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227

맥주가 놓인 사무실

2005년 2월 19일 일을 하다가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리고 편의점에 가서 맥주캔을 사와 먹으면서 일했다. 맥주를 마시니, 조금 나아졌다. 2013년 10월 14일 8년 전 사진을 온라인 어딘가에서 가지고 온다. 벨앤세바스티안의 음악을 들으며. 머리는 복잡하고 가슴은 불안하고 몸은 아프다. 저 노트북을 지난 HP로, MSI로, 다시 HP 울트라북을 쓰고 있는 요즘. 술은 예전만큼 마시지 못하고 격정적이었던 열정도 사그라지고 미래는 더욱 어두워졌다. 그와 맞추어 이 나라도 예전만 못하고 세상의 어두운 면을 더 많이 보게 되었으며, 지치지 않는 법을 익히려고 했느나, 그 법을 알지만 행하지 않는 편이 이 세상 살아가는 데 더 유리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잠시 월요일 오전 회사 경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새로 산 시집 - 이병률, '눈사람 여관'

거의 1년 만에 시집을 샀다. 실은 1년이 더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 한참동안 글을 썼고 아주 가끔 신춘문예에 응모하기도 했으나, 이것도 십 수년 전 일이니, 시집은 나로부터 참 멀리있는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오늘 사무실에서 이병률의 시집을 펼친다. ... 참 어울리지 않는 짓이다. 나도 건달이고 싶다, 철없이 로맨틱하기만 한.

해마다 추석.

해마다 추석이 오고, 그 때마다 나는 기차에 몸을 싣고 내려간다. KTX 예매는 무척 어려운 종류의 일이 되었고 짧은 여행 시간마저도 꽤 고단한 일상이 되었다. 13시간이나 걸려 가던 여행 시간은 기억마저 가물가물한 옛날 일이 되었다. 내려가면 매일 회를 먹는다. 적어도 서울보다 저렴하고 신선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지만, 따지고 보면 막상 그런 것도 아닌데. 이번에는 마트에서 스미노프 한 병을 구입해 같이 먹었다. 그리고 추석 다음 날엔 창원 해양공원엘 갔다. 세계 2차 대전 중, 1941년 뉴욕에서 만들어진 군함 한 척이 2013년 반도 남쪽 끄트머리 섬에 전시되어 있는 모습을 보면서 세월과 세상에 대해서 잠시 생각했지만, 바다는 잔잔했고 사람들의 일상은 전쟁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듯 했다. 이제 만 ..

내 마음, 쓸쓸한.

이우환, 사방에서(From the four direction), 1985 다행이다. 이우환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가라앉고 차분해지니. 내가 조금 더 나이가 들었고, 내가 조금 더 일찍 돈을 벌기 시작했다면 이우환의 작품을 살 수 있을련지도 모르리라. 기회가 닿으면 포스터 액자라도 구해야 겠다. 가을, 살찌는 계절이지만, 나는 지쳐가기만 한다. 아마 내 나이 또래의 다른 직장인들도 그럴까? 하긴 이런 때가 있으면 저런 때도 있는 법. 오후 외부 회의를 끝내고 들어온 사무실, 잠시 멍하니 앉아있다가 아래 시를 읽는다. 生의 쓸쓸한 오후를 生의 쓸쓸한 오후를 걸어갈 적에 찬란하여라 또 하루가 가는구나 내 무덤에 풀이 한 뼘쯤은 더 자랐겠구나 - 최승자 ( 2013년 가을호 수록) (* 위 시는 htt..

화양연화와 겹쳐지는 내 일상

눈 앞에 펼쳐지는 색들이 변했다. 조금 투명해지고, 조금 분명해지고, 다소 차갑고 냉정해졌으며, 약간 쓸쓸해졌고, 그리고, 그리고, 지난 더위에 지친 표정으로 흔들거리며 색채가 퍼지며 사라졌다. 온도가 내려갔고 바람이 불었고 사람들은 숨길 수 없는 불안을 숨기며 웃었다. 아니, 울었다. 실은 그게 웃음인지 울음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말을 하고 싶었으나,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고 문장이 만들어지지 않았고 내 존재의 집은 나에게 아무 말도 없고 내 곁을 떠났다. 화양연화를 떠올리며 십 수년 전, 화양연화를 혼자, 극장에서 보고 난 다음 월간지 기자와 술자리에 티격태격했던 걸 추억했다. 그 땐 '사랑의 현실에 타협한 왕가위'를 비난했으나, 내가 그 나이가 되어보니 왕가위가 옳았음을 알게 된다, 되었다. 간밤 ..

97년, 날 사랑한 두 명의 여자

나도 말랑말랑하던 감수성을 가졌던 때도 있었다. 얼마 전에 만났던 선배는 나에게 '10년 전 나는 참 4차원이면서 똘똘했다'고 평했는데, ... 내 스스로 그랬나 싶어할 정도로, 나는 나 자신을 알지 못했음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우물 안에 있으면 내가 있는 곳이 우물인지 모르고, 우물 밖에 나와야만 내가 우물 안에 있었다는 걸 안다. 즉 자신 스스로 돌이켜보지 못한다면, 타인에게 물어서 자신을 되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사랑도 마찬가지. 2004년 6월에 쓴 메모를 다시 읽으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이게 휴식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 2004년 6월 6일 05:04 전화를 하지만, 전화는 되지 않고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빙빙 돌다가어디 ..

안경, 그리고 술자리

"내일이 지구의 종말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이 술자리가 모든 존재들과의 추억을 나누는 자리였으면, 이 한 잔의 술은 보다 아름다울 거예요." 내일이 존재하지 않는 술자리. 아니, 모든 술자리에는 내일은 존재하지 않으리라. 그래서 술자리마다 화해하고, 포옹하며, 미안해하며, 실은 사랑했노라고 고백하는 이들로 넘쳐났다. 내 상상 속에서. 그렇게 취해간다. 안경을 바꾸었다. 바꿀만한 사정이 있었고, 그 사정 속에서 안경은 바뀌었다. 아주 어렸을 때, 80년대 초반, 안경 쓴 아이들이 멋있어 보이는 바람에, 몇 명은 의도적으로 눈을 나쁘게 하는 행위를 했고 나도 그 부류에 속했다. 형편없는 유년기의 모험은 독서에 파묻힌 사춘기 시절 동안 자연스레 안경 렌즈를 두껍게 하였다. 그렇게 사라져간다. 마음 속에서,..

이미지 속의 삶

한동안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전날 밤 꿈 속 사건을 실제로 일어난 사건으로 여기며, 며칠 지내다가, '아, 그건 꿈이었지'하는 식이었다. 다행히 그건 몇 달 가지 않았고 그것으로 인해 큰 문제가 생기지도 않았다. 단지 더 쓸쓸해진 것 뿐. 대한민국의 회사원들이, ... 아니 지난 수십년 간 IT 기술에 기반한 급격한 정보화, 신자유주의로 인한 경쟁의 격화로 인해 OECD 대부분의 국가 지식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는 심해졌고 정신적 스트레스도 심해졌다. 나도 나이가 들고 직무가 늘수록 그런 스트레스가 심해지고 있다. 그렇게 늙어가고 있었다. 출근길 카페에 들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사왔는데, 마실수록 속이 쓰려오는 것이 내 현재를 말해주는 것 같기만 하다. 잠시의 위안을 얻기 위해 ..

불편한 공포,들.

계절이 사라진 자리에 마음의 불편함만이 자리 잡는다. 건너고 싶지 않은 저 다리의 이름은 시간. 혹은 계절. 내 허약한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확실히 존재하는, 느껴지는, 서늘한 공포. 커피의 향이 사무실 책상 위를 가득 채우지만, 초여름 바람이 열린 창틈으로 들어와선 낚아 채어간다. 향기는 사라지고 어수선한 책상 위 서류더미는 내 마음 같다. 혹은 그대 마음. 해소되지 않은 채 쌓여가는 정신적 모던의 유산들. 불편한 언어들. 그리고 공포. * “내 나이 열아홉 살, 그때 내가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은 타자기와 뭉크화집과 카세트 라디오에 연결하여 레코드를 들을 수 있게 하는 턴테이블이었다. 단지, 그것들만이 열아홉 살 때 내가 이 세상으로부터 얻고자 원하는, 전부의 것이었다. 그러나 내 소망은 너무나 소..

흩날리는 봄날의 문장.들.

아직도 오열을 터뜨리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미가 아니라 오로지 비열하기 이를 데 없는 퇴폐 뿐이다. ... ... 따라서 모든 강박 관념과 상반된다 할지라도 이같은 가증스러운 추함이 없이 지낸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 조르주 바타이유 과연 그럴까? 하긴 아름다움은 오열을 터뜨리게 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열하기 이를 데 없는 퇴폐로 인한 상처는 오열을 불러올 것임에 분명하다. 그러니 바타이유의 말이 맞는 걸까. 그렇게 동의하는 나는 그러한 퇴폐를 경험한 적이 있는 것일까. ... 아련한 봄날, 외부 미팅을 끝내고 잠시 걸었다. 부서지듯 반짝이는 봄 햇살 사이로 지나가는 도심 속 화물열차. 바쁜 사람들 사이로 새로운 계절이 오는 속도처럼 느리게 지나쳤다. 그 사이로 사람들과 자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