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목요일 새벽의 단상

지하련 2011. 2. 17. 10:26


아무 것도 서술할 수 없기 때문에 칸트의 물 자체는 라깡의 현실적인 것처럼 상징화에 저항하는 암호이고, 신(그에 관해서는 우리는 일정한 속성들을 서술할 수 있다)보다도 더 수수께끼적인 것이고, 한갓 부재의 기호이다. - 테리 이글턴, '미학사상' 중에서



약간의 스트레스, 부자연스러움 속에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책읽기는 예전만 못하고, 글쓰기 또한 마찬가지다. 문장은 헛된 상상에 미끄러지고 발걸음은 무거워지고 있다. 상상의 나래란, 마치 닿을 수 없는 흰 구름과 같아서, 이 세계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감옥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변화라는 것이 적당한 자극이 되어, 하루하루가 모험이 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테리 이글턴의 책을 펼쳐보다, 위 문장을 되새겨 읽었다. '물 자체 = 부재의 기호'라는 테리 이글턴은, 그래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된 것일까. 거대한 부재 앞에서 서서 눈 앞에서 보이는 물질적 현실과 싸우는 어떤 것을 연구하고 있는 것일까.


추억에 대한 낡은 책 속에서 순결한 거친 표면을 가진 그녀의 음악을 끄집어 낸다. 시드셀 안드르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