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캐비닛, 김언수

지하련 2008. 2. 12. 13:19
캐비닛 - 6점
김언수 지음/문학동네


<<캐비닛>>, 김언수(지음), 문학동네, 2006


쉽게, 아주 짧은 시간에, 힘을 거의 들이지 않고 다 읽을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잘 읽히고 종종 흥미 있는 이야기가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신기하고 낯선 스토리였지만,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수준의 스토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단지 이러한 스토리로 소설을 쓸 생각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확실히 나라면, 이런 소설을 쓰지도, 쓸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책 뒤에 실린 심사평의 일부는 동의할 수 있었고 일부는 동의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몇몇 이들의 높은 평가과 찬사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솔직히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평가들이 많았고, (심각하게)스스로 내가 이상한 독자나 평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소설은 특별하거나 흥미진진한 인과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저 병렬적으로 낯설고 신기한 이야기를 보여줄 뿐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라는 것이, 카프카의 여러 소설에서처럼 현대 세계의 불길하고 암울한 슬픈 모습의 반영이나 은유라기 보다는 그저 신기한 이야기 수준에서 멈추어 있었다. 한 번 진지하게 따져보자. 일요일 오전 MBC에서 방영하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라는 프로그램과 무엇이 다른 것일까? 신기함의 수준에서? 정보 전달 방식의 차이에서?

나의 평가를 너무 야박하게 여길 지 모르겠다. 하지만 소설을 다 읽은 다음, <<캐비닛>>은 속이 텅 빈 채로, 낯선 별나라에서 수입된 과자 포장지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지구에 사는 그 누구도 가보지 못한 별나라에서 수입되었다는 이유로 주목은 받았지만, 포장지를 벗겨내면 속에는 아무 것도 없는.

소설을 다 읽은 독자는 무슨 생각을 할까? 분명 재미있는 소설을 읽었다라고 생각을 할 것이다. 나도 이것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소설은 거기에서 멈추고 만다. 안타깝게도 이 소설은 독자의 마음에는 아무런 감정적 여운도, 감정적 흔들림도 남기지 않는다. 진지한 세계나 질문은 거세되어 있으며, 현실 세계에 대한 해석을 하지 않는다.  

결국 나는 너무 보수적이고 심각한 독자이다. 나는 현대 소설이야 말로, 위대한 서사시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으며, 이 세계에 대해서 진지하고 가치있는 발언을 계속 해야 된다고 믿는 골치 아픈 독자에 지나지 않는다. 이 소설을 읽고 찬사를 거듭한 평자들의 눈에 나같은 독자는 당장 과거의, 시대착오적인 테마들로 가득 찬 도서관 서가 구석으로 사라져야 할 대상으로 치부될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이 사실이 너무 안타깝고 슬프다. 왜, 어떤 이유로, 소설의 진정한 가치를 이야기하고 소설이 가진 힘에 대해서 논하는 소설가나 평론가들이 사라져 가는 것일까? 무엇이 포스트모던 사상가로 분류되는 가라타니 고진으로 하여금, 이미 오래 전에 죽은 사르트르의 낡은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꺼내들게 만드는 것일까?

소설을 읽는다는 것, 그 독서 행위는 이제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헐리우드의 액션 영화나 한국의 조폭 코메디 영화를 보는 것과 동일한 선상에서 이해되고 받아들여지며, 이를 거부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한국의 젊은 소설가들은 이런 영화들과 경쟁하기 위해서, 영화(또는 TV 드라마)와의 거친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소설을 쓴다. 그리고 그 옆에서 평론가들은 입에 침도 바르지 않은 채, ‘문학의 죽음’을 이야기하느라 정신 없다.

꼭 'PC방 Vs. 비디오대여점'을 보는 것 같다. PC방의 성공으로, 비디오 대여점이 사라지듯이, 영화나 TV 드라마로 인해 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사라진다는 위기감을 가지고 있는 듯 싶다. 그래서 소설은 영화나 TV 드라마보다 나아야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소설과 관계된 모든 사람들이 나서서 소설의 가치와 위상을 절하시키고 있는 것이다. 소설은 영화, 또는 TV 드라마와는 전적으로 다른 장르이며, 매체다. 소설가라면, 절대로 영화화, TV 드라마화, 심지어는 희곡으로도 만들 수 없는 소설을 쓰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소설의 진정한 모습을 찾기 위해서 끊임없이 도전해야 되지 않을까.

결국 나는 너무 보수적이거나 심각한 독자이거나, 또는 시대착오적인 생각으로 똘똘 뭉친 무명의 평자일 것이다. 나는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난 불행한 개인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