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227

게스 후Guess Who, 그리고 부메랑.

압구정 Guess Who. 다시 가고 싶은 곳이다. 벌써 9월말이라는 사실에 나는 놀라고 만다. 내 삶과 내 삶을 둘러싼 시간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오직, 내 감정만 시간과 관계 맺는다. 내 감정은 늙지 않고 상처 입을 뿐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부메랑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는 그것의 궤도를 알지 못하고 그것의 속도를 모른다. 어딘가로부터 돌아온 것들과 마주 하는 중년. 나를 보호하기 위해 우리는 상대에게 상처 입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상처 입힐 땐, 자신만이 소중하니까 ... 그리고 상처 입을 때는 언젠가 다시 보복하리라 다짐하고 상처 입지 않으리라 여긴다. 세상의 상처는 모두 부메랑이어서, 나에게 오지 않으면 내 아들과 딸에게, 혹은 그 후손에게 돌아온다. 우리는 신이 아니고, 제한된 시간과 ..

젖은 운동화 속의 목요일

새벽부터 내린 비는 아침이 되자, 더 세차졌다. 어둠이 내려앉은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비에 젖으면, ... 내 발이, 내 몸이, 내 얼굴이, 내 가슴이 젖으면 안 될 것같아, 운동화를 꺼내 신고, 큰 우산을 찾아 가산디지털단지역으로 출근하는 목요일 아침, 길바닥에 고인 빗물들이 나를 향해 날아올랐다. 땅에서 허공으로, 대기로, 하늘로, 우주로 날아오르는 빗물 방울들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아래로, 아래로 떨어지는 또다른 빗줄기에 갇혀 마음의 자유를 잃어갔다. 2014년 여름. 출근하자 마자, 전날의 최종 매출을 확인하고, 퇴근할 때 그 날의 최종 매출을 예측하며 사무실을 나간다. 대구에 출마한 김부겸 전 의원이 "출마해본 사람만 알 수 있어요. 지지율 1%를 올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라고 이야..

몇 장의 사진, 그리고 지나간 청춘

요즘 페북과 인스타그램에 빠져 블로그짓에 뜸하다. 몇 장의 사진을 올린다. 인스타그램을 한다면, 내 아이디는 yongsup이다. 요즘은 먹스타그램으로 빠지긴 했지만. 퇴근길, 나이가 들었다. 조금 있으면 사십 중반이 될 텐데, 스스로 아직 청춘인 줄 안다. 밤 11시, 술 생각이 나는 건, 오늘 때문일까, 아니면 내일 때문일까. 아니면 어제들 때문일까. 나이가 들었다. 그러나 질문들은 줄지 않고 믿었던 답들마저 사라진다. 그렇게 나이를 먹었다. 참 맛없는 치킨 옆의 맥주가 안타까웠다. 참 맛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 대박을 꿈꾸긴 않았지만, 적어도 여유롭게 살 수 있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그건 서울, 한국을 사로잡은 21세 자본주의에서 불가능한 일이었다. 최선을 다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엉망으로 된 전 회사..

짝찾기 경제학, 폴 오이어(지음)

짝찾기 경제학폴 오이어(지음), 홍지수(옮김), 청림출판 경제학을 조금이라도 알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미시경제학의 핵심적인 개념을 설명할 것이다. 탐색Search, 신호Signaling, 역선택adverse selection, 빈말cheap talk, 통계적 차별Statistical discrimination, 두터운 시장thick market, 네트워크 외부효과network externality 등이 그것이다. (8쪽) 나는 이미 올해 초 여러 외국 저널의 리뷰기사를 통해 이 책을 접했을 정도로, 나오자 마자 주목받았던 책이다. 하지만 의외로 읽는 속도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이 책은 정말 흥미진진하다! 아마 이 책을 읽지 않은 상당수의 독자는 그저그런 대중..

5월 어느 오후 서울 거리

5월 29일 서울 이태원에서 삼각지로 걸어가다 문득 마주친 대도시의 오후 상아색의 구름 한 떼가 지는 해를 감싸면서 하늘 꼭대기에서 땅 밑까지 노을이 가득 차고, 거대한 고독이 이미 식어버린 채 퍼져나가는 시간이다(조르주 베르나노스). 느리게 숨죽여 있던 무채색 건물이 숨을 쉬고 우리들의 숨겨진 영혼이 노래하는 순간이다. 태양이 사라지더라도 태양을 기다리지 않는 유일한 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꿈 속 노을가 근처에서 막걸리 중이다. 그의 삼각지에서.

주말의 (이미 죽은) 보르헤스 氏

나이가 한참 든 독신자에게 사랑의 도래는 더 이상 기대되지 않는 선물이다. 기적은 조건을 제시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 '울리카' 중에서, 보르헤스 새삼스럽게 나이가 든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긴다. 무표정한 행인들의 얼굴 밑으로 주체할 수 없는 표정들의 집합체를 읽어낸다. 실은 내 얼굴도 그렇다. 주말 동안 틈틈히 보르헤스의 을 읽었다. 정확하게 보르헤스의 소설을 집중해서 읽은 건 대학 이후 처음이었다. 중국 속담 중에 '회화는 나이 든 사람의 예술이다'라는 문장이 있다고 데이비드 호크니가 나에게 이야기해주었지만, 나는 '위대한 소설은 나이 든 이들의 위안이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문득 집에서 내 마음대로 문을 잠그고 혼자 있는 공간이 화장실 밖에 없다는 사실이 놀랍도록 슬펐고 놀랍도록 기뻤다. 이렇..

요즘 어떤 생각

1987년도에 번역 출판된 윌리엄 S. 버로우즈의 소설론을 구했다. 소설을 쓰지 못하니, 소설론만 읽는다. 세상은 바라지 않는 소설 같이 흘러가기만 하고, 평범한 우리들의 하늘이라고 스스로 믿는 그들과 그들의 나팔수들은 한 줌 희망이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우리들에게, 그래서 니네들은 미개하고 어리석다며, 그래도 세상은 변하지 않을꺼야라는 패배주의를 은연 중에 심어놓으며, 진실은 조작되었고 할 수 있는 바 최선을 다했다며 강변하고 있다. 생각해보니, 거리 데모를 나간 적이 그다지 많지 않은데, 이번에는 나갈 생각이다. 세상은 바꾸는 건 깨어있는 시민이지, 그들이 아니다. 우리들에게 상처 입히고 우리들을 왜소하게 만들며 우리들에게 패배감을 안겨주며, 변하지 않는 세상의 질서를 강요하는 그들 앞에서 세상은 변하..

비즈니스 단상 2014-4-15

어제 퇴근길 지하철에 헨리 민츠버그의 을 펼쳐 뒤적였다. 서두에 코닥의 사례가 나오는데, 전략 경영 관련 부서들 - 전략기획실, 경영기획부 등 - 이 경영진의 의사결정에 도움을 주기 위해 다양한 리서치, 시장 자료를 바탕으로 경영 전략 등을 수립해 보고하다 보니, 어느새 현장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책상에서 작성된 근거들로만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코닥 같은 회사가 망하게 되는 이유라고. 이걸 읽으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많은 이들은 직급이 올라갈수록 보고만 받으려고 한다. 실은 상당수의 보고서는 믿을 것이 못 되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기업의 잘못된 의사결정의 80%가 보고서 탓이라는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결국 사업 추진자는 반드시 현장으로 몸으로 부대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