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은 다른 곳에 - 밀란 쿤데라 지음, 안정효 옮김/까치글방 |
生은 다른 곳에
밀란 쿤데라(지음), 안정효(옮김), 까치
이 소설은 ‘봄을 사랑하는 남자’ 뿐 아니라 ‘봄의 사랑을 받는 남자’라는 의미도 되는 야로밀(Jaromil)이라는 이름을 가진 시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것은 소설의 표면에 드러나는 것일 뿐. 이 소설은 젊음과 그 젊음이 염원하고 갈구하는 혁명에 대한 알레고리이며 모호한 관찰이며, 작가와 허구적 목소리의 뒤섞임이다.
- 193쪽
작가의 목소리는 1968년 파리의 불타는 젊음들 뒤에 서서 비아냥거리고 있다. 그리고 그는 결국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 296쪽 ~ 297쪽
(‘자비에르’는 소설 주인공인 야로밀이 쓰고 있던 이야기의 주인공 이름이다.)
‘생은 다른 곳에’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꿈이다. 1968년 파리에 대해 많은 지식인들이 이야기하지만(‘파리 혁명’이라고까지 하면서), 밀란 쿤데라의 눈에 비친 68년 파리는 마치 공산혁명이 진행되던 1940년대 후반의 체코 프라하와 비슷해 보였을 것이다. 그는 야로밀이라는 어리석지만 순수하고 어머니의 치맛바람 속에서 자라났지만, 어머니의 영향 속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순백의 사랑과 그 사랑이 불러일으키는 욕정에 대해서 종종 무방비 상태가 되는 시인을 통해 혁명 시대가 어떻게 오고 어떻게 가는지를 이야기한다. 이 소설의 원제가 ‘서정시대’였지만, 실은 ‘서정시와는 아무런 관련없는 혁명 시대’가 그 속뜻은 아니었을까(밀란 쿤데라 또한 18세의 나이로 공산당에 가입하고 젊은 시절 시인으로 활동했다).
위대한 문학이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다는 자괴감이 이 소설 밑바닥에 깔려있는 작가의 자의식이라면, 소설은 끊임없이 어리석은 젊음에 대해서 꾸짖고 비아냥거리며 인생을 제대로 살아갈 용기가 없기 때문에 무모해지는 꿈과 그 꿈에 의해 발동되는 행동들에 대해 조소한다. 그래서 소설을 다 읽고 나면, 한 때 운동권의 잘 나가는 투사가 정치 권력의 중심을 향해 돌진해 가는 국회의원이 되거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꿋꿋하게 수익 창출에 골몰하는 비즈니스맨이 된 모습을 씁쓰레하게 떠올리게 되거나 세상에, 세상 사람들에 대해, 그리고 인생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알지 못했던 상태에서 혁명을 노래했던 우리들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게 된다.
이 소설은 매우 실험적이고 위트와 유머가 넘치지만, 이마저도 밀란 쿤데라의 자괴감이 만들어내는 소설의 기형화(畸形化)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까지 미쳐 슬펐다. 소설책을 덮고 나는 바진(巴金, 1904~2005)의 글을 떠올렸다. 20세기 중국의 모든 것을 경험한 그가 떠올리는 문화대혁명의 모습이 기억났다.
- 바진, <<매의 노래>>(황소자리), 119쪽 ~ 120쪽
(설명: 문화대혁명 당시 사상이 불순하다고 평가된 사람들을 ‘소’로 취급하였고 외양간 생활을 오랫동안 하기도 했다. 바진 역시 그 외양간에서 살기도 했다. 그리고 문화대혁명 때 동원된 중고등학생, 대학생을 ‘홍위병’이라 하며, 직장에서 문화대혁명을 지지하여 들고 일어났던 직원이나 노동자를 ‘조반파’라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홍위병’들이 이제 사오십대가 되어 중국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아직 ‘문화대혁명’에서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는 주제이기도 하다. 살아있을 때 바진은 문혁 박물관을 건립하여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희생된 많은 이들을 위로하고 기념하고 싶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