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예술가

에릭 사티

지하련 2003. 11. 25.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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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ik Satie의 피아노곡을 듣는다. Reinbert De Leeuw의 연주다. 곡들은 아래와 같다.

- sonneries de la rose + croix
- pi’eces froides
- pri’ere
- 4 preludes

오래된 LP인데, 자켓 뒤에 실린 해설의 일부분은 이렇게 Erik Satie에 대해서 평하고 있다.

“그의 음악성은 간결하고 순수하여 이내 친숙해진다. 정신적으로는 반골적이지만, 낭만적인 정감이나 철학적인 정신성을 철저히 배격하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그런데 난 “그의 음악성은 간결하고 순수하여 처음 듣기에는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 현대 음악의 미니멀리즘이 에릭 사티에서 연유한 것이 아닐까 하는 비전문가적 견해을 피력해본다. (아마 이래저래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3 Gymnope’dies를 들어본 이들이라면 에릭 사티가 꽤나 낭만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솔직히 낭만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철학적인 정신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것이 ‘어떤 체계적인 세계관에 대한 지향’을 뜻한다면 그것을 배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인 듯 보인다.”

처음 듣곤 참 부담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여러 번 듣고 나서야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참 매력적인 음악가라 생각된다. 적어도 내가 들어본 피아노곡들 안에서 말이다.

집에 Aldo Ciccolini의 Erik Satie : Oeuvres pour piano (EMI Classics, 2CD)가 있다. 보통 자기 전에 음반을 틀어놓는데, 몇 번 잠에서 깨어난 적이 있다. 중간중간 잠을 깨우는 피아노곡들이 그렇게 많으리라곤 생각치 못했다. Erik Satie의 3 Gymnope’dies만 들어본 이들에게, 그리고 그러한 곡들만 선호하는 이들에게 Erik Satie의 피아노곡들을 추천하기에 부담스럽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난 Erik Satie가 좋다. 올해 발견한 멋진 작곡가이다. 텔레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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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사티 (Eric Satie, 1866-1925, 프랑스)
사티는 기존 음악계가 쌓아놓은 신조나 미학을 무시하고 자신의 고집대로 살아간 '세기말의 반항아'였다. 그는 낭만주의나 인상주의에 반대하여 감정의 표출을 절제한 채 단순하면서도 기발한 음악들을 써냈다. 괴팍한 아이디어와 신랄한 유머, 그리고 신비주의와 순수에 대한 이념이 그의 독창적인 음악세계를 만들어냈다. 파리음악원을 마친 후 1884년부터 피아노곡을 중심으로 작곡계에 뛰어든 그는 <오지브>(1886) <사라방드>(1887) <짐노페디>(1888) 등을 통해 단선성가풍의 투명한 음악들을 선보였다. 1890년에 몽마르트로 이사간 그는 기괴한 옷을 입고 나이트클럽에서 피아노를 치며 생활비를 벌었다. 이 시기부터 드뷔시와 친교를 가졌으며, 또한 신비주의적 비밀결사인 <장미십자교단>의 전속작곡가로 활동하면서 <장미십자교단의 종소리>와 같은 작품을 써냈다. 그는 <지휘자 예수의 예술 메트로폴리탄 교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유일한 교인이 된 적도 있다. 1898년 파리를 떠나 아르쾨유로 간 그는 조그만 방에 기거하면서 죽는 날까지 살았다. 항상 아마추어로 취급받는데 대해 불만을 느낀 사티는 1905년엔 스콜라 칸토룸에 입학하여 알베르트 루셀에게 다시 음악을 배웠으나 그의 음악은 과대망상증, 기벽증으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1917년에 콕토의 대본과 피카소의 무대장치에 의한 발레 <파라드>의 음악을 맡으면서 그의 가치는 반전되었다. 시대를 초월한 대담한 수법과 혁신적인 사티의 사상은 미래파의 출현을 예고해주었고, 초현실주의의 선구적 역할을 했다.

* 글쓴이 : 한국피아노아카데미 (http://www.piano.ac/lecture/사티.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