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콜드 블러드 - 트루먼 카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시공사 |
1.
주기적으로, 떠올리기조차 싫은 끔찍한 살인사건들이 있었다. 그리고 방송과 신문들은 그 사건을 연일 다룬다. 사람들의 궁금함을 풀어주기 위함이지만, 실은 자신들의 수익모델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와, 자신들의 전문적인 시각에서 바라본 그 사건의 의미와 해석을 쏟아낸다. 실은 사건의 직접적인 당사자와 피해자, 혹은 그들의 가족에는 아무런 위로도 되지 못하며, 아무런 예방 효과도 가지지 못하는 이야기만 떠들어댈 뿐이다.
먼 훗날, 사람들은 그런 사건들을 기억할까? 아마 정신이 나간 몇몇 보수주의자들은, 전쟁 땐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다며, 애써 그런 사건들의 의미를 축소시킬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통계학이 아니다. 삶과 죽음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이며, 우리들 중 누군가에게 닥칠 지도 모르는 공포의 일부다. 하지만 우리는 (불행하게도) 그것을 우연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슬픈 일이다.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들에게 해줄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 너무나도 현실적인 우리들은 먼 미래의, 우연의 일부로 여겨질 어떤 공포에 대해 무방비로 살아갈 것이 뻔하다. 돈벌이가 기본적인 삶의 방식인 영화는 이런 사건들을 교묘하게 응용할 것이고, 이는 전적으로 허구의 세계에 속한 어떤 것으로 만들 것이다. 장 보드리야르의 의견대로 모든 현실은 가상이 될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선두에 현대의 미디어들이 앞설 것이다.
2.
‘강호순 사건’을 보면서, 그것의 사회학적 의미와 파장에 대해 생각하면서, 문학의 자리를 생각했다. 과연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한국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3.
트루먼 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는 실제 일어났던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는 논픽션 소설이다. 1959년 캔자스 주의 작은 마을 홀컴에서 일어난 일가족 살인 사건을 기록한 소설로, 트루먼 카포티의 집요하고 냉정한 서술은 이 책을 읽는 독자의 마음을 서늘하게 만든다. 절대로 그런 종류의 사건에 휘말려들 가능성이라곤 전혀 없는 어떤 선량한 사람들이, 두 명의 살인자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하는 사건은 이성적으로는 전혀 납득 가지 않는다.
카포티는 자신의 견해를 최대한 억제하면서 잔인할 정도로 느리게 사건의 전후, 피해자 가족과 살인자 가족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살인자들의 재판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하며, 사법 제도의 기능에 대해서도 묻는다.
‘왜 그 두 명은 살인자가 되었을까’에 대한 아무런 논리적 해답도 없다. 그래서 소설은 더 공포스럽고 끔찍하며 아프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 살인자들 중의 한 명인 딕이 자신의 판결 결과에 대해 불복하기 위해, 법률 서적을 뒤지며, 여기저기 인권 변호사들에게 편지를 보내, 사형이 부당함을 강변하는 모습을 읽을 땐, 우리의 모든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과연 살인자들에게도 용서의 기회가 필요한 것일까, 그리고 용서하고 난 다음은 무엇일까, 사법 제도는 이런 사건을 미연에 방지하는 기능을 가지며, 동시에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가 따위의 질문들이 끊임없이 떠오른다.
4.
죽은 자들은 아무런 말이 없고 살아남은 자들은 끔찍한 상처는 껴안아야 한다. 그리고 용서도 그들의 몫이다. 우리들의 종교에서는 그 살인자를 용서하라고 가르치지만, 결코 그렇게 되지 못한다. 강호순 사건에서 보다시피, 몇몇 언론에서는 아예 살인자의 얼굴을 공개해버렸다. 그들은 살인자에게도 인권이 필요한가라고 물으며, 자신들은 독자들에게 진실한 정보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하지만, 나에겐 상업주의와 정치적 고려가 맞아 떨어진 결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실은 용서 따윈 아무런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도리어 냉정하고 합리적인 시장의 질서는 많은 시장 참가자들에게 여러 가지 좋은 기회들을 제공한다. 많은 이들이 전문가로 나서면서 자신의 이름을 알릴 기회로 활용하며, 방송과 신문들은 연일 머리기사로 다루며, 서로 빠른 정보와 정확성을 내세우며 선정성을 교묘하게 가린다. 그리고 발 빠른 콘텐츠 제작사들(영화나 방송, 출판 등)에서는 이미 콘텐츠 기획안을 통과시키고 제작과 출시 일정을 조정하고 있을 터였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우연에 가까운 어떤 사건을 그냥 나에게만 안 일어나면 되거나, 통계적으로 나에게 일어날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여기고 지나쳐갈 것이다. 실은 그 사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여유도 없고 생각할 수 있는 정신적 깊이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하지만 누군가는 남아 천천히 정리하고 기록하며, 밥벌이에 바쁘고 여유 없으며, 무언가를 기억하기 보다는 잊어버리기에만 익숙한 사람들을 불러모아서 이야기해주어야만 한다.
진지한 문학이 가지는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 트루먼 카포티의 이 소설이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여기에 있다. 소설을 읽어나가면서,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이 세상의 끔찍한 뒷모습에 경악하고 몸서리 치면서도, 느리고 진지하게 살아남은 우리들이 마주해야만 하는 진실이 어떤 것인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5.
한국 문학에 트루먼 카포티 같은 작가도 없고, 이 소설과 같은 작품이 없다는 것은 참 큰 불행이다. 고작 도토리 키 재기를 하면서 대단한 작가인 양 짐짓 포즈 취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 문학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 속에서 기여하는 바는 과연 무엇일까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트루먼 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를 다 읽고 난 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