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그녀 속의 태.양.

지하련 2006. 8. 12. 10:14

남극 대륙의 눈폭풍같은 더위가 빌라 4층에 잠복해있다가 연봉 몇 천 되지도 않은 서른 넷의 사내를 기습하는 시간은 언제나 새벽 2시다. 그 때 지구가 흔들리고 태양계가 두려움에 떨며 은하계의 모든 행성들이 이 빌라 4층을 주목하며 안드로메다 성운에서도 그 모습에 관심을 기울일 정도이지만, 정작 서울특별시 강서구 방화1동은 고요하기만 하다. 그렇다. 나는 더위와 싸운다. 내가 가진 건 열아홉의 순정. 자위를 하다 멈추게 금욕에 대한 욕구. 길가는 여자를 겁탈하고야 말리라는 빗나간 욕정. 언젠가는 세상에서 가장 높다는 빌딩을 찾아가 수위를 죽이고 옥상 끝에서 날아 땅바닥과 한 몸이 될 거라는, 너무 무모해서 대단한 꿈 밖에 없다. 그러니 승리는 언제나 더위다. 더위가 가진 것은 아름다운 모든 이들을 갈증나게 하며 하늘은 높고 대기는 투명하며 햇살은 휘지 않고 곧게 만든다. 나는 언제나 내 속의 갈망과 욕망과 무모함으로 단련하지만, 더위는 더위 자체 머물지 않고 언제나 타자를 향한다. 그러니 승리는 언제나 더위다.

어제도 까페에서 엎드려 잤다. 며칠 전에는 까페 바닥에서 잤으며 그 며칠 전에는 집에 들어온 기억이 없지만, 나는 집에 있었다. 요즘 나를 조심해야 된다. 내 속의 무언가가 나를 기습하고 있으며 그 기습에 속수무책당하고만 있다. 나이를 들지 못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큰 비극 중의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