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미쳐야 미친다, 정민

지하련 2004. 4. 24.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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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야 미친다 - 조선 지식인의 내면 읽기
정민 지음. 푸른 역사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책의 처음 삼분의 일 정도만 불광불급에 대한 이야기일 뿐, 후반부는 독자를 매혹시키는 이야기가 나오진 않는다. 쉽게 읽히고 재미있다는 점에서 한 번쯤 권하게 되는 책이지만, 읽고 난 다음 남는 것이 없다는 점에선 궁금한 사람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독자에 따라 틀려지지 않을까 싶다. 난 다 읽고 난 다음 좀더 깊이 있는 내용을 많이 담을 수 있을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너무 대중적으로 흐르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요즘 이런 류의 책이 많이 출판되고 독자들의 관심을 끈다는 것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이런 책에서 시작해 한걸음 한걸음 한국 고전으로 나아가는 책들은 몇 권 정도 있을까. 동시에 그러기 위해선 한문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자책이 밀려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

책 중간쯤에 나오는 ‘허균과 기생 계량의 우정’은 내가 아는 이 둘이 등장한 부분이라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기생 계량의 시는 요즘 읽어도 좋다. 시인 문정희가 오래 전에 ‘기생시집’이라는 책을 내었는데, 이 책은 국내 역대 기생들의 시들을 모아 엮은 시집이다. 이 시집에 실린 기생 계량의 시 하나를 옮겨보자.



취하신 님께
膾醉客


취하신 님 사정없이 날 끌어단
끝내는 비단적삼 찢어놓았지
적삼 하날 아껴서 그러는 게 아니어
맺힌 정(情) 끊어질까 두려워 그렇지 ... ...

- 신석정 역. (기생시집, 문정희 엮음, 해냄, 4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