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슈테판 츠바이크의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지하련 2010. 4. 18. 19:56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 10점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장영은 외 옮김/자연사랑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슈테판 츠바이크(지음), 장영은/원당희(옮김), 자연사랑



20세기 최고의 전기 작가를 들라면, 주저하지 않고 나는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를 들 것이다. 그리고 나는 몇 달 전 흥분을 가라 앉히지 못하며, 츠바이크가 쓴 한 권의 번역서를 읽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출판사에서 나온 번역서. 하지만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해 츠바이크가 서술하였다면, 또는 사람으로 붐비는 토요일 오후의 서점 한 구석에서 아무렇게나 펼친 책의 문장이 아래와 같다면.


모든 그의 인물들이 파놓은 갱도는 지상의 마성적 심연 속으로 향하고 있다. 작품의 모든 벽 및 개개 인물의 모습 뒤에는 영원한 밤이 있으며, 영원의 빛이 반짝인다. 왜냐하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 삶을 규정하고 운명을 형상화함으로써 존재가 안고 있는 모든 신비와 철저하게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세계는 죽음과 광기, 꿈과 불보듯 분명한 현실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곳곳에서 드러나는 그 개인 문제는 오히려 인류의 수수께기에 가깝다. 즉 한 인간으로서, 시인으로서, 러시아인으로서, 정치가로서 그리고 예언자로서, 각기 조명된 그의 개개 단면들은 영원을 나타낸다.

영원한 존재인 그는 곳곳에서 빛나고 있다. 종말로 치닫는 길은 하나도 없으며, 어떠한 질문도 가장 깊은 그의 가슴속 심연에 닿지 못한다. 감격만이 그와 가까워질 수 있으며, 그 감각마저도 얼굴을 붉히는 겸손한 마음이어야 한다. 이 또한 도스토예프스키 스스로 애착을 갖던, 인간의 신비에 대한 경외심에 비하면 아주 하찮은 것이다. (161)


이 책의 장점은 단연코 심장을 찌르는 듯한 문체의 힘이다. 츠바이크의 문학성은 이미 널리 알려진 바이지만, 늘 새롭고 힘에 넘친다.

사물들은 방금까지도 충만하던 감정 상태에서 시들고 무가치하게 변모한다. 명성은 바람을 잡으려는 헛손질이 되고, 예술은 바보 장난이, 돈은 누런 휴지가, 건강하게 호흡하는 육체는 벌레들의 거주지가 되어 버린다. 모든 가치들의 수액과 단맛을 어둠의 보이지 않는 검은 입술이 무섭게 빨아 없앤다. (9)



이 작은 책이 가진 힘은 읽는 이가 한 번도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읽은 적이 없고, 아니, 설사 그 두 명이 누구인지 모른다고 하더라도 없어지지 않는다. 도리어 사나운 추위가 뼛 속까지 아리게 하는 러시아를 지탱하는 영혼들이 어떤 형태로 이루어져 있는가를, 20세기가 어떤 고비 끝에 탄생하는가를 우리는 이 두 명의 정신을 보면서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츠바이크는 객관적 사실에 충실한 전기 작가라기 보다는 그 스스로의 문학적 열정과 상상력으로 마치 지금이라도 눈 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 그 강인한 생명력을 뿜어내는 두 명의 인물을 창조해내고 있다. 그는 사소한 사실들은 다 없애버리고 이 두 정신이 어떤 모양으로 자신들만의 우주를, 은하를 생성하는지, 그리고 그들의 여행이 이 세계의 어떤 신비로움과 관련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전기 문학의 정수, 아니 전기 소설이 어떤 것인가를 알기 위해 슈테판 츠바이크는 반드시 알아야 하는 작가들 중의 한 명이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는 품절인 관계로, 아래의 책을 권한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에라스무스 평전 - 10점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정민영 옮김/아롬미디어

위 책에 대한 서평은 http://intempus.tistory.com/64 를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