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초겨울이었다

지하련 2003. 9. 28. 11:23
초겨울이었다. 95년 창원이었다. 그녀의 방에서 양말 하나를 놔두고 나왔다. 침대에서 뒹굴었지만 성공적이진 못했다. 술을 너무 마시고 나타난 그녀를 안고 그녀의 집까지 오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술에 취해 침대에서 바로 곯아떨어지리라 생각했던 그녀가 덥석 날 껴안았을 때, 내일 오전까지 그녀와 있어야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침대 옆 큰 창으로 새벽빛이 들어왔다. 새벽빛들이 그녀와 내 몸을 감싸고 지나쳤다. 텅빈 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 소리가 들렸고 새벽 취객의 소리도 들렸다. 내 몸 위에서 그녀는 가슴을 두 손으로 모으면서 내 가슴 이쁘지 않아. 다들 이쁘대. 하지만 그녀와의 정사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술에 취한 그녀는 금방 지쳐 잠을 자기 시작했고 그녀 옆에서 아침까지 누웠다 앉았다 담배를 피워댔다.

그녀에게 시디 한 장을 줬다. 마마스앤파파스 베스트 시디. 부산의 P대를 다니다가 채 일 년을 채우지도 못한 채 학교를 그만 두고는 술집을 전전하다가 창원까지 오게 되었다. 커피숍에 앉아 그녀는 마일드세븐 한 가치를, 얇은 입술로 물고 불을 붙이고는 나에게 건네주었다. 그녀의 입술로 약간 젖은 담배를 피우면서 내 나이 스물셋은 그렇게 지나치고 있었다. 내가 읽고 있던 시집이며 소설은 그녀의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가끔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던 것 같은데. 그렇게 하진 못했다.

새벽 두 시부터 마시기 시작하던 술은 새벽 네 다섯시까지 계속되었다. 오빠완 키스를 못하겠어. 그냥 입술만 대자. 오빠 교정 중이잖아. 내 혀 다치면 어떻게 할 거야. 헐렁한 털스웨터에 청바지를 입은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곤 어제 손님과 이차 나간 이야기를 했다.

대학 다닐 때 킹카였다며 자랑을 하곤 했다. 가끔 백화점 전단지 사진을 찍곤 했으니깐. 키가 172였으니, 제대로 차려입으면 나보다 컸다. 그 때 키노 창간호를 구입했고 모니터 기자에 응모했다. 이진이라는 어처구니없는 필명으로. 내 나름대로는 진리를 거꾸로 읽으면 리진이 된다면서. 지금은 없어진 어떤 연구소에서의 ‘문화연구’ 수업을 방송 교재 형태로 듣고 있었고(나중에 서울에 와선 꼬박꼬박 열심히 다녔다) 아주 오래된 영화 보는 걸 좋아했었다.

그 때 새벽 공기는 참 슬프고 어두웠다. 새벽, 창원 중앙동, 우동집에서 아저씨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어느날 옆에 있는 술집 아가씨에게 아저씨는 요즘에도 마약해라고 물었다. 아뇨. 끊었어요. 그 옆으로 조용히 경찰차가 지나갔다.

어제 마마스앤파파스 레코드를 구했다. 턴테이블에 올려놓으니, 모양이 이뻤다. 그녀 가슴처럼. 어느날 새벽 네 시. 그녀가 술에 취한 상태로 전화를 걸어왔다. 나에게 ‘이 새끼야. 날 좋아하지마.’라고 하곤 끊어버렸다. 그 때 술에 취한 목소리가 그녀의 마지막 목소리였다. 몇 년이 지난 뒤, 고향 집으로 날 찾는 어느 여자의 전화가 왔다고 했다. 그녀였을 게다. 그 때 내 나이가 스물셋이었고 그녀의 나이는 스물이었다. 그 때 내가 속한 세상은 어둔 터널을 지나고 있었고 그녀의 세상은 이미 어둡고 축축한 상태였다.

술에 취해 내 품에 안겨 그녀는 오빠 따라 서울 가면 안 될까 라고 했다. 그 때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마스앤파파스의 노래가 검은 색 JBL 스피커에서 기어나와 내 방을 떠돈다. 그 풍경 속으로 나타났다 지워지는 그녀의 술 취한 모습. 꺼졌다 다시 살아나는 그녀의 목소리.

초겨울이었다. 95년 창원이었다. 그녀의 방에서 양말 하나를 놔두고 나왔다. 그 때 양말 하날 두고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 양말 하나 속에 내 슬픈 마음이 숨겨져 있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