 숨쉬지 않는다면, 정신의 관점(추상)에 불과하거나 이해하기 쉽게 기하학으로 표현된 영역에 대한 사변에 지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퍼져 있는 잘못된 생각처럼, 예술은 결코 환상적인 기하학이나 그보다 더 복잡한 위상지리학이 아니다. 예술은 무게와 밀도와 빛과 색채와 연결된 그 무엇이다.”
- 앙리 포시옹, ‘형태들의 삶’, 1939년
 ('앙리 포시용의 형태의 삶'으로 학고재에서 번역 출판되었음)





이 책은 시공디스커버리총서 시리즈들 중에서 제법 어려운, 하지만 바로크에 대해서 그 어느 책보다 충실한 내용을 가진 책이다. 프레데릭 다사스의 ‘바로크의 꿈’은 건축을 중심으로 바로크 양식이 가지는 특성과 지향했던 세계를 풍부한 도판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종종 책의 서술은 딱딱하지만 흥미롭고, 전문적이면서 아름답고 운동감으로 넘쳐 흐르는 바로크 건축에 대해 깊은 이해를 도울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일반 독자가 읽기에는 다소 전문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읽기 쉬운 책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으로 여겨지는 바로크 양식에 대한 이해가 실은 대부분 피상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음을 안다면, 이 작은 책은 매우 귀중한 역서가 될 것이다.

바로크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여러 오해와 짧은 식견으로 인해, 바로크 양식이 가지는 역동성, 충돌과 열정, 극적인 자연주의가 근대성(modernity)를 기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현대인)과는 너무 멀리 떨어진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아래 인용된 설명처럼 바로크 양식은 먼저 고대와 중세의 본격적인 단절과 극복이라고 할 수 있다. 르네상스가 그 시작이라면.


고대의 유산인 건축의 오더는 무엇보다도 비례 체계라 할 수 있다. (중략) 오더의 비율은 인간 신체의 비율을 반영한다. 오더의 인간 형체는 오더의 미가 지닌 신성하고 절대적인 성격과 특히 오더가 구성하고 있는 건물의 조화를 보증한다. 또한 오더는 장식 체계이기도 하다. 그래서 무한하고 미묘한 변화가 가능하며, 건축가에 따라 그 질이 좌우되는 조각 부분 - 쇠시리 장식 - 에 큰 중요성이 부여되기도 한다. 오더는 운율론에서 보면 12음절 시행의 구조에, 그리고 고전음악의 협화음에서 나타나는 음계법의 체계와 비교할 수 있는 위치를 차지하는 조화와 표현의 체계인 것이다.
- 46쪽 ~ 47쪽



 

17세기 후반부터 오더는 비틀림, 중단된 회전, 늘임, 병렬 등 지나친 변용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오더에 대한 조작 범위가 체계적으로 연구되면서 오더의 완전성 자체가 의문시되기 시작했다.
- 48쪽




고대 건축의 오더 양식
출처 http://blog.naver.com/archmys/30106190006



출처
http://www.romasegreta.it/scarlo_alle_quattro_fontane.html 
보로미니의 산카를로알레콰트로폰타네 파사드.

[작품설명] 고대 건축에서 오더는 기하학적이며 규범적이었지만, 바로크에서의 오더는 건축의 일부로 들어가며, 도리어 건축 외형에 있어 방해가 되는 것이 되었다. 보로미니의 위 건축물은 바로크 건축의 시작을 알린 건축물들 중의 하나로, 건축물 외벽에 운동성을 표현한 최초의 건축물이기도 하다.




예술 양식의 역사에서 르네상스 - 매너리즘 - 바로크로 이어지지만, 르네상스의 정신을 이은 것은 바로크이다 (마치 르네상스 미술의 철학적 반영이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이듯이). 르네상스와 바로크 사이의 매너리즘은 반-르네상스 운동이며, 후기 중세(고딕)적이며, 종종 반-근대적으로, 후기 근대적(postmodern)으로 해석된다. 이를 다시 이야기하자면, 고대와 중세를 벗어나기 위한 근대인의 운동은 비로소 17세기 바로크 시대에 와서야 그 꽃을 피운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정확하기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 뉴턴의 시대와 일치한다.

바로크 예술가들과 건축가들은 고대의 영향 속에서도 고대와 다른 이상을 열망하였으며, 신의 세계(중세)에서 벗어나 인간의 세계를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건축을 하나의 감각적인 체험으로 만들고자 열망했던 건축가들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원천들인 빛과 공간에 대한 탐구에 지대한 관심을 나타냈다. 그들은 시각적 효과에 중요성을 부여함으로써 다른 수단들을 그에 집중시켰으며, 채색되거나 조각된 장식을 건축과 융합하는 놀랄 만한 대담성을 보여 주었다.
- 75쪽




바이에른의 비스(Wies) 교회
[작품설명] '연극성'은 바로크 전반을 물들이는 하나의 기조였다. 이는 건축 내부에서도 반영되는데, 비스 교회도 여기에 포함된다.



인간의 세계에 충실했던 그들은 감각적 체험을 우위에 둔 시각 세계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바야흐로 경험론 우위의 자연관이 시작된다. 합리론과 경험론의 대립이 바로크 양식의 다양성을 표현한다면, 바로크 이후의 양식들은 경험론의 우위를 공공연히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로코코는 바로크 후기 양식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극적인 효과를 드러내기 위해 인간적 범속함을 채용하기도 하였다. 가령 성적인 표현들.) 

이 책에 담긴 바로크 양식에 대한 충실한 설명은 건축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술 양식에 대해서도 깊은 이해를 도모할 수 있다는 점에서, 건축에 관심 있는 독자 뿐만 아니라 17세기 서양 예술 전반에 대해 알고 싶은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할 만한 책이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흥미로운 한 부분을 옮긴다. 이는 정원 양식에 대한 것이다. 요리가 예술이듯이 정원도 예술 장르 중의 하나다. 이 점에서 예술의 역사에서 정원도 한 부분을 차지해야겠지만, 시간에 종속된 정원은 오직 현재성만을 드러내는 까닭에 역사적 서술이 어렵다. 아래는 르네상스 이후 정원 양식의 변화를 간단하게 서술하고 있는 부분이다. 특히 프랑스식 정원과 영국식 정원(Picturesque Garden이라고도 한다)의 대비은 언제나 흥미롭다.


르네상스식 정원은 테라스, 동굴, 폭포를 설치할 수 있는 경사진 땅을 선호하며 풍부한 물놀이가 구성되어 있고 녹음이 중요시된다는 특성을 지닌다. 녹음의 아래로는 기하학적으로 정돈된 화단 옆에 놀라움을 선사하는 설치물과 태양을 피할 수 있도록 동굴이 있는 길이 나 있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프랑스 정원은 기복이 별로 없는 토지에 적응해야 한다는 조건과, 그늘이나 시원한 동굴에 관심을 두지 않는 탁 트인 성격으로 인해, 건물을 ‘안뜰과 정원’ 사이에 영지 입구를 설치했다는 점에서 다른 양식과 구별되었다.

풍경화식 정원을 형성하는 근원으로의 회귀는 1720년대에 영국에서 등장하는데, 이러한 흐름은 프랑스식 궁전의 공간과 대립된다. 이것은 지식인의 인본주의적 성찰의 근원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움직임이자 전통적인 정원 양식을 거부하는 정원 형식 상 혁명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새로운 정원의 건축가들은 전세기에 푸생, 로렌 또는 네덜란드의 풍경주의 화가들이 그린 이상적인 풍경 속에서 영감을 얻었다.
- 28쪽 ~ 29쪽







르네상스식 정원
The Villa Lante di Bagnaia

출처: http://www.gardenaesthetics.com/italian.html



프랑스식 정원
출처: http://blog.aladin.co.kr/stella09/501079 (베르사이유 궁 정원)

영국식 정원
출처: http://www.telegraph.co.uk/gardening/4389731/Britains-gardens-A-private-passion-and-a-public-disgrace.html


* 참조할만한 링크: 정원의 역사
http://en.wikipedia.org/wiki/History_of_gardening 
* 시공디스커버리 시리즈들 중 예술 양식이나 예술가에 대한 책은 적극 추천할 만하다. 나머지 시리즈들도 풍부한 도판과 알찬 설명으로 명성이 있지만.
 



[그 외 바로크에 대한 글들]
화려한 바로크 양식, 멜크 베네틱트 수도원 Melk Abbey   http://intempus.tistory.com/1389
귀도 레니(Guido Reni)의 성 세바스찬(St. Sebastian) http://intempus.tistory.com/716
바로크 예술 http://intempus.tistory.com/186
(* 검색에서 '바로크'로 검색하면 그 외 많은 글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로크의 꿈 : 1600-1750년 사이의 건축 - 10점
프레데릭 다사스 지음/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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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에 비친 유럽
조셉 폰타나(지음), 김원중(옮김), 새물결, 1999



다양한 시각과 가치체계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일까, 아니면 안 좋은 일일까? 나는 위계질서가 분명했던 이집트 시대와 위계질서가 불분명했던 헬레니즘 시대를 비교하면서 다양한 시각과 가치체계가 있었고 그것들이 충돌했을 때의 비극적 상황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술 양식 상의 비교이긴 하지만, 적어도 다양한 시각과 가치체계가 있다는 건 타자를 인정하고 배려해주는 문화로 가기 보다는 자신의 시각과 가치체계를 타자에게 주입하고 강요할 가능성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인간이 현대와 같은 '다원주의적 세계'에 놓여있었던 때가 얼마나 될까? 하지만 현대와 같은 다원주의적 세계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타자, 다른 사상, 다른 종교, 다른 계급을 인정하고 배려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며 그러한 태도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퍼져 일반화된 삶의 양식으로 기능하기란 지나간 역사에 비추어볼 때 불가능에 가깝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난 후 그 생각은 더 굳어진다.  
이 책은 유럽이 자기들의 시각과 가치체계를 우월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어떤 일들을 벌여왔는가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 매우 좋은 책이다. 그리스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유럽은 유럽중심주의를 놓친 적이 없다. 성직자든, 왕이든, 귀족이든, 부르주아이든, 그들은 그들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다양한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장치를 개발하여 이를 적용해왔다. 그리고 조셉 폰타나는 예리한 시각으로 이러한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장치들에 대해서 설득력 있는 어조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걸 안다고 해서 과거가 지워질까? 혹은 미래가 밝아질까? 그저 알고 있을 뿐, 과거를 바꿀 수 없고 미래를 바꿀 수도 없다. 어쩌면 타자에 대해 공포를 느끼고 자신의 세계를 고수하고자 하는 어떤 방향, 위계질서가 확고한 세계에서 느끼는 편안함 등은 인간 고유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즉 전제 군주정이나 느슨한 파시즘 체제, 종교가 중심이 되는 어떤 세계 속에서 사람들은 별 문제 없이 살아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공부를 하면 할 수록 인간에 대한 신뢰가 생기기 보다는 신뢰가 사라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이 사라지는 것을 어떻게든 막기 위해 더 공부를 하게 되는 건 아닐까.

이 책을 읽고 반-유럽주의자가 되어선 매우 곤란하다. 왜냐면 이 책은 유럽에 대한 이야기이라기 보다는 우리들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일어나는 어떤 일들에 대한 유용한 해설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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