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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현대사진 +18


몸의 말 Body Speaking Words

2015. 10. 17 ~ 12. 31

한미사진미술관 



작년 겨울, 온 몸이 지쳐있었을 때, 한미사진미술관엘 갔다.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그 인근에 간 틈을 타, 잠시 미술관에 갔다 왔다. 미술관 안은 조용했다. 미술관의 조용함은, 뭔가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는 탓에 나를 거친 현실로부터 떨어지게 한다. 하지만 이 낯설고 편안한 조용함은 반대로, 사람들이 좀 더 미술에 가까워지면, 미술시장 활성화나 예술가의 생계에 도움이 될 텐데라는 생각과 만나면, 조용함이 깨진 미술관이 어쩌면 우리 미래를 위해선 더 좋은 게 아닐까 하는.  


이 전시는 한미사진미술관이 소장한 작품들을 가늠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몸을 주제로 하여 소장품들을 모아 전시하였고, 작품들의 수준 또한 좋았다. 다만, 몸의 말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메시지보다는 사진가들이 몸을 바라볼 때, 어떻게 바라보고 변모하였는가에, 지역이나 시대별로 그 변천사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전시 스토리나 구성이 좀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각 개별 작품의 완성도에 비해 전시 구성은 아쉬운 점이 많았던 전시였다.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내설악), Gelatin silver print, 1977 ⓒ강운구 


하지만 몇몇 사진들이 주는 울림은 대단한 것이었고, 몇 명의 사진작가들을 새로 알게 된 것은 나에겐 꽤 소중했다. 모리스 타바르, 안타나 수트쿠스, ....  몇 장의 사진을 올린다. 아래 사진 작품들은 한미사진미술관 소장품은 아니다. 구글 검색을 통해 찾은 몇 개의 이미지들이다. 


모리스 타바르 Maurice Tabard, Untitled, 1929 


안타나 수트쿠스 Antanas Sutkus 


안타나 수트쿠스 Antanas Sutkus 



* 한미사진미술관 : http://www.photomuseum.or.kr/ 

- 송파구 한미약품 빌딩 꼭대기 층에 있다. 입장료를 받으며, 미술관 창 밖 풍경이 무척 좋다. 근처를 왕래하는 이들에게 한 번 정도 들어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좋은 곳이 될 것이다. 8호선 몽촌토성역에서 나오면 바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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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 그리고 '정물화: 살아있는 것의 소고' - 김주연 사진전

2016.4.7 - 5.3, 트렁크갤러리, 서울 





트렁크갤러리도 참 오랜만이었다. 설치 작가로 알고 있었는데, 사진 작품으로 만났다. 2008년의 쿤스트독이었나, 아니면 다른 전시에서였나, 김주연의 작품을 만난 적이 있다. 선명한 작품 스타일로 한 번 보면 기억하게 된다. 그 동안 다양한 공간/물건에 식물을 키웠는데, 이번엔 옷이다. 



김주연, 존재의 가벼움I -2, 사진, 피그먼트 프린트, 144×108cm, 2014



시간은 현대 미술에 있어서 중요한 화두다. 김주연은 그 위로 생명의 시작과 끝은 넣으며 식물이 자라고 있는 공간을 탈세속화시킨다. 세속에서 일정 기능을 수행하는 어떤 것에 씨앗을 심음으로서, 그것이 가지고 있던 세속의 기능을 잃게 만든다. 그리고 마치 버려진 물건처럼, 버려졌다가 기적처럼 식물에 의해 전혀 다른 기능과 목적으로 되살아 나는 듯하다. 


그런데 이건 무엇을 지향하는 걸까? 여기에선 고객을 갸웃거릴 수 밖에 없다. 왜냐면 자연 속에 버려지는 모든 것들 위로는 무조건 어떤 것이 자라기 때문이다. 그게 식물이든 곰팡이든.  결국 작품들은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어떤 공간을 그대로 옮겨온 것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깊은 산 속에서 마주할 때와 갤러리에서 마주하는 것이 다를 뿐. 

  


김주연, 정물화살아있는 것에 대한 소고I, 사진, 90×60cm



갤러리에서 인류 문명을 부정하는 작품을 만나, 우리와 무관한(혹은 거부하는) 자연을 경험하는 것 자체가 현대 문명에 대한 깊은 의문과 우려가 될 수 있겠다. 우리가 맹목적으로 집착하는 것들 대부분, 그것을 위치한 콘텍스트를 상실하는 순간 전혀 다른 존재가 되기 때문에. 


그래서 김주연의 작품들은 자라나는 식물 속에서 우리를 다시 묻는 일종의 질문이며 반성이 된다.   




김주연, Metamorphosis, 아시바구조물, 신문지 약 18000부(3톤), 씨앗식물, 가변설치,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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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 위노그랜드Garry Winogrand(1928 ~ 1984) 




현대 도시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장르가 있다면, 그건 사진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가장 적절한 작가가 있다면 바로 게리 위노그랜드가 될 터. 





예술에서의 모더니즘Modernism은 도시와 함께 시작한다. 보들레르는 근대 도시 파리를 걸어다니며 모더니티를 이야기하고 익명성에 주목했다. 그 도시의 산책자는 파리를 지나 뉴욕에 와 자리잡는다. 





거대 도시에서 공중전화 박스 안에서 전화를 거는 사소한 일상도 드라마가 되고 어떤 사건의 시작이거나 종결, 또는 클라이맥스가 되기도 한다. 모든 것들이 의미를 가지며 의미들 속에서 한 없이 가벼워진다. 거리에 나서면 발가벗겨지는 기분과 함께 그 누구도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희열에 들뜬다. 





길을 가다 아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지만, 그건 매우 드문 일이다. 정해진 길로만 다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도시에서는 모든 것들이 모험이 되고 심지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래서 도시적 삶이 익숙한 당신은 천성적으로 모험가이면서 탐험가다. 

 



이제 안전한 사랑이란 없다. 도시에서는 사랑마저도 모험이며 탐험이 되고, 사랑을 찾기 위해 도시에서의 밤은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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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인덱스, 현대미술 

(원제 Le Photographique

로잘린드 크라우스 Rosalind Krauss(지음), 위베르 다미슈 Hubert Damisch(불어 옮김), 최봉림(불어를 한글로 옮김), 궁리 (대림이미지총서05) 





Jackson Pollock (1912-1956)

Gelatin silver print, 1950

National Portrait Gallery

Smithsonian Institution

Gift of the Estate of Hans Namuth

Image copyright Estate of Hans Namuth



그러나 분명 나무스는 사진가로서 그 자신만의 고유한 예술가적 역량으로 촬영 각도, 프레이밍, 흑백 콘트라스트, 그리고 문제가 되는 사진 대상의 모든 구성 요소를 고려했다. (...) 

나무스의 사진 속에서 폴록은 언제나 커다란 화폭 사이에 끼여 있는데, 어떤 화폭은 벽에 세워져 있고, 어떤 화폭은 바닥에 놓여져 있다. 그 연속 상태 속에서 검은 선과 하얀 선은 뒤얽혀 공격적인 모티브를 형성하며, 또한 아틀리에의 바닥에 보이는 얼룩 반점들 속에서 반복된다. 그리하여 사진은 위아래가 하나로 붙은 공간을 재창조한다. 여기에서 사람의 형상이 제대로 존재할 수 없다. 인체가 중력과 단단한 바닥과 맺는 관계는 아무래도 애매 모호할 뿐이다. 작업실 공간은 더 능동적이고 더 현란한 또 다른 공간에 의해 포섭되어 진다. 물감으로 뒤덮인 평면들의 연쇄 결합은 콜라주의 결합 양상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애초의 작업실 벽과 바닥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사진이 보여주는 특수한 평면적 시각 효과에서 기인한다. 

- '텍스트로서의 사진 - 나무스와 폴록의 경우' 중에서, 146쪽 



Jackson Pollock painting in his studio on Long Island, New York, 1950.

Credit: Hans Namuth



한스 나무스의 사진은 잭슨 폴록으로 가는 창과도 같다. 크라우스는 이 점을 제대로 지적한다. 우리는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대가 잭슨 폴록을 알지만, 그의 예술 세계를 탁월한 시각으로 카메라로 잡아 해석해낸 한스 나무스에 대해선 소홀했다. 


이 책을 기획하고 여기저기 실린 로잘린드 크라우스의 글들을 모아 불어로 번역한 위베르 다미슈는 로잘린드 크라우스의 사진에 대한 글들의 가치를 발터 벤야민, 롤랑 바르트에 비해 손색없다며 격찬한다. 이 격찬에 대해서 내가 뭐라 말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 점만은 분명하다. 잭슨 폴록 대신 한스 나무스에 대해서 설명하듯, 이 책은 온전히 사진에 대해서만, 사진의 존재 가치에 대해서 씌여진 책이다. 회화적 전통 속에서가 아니라 오직 사진만을 위한 이론적 지평을 만들고 해석하며 독립적 가치를 논한다. 


하지만 이 책 만만치 않다. 거의 한 달 내내 들고 다니며 읽었다. 겨우 다 읽고 정리하는 지금, 이 모음집에 대해서 뭐라고 적어야 할 지 모르겠으니 말이다. 흥미로움으로 따지자면, 탁월한 비평집들 못지 않았지만, 책은 쉽지 않았다. 사진 이론서이지만, 인문학 서적이며, 사진에 대한 깊은 이해 뿐만 아니라 현대 인문학 전반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만 이 책을 읽을 수 있다. (어쩌다가 미술 비평은 이 지경이 되었을까. 직접 사진을 찍는 이들 중 이 책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이가 몇 명이나 될까) 



그러므로 발자크에 따르면, 자연계의 모든 신체는 일련의 유령들로 구성된다. 유령들은 사방 모두 아주 얇은 막이 무한히 포개어진 잎 모양의 무수한 층들로 이루어지며, 눈은 이를 통해 신체를 인지한다. 

인간은 결코 창조할 수 없기 때문에, 다시 말해 환영처럼 만질 수 없는 것으로 어떤 단단한 것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또는 무(無)에서 어떤 사물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다게레오식 사진 촬영은 사진 찍는 대상의 여러 층 가운데 하나를 급습하여 은판에 덧붙이는 것이다. 그로 인해 전술한 신체는 다게레오 사진을 찍을 때마다 유령, 다시 말해 신체를 구성하는 본질적 부분을 잃어버리는 게 분명하다. 

- 나다르의 회고록 <내가 사진가였을 때> 중에서 (32쪽 재인용) 



거의 읽히지 않는 나다르의 회고록에서 인용한 위 문장을 읽으면서 '사진적인 것'에 대해 생각했다. '사진은 인영, 흔적, 자국의 형태로 이루어진다는 사실', 어쩌면 이것은 이 책 전반을 흐르고 있는 중심 테마이기도 하다. 그래서 크라우스는 퍼스의 '인덱스Index'에 의존하며 사진적인 것의 정의를 내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Alfred Stieglitz

Equivalent

1930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의 '등가물'에 대해 크라우스는 이렇게 적는다. 



그것은 대기 상태의 각인이다. 빛의 굴절을 통해 가시화된 구름의 형상은 바람의 방향과 습도를 기록하고 가시화한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어떤 것의 흔적을 구름이 고정시키는 한에서, 그것들은 자연의 기호들이다. <등가물>에서 스티글리츠는 이 자연의 기호들을 비자연 기호로 변환시키는 곡예를 수행했다. 다시 말해 구름이라는 자연의 기호를 사진이라는 문화의 언어로 전환시켰다. 

- 209쪽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파울라 또는 햇살, 베를린>, 1889년 



현재(2014년) 절판되어 시중에서 구하지 못한다면, 도서관에서라도 구해 읽으면 좋을 것이다. 특히 사진, 이미지, 미술사 전공자들에게 추천한다. 책의 난이도는 상당하지만, 의외로 재미있고 흥미롭다. 






사진인덱스현대미술

로잘린드크라우스저 | 최봉림역 | 궁리 | 2003.07.15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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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마르네 강둑에서', 1938 



"언젠가 그(카르티에 브레송)는 내게 자신이 사진을 구성하는 방식은 기하학의 문제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는 그가 세계를 볼 수 있는 능력뿐만 아니라 세계를 즉각 평면적인 방식으로 볼 수 있는 능력도 지녔음을 의미합니다." - 데이비드 호크니 



호크니를 통해 사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사진은 새로운 형태의 드로잉이며 미술이고 예술이다. 이는 브레송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의 열정은 사진 '자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고 피사체의 정서와 형태의 아름다움을 찰나의 순간에 기록하는 가능성, 다시 말해서 보이는 것이 일깨우는 기하학을 향한 것이다. 

사진 촬영은 내 스케치북의 하나다.

-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1994년 2월 8일.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루마니아,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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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보러가는 일은 가슴 설레는 일입니다. 곰브리치는 이렇게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고 난 다음 거리 풍경을 둘러보라. 미술관을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세상 빛깔이 달라져 보일 거라고. 저도 그렇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말 없는 작품들이 그 누구도 전해주지 않는 이야기를 들어주곤 하니깐요.
 


Dialogue - 이우환 전
갤러리 현대, 12월 18일까지


이우환, Relatum-Expansion Place, 2008, 2 iron plates 230x25x1; 2 stones 60x60x60
이미지출처: http://artne.com/artfair/m_mall_detail.php?ps_ctid=02070000&ps_goid=136 




이우환. 그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한국 작가입니다. 벌써 십 수년이 지난 것같네요. 저는 그가 동양적 추상주의의 한 극점을 이루고 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는 철학자이자, 산문가이고 예술가입니다. 한국어로 나온 그의 몇 권의 책들은 예술가의 언어를 넘어 철학자의 언어입니다. (뛰어난 현대 예술가들 중에는 글도 잘 쓰는 이들이 많습니다)

“전시공간에서 작품과 마주할 때, 아마도 당신은 긴장감과 해방감을 동시에 품고 있는 신기한 우주를 느낄지 모릅니다. 요컨대 더 높은 차원의 공간, 무한의 감각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느낌은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고자 노력하는 관계(Relationship)에서 오는 것입니다. 저의 작업은 하나의 특성(Identity)를 재현(Present)하고자 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세계와의 만남(Encounter)과 조응(Correspondance)입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이번 전시는 미국 뉴욕 구게하임 회고전의 갤러리 현대 버전이라고 할까요. 이우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도 좋은 전시이지만, 모르는 분들께는 강력하게 추천하는 전시입니다.




칸디다 회퍼 전
국제 갤러리, 12월 25일까지

칸디다 회퍼가 한국에 왔습니다. 2005년, 2008년에도 한국 전시가 있었습니다만, 아, 그 때도 저는 보지 못했네요. 저는 칸디다 회퍼의 작품은 파리에서 직접 보았습니다. 뭐라고 할까요. 그녀는 건축물의 내부를 찍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렌즈를 지나 인화되는 건축물의 내부는 현실성을 잃어버립니다. 마치 궁중에 붕 뜬 듯, 비현실적인 구도를 가지면서 건물 내부의 특유의 아름다움이 몽환적으로 펼쳐지면서 마치 수평적 시간이 수직으로 압축되어 하나의 지점에 응축되어 사진에 담겨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작가는 건물의 미학적 측면보다는 자체적 기능에 기반한 유형학적 면에 초점을 맞추지만 함축된 내부 공간의 과거와 현재가 혼재된 장면을 렌즈에 담아내고 있다. 나아가 작가가 지속적으로 탐구하는 ‘인간의 부재’와 ‘공간의 연출’을 평면적으로 해석한 이번 전시작품들은 작가가 현대 문화에 담긴 다양한 표상들에 접근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다.
- 전시 소개




이미지 출처: http://voluminousandbillowing.blogspot.com/2009/02/candida-hofer.html?zx=c8a6c726dd52da50 



갤러리 현대와 국제 갤러리는 사간동에 있습니다. 사간동에서 전시를 보고 삼청동에서 커피 한 잔하는 일정으로 움직이면 좋을 것같네요~. 이번 주 주말 전시 보러가시기 바랍니다.



* 갤럭시S와 같은 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폰을 사용하신다면,  T스토어나 안드로이드 마켓에서 '올댓주말미술여행'이나 '주말미술여행'으로 검색하셔서 다운받으세요. 최근 들어 업데이트가 뜸해졌지만, 그래도 놓치지 말아야할 전시는 무조건 업데이트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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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굿
최재영 사진전
2011. 1. 25 - 2. 13, 아트링크 www.artlink.co.kr


사진은 순수한 우연성이며, 오직 우연일 뿐이므로 민속학적 지식의 재료가 되는 '세부들'을 단번에 보여준다. - 롤랑 바르트




1952년생인 최재영은 이번 전시가 첫 개인전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래 동안 미디어에서 사진 기자 생활을 해온 터라, 평생을 카메라를 들고 다녔으나, 개인전이라고 할 만한 전시를 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그런 첫 개인전으로 백남준을 내세웠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사진은, 2006년 1월 29일 작고한 백남준의 5주기를 맞이하여, 그를 추모하는 마음으로 최초로 공개하는 백남준의 퍼포먼스 기록 사진이다.

1990년 7월 20일, 백남준의 생일이기도 한 이 날, 백남준은 서울 현대화랑 마당에서 요셉 보이스를 기리며 행위 예술로서 굿을 선보였고, 이를 찍은 것이다. 



이 전시가 흥미로운 것은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이자, 현대 행위 예술에 있어 대표적인 그룹이었던 '플럭서스'의 멤버였던 백남준의 예술 행위를 사진으로 옮긴 것이라는 점이다. 이전과 다르게 사진은 현대 예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매체이자 소재로 인정받고 있는 요즘, 최재영의 사진 작품이 주는 시사점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예술가의 시간적 예술(행위)를 정지된 화상으로 옮기는 작업은 일종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해석이며 재창조로까지 승화된다. 

하지만 이렇게 깊이 들어가지는 말자. 우리는 다시 백남준을 떠올릴 수 있고, 백남준이 있는 사진을 보며, 예술가와 사진에 대해서 잠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관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해프닝과 샤머니즘은 하나의 예술의 행위를 띠고, 다른 하나는 제식적 형태를 띨 뿐, 기본 원리에서는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굿도 볼거리도 제공하는 일종의 공연예술이며, 해프닝이나 굿이나 모두 자기 정화라는 치유적 기능을 갖는다. 또한 무당도 아방가르드 못지 않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용기 있는 사람이다. 더구나 굿이나 해프닝이나 모두 관객의 참여를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상호적 매체들이다. 결국 해프닝은 샤머니즘의 현대적 표현으로서, 해프닝의 수행자, 특히 어려서부터 굿판을 보고 자란 백남준은 첨단의 아방가르드인 동시에 전통 무당이 되는 것이다. 
- 김홍희
 



tip. 전시 관람 가이드 
백남준과 요셉 보이스에 대해서 별도로 공부를 하고 가면 좋겠지만, 이는 어려운 종류의 일이 될 것이다. 미술에 대한 이해가 있어서 해프닝이나 행위 예술에 대한 이해나 감상은 전혀 다른 종류다. 대신 이렇게 설명할 수 있겠다. 해프닝이나 순수 미술 작품에 제의적 성격을 본격적으로 부여하기 시작한 이가 요셉 보이스라면, 동양적 태도에서 서구를 받아들였던 백남준에게 굿도 일종의 행위 예술로 보였던 것이다. 굿이 가지는 본질적인 예술성에 주목한 것이다. 백남준에게 굿은 하나의 예술이다. 그리고 이 예술 행위를 찍은 사진들이 이번 전시의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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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ice Of Silence #016, 90x120cm, Inkjet print, 2010



침묵의 목소리 (Voice of Silence)

이일우 전
2010년 10월 21일 - 11월 4일, 갤러리 보다 컨템포러리
www.artcenterboda.com


소리가 들린다. 사진에서 소리가 들렸다. 도발적이다. 소리를 지르는, 혹은 흐느끼는, 갤러리 가득 어떤 소리를 내는 사진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하지만 소리는 없었다.



Voice Of Silence #001, 90x120cm, Inkjet print, 2010


사진 너머에는 어떤 소리가 숨겨져 있을 테지만, 우리에게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단지 상상할 뿐이다.

공감과 이해가 사라져가는 현대 사회 속에서 이일우의 사진이 주는 메시지는 분명해 보인다. 소리 지르고 싶지만, 소리 지르지 못하는 우리의 삶.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고 싶지만, 말을 들어주기는커녕, 말하기도 전에 시끄럽다고 해대는 타인들. 혹은 우리들의 모습이다.



Voice Of Silence #006, 90x120cm, Inkjet print, 2010


소리 속에 있는 인물들로 뒤로 펼쳐진 하늘과 바다는 인물들을 고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보는 이의 공감과 부러움을 이끌어낸다. 그 속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어쩌다 보니, 우리는 슬퍼하고 싶을 때 슬퍼하지 못하고 화를 내고 싶을 때 화를 내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일우의 사진 작품들은 우리 자신에게 더 솔직해지고 정직해지라고 말하는 듯하다.


Voice Of Silence #005, 90x120cm, Inkjet print, 2010


tip. 전시 관람 가이드
혹시 옆에 있는 사람과 싸운 적이 있는가? 대부분의 싸움이나 다툼은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지 않고 미루어 짐작하기 때문이다. 참는 법이 아니라 참지 않으면서도 서로를 배려하며 이야기하는 태도를 배울 필요가 있다. 이 전시는 자신에게, 우리에게 솔직해지자는 숨겨진 메시지를 전해준다.하지만 다툰 연인들이 함께 가기보다는 혼자 가는 편이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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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사진, 느끼는 사진
- 서울시립미술관 소장품 기획 - 사진 展

2009. 3. 6. Fri - 5.24. Sun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 분관


책장을 정리하다가 읽다만 책들로 어지러운 방바닥으로 떨어지는 사각의 얇은 카탈로그. 작년 봄에 보았던 전시. 그러고 보니, 요즘 통 전시를 챙겨보지 못하고 있다. 회사일도 많고 개인적으로 여러 일들이 겹친 탓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핑계만 늘고, 핑계가 늘수록 게으름은 배가 된다. 한 없이 게을러지는 나이가 된 것일까.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분관은 사당역에서 나오면 걸어서 바로 앞에 있다. 옛 벨기에 대사관 건물로 1905년에 지어진 이국적인 건물이다. 건물 앞 정원에는 흥미롭고도 아름다운 조각작품들이 세워져 있다. 사당역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다가, 그 기다림이 지겨워질 때 이 미술관은 매력적인 친구가 될 수 있다. 




디지털카메라의 극적인 확장은 사진에 대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모든 이들이 아마추어사진가가 된 지금, 사진 작품이 가지는 위치는, 한 쪽으로는 공고해지면서 한 쪽으로는 위태로운 것이다. 이 전시는 '예술가의 방', '연극적 상황연출', '사물의 재인식', '다큐멘터리', '심상적 풍경', '만드는 사진'으로 구성되었다. 그 중에서,  

김종욱, into the Ancient City, 컬러인화, 30×40", 2003

만드는 사진은 현대 사진에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로 '찍는' 사진에서 이제는 만들거나 '만들어놓고 찍는' 혹은 '찍지 않고 인위적으로 만드는' 등의 사진의 인위적 조작 현상이 나타난다. 이는 기계적 사진술에 디지털 기술이 가미되고 이미지의 조작과 인위적 상황 연출까지 포괄하면서 예술가의 창조정신으로 이어진다. 이는 다원주의적 양상으로 나타나는 현대미술담론의 맥락에서 이해되며 동시대 젊은 현대미술가에게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 전시 카타로그에서 인용함.





김종욱, into the Ancient City, 컬러인화, 30×40", 2003


특히 김종욱의 사진 작품은 제한된 세계 속에서의 의미 없는 반복되는 일상을 시간과 이미지의 낯선 조합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현대 사진이 가지는 흥미로운 지점을 정확하게 드러낸다. 정지된 이미지로서의 사진을 넘어 움직이는 사진, 그러나 동적 영상은 아닌 형태로 사람 앞에 놓여진다. 그리고 그가 담아내는 풍경이란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여가를 즐기는 듯하지만, 실은 아무런 의미 없는, 그저 스쳐지나가 끝내 잊혀지고 말 일상의 한 단면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공허한 느낌마저 들게 만든다. 그래서 김종욱에게 사진이란 허무한 테크놀러지에 기댄 당스 마카브르(dance macabre)와 같은 것이 된다.



그 외 많은 사진 작품들이 전시되었으나, 이 전시가 끝난 지는 이미 1년이 지나, 가장 흥미로웠던 김종욱의 작품만 언급하였다. 앞으로 전시 리뷰를 자주 올리게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있으니.




* 이미지는 neolook.net에서 가지고 온 것이며 글쓴이에게는 작품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이 없습니다. 저작권자의 요청이 있을 경우, 삭제토록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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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2)
아트선재센터, 2008.12.6 - 2009. 2. 15




헌법 2장, 39조 2항에는 "누구든지 병역의 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 한다"는 문항이 있다. 지난 2월에 끝난 이 전시의 제목은 위 문항에서 따온 것이다. 하지만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 국가에 사는 국민으로, 군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민감한 터널 속에 스스로 걸어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39(2)”는 동시대 한국사진전시로 한국사회에 깊이 파고 들어있는 군사문화와 전쟁의 흔적들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는 5명의 사진가들로 구성되었다. 김규식, 노순택, 백승우, 이용훈, 전재홍 등 5명의 사진작가들은 사진이라는 매체를 전략적으로 이용하여 한국 사회에서 일상에 스며들어 있는 군사문화와 전쟁의 이미지를 다양한 시각과 감각으로 포착하고 있다. 작가들은 시대에 따라서 혹은 다양한 계층에 의해서 변형되고 있는 사회적 현상을 사진 이미지로 시각화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사진은 전략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흑백사진 인화를 하는 스트레이트 사진, 일상적인 스냅샷, 잡지나 대중매체 이미지를 차용하여 디지털 기술로 변형시키는 등의 사진의 다양한 기법들은, 이미지가 갖는 컨텍스트를 드러내게 하는 방식과 연계되어 있다. 사진이라는 매체의 특성을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은 동시대 사진이 이전의 사진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한금현, 전시도록 18쪽)



이용훈, Paradise, 잉크젯 프린트, 110×110cm, 2008


사진에 붙은 제목이 인상적이다. 실은 거칠고 피곤한 직장 생활을 하는 샐러리맨에겐 예비군 훈련은 '파라다이스'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은 흐릿하고 얼룩진 듯 보이지만, 그렇다고 몽환적이지 않다. 아마 다른 인물들이나 공간이 등장했다면 몽환적으로 보였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군복과 군대라는 공간은 보는 이, 특히 경험해본 이들에게 몽환적으로 느끼게 해주질 않는다. 우리는 끊임없이 군대 문화를 어렸을 때부터 반복해서 교육받고 훈련 받는다. 문화의 다양성에서 보자면, 군대 문화도 엄연히 하나의 문화다. 어떤 목적을 위해 다른, 대부분의 것들을 무시하는 문화. 하지만 그 문화가 나라 전체를 감싸고 돌 땐 문제가 매우 심각해진다.

김규식, Bombs, Rockets, Missiles, 잉크젯 프린트, 140×108cm, 2008


김규식의 사진은 매우 흥미로운 군대 문화의 시작을 알려준다. 그의 사진은 건조하고 딱딱하지만, 군대 문화가 어떻게 흥미를 끌고 있는가를 알려준다. 이 극적인 상징성은 현대 사진이 보여주는 것보다 이야기하는 것에 더 집중하고 있음을, 그래서 과거 사진이 가졌던 여러 요소들을 과감하게 없앨 수 있음을 보여준다.  



노순택, “좋은, 살인”, Lambda print, 2008


군대 문화는 이미 우리 사회 저변에 깔려 눈치채지 못할 정도다. 노순택의 일련의 사진들은 군대 문화와 그 문화가 가지는 영향력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군사주의의 극복은 비단 남성들만 이런 악몽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이 아니다. 군대 갔다 온 아버지, 군대 갔다 온 선생님, 군대 갔다 온 친구와 애인, 군대 갔다 온 선생님, 군대 갔다 온 친구와 애인, 군대 갔다 온 선후배와 직장상사들과 부대껴 살아야 하는 여성들에게도 군사주의의 끈끈이주걱을 벗어나는 것이 절실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출발점은 군사주의가 얼마나 우리 주변에 가까이 와 있는지를 인식하는 일에서부터이다." (한홍구, 전시 도록 40쪽)


그런데 군대 문화를 왜 극복해야 되는 것일까? 반대로 군대 문화를 변화시킬 순 있는 건 아닐까? 한홍구 교수의 군사주의 극복이란 어떤 의미일까?

"사진은 보여주거나 가리거나 강조하거나 은유하는 도구가 아니라, 사진가의 삶의 세계의 일부이며, 그 시선은 눈에서부터 뻗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눈의 일부이다. 그러니까 사진의 장치는 사진가들과 하나이며, 장치가 변하면 존재도 변한다. 인간과 사진 둘 다 기계이며 서로 붙어 있어서 한 쪽이 변하면 다른 쪽도 변하고, 한 쪽이 망 하면 다른 쪽도 망한다. 그러므로 사진가들이 군사 문화를 찍는다는 것은 마치 누드모델이 벌거벗고 아마추어 사진가들을 기다리듯이 사진의 대상으로 떡하니 놓여있는 군사적인 어떤 것을 찍는 것이 아니라, 사진가의 존재의 일부로 편입되어 있는 군사문화를 다른 곳에 취직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영준, 전시도록 80쪽) 



백승우 “Utopia”, Digital c-type print, 2008


군대란 만일에 있을 지도 모르는 전쟁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한국의 경우, 군대 문화가 급속도로 퍼진 이유는 단순하다. 50년대, 60년대, 심지어 70년대까지 군대는 최고의 조직 문화, 최고의 기술력, 최고의 효율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군대에서 무언가를 배워 나온 사람들이 이 나라 곳곳을 (경제적 관점에서) 일으켜 세운 것이다. 고대 로마 제국도 하나의 군대가 그 범위를 확장해 나가 이루어진 나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군대 문화가 가지는 효율성 밑의 폭력성, 비합리성을 알고 있지 않은가. 극복이란 그것을 먼저 인식하는 일부터 시작될 것이다. 이번 전시에 나온 사진가들은 보여주는 것에서 머물지 않는다. 적극적인 현실 개입, 서사로 이야기하기를 통해 군대 문화의 현재, 과거를 보여주면서 우리가 어느 지점에 서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전재홍, 목포일본영사관, 전남 목포시 대의동 목포 개항 이후 1900년에 건립된 일본영사관 본관,

젤라틴 실버프린트, 50×60cm, 1999




* 본 리뷰에 쓰인 사진 작품의 이미지의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습니다. 저작권자의 요청이 있을 경우, 사진 작품의 이미지를 삭제토록 할 것입니다. 사진 작품 이미지들은 neolook.com과 아트선재센터 홈페이지(artsonje.org)에서 가지고 왔음을 알립니다.
* 본 블로그는 비상업적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블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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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호, Tree #1 -〈A Series of 'Tree'〉 among 〈Project, 'Photography-Act'>,
디지털 프린트, 2005 (Printed Date:2007)



트랜스 트렌드 매거진(trans trend magazine) 2008년 겨울 호에 젊은 사진작가 이명호와의 인터뷰가 실렸다. 흥미로운 그의 사진 작품을 여러 번 본 적이 있었던 터라, 그가 말하는 사진 작업에 대해서, 그리고 그 작업을 통해 의도하는 것이나, 평면 회화와 사진, 그리고 그 속에 담기는 존재(피사체)에 대해 생각할 수 있어 좋았다.

이명호의 사진은 어떤 존재는 그 존재를 둘러싼 콘텍스트(context)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가령 마르셀 뒤샹의 '샘'이 화장실에 있을 때는 변기이겠지만,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작품이 되는 이치와 비슷하다. 일종의 ‘낯설게 하기’며 브레히트 식의 소격효과다.

"지금은 사물의 대상화, 재현된 이미지를 환경에 개입시키는 것을 하고 있어요."

 


 
이명호, Tree #2-〈A Series of 'Tree'〉 among 〈Project, 'Photography-Act'>,
디지털 프린트, 2006 (Printed Date:2007)




하지만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교묘하게 회화성에 대해서 질문을 던진다. 나무 뒤에 서 있는 사각의 흰 천은 마치 캔버스처럼 펼쳐지고, 그 위의 나무는 캔버스에 그려진 듯하다. 그는 실제 공간을 의도적으로 평면화하면서, 사진과 회화 사이의 거리를 흥미롭게 탐구하고 있다.


"나무 자체가 주는 이야기가 있지요. 어떤 나무를 보면 눈물이 나는 것처럼. 어떻게 보면 나무는 이 세상의 모든 존재를 대신하는 것 같아요. 저는 특정한 나무를 반복해 찍지 않고 향나무, 자작나무, 그밖에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아주 흔한 나무 등 여러 가지를 찍는데요, 나무 자체가 가지고 있는 코드에 쓸려가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이명호, Tree #3-〈A Series of 'Tree'〉 among 〈Project, 'Photography-Act'〉,
디지털 프린트_, 2006 (Printed Date:2007)



그러나 이런 추상적인 분석보다, 그의 사진 작업이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의 사진 작품은 실제의 어떤 공간 속에 낯선 평면의 흰 공간 하나를 만들고 그 안에 나무를 위치시킨다. 마치 고립된 섬처럼. 나무가 있었던 원래의 공간(context)과 나무(text) 사이에 인위적 공간을 만든다. 이 개입을 통해 그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고 자신을 둘러싼 외부의 존재와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비유적으로 드러낸다.

사각의 흰 천 안에는 어김없이 한 그루의 나무만 위치하고 그 나무는 외부 공간과 격리된다. 마치 대중 속에 파묻혀 있을 때는 그 누구도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다가, 어느 날 대중과 떨어져 혼자 서 있게 되자, 대중들은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리지만, 그 순간 대화하지 못하는 어떤 상황처럼. 그러니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어서는 안 된다. 어떤 공간 속의 일부로 남아있어야 하고 자기 스스로 자신을 대중과 분리시켜 낯설게 만들거나 격리시켜서는 안 된다.

이명호의 사진들이 나에게 슬프게 다가오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꼭 현대인들이 얼마나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알레고리처럼. 그리고 결국엔 저렇게 흰 천으로 격리될 수밖에 없는, 라이프니츠의 모나드처럼.



* 위 글에 사용된 사진 이미지의 출처는 neolook.com이며, 이미지의 저작권은 원 저작권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또한 저작권자의 요청이 있을 경우 삭제토록 할 것입니다.
* 본 사이트는 비상업적 사이트이며, CCL의 규약에 따름을 알려드립니다.
* 이명호 사진에 대한 다른 이들의 리뷰: http://blog.naver.com/nalrari66/20065516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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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입학했던 게 벌써 16년이 지났다. 대학 때에도 잘 모이지 않았고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도 한동안 모이지 않다가 서른 중반이 되어서야 해마다 한 번 정도 모이게 되었다. 그것도 동기의 삼분의 일이나 사분의 일 정도만 모일 뿐, 다들 소문으로만 존재할 뿐이었다.

그런데 문학을 전공하였지만, 문학에 속한 친구들은 몇 명 없었고 직장생활을 하거나 영화나 TV 쪽에 가있었다. 나의 경우에만 미술 쪽에 있었다. 어제 일 년에 한 번 있는 송년 동기모임이었다. 보통은 시간에 대해 아무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가도 연말만 되면 '세월 참 빠르네'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시간은 참 빨리 흘러가고, 나이를 먹고 슬슬 지쳐가고 자조적인 웃음만을 가지게 된다. 시간에 대한 이런 생각은 언제서 부터 시작된 것일까. '인생무상'이라는 단어가 있고, 'Vanitas'라는 단어가 있으나, 시간에 대해 정면으로 대결하기 시작한 것은 현대에 와서부터다. 빌 비올라(Bill Viloa)의 영상이 시간에 대한 알레고리이듯이, 그와 똑같이 데미안 허스트(Demian Hirst)의 포르말린 상어도 시간에 대한 알레고리라고 할 수 있다. 

Eric Poitevin
Sans Titre, 2007
115 * 91 cm  (* 이 사진은 올 가을 프랑스 파리 Fiac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Fiac 2008에서 만난 Eric Poitevien의 사진의 첫 느낌은 강렬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슬프게 느껴졌다. 천연색의 초상 사진이 이렇게 느껴지는 건 꽤나 의외의 일이다.


© Eric Poitevin

그는 이런 흥미로운 누드 사진도 찍었다. 나이든 남자의 나체가 흰 벽과 극적으로 대비되는 저 이미지란.

1961년 프랑스 태생의 Eric Poitevin은 주로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진작가이다. 그의 관심사는 초상(portrait)이다. 그리고 그 초상은 시간 속에서 부서질 듯 연약한 존재의 일면을 부각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시간을 넘어서, 우리 세계의 본질적인 것을 담아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가 관심을 기울인 습지이며, 동물이며, 나무는 꼭 영원했던 과거의 어느 순간 속에서 걸어 나온 듯 우리 앞에 서 있는다. 하지만 그의 렌즈가 사람을 향하고 있을 때는 탈색된 듯한 느낌을 준다. 세상의 거추장스럽고 불편했던 어떤 것들이 물 빠지듯 빠져버린 채, 텅 비어있다고 할까.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동일한 초상이지만, 사람의 초상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그의 다른 사진들 - 습지, 나무, 동물 등 - 은 사람과 대비되어 보여지며, 꼭 습지의 인생, 나무의 인생, 동물의 인생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해 보게 만들거나, 그와 반대로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어떤 힘을 가지고 있다.


Sans Titre, 2000
172 x 216 cm 

sans titre, 1995


Sans Titre, 2007 






* 위의 사진이미지들의 저작권은 Eric Poitevin에게 있습니다. 본 사진 이미지들의 출처는 아래와 같습니다.
 www.bernier-eliades.gr , www.universalis.fr , www.art-nature-project21.org 
* 본 블로그는 비상업적 목적으로 운영되는 곳이며, Eric Poitevin을 소개하기 위한 순수한 목적으로 작성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그러나 사진이미지에 저작권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저작권자의 요청이 있을 경우, 삭제토록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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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네케 딕스트라.
1959년 네덜란드 Sittard에서 출생한 사진 작가.

Evgenya, Induction-Centre Tel Hashomer, Israel, March 6, 2002
Evgenya, North Court Base Pikud Tzafon, Israel, December 9, 2002


삶은 늘 변화하고 우리도 변한다. 성격이 변하기도 하고 외모도 변하고 사는 것도 바뀌고 심지어는 과거와의 단절을 시도하는 이들마저 있다. 성형 수술을 하여 얼굴 뜯어 고치고 이민을 가, 모든 과거를 잊어버리려고 노력하는 이들마저.  ... ... 하지만 변하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모더니티의 특징 중의 하나는 '변한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존재(Being)의 세계에서 떨어져 나와 생성(Becoming)의 세계로 진입을 시도한다(*해리스의 '현대미술: 그 철학적 의미'의 처음도 이런 맥락에서 시작된다. ). 그리고 현대의 베르그송 이후의 많은 철학자들이, 모네, 세잔 이후의 많은 예술가들이 이 변하는 세계를 해석하려고 정의내리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것이 실패로 돌아간 것일까. 20세기 후반의 예술은 너무 혼란스럽고 방황의 연속인 것처럼 보인다.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정처없는 것이고, 가련한 것인가. 마음의 문을 닫는다고 해서 외부세계가 우리에게 주는 상처와 고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님을, 그렇다고 그것을 이겨낼 그 어떤 수단도 가지지 못했음을 진지하고 사려깊은 현대 예술가들은 알고 있다.

일견 모더니즘적 전통 속에 있는 듯한 리네케 딕스트라의 작품은 우리 자신이 얼마나 혼란스러운 땅 위에 있는가를 여실 드러내 보여준다. 그리고 실제의 삶이 얼마나 혼란스럽고 무력한가를 증명한다. 그녀는 이를 정체성과 통일성의 측면에서 바라보고 이를 시각화해낸다.

 "I am interested in the paradox between identity and uniformity, in the power and vulnerability of each individual and each group. It is this paradox that I try to visualise by concentrating on poses, attitudes, gestures and gazes."

삶의 굴절이란 우리가 의도한 바대로 움직이는 경우란 드물다. 그 굴절 속에서 한 개인의 정체성도 변한다. 그러니 아예 한 개인의 정체성이란 불변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변하는 어떤 것이라고 해야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Olivier Silva, June 2, 2002

Olivier, Les Guersea, France, November 1, 2000

Olivier, Quartier Vienot, Marseille, July 21, 2000

군복을 입으면 사람이 달라 보인다. 예비군 훈련장에만 가봐도 알 수 있다. 그 전날까지만 해도 말쑥한 정장 차림, 또는 캐주얼 차림으로 있었을 어떤 이들이 연병장에 퍼지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아무렇게나 버리는 모습을 보면, '옷은 날개다'라는 표현이 아니라, '옷은 개인의 일상을 규정하는 어떤 정체성의 표면'같은 느낌을 받는다. 

일견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 보이는 딕스트라의 최근 작업들은 군복을 통해 개인의 정체성, 정체성 혼란에 대해 집중하고 있다.
(딕스트라는 분열된 현대인의 자화상, 그리고 평화 상태의 젊은이와 전쟁 수행 중인 군인 사이의 먼 거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만큼 정체성이 중요한 것일까. 리네케 딕스트라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나도 혼란스럽다. 변하는 나를 긍정하기 위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가. 그리고 그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을 때, 우리에겐 그 실패를 견딜 그 어떤 방패도 가지고 있지 않음을 깨닫기란 얼마나 쉬운 일인가. 종종, 때때로, 나는 우리의 정체성은 고정되어 있고 우리의 삶은 변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변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어떤 이들의 시대착오가 부러울 때가 있다. 


* 오래 전에 노트했던 글인데, 조금 수정해서 올립니다.
* 사진들의 출처가 어디인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 사진들의 저작권은 리네케 딕스트라에게 있으며, 문제가 될 경우 삭제토록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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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야니타 싱(Dayanita Singh), Go Away Closer
인도, 뉴델리 거주/작업
Nature Morte, New Delhi
December 18, 2006 - January 20, 2007
사진출처: http://www.gb.or.kr/2008gb/ko/index.asp 


1961년 뉴델리에서 태어난 그녀는 네 자매의 맏이였다. 사진이 그녀의 꿈은 아니었다. 다만 그의 기억 속에 사진은 특별한 의미로 남아있다. 그녀의 어머니는 자주 그녀 사진을 찍어주었고, 그녀에게 사진에 찍힌다는 것은 가족을 떠올리게 만드는 어떤 것이었다. 

보수적인 아버지의 반대를 무릎쓰고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아흐메다비드(Ahmedabad)에 있는 국립디자인학교의 시각커뮤니케이션 학과로 보낸다. 그리고 그녀는 여기에서 뉴욕의 ICP(the 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로 가서 포토저널리즘과 다큐멘터리 사진을 배우게 된다. 그녀가 ICP를 나온 후 바로 사진작가의 길을 걸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한동안 인도의 사진을 찍는 일을 하게 된다. 약 8년 동안이었다. 하지만 그 일은 그녀에게 사진은 무엇을 담고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었다. 

"약 8년 동안, 나는 사진가로서, 서구의 시각으로 잘 조합된 인도의 모습을 찍었다. 하지만 그 당시 내가 찍었던 인도 속에 나는 속해 있지 않았다." 

이런 생각을 가지기 시작하자, 그녀는 본격적으로 그녀의 삶의 뿌리이며, 그녀가 속해 있는 진짜 인도를 찍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국인 편집자는 그것을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그녀의 사진은 탈식민주의적이다. 서구의 시각이 아니라, 그녀의 시각으로 인도를 담아내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사진 문법에 충실한 그녀의 사진들은 로버트 프랭크를 떠올리게 만든다. 

Confusion: From 'Go away Closer' by Dayanita Singh 
출처: http://www.telegraph.co.uk/

다큐멘터리 사진에 충실한 그녀의 사진은 장식성을 최대한 배제한다. 동아시아 사람으로서 우리가 알고 있는 인도, 혹은 서구인이 바라보는 인도, 그리고 다야니타 싱이 바라보는 인도의 모습은 다르다. 어쩌면 이 모든 인도들 속에서 진짜 인도가 어느 것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 점에서 다야니타 싱의 작업은 의미를 가진다. 그녀는 최대한 견해를 억제하고 이방인들의 시야에 닫지 않는 인도의 모습을 담는다.

"Cyrus Oshidar with his family"... Dayanita Singh's exploration of the contemporary Parsi family.
출처: http://www.hinduonnet.com/mag/2002/10/13/stories/2002101300020400.htm 

이 점에서 그녀의 사진은 인류학적이다. 그녀는 기록으로서의 사진이라는 매체에 충실하고 그녀의 기억 속 사진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Dayanita Singh From I am as I am series 1999
출처: www.artfacts.net 

Visitors at Anand Bhavan, Allahabad 2000 Photograph, gelatin silver photograph
image 100.0 h x 100.0 w cm
NGA Photography Fund: Farrell Family Foundation donation
Accn No: NGA 2006.316
ⓒ Dayanita Singh
출처: http://cs.nga.gov.au 

광주비엔날레에서 만날 수 있는 그녀의 사진들은 'Go Away Closer' 연작들이다. 그리고 그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왜 현대 사진가들 속에서 그녀의 존재가 부각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현대 사진가들은 너무 개념적이고 새로워야만 된다는 현대(혹은 모던) 예술에 너무 경도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런 측면에서 다야니타 싱의 사진들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시사해준다.


* 위 글에 실린 사진들의 출처를 밝혀놓았습니다. 이 글은 상업적 의도로 작성된 글이 아니나, 사진의 저작권을 득하지 않았으므로, 사진의 저작권자의 요구가 있을 경우 삭제토록 할 것입니다. 또한 위 글의 텍스트는 CCL를 따르나, 사진은 저작권자가 분명히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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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ta Kim: On-Air
2008.3.21-5.25
로댕갤러리


사진이 무엇일까. 그렇다면 사진에 대한 글은 무엇일까. (이 질문은 내가 예술에 대한 글을 쓰지 않는 순간까지 나를 괴롭힐 것이다.)

어느 화창한 봄날, 미래에 대한 불안과 예술에 대한 사랑, 또는 호기심을 데리고 찾아간 로댕갤러리 안에서 나는 (현대)사진이 표현할 수 있는 바의 어느 극점을 발견하였다. 김아타의 이전 작업들, 뮤지엄 프로젝트나 해체 시리즈, 그 외 인물 사진 시리즈를 보았지만 내 시선을 끌지 못했다. 분명 그 때도 그의 작업들은 비평적 지지를 얻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사진 속에서 그의 카메라가 가진 즉물적이며 파괴적인 속성이 싫었다. 나는 좀더 우아한 방식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사진들은 피사체를 즉물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은 아픈 사진들이었고 필름에 옮겨진 피사체나 그 피사체를 바라보는 관객을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 오직 사진만 존재했고 사진 속의 세계가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사진 속의 사람들은 박제된 동물처럼, 혹은 어떤 인위적 목적에 의해 조장되어진 사물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카메라가 가지는 폭력적 속성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로댕갤러리에서 본 그의 최근 작업들은 놀라웠다. 지금까지도 나는 그의 이전 작업들과 온-에어 시리즈와의 연관관계를 선명하게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이전의 작품들에 대한 내 반감과 온-에어 시리즈에 대한 감탄은 선명한 금을 그으며 내 안에서 서로 대비되었다.

그리고 로댕갤러리의 전시는 끝났고 이 글은 어떻게든 정리해야만 하는 내 습성에 의해 씌어지는 것이지, 김아타 사진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이나 예리한 비평적 접근은 아니다. 도리어 찬사에 가깝다. 정말 온에어 시리즈는 대단했다. 시간과 운동에 대한 본질적인 접근이나 조망이 카메라라는 매체를 통해 아주 탁월하고 아름답게 표현될 수 있다는 사실에 찬탄을 금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스 철학이 운동을 부정하고 정지만을 추구했던 것은 운동은 시간의 축에 따라 이루어지며, 그것은 끝내는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어떤 종말, 어떤 불안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점에서 우리의 삶도 그렇다. 플라톤이 영원한 세계를 이야기하였을 때, 그것은 우리 삶에 뿌리 깊이 박혀있는 어떤 불안을 없애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 불안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추동시키는 원동력이었다. (그리스 예술과 철학이 우울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김아타의 온-에어 속에서 시간과 운동은 매력적인 소재이면서 우리의 삶,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의 본질적 구성에 대한 어떤 통찰을 전해주는 듯하다. 그것은 바로 시간과 운동을 넘어서 있는 어떤 공간에 대한 것이다. 그것인 일종의 멸망이고 어떤 폐허이며, 보는 이들에게 무한한 노스탤지어를 자아낸다.

회화가 추구하는 평면성이 시간을 무시하고 공간성만을 추구하는 어떤 것이라면, 김아타의 카메라는 시간을 받아들이면서도 변하지 않는 어떤 공간성을 추구하고 그것일 발견해낸다는 점에서 놀랍기만 할 뿐이었다. 올해 상반기 보았던 여러 전시들 중에서 최고의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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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궁금해지는데요.. 음..

    • 김아타의 홈페이지가 있습니다.www.attakim.com 여기를 보시면 여러 사진들을 볼 수 있어요. 하지만 실제 작품을 보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한국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자주 전시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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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화가 단색회화(모노크롬)와 텅 빈 캔버스를 지나쳐서, 더 이상 사유하기(thinking & meditation)를 그만두었다면, 이제 사진과 비디오가 그 사유와 명상을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회화는 계속 사유하기를 계속하고 있는 것일까.

* 빌 비올라의 비디오 아트가 비디오로 명상하는 경우를 보여준다면, 김아타의 저 사진은 사진의 명상을 보여준다.

*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의 범위는 비주얼 콘텐츠 뿐만 아니라, 그 콘텐츠를 담고 있는 TV 브라운관이나 낡은 TV 외장까지도 포함시켜야 한다. 백남준 이후의 비디오 아티스트들은 비디오를 사유의 매체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하였으나, 백남준은 그와는 달리 비디오/TV 라는 그 매체 자체에 매료당했다. 그래서 정신없고 현란한 백남준의 비디오 콘텐츠는 그 자체로서의 매력보다는 비디오/TV와 함께 결합될 때, 제대로 된 작품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 김아타의 기존 작품들을 떠올려볼 때, 위 작품은 다소 생뚱맞다. 하지만 저 아이디어는 너무 매력적이고 작품은 깊이있고 우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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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0월 25일부터 2003년 2월 2일까지 호암갤러리에서 전시된 ‘미국현대사진전 1970-2002’ 전시 도록을 꺼내본다. 그리고 그 곳에서 날 매혹시켰던 한 명을 기억해낸다. 불행하게도 그녀는 자신의 실존을 요가에 맡겨버렸다는 사실에 무척 실망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녀 개인에게 있어서는 매우 다행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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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위한 음식, 이미지 #2
Food for the Spirit Image #2
1971, gelatin silver print, 45.72*40.64cm


아드리안 파이퍼 Adrian Piper

뉴욕 할렘에서 태어난 아드리안 파이퍼는 1974년 뉴욕 시립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1981년 하버드 대학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0년대 초반, 파이퍼는 임마뉴엘 칸트의 철학서적들, 특히 마음, 정신 그리고 육체의 분리에 관한 숙고에 몰두했다. 파이퍼는 초기 사진에서 주재료로써 그녀 자신의 육체를 사용하고 있다.
여러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했던 파이퍼는 그녀 자신의 철학적 신념에 근거한 방법으로 거울을 통한 나체상태의 다양한 단계 촬영에 착수한다. 파이퍼는 <영적 음식 이미지> 연작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의 문구를 되풀이 하는 녹음된 그녀의 목소리와 거울 속의 자신을 찍은 개념예술 작품이다. 매우 낮은 조명은 그녀의 형체를 안 보이게 하고, 그녀를 둘러싼 그림자 속으로 분해되게 한다. 거울 속의 그녀를 찍은 사진과 그녀의 녹음된 목소리는 의식이 흐르는 순간을 재생함으로써 그녀의 존재를 확인하게 한다. 14장의 연작을 제작하는 동안 칸트의 유명한 금욕주의를 재현하면서 그녀는 단식을 하고, 요가를 하면서 사회적으로 자신을 고립시켰다.
- 전시도록에서 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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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Lorca diCorcia, W. September 1997, #3, 1997. Fujicolor Crystal Archive print. 122 x 152,5 cm.




오래된 미술 잡지를 뒤지다가 2000년대에 기대되는 작가의 한 명으로
Philip-Lorca diCorcia를 외국의 어느 큐레이터가 추천한 기사를 보게 되었다.

 여기 올린 이미지의 상태가 좋지 않아, 실제 사진이 주는
'극적인 고독감'을 느끼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 작가의 다른 사진들이 다 이런 류는 아니다.
그의 사진들 중 일부는 마음에 들고 일부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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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하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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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경, <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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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밴 David Vann 인터뷰 중에서 (Axt 2017. 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