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청담

지하련 2006. 9. 23. 10:13


청담(淸談)

                    이진명

조용하여라. 한낮에 나무들 입 비비는 소리는.
마당가에 떨어지는 그 말씀들의 잔기침. 세상
은 높아라. 하늘은 눈이 시려라. 계단을 내려
오는 내 조그만 애인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
때처럼. 눈시울이 붉어라. 萬象이 흘러가고
萬象이 흘러오고. 조용하여라. 한해만 살다
가는 꽃들. 허리 아파라. 몸 아파라. 물가로
불려가는 풀꽃의 헤진 색깔들. 산을 오르며
사람들은 빈 그루터기에 앉아 쉬리라. 유리
병마다 가득 울리는 소리를 채우리라. 한
개비 담배로 이승의 오지 않는 꿈, 땅의 糧
食을 이야기하리라. 萬象이 흘러가고 萬象
이 흘러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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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이 너무 멀리 있어, 아주 오래 전에 이 시를 좋아했다는 사실마저 어색한 토요일 저녁. 팔굼치는 까지고 목은 부어있고 몸과 마음이 아파 어쩌지 못하는 가을. 내 인생의 강물은 어디에서 시작하여 어디로 향해가는 걸까.

이진명의 시를 오랫만에 읽고 영혼의 위로를 구하는 어느 밤에.