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과 기억 -
안치운 지음/을유문화사
안치운의 ‘연극과 기억’(을유문화사, 2007)을 읽었다. 그가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까지 여러 지면에 쓴 연극평을 모은 책이다. 그런데 이 책, 여간 읽기 불편한 것이 아니다. 텍스트의 문제다. 텍스트와 무대 사이에는 건너갈 수 없는 거대한 심연이 놓여있다. 하지만 그의 글은 심연을 가로질러가 무대를 집어삼키며 앞으로 나아간다.
글은 살아남기 위한 표현이되 노력이다. 비평가의 글은 살아남기 위한 열정의 소산이 아니던가. 공연을 재현하는 비평은 공연의 표현이다. 삶이 삶의 표현이듯이. 비평 없이도 연극은 가능하지만, 연극 없이 비평은 불가능하다. 연극을 가능하게 하는 비평이야말로 비평을 미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평의 꿈이다. 그렇지만 비평이란 글은 결코 연극의 얼굴을 만들지 못한다는 것을 늘 잊지 않고 있다. 다만 비평이 무용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서문' 중에서)
하지만 안치운의 글은 너무 문학적이다. 마치 연극 무대를 벗어나, 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사유하는 듯하다. 글이 사라지는 시대에, 이런 산문은 낯설다. 연극이 문화의 변방으로 밀려난 지금, 그런 연극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글은 더욱 더 낯설기만 하다.
그래서 이 책의 독서는 기묘한 슬픔으로 채워진다.
뮤지컬 공연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시대에 연극은 혼란스럽다. 혼란은 근원적인 것이다. 연극하는 이가 줄어드는 반면 뮤지컬을 하고자 하는 배우들은 늘어난다. 빨리 먹고 빨리 자리를 드는 패스트푸드가 점차 많아지는 것처럼, 우리들이 길거리에서 잡아타는 택시들이 대부분 중형 택시인 것처럼, 뮤지컬은 관객을 태우고 쏜살같이 앞으로 내뺀다. 반면에 연극은 땀 흘리며, 천천히, 헉헉 숨 가쁘게, 절룩거리며 그 뒤를 따라간다. 속도가 잃고 간 것들, 예컨대 과거의 반추, 현재의 반영, 미래의 기다림을 주우면서 간다. (21쪽)
연극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의 층이 얇아지고, 글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의 층이 얇아질 수록, 진지한 사유로 매체를 바라보고 풍부한 향기의 산문를 쓰는 이의 존재는 불행하다. 안치운이 그렇다.
두꺼운 이 책을 연극하는 몇 명에게 선물하려고 했으나, 그렇게 하질 못했다. 무릇 이 시대에 진지함이란 거추장스럽고 부담스러운 것이다. 심지어 진지한 사랑마저도 외면당하고 버림받는데, 무엇 하나 살아남는 것이 있을까.
이 책의 독서는 즐겁지 않았고 도리어 쓸쓸해지고 무안한 기분만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