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이성의 한가운데에서 - 이성과 신앙, 알랭 퀴노

지하련 2003. 10. 23.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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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의 한가운데에서 - 이성과 신앙
au coeur de la raison - raison et foi

알랭 퀴노 Alain Cugno
최은영 옮김, 동문선 현대신서 47



편하게 읽을 만한 내용을 담은 책도 아니고 그렇다고 번역이 좋은 편도 아니다. 그러나 살아가다 보면 한 번쯤은 이성과 신앙에 대해서 고민을 해보게 되고 그러한 고민에 약간의 도움을 줄 수 있는 책들 중의 한 권이라는 생각에 이 글을 쓰고 있다.

알랭 퀴노는 철학을 전공한 이로서 다양한 철학 서적을 펴낸 학자이다. 그리고 신앙을 가지고 있는 자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철학(이성)과 신앙이라는 이 불편한 관계를 서로 연결시키기 위해 그는 이 책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이성을 ‘밝고 명료한 이성’, 신앙을 ‘ 눈에 보이지 않는 어두운 신앙’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신앙, 그것은 시적인 표현과는 별개로 이해될 것이다. 그것은 밤의 추론이다. 그 추론은 애매모호한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명백하게 밝혀질 수 없을 것이라는 바를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낮으로 향해 가려고 노력하는 추론이다. 신앙은 말하는 방식을 이성에서 빌려 오고 있다. 다시 말해 신앙은 이성과 똑같은 표현을 하고 있으며, 표현하려는 방식 또한 이성과 똑같은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신앙은 밝고 명료한 눈에 보이는 언어, 즉 이성의 언어로 말을 하는 추론이다. 반명 신앙은 존재하고 있으며 모든 것이 결정되는 활기찬 어둠 속에 남아 있기를 바라고 있다.
- 26쪽에서 27쪽

퀴노는 이성 속에 숨겨진 신앙을 찾아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밝고 확실한 것들 속에서의 어두운 것들을. 그리고 자신의 신앙을, 자신이 믿는 바를 이해하라고 이야기한다. 그리하여 진리를 잡아내는 것이 아니라 진리로 하여금 나를 잡아두게 하라고.

이 책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름. 토마스 아퀴나스, 데카르트, 베르그송. 그러고 보니 이 책은 신학적인 책이 아니므로 신학을 공부하였거나 그와 비슷한 지식을 가진 이라면 불경스러운 책이 될 지도 모르겠다. 또한 번역도 엉망이니.(* 뒤에 인명약전이 붙은 이유를 처음에는 몰랐는데, 아마 이 역자 때문인 듯하다.)

이성과 신앙에 대한 한 번쯤 고민해 본 이라면 챙겨서 읽어볼 만한 책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