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生의 찬가

지하련 2006. 8. 18. 16:39

오래 시간이 걸렸구려. 그대 머리 위로 둥근 팬이 돌아가지 않는 새벽이 오기까지. 그렇게 더위는 잠시 우리의, 지친 육체와 영혼을 놓아두는 듯 하군요. 검은 밤 공기와 파란 아침 공기가 부딪히며 싸우는 시간들이 지나고 어두운 거리를 배회하며 주린 배를 채우던 동물들이 제 동굴로 들어갈 무렵, 우리의 일상이 시작되곤 하지요.

몇 주 동안 거의 매일 술을 마셨네요. 가끔 까페 테이블에 엎드려 자기도 하고 까페 바닥에 쓰러져 자기도 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동굴 벽에 붙은 박쥐의 날개 빛깔을 닮은 아스팔트 바닥에 손을 짚고 흔들거리는 배 속의 이물질들을 뱉어내곤 했네요.

그대 나이를 잊기 위해 노력해 보지만, 쉬이 잊혀지지 않아요. 그대 기억을 잊기 위해 노력해 보지만, 실패의 여신은 하루 종일, 한 달 내내, 일 년 동안, 그리고 그대와 내가 죽을 때까지 주위를 맴돌며, 우리를 놓아주지 않을 거라는 건 그대, 혹은 나와 술잔을 기울여본 이라면 다 인정하는 바죠. 감미로운 추억이 서로를 상처 내는 가시가 되어버린 지 오래 되었어요. 그러니 이제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과거를 꺼내지 말아요.

하지만 내일을 이야기하기엔 우리 위로 드리워진 실패의 상처들이 너무 깊어, 어제도 이야기하지 못하고 내일도 대화의 원탁 테이블 위로 올라오지 못하고 현재는 항상 침묵의 바다. 그리고 그 바다 위를 정처 없이 떠도는 술잔들. 술잔 위에 앉은 우리들의 영혼. 술잔 안으로 가라앉는 우리들의 육체. 자, 오늘도 우리 술을 마셔요. 침묵의 바다 위에서 살아남기 위해 술을 마시지 않으면 안 되죠. 침묵의 바다에서 달콤함으로 감싸져 있는 처절한 술을 마셔요. 끝내 자살하지 않고는 도대체 살아갈 수가 없었던 뮤지션들의 음악을 들으며 침묵의 바다 위에서 가라앉을 수밖에 없는 우리 청춘에 대해서 생각만 하고 이야기는 하지 말기로 해요. 그러면 이 금요일 밤도 쉽게 넘겨버릴 수 있을 지도 몰라요. 하루 밤, 하루 밤, 그렇게 보내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죽음의 사자가 기다리는 노년에 이르게 될 지도 몰라요. 그러면 자살할 생각이 없는 우리들, 겉으로는 자신만만하고 의욕적이며 실패에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 안달 난 우리들, 허황된 우리 청춘도 쉬이 이 처절한 생을 놓아버릴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이 밤을 위해, 우리 술잔을 부딪히며 침묵을 노래하기로 해요. 자, 우리 저 침묵의 바다 위를 내달려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