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 제라르 르그랑 지음, 정숙현 옮김/생각의나무 |
아마 서양 역사에 대한 책들 중 가장 많이 번역되거나 국내 저자에 의해 책으로 나온 시대를 말하라고 하면, 그것은 20세기(근현대)와 르네상스가 될 것이다. 서양 미술에 흥미가 없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정도는 한 번쯤 들어보았을 텐데, 이 3명의 예술가도 르네상스 시대를 살았던 이들이었다. 출판된 책들이나 우리들에게 알려진 인물들로 보나, 르네상스는 서양 역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대이다. 이 책은 그 시대 예술에 대한 입문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런 종류의 책은 대체로 재미가 없고 난삽하기 십상이다(그래서 쓰기 어려운 책이기도 하다). 천연색 도판이 책을 꺼내던 이들을 유혹하지만, 도판은 도판일 뿐이다. 또한 성의없어 보이는 번역 문장은 르네상스를 알고자 하는 독자를 실망시키고 화나게 한다.
책은 13세기 고딕 후반에서 르네상스의 시작, 그리고 16세기 후반 매너리즘에 이르는 과정을 다루고 있으며, 연대 순으로 배열하였으나, 르네상스에 대한 깊이있는 탐구보다는 개별 작가와 작품에 대해 언급하며 스쳐지나간다. 문제는 너무 많은 작가들이 등장하고 각 작가에 대한 설명은 한 페이지를 넘기는 법이 없다. 그래서 독자는 많은 예술가들을 만났다고 생각하나, 기억나는 이름은 없고 르네상스와 매너리즘에 대해서 읽기는 했으나, 그것이, 그 시대에 현재의 우리에게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도판이 있으나, 도판의 선정 기준도 모호하다. 체계적인 구도를 가지고 지어진 책이라기 보다는 그냥 편하게 시간 순서대로 병렬적으로 나열해버린 책이다. 그래서 저자는 쓰기 쉬웠겠지만, 독자는 읽고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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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나왔던 몇몇 작품들의 도판을 인터넷에서 구해 올린다. 르네상스 미술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을 지 모르겠다.
Luca Della Robbia(1400-1482) - 이탈리아 조각가
피렌체의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미술관에 소장된 루카 델라 로비아의 칸토리아(Cantoria, 성가대석) 부조다. 15세기(콰트로첸토) 초반 르네상스 자연주의를 가장 잘 드러내주는 작품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이 작품은 어린 아이의 풍부한 표정, 물결치는 듯한 몸의 움직임과 옷주름의 섬세한 표현이 특징적이다.
아래의 두 작품은 위 칸토리아에 있는 부조들의 일부다. 중세 시대의 부조 작품들이 다소 경직되어 있다면(고딕 성당의 부조작품들), 확실히 르네상스 미술은 우리의 감정에 충실하고 자연스럽다.
Antonello de Messine(1430 - 1479) - 이탈리아의 화가
역사적 예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실제 예수 그리스도의 생김새에 대한 의견들도 자연스럽게 오간다. 그리고 결국엔 예수 그리스도를 그린 대부분의 서양 미술 작품들이 실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그린 것이라기 보다는 자신이 생각했던 바, 혹은 자신들과 함께 살던 동시대 사람들의 얼굴에서 영향받은 것임이 드러나게 되었다. (실은 아무나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의 것이지만, 종교적인 것에 대한 논의는 늘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15세기 대단한 성공을 거둔 안토넬로 데 메시나의 이 작품은 이후 무수한 작가들에 의해 리바이벌되었다.
기둥에 묶인 그리스도, 1446년, 루브르박물관
안토넬로 데 메시나는 인물들의 표정 처리에 탁월한 감각을 가졌음에 분명해 보인다. 성모 마리아의 얼굴에서 우리는 신중함과 사려깊음, 동시에 결단력을 동시에 느낀다. 이는 위의 예수 그리스도를 그린 작품에서도 동일하게 느낄 수 있다.
수태고지(Virgin Annunciate), 1476년, 팔레르모 국립 미술관, 피렌체
Enguerran Quarton(1420-1466) - 프랑스의 화가
1454년경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앙게랑 카르통의 '피에타'를 위의 루카 델라 루비아나 안토넬로 데 메시나의 작품들과 비교해보면, 카르통의 작품이 딱딱하고 다소 경직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르네상스 미술에 대한 이해를 어렵게 하는 것들 중의 하나가 지역에 따른 시대차이다. 동일한 시대라고 하더라도 이탈리아와 나머지 유럽 대륙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여주었다. 제라르 르그랑는 위 책에서는 이 피에타 작품이 안토넬로 데 메시나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추측하지만, 실제 그랬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더구나 이 당시에 이탈리아의 화가이 프랑스의 화가에게서 영향을 받았다는 건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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