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파아란 영혼


강상중과 함께 읽는 나쓰메 소세키 

강상중(지음), 김수희(옮김), AK 



강상중 교수의 책이 계속 번역되어 소개된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그의 책은 그 존재만으로도 한국과 일본을 잇는 가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한국이름을 쓰는 재일한국인으로, 그리고 일본지식인으로 살아가는 그는, 한국과 일본 너머 어떤 곳을 지향하는 듯하다. 적어도 강상중을 읽는 일본인 독자나 한국인 독자는 서로 대화를 나눌 정도의 식견을 가졌을 것이다. (손정의도 이와 비슷하고 그는 이미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을 넘어 세계인이 되었으니까)


이 책은 강상중 교수가 읽은 나쓰메 소세키에 대한 안내서이다. 나쓰메 소세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본 소설가다. 무라카미 하루키, 마루야마 겐지, 오에 겐자부로를 지나 나쓰메 소세키로. 그 중에서도 나쓰메 소세키는 단연코 최고다. 이는 그가 일본소설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20세기 초반에 이미 20세기 전체를 물들이게 될 어떤 근대성을 포착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강상중 교수는 <<살아야하는 이유>>(송태욱 옮김, 사계절출판사)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강상중 교수는 이 책에서 가볍고 부드럽게 그가 읽은 나쓰메 소세키를, 그리고 소세키의 소설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 소세키의 생애와 주요 소설들에 대해 스케치를 하며 소개하고 있다.


사회는 어쩌면 미치광이들이 모여 있는 곳인지도 모르겠다. 미치광이들이 모여 맹렬히 싸우고 서로 으르렁거리고 욕을 퍼붓고 빼앗고, 그 전체가 집단적으로 세포처럼 무너졌다가 다시 솟아나고 솟아났다가 다시 무너지며 살아가는 곳을 사회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 중에서 다소 이치를 알고 분별이 있는 놈은 오히려 방해가 되니 정신병원을 만들어 가둬둔 채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정신병원에 갇혀 있는 자는 보통 시민이고 병원 밖에서 날뛰고 있는 자가 오히려 미치광이다. 미치광이도 고립되어 있으면 미치광이 취급을 받지만 단체가 되어 세력이 생기면 정상적인 인간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심한 미치광이가 돈과 권력을 남용하여 대다수 경미한 미치광이들에게 난동을 부리게 하고, 자신은 사람들로부터 훌륭한 사내라는 말을 듣는 예가 적지 않다. 

- <<나는 고양이로서이다>> 중에서 


어쩌면 반-시대적이며 지식인 중심적인 소세키의 소설을 부담스러워할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을 것이다. 나 또한, 아직 <<나는 고양이로서이다>>를 읽지 않았지만, 소세키 소설이 가진 태도를 이 책을 통해 보다 명확하게 알게 되었고 할까. 


그리고 몰랐던 사실 하나, 이토 히로부미 암살 사건에 대해 나쓰메 소세키는 소설 속에서 매우 냉정하고 객관적인 태도를 취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동시대와의 거리 두기가 소세키 소설이 시대를 넘어 감동과 울림을 가지게 된 계기가 아닐까. (1,000엔 지폐에 원래 이토 히로부미가 인쇄되었는데, 주변국의 반발로 나쓰메 소세키로 바뀌었다는 사실은 이에 비추어 무척 흥미로운 일이기도 하다) 


솔직히 나야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에 대해 열광하지만, 일부 독자들에게 소세키는 다소 어렵게 느껴진다는 사실을 역자 후기를 통해 처음 알았다. 어쩌면 일종의 교과서 소설에 대한 반감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점에서도 이 책은 나쓰메 소세키에 대한 재미있고 유용한 지침서가 될 것이다. 그리고 강상중 교수는 더 깊이 들어가지 않고 딱 그 수준에 맞추어 서술해내간다. 



* 최근 현암사에서 나쓰메 소세키 전집이 나오고 있다. 아래와 같은 장정으로. 강력하게 추천한다. 나는 이 시리즈가 나오기 전에 번역된 소설들 다수를 구입한 상태지만.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책상은 책상이다

페터 빅셀(지음), 이용숙(옮김), 예담 



뭐라고 해야 하나, 이런 경우를. 채 30분도 되기 전에 다 읽은 이 소설집. 뭔가 생각하기도 전에 금방 끝나버리는 소설. 그리고 누구나 조금의 관심만 있다면 한 번쯤은 생각하게 되는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진 짧은 소설들. 하지만 페터 빅셀은 이 소설들을 썼고,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에피소드라고 하기엔 지금 여기에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주인공들의 또다른 공통점은 대부분 나이가 많은 남자라는 사실이다. 정서적으로 유연한 여성들에 비해 남자들은 실제로 나이가 들어가면서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사회와 소통이 점점 어려워지는 경우가 더 흔하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당시 30대 초반이었던 젊은 작가 빅셀이 고집 세고 편협한 이런 노인들을 더 없이 따뜻하고 이해가 충만한 시선으로 그려냈다는 점이다. 지구가 둥근지 확인하려고 떠난 노인을 날마다 기다리는 작가, 또 요도크 밖에 아무 것도 모르는 할아버지를 애정으로 감싸는 작가의 태도는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세상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려는 작가적 사명감의 표현이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101쪽


고집 세고 편협한 이런 노인들을 만난다면 우리들은 과연 어떻게 할까? 따뜻하고 이해가 충만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아니면 고집 세고 편협한 젊은이들을 만난다면? 과연?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사회와의 소통이 어려워진다면, 그건 그/그녀의 문제인가, 사회의 문제인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원래부터 그렇게 생겨먹은 문제인가. 


작가적 사명감은 이미 일어난 문제를 감싸 안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의 근원을 파고들어야 하는 건 아닐까? 페터 빅셀의 한계는 여기에 존재한다. 따뜻하고 감성적인 동화적 시선으로 현대의 문제를 바라보고 어물쩡 넘어가려는 것이다. 


다시 묻자. 당신 앞에 어버이연합의 할아버지가 자신의 고집을 내세우면서 싸우려고 든다면? 엄마부대 봉사단의 할머니가 나타나 편협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논리로 세월호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또는 일베에 빠져 당신의 의견에 대해 사사건건 반박하며 과격한 논리로 공격을 일삼는다면? 


이 소설은 이 지점에서 무너져내린다. 아마 많은 이들이 이 소설을 읽고 자신의 잘못, 소외되고 편협한 사고와 언어를 가지게 된 이들에 대해 무정하게 대했다는 것을 후회하고 반성한다면, 그건 잘한 일일까? 


글쎄다. 내가 읽은 이 소설집은 좀 형편없다. 많은 사람들이 읽고 감동했다지만.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양혜규. 2010년 아트선재센터의 전시는 꽤 충격적이었다. 즉물적이면서 날카로운 느낌을 자아내면서 동시에 토테미즘적인 분위기는 나에겐 매우 낯선 작품들이었다. 그 세계는 근대적 현실에 기초하고 있으나 근대적 삶을 도려내고 근대의 맨 얼굴을 드러내며 파괴한다. 그리고 그 세계의 복원을 주술적 방식으로 모색하고 있다고 할까. 이번 전시도 이러한 경향을 연장선상에 있다고 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올해 맡은 프로젝트로 인해 나는 거의 전시를 보지 못했고, 얼마 전 리움에 열린 양혜규의 개인전도 가지 못했다. 뒤늦은 후회를 만회하고자, 양혜규의 몇몇 문장과 이미지를 저장한다. 


*   * 


"몇 년 동안 블라인드에 빠져있었다. 블라인드 사이로 조명이 진하게 지나가는 날카로운 선은 성적인 쾌감에 비교할 수 있을 만큼 멋있게 보였다. 솔 르윗의 '세 개의 탑이 있는 구조물'은 원래 선으로만 이루어진 작품이었는데, 그것을 모두 블라인드 면으로 대체해서 표현해 봤다. 그러니까 원래 작품이 가지고 있던 여러 속성이 달라졌다. 원본을 뒤집고 새롭게 해석한다는 의미다. 사실 블라인드 자체는 미약한 존재다. 반면 성(城)은 공동체의 구역을 배타적으로 구획하는 견고한 것이다. 허약한 블라인드로 된 '성채'는 이러한 배타적인 '공동체에 도전'하기 위한 작품이다." 

- 양혜규, 2015년 4월, <중앙선데이>와의 인터뷰 중에서. 








Sonic Crescent Moon - Medium Regular #4

2014

Steel frame, metal grid, powder coating, nickel plated bells, metal rings

173 x 54 x 54 cm (H x W x D), 23.2 kg






Series of Vulnerable Arrangements - Voice and Wind, 2009 




Haegue Yang, Shooting the Elephant 象 Thinking the Elephant, installation view. Courtesy Leeum, Samsung Museum of Art.




Haegue Yang, Yearning Melancholy Red, 2008 



"빛, 움직임, 소리는 공간의 역학 안에 있으면서 '추상'을 조명해주고, 단 하나의 이미지만을 시사하는 관습적인 서사를 잠재운다. 나는 최근 들어 다양한 기능을 부여받은 무빙라이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손을 만지는 것처럼, 빛은 천천히 공간을 가로질러 움직이며 다양한 표면을 어루만진다. 나는 이를 투명하지만 실재하는 공기와 관계가 있다고 본다. 조명은 또한 그림자를 만드는 기능적인 기계이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무빙라이트의 빛 세례는 다양한 길이와 선명도로 그림자를 드리우며, 자신의 개별적인 시점에서 바라보는 관찰자에 대한 관념을 담고 있다. 빛은 자율적인 형식이다. 물리적 경계를 갖지 않기 때문이다. 설치에는 첨단 극장 조명 장비의 움직이는 빛 세례와 정적인 적외선 히터의 붉은 광열 등 다양한 조명이 사용되었다. 둘 다 광원이면서 서로 다른 효과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설치에는 각 히터는 선풍기와 짝지어져 있어 서로 상반되는 힘을 가한다. 짝지은 두 장비 사이에는 서로를 향한 일종의 열망과도 같은 대화, 바람과 열이 서로를 맹렬하게 부정하는 역설적인 재앙이 발생한다. 서로를 파멸시킬 것처럼 작용하며 이는 나에게 사랑과 혁명의 법칙을 증거한다. 그들의 존재는 이러한 가능한 파괴에서 온 것이며 강점적 에너지를 남용한다. 나는 이를 전복적인 행위로 본다. 이는 절박하고, 근본적으로 비능률적이다." 

- 양혜규, 2008년, 래드캣미술관과의 인터뷰 중에서. (<셋을 위한 목소리> 에서 재인용)




셋을 위한 목소리 - 10점
양혜규 지음/현실문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도서관에서 미술잡지를 보다, 오랜만에 선무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주말 사무실 출근 전 건성건성 읽곤 집에 와서 그의 전시 기사들을 챙기며 메모해둔다. 의외로 선무에 대한 글이 검색되지 않는다. 국내에서보다 국외에서 더 주목받는 듯하다. 하지만 그의 삶이 가지는 드라마틱한 요소, 30년 북에서 살다 의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탈북하여 한국에서 들어온 사내, 새터민 화가, 홍대 미대 졸업, 그리고 이젠 두 아이의 아빠. 그런 그가 보여주는 흥미로운 작품 세계는 충분히 주목받을 만하고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선무, 들어라!, 캔버스에 유채, 116×91cm, 2009



특히 그가 배웠던 방식의 작품 스타일(일명 주체미술!)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명확한 메시지를 무겁지 않은 화법으로 드러낸다는 점은 보는 이들을 자연스럽게 분단환경을 환기시키면서 작가의 의도를 분명히 전달한다. 



선무, 열다, 캔버스에 유채, 72×60cm, 2009



선무, 선무의 노래, C 프린트, 2014


선무, 창밖의 낯익음, C 프린트, 2014



최근의 작품들에서 그가 적극적으로 서구 현대 미술의 방식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선무, 엄마 여기 서울이야, 캔버스에 유채, 91×72cm, 2010



몇몇 작품들은 아프고 슬픈 분단 현실을 드러내지만, 우리들은 그걸 외면하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최근의 한국 예술가들 중에 누가 분단 현실에 대해서 탐구하고 조명하면서 이야기하는가? 비극적인 현실에 대해서 너무 둔감해진 건 아닐까. 이제 분단예술 따윈 없고, 이미 과거형이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선무의 존재는 더욱 두드러진다. 



선무, 조선의예수2, 캔버스에 유채, 91×91cm, 2010



한국현대미술에서 선무는 매우 중요한 작가이다. 그는 미래형이다. 탈북자 가족들 중에서 소설가나 시인이 나올 것이며 다문화가정이라는 배경을 가진 예술가들이 나와, 한국 사회의 현재를 조명하고 비판하게 될 것이다. 나는 정말 그것이 기대된다. 우리에게 참으로 많이 아픈 이야기를 들려줄 테지만, 그러는 동안 한국 사회는 성장하게 될 것이다. 



선무, 꽃보라 Piece of flower, 캔버스에 유채, 190×130cm, 2013



* 선무 / SUNMU / 線無   http://sunmu.kr

* 인터뷰기사 -  [RFA 초대석] 뉴욕에서 개인전 연 탈북화가 선무 

(선무의 인터뷰 기사 실린 '자유아시아방송(영어: Radio Free Asia, 약칭 RFA)은 1994년 미국 의회가 입법한 국제 방송법(International Broadcasting Act)에 의해, 1996년에 미국 의회의 출자에 의해 설립된 국제 방송국'이다. 홈페이지 상단의 언어들을 클릭하면, 해당 언어별로 다른 컨텐츠로 나온다.미국 연방 정부 기금에서 지원을 받아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웹사이트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2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최규석 (글, 그림), 길찾기 







짧지만 강렬하다. 어떤 만화가 우리를 흔드는 힘은 형편없어지는 요즘 소설들보다 낫다. 최규석의 만화에 대해서는 이미 들은 바 있지만, 그 실체를 확인하진 못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메시지를 가지는 만화의 힘을 확인할 수 있다. 


혹자는 둘리에 대한 비관적 해석이 불편할 지도 모르겠지만, 이 '불편함'이야말로 이 만화가 우리 모습의 반영임을 긍정하는 것이다. 


최규석의 초기 단편들로 엮여진 이 만화책은 어떤 젊은 작가의 등장을 알리는 선언이며, 만화가 현실에 대해, 우리의 진짜 모습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키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최근 그는 네이버에 웹툰을 연재하기 시작했는데, 추천한다. '송곳'이다. 


http://comic.naver.com/webtoon/list.nhn?titleId=602922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개정증보판]

최규석저 | 길찾기 | 2004.04.09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새로운 소설을 찾아서 (Essais sur le roman) 

미셸 뷔토르 Michel Butor(지음), 김치수(옮김), 문학과 지성사 







문체에 관한 노력이 있을 때마다 작시법이 있다. 

- 말라르메 


소설가란 아무 것도 헛된 것이 없는 어떤 사람입니다.

- 헨리 제임스 




소설 쓰기를 포기한 채, 소설론에만 관심이 갔다.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고 형식에만 관심 있었다. 소설 속 사건은 이미 신문의 사회면, 자극적인 인터넷 기사, 혹은 막장 드라마에 밀린지 오래다. 사건에 대한 평면적 전달 속에서는 사건의 특이함만이 시선을 끌게 된다. 현대 소설가들 대부분은 사건의 입체적 전달을 고민해 왔다. 프랑스의 누보 로망도 여기에 속한다. 소설가를 꿈꾼다면 이 책 읽기를 권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것과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것은 서로 무관한 일이고 도리어 서로 방해된다. 한국의 독자는 게으르고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성실한 독자들은 먹고 살기 바쁘며, 순수 문학을 위한 출판 시장은 너무 작고 이마저도 계속 줄어들고 있다. 


미셸 뷔토르의 소설 에세이를 번역한, <<새로운 소설을 찾아서>>는 1996년에 출판된, 거의 읽히지 않는 소설론이다. 불어불문학과 대학원 과정에서나 읽힐 법한 책이라고 할까. 역자인 김치수 교수(이대 불문학과, 문학 평론가)는 이렇게 적고 있다. 


이 책을 번역하게 된 것은 대학의 수업 시간에 참고 문헌으로 읽어야 할 학생들이 그 문장의 어려움 때문에 받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글을 91년에 번역해놓고도 이제야 내놓게 된 것은 나의 게으름 탓이기도 하지만 뷔토르의 독특한 문장의 맛을 살리기에 불충분한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었다. (238쪽) 


역자의 사정이 이러하니, 이 책의 독서도 쉽지 않음을 예상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책은 소설 그 자체를 받아들이고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에겐 숨겨진 보석과도 같다. 미셸 뷔토르는 공간, 시간, 인물과 대명사, 그리고 문장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현대 소설의 건축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시와 소설의 관계를 지나, 소설적인 시를 강조한다. 그는 “새로운 형식이 새로운 내용을 드러낼 것은 분명하다. 또한 그 형식이 다른 형식에 비해서 더욱 단단한 내적 일관성을 드러낼수록 그 형식이 더욱 정확한 것이 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고 하며, 소설의 형식적인 측면이 어떻게 내용에 영향을 끼치는가를 소설가의 시선으로 하나하나 설명한다. 


소설이 시적일 수 있고 시적이어야 하는 것은 단지 몇 문단에서만이 아니라 그 전체에서이다. (48쪽)  


2000년대 초반 우연히 서점에서 구한 이 책을 최근에서야 읽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그 사이 두 세 번 초반 몇 페이지를 읽긴 했으나, 쉬운 독서는 아니었음을 밝힌다. 내용이 어렵다기 보다는 너무 함축적이어서 천천히 그리고 집중해서 읽어야만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길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소설에 대해, 소설 쓰기에 대해 다시 생각하였다. 사건, 혹은 인물 그 자체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구성의 건축술과 장식, 배경 등 그 자체로 하나의 통일성을 갖추어야 함을.  


점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선이란 점으로 만들어졌다고 말하면서 기하학을 만들기 시작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고 사물들을 뒤집어보지 않을 수 없고 그리하여 한 점을 두 선의 만남으로 정의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소설적 사유는 집단을 개인들의 합계로 생각하기 시작해서, 그 사유가 개인을 순수하게 여러 집단의 만남으로만 정의할 수 있다는 것을 그것이 인정하는 날까지 생각할 것이다. (126쪽) 


이 책은 누보 로망 계열 - 미셸 뷔토르 스스로는 싫어하지만 - 소설가가 쓴 소설론이다. 쉬운 책이 아니고 일반 독자에게 권하지도 않겠다. 다만 진짜 소설을 쓰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한다. 참으로 팔리지 않는 이 책을. 


가장 훌륭한 텍스트들은 영원히 미완으로 그리고 진가를 인정받지 못한 상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197쪽) 





새로운소설을찾아서

미셸뷔토르 저 | 김치수 역 | 문학과지성사 | 1996.07.15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2

  • 마지막 내용은 이해가 잘 안되네요ㅎ
    진가에 대한 인정은 어렵다
    그런듯 하다가도 아닌 것 같기도 하고

    •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문장입니다. '영원히 미완으로' 남아있다는 건 읽는 독자들마다 각기 다르게 읽을 것이며, 작품의 완성이란 읽는 독자들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야만 끝나는 것이겠지요. 현대의 관점이라고 할 수 있어요. 가령 '작가는 없고 독자만 있다'는 식의 태도로 이어집니다. 끊임없이 읽히는 텍스트는 영원히 미완인 상태죠.
      '진가를 인정받지 못한 상태'도 '미완'인 상태와 연결하여 해석할 수 있습니다. 완성되지 않았으니, 진짜 평가는 완성된 후에야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끊임없이 평가되는 작품이 되는 겁니다. 아직도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나 <<일리아드>>에 대한 연구논문들이 나오고 있죠. 가장 훌륭한 텍스트의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계속 새롭게 읽히고 새롭게 평가되죠.
      이건 모든 작가들의 꿈이겠죠. 제임스 조이스가 <<피네겐의 경야>>를 쓰면서 꿈꾸었던 어떤 이상일 겁니다. 아예 말라르메는 '이 세상은 한 권의 책으로 담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니 이 세상을 알지도 못하는데, 어찌 한 권의 책으로??

      가장 훌륭한 텍스트들은 끊임없이 새로 읽히고 새롭게 해석되며 시대를 초월해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이를 반대로 표현하면 미완이며 진가를 인정받지 못한 상태로 남아있는 거죠. ~


거의 1년 만에 시집을 샀다. 실은 1년이 더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 한참동안 글을 썼고 아주 가끔 신춘문예에 응모하기도 했으나, 


이것도 십 수년 전 일이니, 시집은 나로부터 참 멀리있는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오늘 사무실에서 이병률의 시집을 펼친다. ... 참 어울리지 않는 짓이다. 





나도 건달이고 싶다, 철없이 로맨틱하기만 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중국은 자본주의 사회인가? 아니면 사회주의 사회인가? 사람들은 여기에 대해 뭐라고 대답할까? 몇 명은 사회주의를 가장한 자본주의라고, 또다른 몇 명은 시장 경제 체제를 표방하고 있지만 실은 사회주의 국가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또는 도리어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고 묻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 아니냐고 되물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직도 중국은 공산당이 정치의 중심에 있고 사회주의적 가치가 국가 통치의 기본이다. 정치적으로 사회주의이지만,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시장경제)라는, 매우 낯선 시스템이라고 할까. (어쩌면 중국 앞에서 좌파, 우파의 구분도 무색해 질 지도 모른다.) 


이러한 현대 중국의 정치-경제 체제는 2012년의 우리들이 보기에도 신기한데, 수 십 년 전 중국 국민(인민)들의 눈에는 어떠했을까? 


사회주의 앞에서 모든 것이 희생되던 시기에 태어난 왕광이(Wang Quangyi)의 눈에는 당황스럽고 이해하기도 전에 받아들여야 하는 기묘한 현실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작품들은 그의 이러한 당혹감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아마도 그의 작품이 인정받게 된 것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고민하고 받아들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그의 예술이 존재하기 때문은 아닐까.   




그에게 세계적인 유명세를 안긴 '폴리티컬 팝'이란 어떤 의미일까?

"사회주의에서 자라왔고 유토피아 이념을 세뇌받으며 자란 세대인 나에게 눈 앞의 현실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두 개의 큰 물줄기로 보였다. 단지 중간적인 입장에서의 딜레마를 표현한 것이지, 어느 쪽이 옳고 그른가를 비판한 것은 아니었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충돌과 공존, 그러나 세상은 나의 그림을 현실비판으로 받아들였다. 서로 자신의 입장으로 작품을 보니 복잡해지는 거지. 평론가들의 오독이었다." 

- "중국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볼 뿐, 나는 중국의 워홀이 아니다.", 중앙선데이 2011년 10월 9일자 인터뷰 중에서 





1957년 하얼빈 태생의 왕광이는 정치적 팝아트로 중국을 넘어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가들 중 한 명이다. 그는 사회주의 체제 하의 정치 선전물에 자본주의를 뜻하는 상업 광고나 브랜드를 결합하여, 자본주의를 향한 개화개방 정책을 펼치던 중국 현실을 매우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위의 인터뷰에서 왕광이는 현실 비판이 아닌, 그 애매모호한 뒤섞임, 중복, 대결 등을 그대로 표현하기 위함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서구의 시각에 보자면 기울어져가는 정치적 예술 위로 상업 브랜드가 겹치는 듯하기만 하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자본주의의 출발점이 된 리더로 예수로 꼽았다는 점이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이 먹고도 열 두 바구니가 남았다는 성경 속 이야기야말로 물질 중심 사상의 시초가 아니냐"는 것이 작가의 설명이다. 

- "중국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볼 뿐, 나는 중국의 워홀이 아니다.", 중앙선데이 2011년 10월 9일자 인터뷰 중에서 





표현 양식은 단순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의 작품은 현대 중국을 넘어서 1990년대 이후 이념 갈등이 자본 갈등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중국에서도 이제 이념보다는 자본이 중요하듯이. 즉 정치적 혼란의 메시지가 이제는 시장 경제 체제 내에서의, 해외 자본과 국내 자본과의 전쟁을 보여준다고 할까. 2012년의 내가 보기엔 그렇게 왕광이의 작품이 시사하는 바가 달라졌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서쪽 부두 Quai Quest
베르나르-마리 콜테스(지음), 유효숙(옮김), 연극과 인간


서쪽 부두 - 10점
베르나르 마리 콜테스 지음, 유효숙 옮김/연극과인간




 

이 희곡은 공연을 위해서도 씌여졌지만 동시에 읽히기 위해서도 씌여졌다.
- 163쪽



 

이 연극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감정적으로 연기하는 것이며, 이는 좋지 않은 선택이다. 이 연극의 어떤 장면도 사랑의 장면처럼 해석되어져서는 안 된다. 그 어떠한 장면에서도 사랑의 장면이라는 가정 하에 쓰여진 장면은 없기 때문이다. 모든 장면들은 거래, 교환, 암거래를 나타내는 장면들이며, 이런 장면들로 공연되어야 한다. 거래를 할 때 부드러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 169쪽


 
 
1989년 에이즈로, 40대 초반의 나이로 사망한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마리 콜테스(Bernard-Marie Koltes)의 희곡이다. 사무엘 베케트 이후 최대의 불어권 희곡 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콜테스는, 대부분의 낭만적 천재 작가들처럼 살아있을 때보다 죽고 난 후 생전에 누려보지 못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고 할까. 하지만 작품은 어둡고 절망적이며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우린 벽으로 가로 막혔어요, 선생님. 더 이상 갈 수 없어요. 이제 뭘 해야 할 지 말씀해 보세요. 우리가 어느 구멍으로 떨어지기를 원하시는 말씀해 보시라구요.' - 모니카, 11쪽




하지만 나는 이 작품을 읽었고 알 수 없는 무대를 상상했고 무겁게 단어들을 입에 올리며 어색하고 낯선 몸짓의 배우들을 떠올렸다. 그런데 과연 그런 무대 였을까.

이 희곡은 1985년도 작품으로 국내에는 2004년에 번역 출판되었다. 작품은 뉴욕의 어느 버려진 부두가를 배경으로 가난한 이민자 가족, 세실, 샤를르, 클레르 등의 인물들과 종교 단체의 자금을 관리하다 돈을 다 탕진하고 자살을 위해 온 콕과 그를 따라온 모니카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연극을 목적으로 씌어진 이 작품은 동시에 읽히기 위한 작품이기도 하며, 막과 장의 구분이 없으며, 몇몇 배우들에겐 곤혹스러울 정도로 대사가 장황하게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부두임으로 종종 배 소리, 파도 소리, 갈매기 소리가 들릴 것이고 멀리 뉴욕의 번잡스러운 불빛도 비칠 것이다. 그래서 무대는 극단적 대비와 황폐한 분위기를 자아낼 것이고 길게 이어지는 대사는 관객들로 하여금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지루한 절망감을 안겨줄 지도 모르겠다.

'너희들은 그 곳에서 저지른 범죄의 냄새로 오욕과 침묵과 너희들이 숨기는 그 모든 것들로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 거야. 아버지도 없고, 엄마도 없고, 근본도 없고, 언어도 없고, 이름도, 종교도, 비자도 없는 너희들이 이 곳에 온 후 모두에게 불행이 닥쳤어. 너희들 때문에 우리도 불행해졌다구. 불행이 슬그머니 계단을 올라와 우리 문을 걷어차고 들어와서 빛과 태양이 필요할 때, 비참, 돈 한 푼 없는 생활이 시작되었지.' - 세실, 81쪽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대학을 졸업하고 한참 뒤에야 김경주라는 시인이 있으니, 한 번 읽어보라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하긴 대학 졸업하고 난 뒤, 직장생활을 하고 난 뒤, 시집을 샀던 적이 몇 번 되지 않았을 테니... 요즘 나오는 시인이나 소설가에겐 흥미를 잃은 지 오래... 그러다가 읽게 된 김경주. 

아래 글은 얼마 전 휴간으로 들어간 브뤼트 마지막 호에 실렸다. 예전부터 한 번 블로그에 옮기고 싶었는데, 이제서야 올린다. 이런 글 참 오래만이었다.  

언어는 폐허 위에서 생겨난다. 언어의 폐허로부터 시는 태어난다. 시는 자신의 폐허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시는 폐허의 속살이다. 시는 언어와 폐허가 교미한 흔적이다. 시는 언어의 폐허를 채운다. 언어는 인간의 폐허를 망각하지 않을 때 누군가에게 가서 발화된다. 한 인간의 사랑이 된다. 혁명이 된다. 시가 된다. 언어는 지상의 폐허를 목격하고 증언하지만 폐허를 바꿀 수 없다. 언어는 폐허의 잔해이기 때문이다. 언어뿐만 아니라 폐허 또한 누군가의 입안에서 흘러나와 누군가의 입안으로 흘러 들어가기도 한다. 사람들은 폐허를 감추기 위해 시를 쓰기도 하지만 폐허 뒤에 숨어서 언어를 남발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폐허에 숨어 살며 수많은 언어로 귀향을 가는 꿈을 꾸기도 한다. 때로 그것이 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시가 되기 위해선 자신의 언어 뒤에 숨어있는 폐허를 장악하려 해서는 안 된다. 그 폐허는 스스로의 언어를 찾아 시가 되기 때문이다. 시가 되려거든 타인의 폐허를 함부로 소유해서는 안 된다. 시가 되려거든 자신의 폐허를 세상에 내놓아야 한다. 세상의 곁으로 가서, 폐허가 새로운 지상이 되도록 도와야 한다. 다리 없는 새가 폐허 위에 내려앉아 시가 된다. 
- 김경주, '폐허의 복화술', 2011년 7월 브뤼트(Brut)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안녕하세요.
‘파아란 영혼’을 운영하고 있는 지하련(김용섭)입니다.

제가 블로그를 운영한 지도 벌써 몇 년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서양미술과 관련된 책도 한 권 쓴 적이 있으며 국내외 아트페어 관련 일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좋은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고 알리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몇 가지를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1. 현재 올라가 있는 전시 리뷰들 중 작품이미지가 없거나 형편없는 작품 이미지의 경우, 작품 이미지를 주실 수 있으신 경우, 제 메일(yongsup.kim@yahoo.com)로 작품 이미지를 부탁드립니다. 

2. 지나간 전시이거나 준비 중인 전시가 있으신 경우, 전시와 관련된 자료를 저에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이는 갤러리 관계자 분들이나 작가 선생님께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모든 자료가 다 업데이트되지 않겠지만, 업데이트되는 경우에는
- 파아란 영혼 블로그 (intempus.tistory.com) 에 올라가며
- 올댓 주말미술여행 이라는 스마트폰 어플에 올라가게 됩니다.

올해부터는 시간이 되는 평일이나 토요일 오전에는 전시장을 자주 다녀
많은 작가과 작품을 만날 생각입니다. 예전보다 더 많이.

혹시 저작권에 문제가 있을 경우에는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제 연락처는 yongsup.kim@yahoo.com 입니다.
그 외 관련 연락처는 공지로 올라와 있는 제 소개 페이지를 보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파아란 영혼 운영자
지하련(김용섭) 드림.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미술의 빅뱅 - 10점
이진숙 지음/민음사


미술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글을 쓸 때는 언제나 조심스러워야 한다. 그런데 조심스러워만 한다면 제대로 이야기를 하지 못할 것이고 정직한 글도 쓰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 글쓰기의 딜레마가 있다. 어쩌면 현대 미술 작품이나 현대 작가에 대한 글들이 대부분 어렵게 읽히는 것도 이 딜레마 때문일까.



이진숙의 ‘미술의 빅뱅’(민음사, 2010)은 이 점에서 무척 좋은 책에 속한다. 저자는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작가를 드러내기 위해 노력한다. 작가와 작품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 누구나 하고 싶어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꽤나 어려운 접근 방식. 그래서 이 책은 전문적인 미술 비평서도, 그렇다고 대중의 눈높이만 무작정 고려한 미술에세이집도 아니다. 저자는 자신의 목소리를 작가의 마음과 작품가 어우러지게 하기 위해 노력하며, 이것이 내가 이 책을 권하는 가장 큰 이유다. 


저자는 작가의 마음을 이해하고 작품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이 책에 소개한 작가들과 인터뷰를 하였으며 자료를 모았고 작품들을 보고 읽었다. 저자는 이렇게 적는다.

예술이란 사회의 가장 예민한 감각 기관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는 미묘한 변화를 예술가들은 특유의 감수성으로 재빨리 알아차려서 발설한다. 그래서 나는 예술가들을 ‘세상의 비밀과 통음하는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예술가들은 확실히 새로운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변화를 능동적으로 창조하고 긍정한다.


그리고 그녀가 선택한 작가는 아래와 같으며, 그 작가들의 작품들이 원색 도판으로 실렸다.

1. 이승애, 슬픔 항전기
2. 김아타, 인달라 속으로 사라진 세상
3. 김혜련, 정물에서 풍경으로
4. 이동기, 팝아트에 대한 팝아트
5. 서도호, 카르마 저글러의 옮겨 다니는 집
6. 김정욱, 상처의 역사
7. 정연두, 핸드메이드 라이프
8. 홍경택, 연옥에 울려 퍼지는 훵케스트라
9. 권오상, 조각에 대한 365장의 진술서
10. 김남표, 촉감으로 그리는 세상
11. 남경민, 그림의, 그림에 의한, 그림을 위한 그림
12. 오형근, 미디어 덮어쓰기와 뻥사진의 진실
13. 최우람, 일렉트릭 애니미즘
14. 정수진, 추상화되기 퍼포먼스
15. 박민준, 세상의 비밀을 보는 예술가
16. 천성명, 줄무늬 씨의 끝나지 않는 연극



이 책은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어떤 고민을, 어떤 작품을 제작하고 있는가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한다. 일독을 권한다.



tip. 책읽기 가이드

미술 초심자로 읽을 수 있을 정도로 평이하게 서술된 책이라고 여기지만, 미술에 대한 관심과 미술에 대한 독서는 별개다. 읽고 어렵다고 여겨진다면, 먼저 도판부터 감상해보도록 하자. 그리고 소개된 작가들의 이름을 기억해두자. 이 작가들의 작품을 실제로 보고 이 책을 다시 꺼내 읽으면 이 책이 새롭게 읽히게 될 것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홍경택_해골_캔버스에 유채_200×200cm_2008 





가끔 구입해 보는 'Trans Trend Magazine' 2010년 봄호에 홍경택 작가의 인터뷰가 실렸다. 그의 작품은 워낙 유명한 지라 전시장과 여러 옥션에서 자주 접할 수 있었다. 탁월한 감각으로 장식적이면서도 뚜렷한 메시지를 가진 작품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더 유명한 것은 작품 가격일 것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수직적인 작품가 상승이 일어난 가장 대표적인 작가가 바로 홍경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이 인터뷰를 읽는 동안, 그의 작품 가격은 그다지 중요해 보지 않았다. 미술 시장에서 작품 가격이 중요하긴 하지만, 종종 우리는 더 중요한 것들을 놓치기도 한다. 내가 읽은 인터뷰에서 홍경택은 현재 미술작품을 제작하고 있는 작가들에게, 그리고 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수집하고자 하는 일반 대중에서 귀에 담아둘 만한 말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잊지 말아야할 말이기도 했다.  


"사람들에게는 예술가에 대한 환상이 있죠. 자유분방하게 살 것이라는. 하지만 예술가도 자기 관리가 필요해요. 어쩌면 술도 담배도 안 하는 것의 배후에는 무의식적으로 자기 관리를 하려는 태도가 작용했는지도 몰라요. 예술가에게도 해내야 할 노동량이 엄연히 존재해요. 천재가 아닌 이상 성실해야죠. 저는 그걸 되도록 엄수하려는 편이에요."
2010년 봄. 홍경택 인터뷰 중에서. – Trans Trend Magazine.

 

'성실성'이야 말로 작가가 지켜야 하는 가장 큰 덕목이다. 그리고 그 성실함 뒤로 끝없는 기다림이 숨어있다. 하지만 그걸 견디지 못한다. 실은 기다리라고 할 수 없다. 기다리다가 지쳐 쓰러지는 이들을 무수히 봐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실하지도 않다면? 그건 큰 문제다. 그리고 무작정 성실해서도 안 된다. (그 점에서 상당수의 한국 예술가들은 정말 공부를 하지 않는다!)


홍경택_박찬욱_캔버스에 유채_91×91cm_2007


 

"미술의 대중화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그것을 위해 저나 동료 작가들이 끊임없이 노력한 것도 사실이고요. 하지만 미술의 문턱은 존재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다 좋아하면 그게 무슨 가치가 있겠어요? 미술에 대해서 공부하고 노력하는 사람이 참맛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너무 저급하게 나가는 건 예술에 대한 올바른 태도와 입장이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대중이 좀 더 공부하고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전히 존재하는 미술의 문턱은 있죠. 작품 가격이 너무 비싸니까. 하지만 전시회 대부분이 거의 무료에 가깝고, 미술 작품을 소유하는 자는 그걸 돈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온전히 이해하고 느끼는 자에요."

2010년 봄. 홍경택 인터뷰 중에서 – Trans Trend Magazine.



홍경택의 위 의견이 맞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동안 나는 미술의 대중화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홍경택_훵케스트라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130.3×162.2cm×12_2001~5_부분




홍경택의 작품을 실제로 보면, 무척 현란하고 자극적이면서도 일관된 형식성, 규칙성이 드러나 보는 이를 흥분시키는 묘한 매력이 있다. 매우 감각적이다. 가끔 서울옥션이나 K-옥션의 프리뷰 전시 때 홍경택의 작품을 볼 수 있을 것이다.





* 작품 이미지의 출처는 neolook.net입니다. 작품 이미지의 저작권을 득하지 않았으므로 저작권자의 요청이 있을 경우, 삭제토록 하겠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소설의 방법 - 10점
오에 겐자부로 지음, 노영희.명진숙 옮김/소화


하루 종일 밖을 떠돌다, 겨우 들어온 집은 아늑함을 가지지 못했다. 너무 거칠어, 마치 여기저기 각을 세운 채 모래먼지로 무너지는 사막 같았다. 어느새 내 작은 전세 집은 지친 몸과 마음을 뉘일 공간이 아니라, 또다른 전쟁터였고 내 마음은 새로운 전투에 임해야만 했다. 결국 도망치듯 책으로 달아났지만, ... ...

간단하게 서평을 올리고자 몇 달 전 읽은 오에 겐자부로의 책을 다시 꺼내 읽으려 했다. 몇 달 전에도 힘겹게 읽은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의 방법'. 그러나 그 때의 기억은 어디론가 다 사라지고 오에의, 이 오래된 책은 낯설고 또 힘겨웠다. 내 요즘의 일상처럼.

한때 소설 쓰기를 배웠고 소설가가 된 선후배가 즐비한 지금. 심지어 올해 이상문학상 수상자들 중 2명이 나와 함께 대학을 다녔던 이들이었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어떤 소설들은 너무 먼 곳, 까마득히 아득한 저 어둠 속에 있어, 동년배들의 소설 읽기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늘 도전하게 되는 건 위대한 이야기꾼들. 하지만 소설쓰기를 배우던 시절이나 지금이나 위대한 소설가들에게서 느끼는 절망은 이루 설명할 길이 없다. 오에 겐자부로도 그 중 한 명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풍경이 마치 세상의 종말처럼 느껴지는 나에게, 오에 겐자부로는 일본 소설의 무인도와도 같다고 할까. 그의 소설들은 지극히 일본적인 산문 전통 위에 있으면서 세계적인 보편성을 획득해 나간다. 마치 놀라운 마법과도 같다. 어떤 면에서 보면 너무 지역성이 두드러져 낯설지만, 그가 마주하며 싸우는 것은 인간과 세계, 인간과 시간(역사), 그리고 우연히 고통스러운 삶과 싸우는 인간의 모습들이다. 지역성을 너머 보편성을 획득하는 순간이다.

어쩌면 내 꿈은 이루어질 수 없는 종류의 것일지도 모른다. 지하철에서 소설책을 읽는 몇 되지 않는 독자들이 오에 겐자부로의 책을 들고 있는, ... ... 그러기에는 우리 시대 문학 독자의 수준은 전 세계적으로 형편없다. 심지어 문학을 평하고 논하는 평론가들의 수준까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정체 모를 안개로 왕창 내려앉아 버렸다. 하긴 위대한 문학과 싸운 경험이 있어야 평론가들의 수준도 올라갈 텐데, 한국에 언제 위대한 문학이 있었던가.

이 책은 체계적인 구조를 지닌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설 쓰기에 한 번쯤 도전해본 이라면 이 작은 책은 말로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우리 시대에 소설 쓰기가 어떠한 과정과 태도로 이루어지는가를 오에 겐자부로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서술하고 있다. 스토리 만들기에만 몰두하는 젊은 작가들에게 스토리 너머 존재하는 표현(문체), 상상력, 이미지, 리얼리즘, 태도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소설 쓰기를 배운 이들에게조차 이 책은 딱딱하고 재미없고 지루하며 쓸데없는 내용만 가득하다고 여기게 할 지 모르겠다. 그만큼 수준이 형편없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국내 저자가 쓴 소설 작법 관련 책들 중에 이 정도 수준이 되는 책이 있기나 할까.  

진짜 문학, 진짜 소설을 꿈꾼다면, 대학 교수나 문학평론가(이론가)가 쓴 형편없는 이론서가 아니라 소설가가 쓴 이런 에세이가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이 책을 집어들고 재미없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여긴다면, 이 책의 저자 오에 겐자부로나 나를 탓하지 말고 자신을 탓하길.


무엇보다도 저는 무엇을 쓰는가는 새로운 작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유로운 선택에 달려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쓰는가에 관한 방법을 나타내는 식으로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좋지만, 다른 작가가 무엇을 쓰는가의 문제까지 간섭하고 또 지도하는 것은 비문학적인 월권행위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젊은 독에게 이 책을 다시 보이면서 제가 제시한,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하여, 그 독자가 자신의 독자적인 이야기를 쓰는 것으로 대답해 줄 것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쓰는가"와 "무엇을 쓰는가"를 어떻게 창조적으로 매듭짓는가? 또 전자가 후자를 만드는가 하면, 후자가 전자를 결정하는 일도 있는, 이 소설을 쓰고 읽는 행위를 오랫동안 계속해 온 인간으로서, 이 몽상의 신선한 의미를 의심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1993년 3월 1일, 오에 겐자부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사용자 삽입 이미지



<<끔찍하게 민감한 마음>>, 버지니아 울프(지음), 정덕애(옮김), 솔, 1996년


문학비평가들이 쓴 문학에세이들 대부분이 그들이 가진 편협한 이론적 시야에 갇혀 일방적인 해석의 늪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채, 잘못된 방식으로 해석하고 왜곡시키는 경우가 많은 반면, 작가들이 쓰는 에세이는 적어도 작품이나 작가를 진실된 눈으로 바라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때로 더 뛰어난다.

버지니아 울프의 이 산문집 또한 그러하다. 19세기, 20세기 영국 문학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어도 그녀의 문장은 독자를 배려하며 독자의 눈길 앞에 순결한 그 하얀 살결을 드러내며 초봄의 햇살 같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고도로 문명화된 사회에서는 위장(僞裝)이 너무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공손함이 너무나 필수적이기 때문에 전통과 의식을 던져 버리고 마음에 맞는 한두 사람과 ‘가벼운 말’로 대화하는 것은 더운 방의 한 줄기 공기처럼 필수적이다.
- 25쪽


수 차례의 정신병 경력이 있고 빈번한 자살 시도, 그리고 끝내 자신의 생을 자살로 끝냈다는 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녀의 글은 감미롭고 때로 냉정하며 격정적이면서 타인에 대한 배려를 버리지 않는다. 아니면 그녀 스스로 이러한 에세이에 큰 무게를 두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오래 전에 읽었던 그녀의 소설을 꺼내보아야겠다. 세월. 버지니아 울프. 열린 창으로 봄 바람이 들어와 반대편 베란다 창으로 나간다. 그렇게 봄은 지나가고 아직도 영국의 우즈 강은 이승에서의 버지니아 울프의 마지막 표정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신고

Comment +0


사무실을 나가기 전에 오늘 쉴새없이 불었던 가을바람을 떠올린다. "계절풍의 어슴푸레한 빛 속에서" 마르그리뜨 뒤라스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가을이나 겨울에 부는 바람은 늘 그녀를 떠오르게 한다. 한 때 뒤라스의 소설만 읽었다.



지금은 사람들에게 읽히지 않는가 보다. 그녀의 책을 서점에서 본 적이 오래 되었고 그녀를 이야기하는 이를 보지 못했다. 하긴 그녀는 사랑 속에서 죽었으니.


<연인>이라는 영화가 나왔을 때, 그리고 그 이후 몇 년 동안 잠시 ...  내가 그녀의 소설을 마지막으로 읽었던 게 벌써 6년이나 지났구나. ... 뒤라스. 1998년 겨울. 그 겨울. ... 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는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스카 와일드 Oscar wilde
페터 풍케 지음, 한미희 옮김, 한길사



도덕적인 책이라든가 부도덕한 책이라든가 하는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 ... 잘 썼거나 잘못 쓴 책이 있을 뿐이다. 그뿐이다.

삶은 예술의 가장 뛰어난 제자인 동시에 유일한 제자이다. 예술이 삶을 모방하기보다는 삶이 예술을 훨씬 더 많이 모방한다.

자연이 그토록 불완전한 것은 우리에게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그러지 않았다면 우리는 예술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비극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습니까? 나는 나의 천재를 인생에 사용했으며, 작품에는 재능만을 사용했답니다.

*****

오스카 와일드가 여기저기 남긴 몇 마디의 문장은 심미주의(유미주의)의 분명한 정의를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그것은 로코코의 대가, 와또나 초기 모차르트에서 보았던 것과 유사한 것이며 19세기 말 상징주의나 아르누보의 대가들에게서도 볼 수 있는 종류의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와일드의 생애는 심미주의적이지 않았다. 세계적인 전기 시리즈의 한 권인 이 책은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던 한 독자에게 이렇다할 감동을 전해주지 않았다. 심미주의자이며 댄디의 시조였던 와일드의 인생은 추측했던 것보다 밋밋하고 열정적이지 못한 듯이 느껴진다.

실제 오스카 와일드를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선 러스킨과 페이터의 세계와 19세기 말 영국 사회에 대해 자세하게 알아야 할 것이다. 심지어는 이 섬나라와 대륙 간의 차이, 그리고 대륙에서 불고 있는 예술의 새로운 회의주의에 대해서까지 말이다. 그리고 그 시대를 나비처럼 스쳐지나가는 오스카 와일드의 여러 몸짓들을 살펴볼 때 오스카 와일드에 대해 보다 자세하고 분명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세하게 알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 책을 읽고 난 다음 느꼈던 오스카 와일드의 기만성이 사라질 수 있을까. 심미주의란, 거짓된 세계를 버리고 진실된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며 근대의 예술 양식에서는 혼자만의 공간 속으로 침잠하는 것을 의미한다. 제임스 조이스나 버지나아 울프, 혹은 세잔이나 고흐처럼. 그리고 말러처럼 인생 전반을 생에 대한 우울로 물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와일드의 세계는 심미주의가 아니다. 그는 전형적인 댄디이긴 하지만, 예술사에서 언급되는 그런 심미주의자는 아니다.
신고

Comment +0

늦은 봄날의 일상

가끔 내 나이에 놀란다. 때론 내 나이를 두 세살 어리게 말하곤 한다. 내 마음과 달리, 상대방의 나이를 듣곤 새삼스레 나이를 되묻는다. 내 나이에 맞추어 그 수만큼의 단어를.....

웹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필립 솔레르스(Philippe Sollers)가 사드(Marquis de Sade)에 대해 인터뷰하는 영상을 보았다. 영상 속에서 한국에서 사드의 책을.....

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

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 This Craft of Verse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박거용 옮김, 르네상스 우리는 시를 향해 나아가고, 삶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리고 .....

대학로 그림Grim에서

"글을 쓰지 않아요?"라고 묻는다. 매서운 바람이 어두워진 거리를 배회하던 금요일 밤, 그림Grim에 가 앉았다. 그날 나는 여러 차례 글을 쓰지 않냐는 질문을 받았다. 가끔.....

아우스터리츠Austerlitz, W.G.제발트Sebald

아우스터리츠 Austerlitz W.G.제발트(지음), 안미현(옮김), 을유문화사 병상에 누워, 안경을 쓰지도 못한 채, 제발트의 <<아우스터리츠>>를 읽었다. 병상에서의 소.....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 다나카 준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 다나카 준(지음), 김정복(옮김), 휴머니스트 일본인 저자가 쓴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이라니! 놀랍기만 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The Sense of An Ending, 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The Sense of An Ending 줄리언 반스(지음), 최세희(옮김), 다산책방 나는 우리 모두가 이러저러하게 상처받게 마련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

쓸쓸한 커피숍

2016. 06. 10 오늘도 기다림은 이어진다. 그리움은 늘 그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다....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기시 마사히코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기시 마사히코(지음), 김경원(옮김), 이마, 2016 현대적인 삶은,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조각나고 파편화되어, 이해불가능하거나 수용하기.....

샘 쉐퍼드Sam Shepard
황산, 아멜리 노통브
조르주 바타유Georges Bataille
단테:세속을 노래한 시인, 에리히 아우어바흐
단테:세속을 노래한 시인, 에리히 아우어바흐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