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권의 책(로버트 램의 ‘서양문화의 역사’ 2권(사군자), 슈퇴릭히의 ‘서양철학사’(분도출판사), 프리틀라인의 ‘서양철학사’(서광사) )을 읽고 간단하게(?) 정리한다.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한 정리임. 대부분 슈퇴릭히의 '서양철학사'를 발췌요약한 것임.
초기 교회의 성립
사도 바울 -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이교도에게까지 전해야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음. 현재 그리스도교의 전투적으로까지 보이는 전도 의지는 사도 바울에게서 연유된 것이다. 하지만 베드로는 유대인에게 국한시키고 싶어 했다.
베드로 - 초대 교황으로서 로마 제국의 유산을 계승하며 새로운 교회의 지도력을 굳혀놓았다.
아우구스티누스 - 많은 성직자들이 있었으나, 신앙의 수호와 전파를 위한 제도적 수단으로서 교회가 폭넓게 수용되기 위해서는 좀 더 명료하고 체계적인 교리가 있어야 했는데, 이를 확립한 이가 바로 아우구스티누스였다.
마니(Mani)교
- 유대교를 거부하고 그리스도교적 이념에 인도 사상을 결합시킨 교파
- 페르시아인 ‘마니’(Mani, 라틴어로는 Manichaeus)에 의해 창시됨.
- 광명으로서의 하나님 아버지에게 지배되는 광명의 세계와 암흑과 그의 마귀에 의해 지배되는 암흑세계라는 이원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며, 예수란 광명의 세계로부터 강림하신 인류의 구세주임.
- 마니교는 엄격한 고행을 요구하며, 계율을 엄수하도록 강요당하는 선발된 ‘지식의 소유자’(이들에게는 육식이나 성적 만족은 물론 하찮은 수공(手工)에 종사하는 것조차 금지되어있다)와 이와 같은 계율로부터 별다른 속박을 받지 않는 단순한 청중이나 신도들을 서로 구별하였음.
- 근본적으로 구약성서를 파기하고 두 개의 세계를 상정하는 이원론적 입장을 취하였을 뿐만 아니라 또한 인간으로 하여금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서 자기의 구원을 ‘스스로’ 성취하도록 설법한 새로운 종류의 구제(救濟)론을 주장한 점에서 마니교와 그리스도교는 차이가 있음.
- 특히 동양이나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신장(伸張)되어 나감으로써 하나의 독립적 종교집단을 형성하였으며, 일시적으로 마니교를 맹렬히 공격하고 나선 그리스도교들의 위험한 적대자로 간주되기도 하였음.
아우구스티누스
당신은 당신을 위해 우리를 창조하셨기에, 당신의 품 안에 쉬게 되기까지는 우리 마음이 안정될 날이 없나이다. Fecisti nos ad Te et inquietum est cor nostrum, donec requiescat in Te.
- ‘고백론(Confessiones)’에서
마니교도에서 플라톤주의자로, 다시 그리스도교로 옮겨온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의 궤적에서 그가 진리를 찾아가는 여정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이렇게 회상하였다. ‘플라톤주의자가 - 견고하고 부동불변하며 또한 모든 피조물의 원형까지 내포하는 - 진리를 간취(看取)하였던 것만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이러한 진리를 단지 먼 곳에서 바라보는 데 그쳤던 그들로서는 결국 그렇게 위대하고도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정도의 축복을 담고 있는 것을 획득할 수 있는 길을 발견하지는 못하고 말았다.’
아우구스티누스야 말로 희랍철학에서 비롯된 고전주의 시대 이후로는 처음 보는 위대한 철학적 천륜(天倫)을 타고난 사람으로서, 새로운 발흥하는 그리스도교문화에 대한 더없이 고매한 철학적 표현을 우리는 바로 그의 사상이 담겨있는 저술 속에서 처음으로 발견할 수 있다. 실로 그가 남긴 족적은 5세기에서 6세기에 이르는 동안에 그리스도교가 침투된 서양전역에 그 힘을 발휘함으로써, 마침내 중세 전체를 통해서 더없이 귀중한 정신적 유산으로 化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중세초기로부터 이어진 장구한 기간에 걸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이 끼친 영향은 너무나 지대하였으므로 거의 모든 사람의 관심도 또한 오직 종교적 영역과, 그리고 신과 영혼이라고 하는 바로 그 종교적 영역 내의 양극점에만 집중된 나머지, 문예창작이나 자연과학과 같은 분야에 대한 관심은 태무(殆無)한 상태였다.
왜냐하면 아우구스티누스로서는 神의 인식과 그에 대한 사랑만이 정신적 노력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하리만큼의 값어치가 있는 유일의 목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생명력이 없는 지식이나 불필요한 호기심 따위는 단연(斷然) 지식을 위한 지식, 혹은 외적 목표만을 추구하는 무가치한 노력이라고 여겨졌던 것이다.
“비록 이 모든 것에 대해서는 알고 있으면서도 당신을 모르는 자는 틀림없이 불행할 수 밖에 없지만, 이와는 반대로 다른 모든 것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하더라도 당신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면 행복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누군가가 당신과 그 밖의 모든 것에 대해서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다 할지라도 결코 그가 당신 혼자만을 알고 있는 사람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철학은 체계적이지 않지만, 그의 사상을 전체적으로 총괄하는 문제의 핵심은 그리스도교적 근본심성과 또한 그 철학을 창시한 하나의 인격이 지니는 힘과 통일성에 있다. 읽는 이마다의 마음의 잔물결을 일게 하는 자기 직시적인 고백록이나 끈질기면서도 말없는 빛을 발산하는 삼위일체의 이론, 꾸밈없이 파고드는 대화록과 화사하게 꾸며진 찬송가집, 그리고 위용도 당당한 신국(神國) 옹호자의 역할 등등을 역설한 그 한마디 한마디에는 아우구스티누스 특유의 인간적인 풍모가 여실히 반영되어 있다.
영혼의 심층
‘하느님이시여, 이 얼마나 마음 조이게 하는 깊고도 한없이 넓은 오의로 충만된 세계입니까! 이것이 곧 영혼이며 이것이 곧 나 자신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이시여, 바로 이 나는 도대체 무엇이겠습니까? 나는 도대체 어떤 성질의 존재란 말입니까? 그야말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갖가지의 형상을 지닌, 너무나 깊은 뜻을 지닌 생명체라고나 하겠습니다! 이제 나의 기억을 한 번 되살려 봅시다. 이때 나는 헤알릴 수도 없이 갖가지 종류의 사물로 가득찬 무수히 많은 들판이나 굴, 또는 구부러진 골짜기들, 모든 물체들을 나타내주는 상징과 학문의 세계에서 다루어지게 마련인 뭇사상들, 또는 비록 정신은 더 이상 작용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기억 속에 아로새겨져서 정신의 내부에 자리잡은 감정의 움직임을 바탕으로 한 개념이나 문자를 생각하게도 됩니다. 바로 이 모든 것을 스쳐 지나가면서 나는 이곳저곳으로 움직여다니거나 이리저리 날아다니기도 하는가 하면, 또한 힘이 닿는 데까지 깊이 파고들기도 하면서 결국 그 어디에도 끝맺음이 없음을 알게 되곤 합니다: 우리의 기억력이 그렇게도 거창한 포용력을 지니듯이 유한한 생을 살아가는 인간의 생명력도 역시 그에 못지 않게 거창한 것입니다!’
위대한 희랍의 사상가들도 인간 정신의 심층까지 파고들었으나,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심리적 통찰력이 좀더 날카롭다는 사실 이상으로 그는 가장 내면적인 개체적 인격성을 외부로 전환시킬 수 있었던 열정을 바탕으로 하여 자아를 음미하며 또한 자기에게 비판을 가하였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고백론’에서 행한 독백을 통하여 가장 내면적인 스스로의 인격성을 세인의 목전(目前)에 펼쳐보일 만한 가차없는 결단성과 직선적인 자기표현을 서슴치 않았다는 데에 있다. 이와 같이 솔직한 자기노출방법이란 신화적인 방법을 이용하여 오히려 문제의 핵심을 은폐하거나 아니면 어떤 가면을 앞세워서 표명하는 것으로 그쳤던 희랍인에게는 낯선 것이었다.
내적 심연을 꿰뚫어보려는 끈질긴 탐색과 목색의 결과로서 마침내 아우구스티누스는 오늘날의 심리학이 ‘무의식’이라고 부르는 인간 내심 속에 도사린 바로 그 미지의 영역을 처음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있어서도 역시 사유의 자기 확실성이 곧 더 이상 의심할 여지도 없이 확실한 출발점을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