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페스트, 알베르 카뮈

지하련 2008. 5. 4. 00:30
페스트 - 8점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책세상


페스트
알베르 카뮈(지음), 김화영(옮김), 책세상



<<이방인>>이 주었던 그 강렬한 충격을 나는 잊지 못한다. 그리고 카뮈의 <<페스트>>를 읽었다. 벌써 몇 달이 지났다. 주제 사라마구의 <<눈 먼 자들의 도시>>를 읽고 난 후였다. 도시에서 일어난 어떤 질병에 대한 인간의 반응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이 두 소설은 흥미롭게 교차되었다. 주제 사라마구의 <<눈 먼 자들의 도시>>가 의사 아내의 눈을 통해 묘사되듯, 카뮈의 <<페스트>>에서는 의사인 리유를 통해 보여지고 있었다.

하지만 <<페스트>>는 <<눈 먼 자들의 도시>>와 비교해, 극적 긴장감이 떨어지고 사변적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질병으로 인해 폐쇄된 도시의 풍경을 묘사하지만, 그 속에는 극적인 사건보다는 질병과 죽음이 일상이 되어가는, 우울한 도시 풍경 뿐이다. 젊은 카뮈에게 '어떤 절망적 위기 앞에서 인간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꽤 긴 성찰과 반성이 요구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점에서 주제 사라마구는 분명하다. '우리는 쉽게 자살하지 못한다'라는 것이다. 어쩌면 <<페스트>> 이후의 주제 사라마구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일 지도 모른다.

<<페스트>>와 <<눈 먼 자들의 도시>> 사이에 우리 인류는 어떤 일들을 겪었던 것일까. <<페스트>>의 리유에게는 생각할 힘과 행동할 힘을 주어졌으나, <<눈 먼 자들의 도시>>의 의사 아내에게는 생각할 힘도, 행동할 힘도 주어지지 못했다. 그래서 <<페스트>>에서는 희망을 발견하고자 하는 인간 지성의 힘을 읽지만, <<눈 먼 자들의 도시>>에서는 희망이란, 아주 우연스럽고 갑작스럽게 다가올 뿐, 인간 지성은 아무 쓸모도 없는 거추장스러운 것에 지나지 않으며, 결국 우리는 죽지 못해 살아갈 뿐이라는 사실을 극명하게 드러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