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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 Rene Magritte
수지 개블릭(지음), 천수원(옮김), 시공아트 018 (시공사)
- 르네 마그리트
책을 두 번 읽었다. 작가와 작품에 대한 책은 대체로 어렵다. 미술 작품 보는 것은 마음을 비우고 눈으로 바라만 봐도 되는 것이지만, 미술 작품에 대한 책은 그렇지 못하다. 사람들은 미술 작품에 대한 책이나 글을 읽고 현대 미술은 어렵다, 난해하다라고 말한다. 그건 전적으로 교육의 잘못이다. (그림 감상 전에 그림에 대한 글 읽기를 은근히 강요하는 문화적 폐해가 남아있다. 마치 시 읽기 전에 시 해설을 먼저 읽듯이)
이 책은 르네 마그리트에 대한 연구서이다. 딱딱하고 재미없고 어렵다. 특히 미국 중심의 현대 미술 이론에 기대어 있는 이 책은 종종 마그리트를 한 쪽에서만 바라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기도 하였다. 현대 미술의 오브제(objet) 개념과 연관 지어 마그리트의 작품을 설명하는 것은 다소 설득력이 없게 여겨졌다. 하지만 이 책이 최초로 출판되었던 해는 1970년이고, 이 당시는 미국의 추상 미술이 재현적 양식(환영주의)에서 반-재현적 양식으로 극적인 변화 이후 그것이 공고해지던 해였고, 활발한 이론적 논의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수지 개블릭은 이러한 이론적 성과를 자신의 연구서에서 반영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오브제 미술은 그 탄생이 원근법이나 환영주의적 양식에 반기를 들고 나온 것이라기 보다는 뒤샹의 도발적이고 정치적인 아방가르드에 그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환영주의 미술뿐만 아니라 그 이전의 미술 양식 모두에 대한 반기라고 볼 수 있기에, 환영주의 양식에 대해서만 국한하여 논의를 전개하는 것은 다소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부록2에 실린 르네 마그리트의 ‘생명선(La Ligne de vie)’이다. 이 짧은 글이야 말로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세계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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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인용문은 마그리트의 작품들에 대한 일종의 밑그림, 또는 전략과도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 전략은 뒤샹과는 현저히 다르고 초현실주의자들의 그것과는 다소 다르거나 한 발 더 논리적으로 앞서 나가는 것이기도 하다. 수지 개블릭은 '오브제의 위기'로 설명하고 있으나, 이는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들이 감동적이지는 않으나, 충분히 논쟁적이며 끊임없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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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조건'에 대한 작가의 설명
La Condition humaine. 1933. Oil on canvas. 100 x 81 cm. The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USA.
- ‘생명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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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언급된 내용 중 흥미로운 소재가 많았고, 르네 마그리트와 상관없이 미국의 오브제 미술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다는 점에서도 책은 읽을 만 했다. 다음 기회에 이 흥미로운 소재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